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오페라 극장-도서관 박물관: 파리 오페라의 무대 장신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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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1월 28일부터 2025년 3월 28일까지
Bibliothèque-musée de l’Opéra national de Paris : Bijoux de scène de l’Opéra de Paris
파리 오페라는 세계적인 오페라 및 발레 공연장이자 문화 기관으로, 1669년 설립된 왕립 음악 아카데미에서 역사가 시작되었다. 현재는 팔레 가르니에(Palais Garnier)와 오페라 바스티유(Opéra Bastille) 두 공연장을 중심으로 운영되며, 고전 오페라와 발레부터 현대 창작물까지 폭넓은 작품을 선보인다. 뛰어난 무대 연출, 웅장한 건축물, 그리고 세계 정상급 예술가들의 공연으로 유명하다.
ⓒ Bibliothèque-musée de l’Opéra national de Paris, Photo: Han Jisoo
게다가 파리 오페라에는 오페라 도서관-박물관(Bibliothèque-Musée de l'Opéra)이라는 특별한 공간이 있는데 프랑스 국립도서관(BNF)의 일부로, 파리 오페라의 역사와 공연 예술의 유산을 보존하고 연구하고 있다. 팔레 가르니에 내부에 위치한 이 도서관은 약 450,000점에 이르는 방대한 자료를 소장하고 있으며, 오페라와 발레 관련 대본, 악보, 의상 디자인, 사진, 포스터 등 다양한 아카이브를 포함한다. 또한, 오페라와 발레 무대에서 사용되었던 독특한 소품과 장신구, 그림도 전시되어 있어 공연 예술의 매력을 체감할 수 있다.
ⓒ Bibliothèque-musée de l’Opéra national de Paris, Photo: Han Jisoo
이번 겨울, 오페라와 발레 무대에서 예술가들의 연기를 더욱 찬란하게 빛나게 해주는 무대 장신구들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된다. 이 전시는 오페라를 위한 특별히 제작된 장신구들이 어떻게 무대에서 배우들의 연기를 강조하고,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지 보여준다. 과거 오페라에서 실제로 사용되었던 장신구들을 직접 만나볼 수 있으며, 그 속에 담긴 예술적 가치와 역사적 배경을 깊이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장신구의 제작 과정과 관련된 자료들도 함께 전시되어 있어 무대 의상과 장신구가 어떻게 공연의 핵심적인 요소로 작용하는지 살펴볼 수 있다. 파리 오페라 내부에서 펼쳐지는 이 특별 전시는 공연을 관람하지 않아도 경험할 수 있어 오페라 팬들에게 또 다른 형태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 Bibliothèque-musée de l’Opéra national de Paris, Photo: Han Jisoo
구 체제(Ancien Régime) 시기기, 예술가들은 무대 위에서 자신이 소유한 장신구를 착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실제로 1831년부터 1835년까지 오페라의 감독이었던 루이-데지레 베롱(Louis-Désiré Véron)은 예술가들에게 '자신이 가진 가장 아름다운 장신구를 무대 위에서 착용할 것' 을 요청하기도 했다. 게다가 당시 배우들이 착용하는 장신구들은 권력자 혹은 후원자들로부터 받은 호의의 척도를 나타낸 것이기도 하다.
ⓒ Bibliothèque-musée de l’Opéra national de Paris, Photo: Han Jisoo
19세기부터 점차적으로 드라마적 사실성의 요구가 커지면서 파리 오페라는 예술가들에게 무대 장신구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무대 장신구는 단순히 아름다운 악세서리가 아닌 작품의 중요한 서사적 요소로 사용되거나 무대 극의 해석을 돕는 중요한 장치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장신구는 등장인물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게 하여 등장인물들의 성격과 사회적 지위를 시각적으로 전달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 Bibliothèque-musée de l’Opéra national de Paris, Photo: Han Jisoo
화려한 장식은 권력자나 부유한 인물들의 부와 지배력을 상징하고 마법사나 팜므파탈 같은 강렬한 캐릭터들은 그들의 신비롭고 위험한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해 호화로운 장신구를 착용한다. 정복자나 전사들의 강인함과 전투력을 갑옷 장신구를 통해 더욱 위엄 있고 강력하게 보이도록 돕는다. 이처럼 장신구는 관객들에게 극의 전개와 인물들 간의 관계를 직관적으로 전달하는 중요한 도구로 작용했다.
ⓒ Bibliothèque-musée de l’Opéra national de Paris, Photo: Han Jisoo
19세기 극작가들은 장신구가 가진 빛나는 화려함을 잘 활용하여 인물들의 약점을 드러내거나, 이야기의 중요한 전환점을 만들었다. 장신구는 사람들을 매혹하고 탐욕을 자극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어 종종 유혹의 도구로 사용되었다. 예를 들어 샤를 구노의 오페라 <파우스트>에서 메피스토펠레스가 마르그리트에게 선물한 보석 상자는 그녀의 파멸을 초래하며 유명한 <보석의 노래>를 탄생시킨다. 또한 리하르트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에서는 황금의 반짝임이 서사의 시작을 알리는 중요한 요소로 등장한다.
ⓒ Bibliothèque-musée de l’Opéra national de Paris, Photo: Han Jisoo
장신구는 등장인물의 숨겨진 정체를 드러내거나 극적인 반전을 이끌어내는 중요한 역할을 하여 19세기 관객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특히 오늘날처럼 자막 시스템이 없던 시절에는 장신구가 극의 내용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단서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연은 지금처럼 엄숙한 침묵 속에서 이루어지지 않았고 관객들의 대화가 끊이지 않았기 때문에, 장신구는 이야기를 따라가고 등장인물의 성격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이다.
ⓒ Bibliothèque-musée de l’Opéra national de Paris, Photo: Han Jisoo
오페라 무대 장신구의 스타일은 19세기부터 오늘날까지 오페라와 발레 무대 연출의 주요 흐름을 반영해왔다. 낭만주의, 그랜드 오페라, 상징주의, 포스트모더니즘 등 다양한 사조가 장신구 디자인에 영향을 미쳤으며 이는 무대 연출, 배경, 의상과 함께 오페라 무대에서 다채롭게 표현되었다. 특히 한 작품을 위해 정교하게 제작된 화려한 무대 장신구는 경제적인 이유로 종종 해체되어 새로운 작품에 재탄생되곤 했다. 이러한 재탄생은 장신구가 시대와 역할에 따라 변모하며 그 변화의 과정을 통해 더욱 깊이 있고 독특한 가치를 지니게 만든다.
ⓒ Bibliothèque-musée de l’Opéra national de Paris, Photo: Han Jisoo
화려하게 빛나는 장신구들은 실제 보석이 아니라 유리, 황동 등 비금속 재료로 제작되어 실제 보석처럼 보이게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더욱 놀라웠다. 값비싼 재료 없이 장인의 정교한 손길과 창의성만으로 이런 수준의 아름다움과 감동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이 감탄스러웠다.
ⓒ Bibliothèque-musée de l’Opéra national de Paris, Photo: Han Jisoo
무엇보다 오페라와 발레가 가진 예술의 연장선에 장신구가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실제 역사적 사실을 탐구하며 만들어진 작품들부터 완전히 상상에 기반한 창작물까지 각 시대의 장신구들은 그 시대의 미적 감각과 가치관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무대 위에서 반짝이던 장신구들이 눈앞에서 가까이 보니 오페라 공연을 관람하며 멀리서 어렴풋이 빛나는 그 화려함에 감탄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그 세밀한 디테일과 장인의 손길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음이 새삼 감동으로 다가왔다.
ⓒ Bibliothèque-musée de l’Opéra national de Paris, Photo: Han Jisoo
오페라라는 화려한 무대 위에서만 존재할 것 같던 장신구들이 그자체로 작품이 되어 조용히 빛나고 있는 이 공간은 공연의 뒷면을 엿보는 즐거움이었다. 공연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예술의 깊이를 느낄 수 있는 시공간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