카르나발레 박물관: 파리 섭정 (1715 - 1723) - 계몽주의의 여명기 > 한지수의 봉주르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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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수의 봉주르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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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나발레 박물관: 파리 섭정 (1715 - 1723) - 계몽주의의 여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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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0월 20일 ~ 2024년 2월 25일


Le musée Carnavalet : LA RÉGENCE À PARIS (1715 - 1723) - L'aube des Lumiè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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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레 지구 중심부에 있는 카르나발레 박물관은 파리 역사의 교과서 같은 장소이다. 그림, 조각, 가구, 목공예품, 장식 예술품 및 역사 유물, 표지판, 사진, 동전, 판화, 포스터 등이 다양하게 전시되어 선사시대부터 현재까지 역사적 배경 속에서 특별한 파리여행을 즐길 수 있다. 파리를 역사적, 다큐멘터리적, 감상적으로 가깝고 독특하고 생생한 방식으로 소개하는 매력적인 박물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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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카르나발레 박물관에서는 파리의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삶을 기념하는 '잊힌 역사의 시기' 인 파리 섭정 정치 시기 전시를 선보인다. 루이 14세는 프랑스에 막대한 빚을 남기고 왕위를 계승하기엔 너무 어린 5살의 아들 루이 15세에게 물려주고 1715년 9월 1일 베르사유에서 세상을 떠났다. 새로운 왕이 성년인 13세에 도달할 때까지 권력이 선왕의 조카인 필립 도를레앙 (1674~1723)에게 위임되었고 섭정이 이뤄졌다. 따라서 이 전시는 섭정 서거 300주년을 기념하는 측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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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섭정이라고 하면 사극 속 수렴청정이 생각나서 무능한 어린 왕, 야욕에 사로잡힌 대신들 같은 고정관념이  있는데, 오늘날 역사가들은 이 섭정 시기를 정치적 개방과 중대한 변화의 시기이자 절대 군주제 유지를 목표로 하는 보수적 전환기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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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기에 첫 번째 중요한 변화는 왕, 정부, 법원이 베르사유에서 파리로 떠난 것이다. 1715년에 법원,  행정부 등 권력기구가 유럽 제2의 도시인 파리로 이전되었고, 그 후 파리의 인구는 크게 증가했다. 파리에서는 아시아에서 수입한 도자기, 금도금 청동 등 명품 소비가 증가하면서 가구 제작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었으며 현지 고객은 물론 국제 고객도 유치하고 있었다. 그렇게 점점 왕실 주문은 점점 드물어졌고 다양한 개인에게 새로운 취향의 주도권이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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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6년 섭정은 통화 가치를 재평가하여 긴축 정책을 시도했다. 그러나 스코틀랜드 경제학자 존 로(John Law)는 그에게 다른 개혁을 수행하도록 설득했다. 1717년에서 1719년 사이에 그는 무역 회사를 통합하고 왕실 은행을 창설했다. 지폐의 발명이 이러한 경험의 정점을 이루었던 것이다. 여기서 그의 이름을 따서 '법 체계(Système de Law)'라고 부르게 된 것이라고 한다. 뜻밖의 깨알 지식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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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변화는 필립 도를레앙의 권력 구현이다. 그는 루이 14세와는 달리 자유 사상가, 무신론자, 예술가인 동시에 권위주의자였다. 특히 섭정 정치의 중심지였던 팔레 루아얄(Palais-Royal)은 철학적, 경제적, 예술적 혁신의 세계를 탄생시킨 강렬한 문화적 활력의 원천이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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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변화는 앞의 두 가지에서 비롯된다. 파리에서 정치권력과 문화권력의 공존이 재발견된 것이다. 지폐의 발명과 활기가 넘쳤지만 스캔들, 음모, 무절제한 투기의 희생양이 된 나라는 통제 불능 상태에 빠졌고 1720년에 결국 붕괴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민지, 특히 앤틸리스 제도와의 무역이 호황을 누리게 되며 부채에서 벗어나며 다시 번영을 되찾았다. 또한 섭정 시대에 계몽주의 정신이라고 부르는 새로운 비판의 자유가 탄생하게 되었다. 볼테르, 마리보, 몽테스키외, 로, 와토 등이 가장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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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2년 6월 15일, 루이 15세는 베르사유로 돌아가기로 결심하고 파리를 떠났다. 10월 25일 그는 랭스에서 즉위하며 이듬해 1723년 2월 22일에 공식화했다. 진정한 섭정의 종결이었다. 필립 도를레앙은 재정이 회복되고 군주제가 통합되어 평화롭게 나라를 떠났다. 파리는 섭정 통치 하에서 명실상부한 정치적, 문화적 중심지가 되었던 것이다. 새로운 왕에 의해 다시 버림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파리는 18세기 내내 그 역할을 유지했다. 어쩌면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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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 조각, 그래픽 작품, 장식 요소 및 가구 등 200개 이상의 작품을 통해 이 역사 기간을 탐구하고 당시 사회 변화에 대해 파악할 수 있는 전시다. 파리가  문화 수도이며 이는 지속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다. 사실 필립 도를레앙(Philippe d'Orléans)의 통치 하에 파리는 사회 경제적, 문화적, 미학적 변화가 매우 예민하게 발전, 성장을 하고 계몽주의가 처음으로 빛을 보게 되었지만 이 놀라운 쇄신에 대한 정치적 권위가 없었기 때문에 특징 지어지지 않는다는 점이 역설적으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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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전시 전반에  그림 경로를 통해 어린이들에게 지정된 라벨과 일러스트레이션을 따라 맞춤형 관람을 할 수 있게 제작해 두었다. 그림이 포함된 14개의 어린이 캡션은 이 역사의 현장에서 다루는 주요 주제를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다.  "왕의 교육", "지폐", "거리 극장", "계몽의 여명" 및 기타 많은 주제를 쉽게 이해할 수 있어서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 했다. 루이 15세가 파리에 도착하면서부터 시작된 삽화들은 섭정 시대 파리의 삶을 연상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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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_한지수 (파리통신원ㆍ에디터)
소르본파리노르대학교에서 현대 문학을 전공하고 동 대학원에서 텍스트 이미지 문화를 공부하고 있다.
갤러리자인제노의 파리통신원 및 객원 큐레이터, 주 프랑스 한국문화원 도슨트로 활동 중이며,
문화예술신문-아트앤컬쳐에 에디터로 리뷰를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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