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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수의 봉주르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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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비통 재단 : 데이비드 호크니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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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Fondation Louis Vuitton : David Hockney 25
2025년 4월 9일 – 8월 31일

루이비통 재단은 프랑스 럭셔리 그룹 LVMH가 설립한 현대미술 전용 문화기관으로, 프랭크 게리(Frank Gehry)가 설계한 유리와 금속 구조의 독창적인 건축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세계적인 현대미술 작가들의 전시를 비롯해 다양한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선보이며 파리의 주요 예술 공간으로 자리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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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 Fondation Louis VuittonPhoto: Han Jisoo  
 

2025년 봄, 루이비통 재단은 20세기와 21세기를 대표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예술가 중 한 명인 데이비드 호크니를 초청하여 전시 공간 전체를 채운다. 1955년부터 2025년에 이르기까지 총 400점이 넘는 작품들이 전시되며, 이는 작가의 아틀리에와 재단에서 제공한 주요 소장품 외에도 전 세계 기관 및 개인 소장처에서의 대여를 통해 이루어진 것이다. 이번 전시는 유화, 아크릴화, 잉크·연필·목탄 드로잉, 디지털 작업(사진, 컴퓨터, 아이폰·아이패드 드로잉), 비디오 설치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드는 창작의 전모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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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 Fondation Louis VuittonPhoto: Han Jisoo  


무엇보다 이 전시는 작가 본인이 직접 기획에 깊이 관여했는데, 그의 시선과 숨결이 고스란히 반영된다는 점에서 특히 인상 깊다. 그는 자신의 초창기 대표작들을 소개한 뒤, 최근 25년간의 작품 세계를 전면에 내세우는 방식으로 전시를 구성했다. 모든 전시실과 섹션의 구성을 그의 조수인 조너선 윌킨슨(Jonathan Wilkinson)과의 지속적인 대화를 통해 구현됐다. 

데이비드 호크니는 “이번 전시는 저에게 특히 중요합니다. 지금까지 제가 가진 전시 중 가장 큰 규모예요. 루이 비통 재단의 열한 개 전시실 전체를 사용하니까요! 방금 작업 중인 최신 회화 몇 점도 전시될 예정입니다. 잘 나올 것 같아요, 아마도.” 라고 밝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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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vid Hockney


최근 수년간 호크니가 주제와 표현 방식을 얼마나 끊임없이 갱신해왔는지를 알 수 있는 전시이다. 처음에는 고전적 기법을 섭렵한 정통 드로잉 작가로 출발했지만, 그는 오늘날 신기술을 선도하는 예술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전시 초반에서는 호크니의 출발지인 브래드퍼드(Bradford) 시절, 이후 런던과 캘리포니아 시기를 거친다. 1950년대 말, 호크니는 런던으로 이주하여 왕립예술학교(Royal College of Art)에 입학한다. 그는 런던의 박물관들을 탐방하고, 한창 활기를 띠던 예술계의 일원이 됐다. 그는 당시의 유행과는 무관하게 일관되게 구상적 회화를 선택했다. 그 시기 그의 작품에서는 그래피티나 뒤뷔페의 회화와의 친연성이 엿보이기도 한다. 당시 영국 사회에서 금기시되던 동성애 정체성 또한 그의 작업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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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id Hockney, Christopher Isherwood and Don Bachardy, 1968
Acrylique sur toile 212,09 x 303,53 cm (83,5 x 119,5 pouces) © David Hockney | Crédit photo : Fabrice Gibert

그는 이탈리아, 프랑스, 그리고 베를린, 뉴욕, 로스앤젤레스 등을 여행하면서 다양한 시각을 흡수했고, 이는 1960년대의 다채로운 창작 세계로 이어진다. 이후 1978년 LA 시기에 쾌락적이고 햇살 가득한 해방된 캘리포니아를 기념하는 작품들을 제작한다. 단순한 구성, 직관적인 이미지, 투명한 빛의 사용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속의 노골적인 에로티시즘은 부드러운 정서를 자아낸다. 건축적·자연적 배경은 선명한 색면으로 최소화되었고, 폴라로이드 사진이 작업의 주요한 영감 원천 중 하나였다고 한다. 호크니의 상징적 주제인 수영장 또한 볼 수 있고, 이중 초상화 시리즈도 전시되어 있다. 1980~90년대를 거치며, 자연이 그의 작업에서 점점 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이후 유럽으로 돌아온 그는 익숙한 풍경에 대한 탐구를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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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id Hockney, Portrait of an Artist (Pool with Two Figures), 1972
Acrylique sur toile 213,36 x 304,8 cm (84 x 120 pouces) © David Hockney | Crédit photo : Art Gallery of New South Wales / Jenni Carter


전시의 중심은 그가 주로 거주했던 요크셔, 노르망디, 런던에서 창작한 최근 25년의 작품들이다.  요크셔(Yorkshire)는 표면적으로는 회화적 매력이 두드러지지 않는 지역이지만, 그는 이곳을 내밀하면서도 장대한 스케일로 담아내고자 새로운 시각 언어를 고안해낸다. 다양한 시점과 기법을 실험하며 이 지역에 몰입했고, 이 과정은 1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이어졌다. 1960년대 중반부터 캘리포니아의 햇살 아래 살아온 그가, 이제는 잉글랜드의 사계절이라는 새로운 과제와 마주한 것이다. 그는 존 컨스터블(Constable)과 J.M.W. 터너(Turner) 같은 영국 풍경화의 전통에 자신을 위치시키고자 하며, 수채화, 목탄, 유화 등 고전적인 매체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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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vid Hockney, Bigger Trees near Warter or/ou Peinture sur le Motif pour le Nouvel Age Post-Photographique, 2007
Huile sur 50 toiles (36 x 48" chacune) 457,2 x 1219,2 cm (180 x 480 pouces) © David Hockney | Crédit photo : Prudence Cuming Associates Tate, Royaume-Uni.


호크니는 늘 그러했듯 이번 전시에서도 초상화 작업을 이어간다. 아크릴화와 아이패드 드로잉이 나란히 소개되며, 약 60점의 인물 초상과 함께 액자에 담긴 꽃 정물화도 등장한다. 그는 평생 가족과 가까운 지인들의 얼굴을 그려왔고, 전시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 또한 그의 아버지를 그린 1955년의 초상화다. 이러한 초상들은 다양한 매체와 기법을 넘나들며 완성된다. 종이 위에 그리거나 컴퓨터, 디지털 태블릿을 활용하는가 하면, 카메라 루시다(lucida) 같은 광학 장치도 종종 등장한다. 때로는 아이패드로 그린 꽃 정물화를 고전 회화처럼 액자에 담아 전통적인 형식을 덧입히기도 한다. 그러나 디지털 기술이 중심에 자리 잡은 시대에도 호크니는 여전히 붓, 아크릴, 유화를 손에서 놓지 않는다. 2008년 컴퓨터를 시작으로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차례로 수용해 왔지만, 그 안에는 전통 회화와 디지털 사이의 충돌에서 비롯된 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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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vid Hockney


2020년, 노르망디의 한 시골 마을에서 봉쇄령 속에 머물게 된 호크니는 친구들을 위로하고자 아이패드로 그림을 그려 보내기 시작했다. 아이패드로 그린 〈220 for 2020〉 시리즈는 사계절의 빛의 변화를 하루하루 기록한 연작이다. 일상의 주변 환경을 그리는 시도를 이어가며, 2020년 한 해 동안 노르망디의 풍경 220점을 제작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던 것이다. 호크니는 다시금 계절의 변화, 하루의 변화 속에 담긴 미묘함을 기념하며, 아이패드를 통해 하나의 모티프를 여러 번 반복 탐색하며 새로운 그림들을 끊임없이 창조해냈다. 디지털 매체의 장점을 살려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자연을 민감하게 포착했고, 이는 곧 그가 이 공간과 시간을 얼마나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았는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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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vid Hockney


호크니는 이번 전시의 마지막에서 예술사 전반에 걸친 깊은 영향을 되짚는다. 2000년에 제작된 〈The Great Wall〉은 15세기 초기 르네상스 퀘트로첸토 (Quattrocento, 15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 초기. 회화와 조각, 건축에서 인간 중심적 표현과 원근법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시기) 회화들을 오마주한 작품으로 예술사에 대한 작가의 경의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프라 안젤리코(Fra Angelico), 클로드 로랭(Claude Lorrain), 세잔, 반 고흐, 피카소와 같이 호크니가 존경하는 예술가들과의 대화는 작품 속 형상과 공간 구성, 색채의 감각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이 일련의 작업은 회화와 사유, 그리고 음악과 무용이 교차하는 예술적 아틀리에의 한 장면처럼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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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vid Hockney


또한 호크니는 오페라 애호가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는 1970년대부터 다양한 무대를 위해 제작한 작업들을 시청각적 설치 형식으로 새롭게 구성해 선보이며, 음악과 이미지가 어우러진 감각의 세계를 연출해왔다. 이 구성은 일종의 종합예술로서, 호크니가 작업한 오페라 무대와 드로잉을 바탕으로 구성된 특별한 영상 설치가 소개된다. 마지막 공간에서는 작가가 2023년 7월부터 머물고 있는 런던에서 완성한 가장 최근의 작업을 전시한다. 에드바르 뭉크(Edvard Munch)와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에게 헌정한 작품으로, 천문학·역사·지리·정신성이 교차하는 세계를 탐험한다. 그렇게 이 대규모 전시는 작가의 최신 자화상으로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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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vid Hockney


이번 데이비드 호크니 회고전은 여러 해에 걸쳐 전 세계 미술관에서 조금씩 마주했던 그의 작품들이 이제 하나의 연대기처럼 나열되어 있었다. 여러 미술관에서 흩어 보았던 그의 작품들이 한 자리에 모인 보기 드문 기회였다. 그야말로 ‘총망라’라는 말이 어울릴 만큼 대규모였고, 익숙한 작품들과 함께 처음 마주하는 낯선 작업들도 공존해 관람 내내 긴장의 끈이 놓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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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id Hockney,Play within a Play within a Play and Me with a Cigarette, 2024-2025 Acrylique sur toile et collage 121,9 x 182,9 cm Collection de l’artiste © David Hockney


수십 개의 캔버스를 이어붙인 작업들은 단순한 풍경화가 아니라 하나의 시선 체계에 대한 철학적 질문처럼 다가온다. 공간과 시점을 병렬로 배열하며 그 자체로 시간을 확장한다. 또한 디지털로 꽃을 그리고, 달빛을 그리고, 봄의 예감을 나눈다. 그 언어는 기술이 아니라 다정함이다. 아이패드로 그린 꽃과 계절의 기록은 기술적인 도전이라기보다 멀어진 일상 속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다정한 인사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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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id Hockney, 10th September 2020 Peinture sur iPad imprimée sur papier, montée sur cinq panneaux en aluminium 364,1 × 521,4 cm ensemble © David Hockney


그의 그림이 끊임없이 팔리고, 계속해서 전시되고, 수천만 달러의 가치를 지니는 것은 아름다움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단순한 대중성이나 스타성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호크니는 늘 새로운 매체를 과감히 시도하면서도, 전통적인 회화의 서정성과 손맛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그의 그림에는 기술이 아닌 살아 있는 시선이 있고, 어떤 인위적 장치보다 더 날카로운 직관이 담겨 있다. 

 


글ㆍ사진_한지수 (파리통신원ㆍ에디터)
소르본파리노르대학교에서 현대 문학 학사, 동 대학원에서 문화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하여 석사 학위를 마쳤다. 갤러리자인제노에서 파리 통신원 및 객원 큐레이터로 활동했으며, 주 프랑스 한국문화원에서 도슨트로 근무한 경험이 있다. 현재는 문화예술신문 아트앤컬쳐에서 에디터로서 다양한 리뷰를 제공하고, 프리랜서 번역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또한 프랑스 한인유학생회의 창립멤버이며 프랑스 교민지 파리광장에 문화 및 예술 관련 기사를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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