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세 미술관: 카유보트, 남성을 그리다//해리엇 바커(1845-1932) - 색채의 음악 > 한지수의 봉주르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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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수의 봉주르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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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세 미술관: 카유보트, 남성을 그리다//해리엇 바커(1845-1932) - 색채의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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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8일부터 2025년 1월 19일까지//2024년 9월 24일부터 2025년 1월 12일까지

Musée d'Orsay : Caillebotte, peindre les hommes // Harriet Backer (1845-1932) - La musique des couleurs


 


오르세 미술관은 1848년에서 1914년 사이에 제작된 예술 작품들을 주로 소장하고 있다. 특히 인상주의와 후기인상주의 작품들이 가장 큰 자랑거리로, 클로드 모네, 에두아르 마네, 빈센트 반 고흐, 오귀스트 르누아르, 에드가 드가 등의 걸작들을 감상할 수 있다. 1900년에 지어진 기차역을 개조한 건물로, 그 건축미 역시 중요한 볼거리 중 하나이다. 1986년에 미술관으로 재탄생했으며,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의 예술적 흐름을 전시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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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usée d'OrsayPhoto: Han Jisoo   


 

이번 가을에는 구스타브 카유보트(Gustave Caillebotte, 1848-1894)의 '그림 속 남성 인물과 남성 초상화' 를 주제로 특별 전시회가 진행된다. <카유보트, 남성을 그리다> 전시회는 카유보트가 사망한 지 130주년을 기념하여 기획되었으며, 이 해는 그의 회화 컬렉션을 국가에 기증한 해이기도 하다. 19세기 남성성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바탕으로 카유보트 예술의 급진적인 현대성을 탐구하는데, 약 70점의 작품으로 구성된 이 전시회는 카유보트의 주요 인물 그림뿐만 아니라 파스텔화, 드로잉, 사진, 문서 등 다양한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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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efefc23a20486fb501505629dbd4a4_1732296871_5993.jpg    ⓒ Musée d'OrsayPhoto: Han Jisoo   


카유보트는 진실된 새로운 예술을 창조하고자 했기에 자신이 직접 접하는 환경(오스만 양식의 파리, 파리 근교의 휴양지)과 그의 주변 인물들(형제들, 가족을 위해 일하는 노동자들, 요트 선수 등), 그리고 자신의 삶을 주제로 삼았다. 젊고 부유한 독신 파리 남성이라는 자신의 정체성 너머로, 인상주의와 현대성의 중심에 남성의 상태에 대한 깊은 성찰을 했다. 즉, 그의 작품은 단순한 사회적 재현이 아니라  당대의 성적, 사회적 규범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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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usée d'OrsayPhoto: Han Jisoo   

 


카유보트는 인상파 화가들 중에서도 남성 인물에 대한 강한 선호를 보여왔다. 자신과 동시대 남성들의 외모와 다양한 사회 계층을 묘사해 낸다. 이러한 인물들에 대해 사실적이면서도 매우 개인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그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부르주아 화가, 스포츠맨, 독신자)과 계급 간의 대립을 극복하려는 열망, 그리고 성 고정관념에 도전, 심지어 욕망까지 반영하고 있다. 따라서 노동자, 스포츠맨, 부르주아같은 새로운 남성 이미지들을 소개하며 카드 놀이를 하거나 발코니에서 도시를 바라보는 등 남성들의 사적인 면모를 즐겨 보여준다.


23efefc23a20486fb501505629dbd4a4_1732296908_5111.jpg    ⓒ Musée d'OrsayPhoto: Han Jisoo   


 

노동자들의 반쯤 벗은 몸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것은 현대적이면서 이상적인 남성을 표현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으며, 협동, 노동, 평등, 형제애라는 이념에 기반한 것이라고 한다. 부르주아 화가의 시각이 그의 모델들을 지배하긴 하지만 카유보트는 사회적 구분을 경멸한다고 밝히며 자신을 그들과 함께 육체 노동자로서 동일시한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남성들과의 형제애적 관계를 구축하며 성장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23efefc23a20486fb501505629dbd4a4_1732296941_1497.jpg    ⓒ Musée d'OrsayPhoto: Han Jisoo   


 

카유보트의 가장 인상적인 작품 중 하나는 파리 도시 풍경이다. 대형 포맷과 복잡한 공간 구성, 몰입감 있는 앵글을 통해 강력한 현실감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작품들은 당시에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던 것보다 체감상 훨씬 더 컸다고 한다. 카유보트가 보여주는 도시의 모습은 새롭게 변화하고 현대성을 상징하는 오스만 양식의 건축물을 통해 삶을 역사적인 차원으로 끌어올린 것이라고 할 수 있다.


23efefc23a20486fb501505629dbd4a4_1732296955_3725.jpg    ⓒ Musée d'OrsayPhoto: Han Jisoo   



카유보트는 누드를 거의 그리지 않았지만, 1880년대 초에 세 점의 작품을 이 주제로 완성했다. 그 중 하나는 여성을, 두 점은 남성을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역사적이거나 신화적인 배경이 전혀 없으며, 황금 비율로 그려진 몸도 없다. 사실 목욕 장면이라는 주제는 새롭지 않지만 여성 모델 대신 남성을 대체하여 아주 사적인 순간을 뒤에서 취약한 자세로 묘사하고, 관객을 관음자 위치에 두며, 인체 해부학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당시의 규범을 깨는 행위였다고 한다. 이 작품들로 하여금 예술가의 성적 지향에 대한 질문, 에로티시즘과 젠더 개념에 대한 의문들이 제기된다. 하지만 그 어떠한 호기심이라도 쉽게 해석될 수 없는 신비로움을 가진 작품들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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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usée d'OrsayPhoto: Han Jisoo   

 

19세기 후반 프랑스에서 여가 문화가 발전하는데 이는 카유보트에게 카누와 수영을 주제로 한 중요한 작품 시리즈에 영감을 주었다. 그러나 당시 대부분 예술가들이 이 주제를 남녀가 함께 노는 모습으로 그리는 것과 달리, 그는 진지하고 비혼성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자기 초월, 규율, 신체적 힘, 집단적 노력을 기념하는 새로운 남성 문화를 표현하며 야외 스포츠를 도시 산업 사회에서 남성다움을 약화시키는 것을 막아주는 해결책으로 여겼다. 카유보트 자신이 직접 설계하고 제작한 경주용 배의 조타수를 맡아 다른 남성과 함께 세느 강에서 항해하는 모습을 그리며 행복과 자유의 메세지를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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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usée d'OrsayPhoto: Han Jisoo   

이 전시를 보며, 100여 년 전 파리를 그의 시선으로 다시 마주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의 붓 끝에 포착된 남성들의 일상은 단순히 과거의 한 장면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파리와 대화를 나누는 듯 보였다. 오스만의 대대적인 도시 개조 속에서 태어난 근대적 도시의 풍경은 여전히 오늘날의 파리와 교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그림 속 인물들이 지금도 그대로 그 자리에 있을 법하다. 카유보트가 기록한 일상의 나날들 속에서 파리의 또 다른 얼굴을 발견할 수 있었지만, 전시장을 가득 채운 인파 속에서는 그의 그림이 전달하는 감각과 여유를 즐기기가 매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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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efefc23a20486fb501505629dbd4a4_1732297693_1843.jpg    ⓒ Musée d'OrsayPhoto: Han Jisoo   



이 전시를 관람한 뒤, 동시에 진행 중인 다른 특별전 <해리엇 바커(1845-1932) - 색채의 음악>을 찾아갔다. 노르웨이 화가 해리엇 바커(Harriet Backer)는 19세기 말 그녀의 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여성 화가였지만 노르웨이 밖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풍부하고 밝은 색채 사용으로 명성을 얻었고 실내 장면과 야외 회화의 매우 독창적인 통합을 이루어 냈다. 그녀는 사실주의 흐름뿐만 아니라 자유로운 터치와 빛의 변화를 깊이 탐구하며 인상주의의 혁신에서도 영감을 받았고 농촌 세계를 민감하게 표현한 초상화와 교회 내부로도 잘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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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usée d'OrsayPhoto: Han Jisoo   

 


여성이 완전한 시민으로 간주되지 않던 시절, 그녀는 붓의 힘으로 자신의 시대에 중요한 예술적 인물로 자리 잡았다.  20년 동안 노르웨이 국립 미술관의 이사회 및 작품 취득 위원회의 일원으로 활동했으며, 1890년대 초에는 차세대 중요한 예술가들인 니콜라이 아스트룹(Nikolai Astrup), 하프단 에게디우스(Halfdan Egedius), 헬가 링 로이쉬(Helga Ring Reusch)를 가르친 그림 학교를 열었다. 에드바르 뭉크(Edvard Munch)의 후원자였던 수집가 라스무스 메이어(Rasmus Meyer)의 지원도 받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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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usée d'OrsayPhoto: Han Jisoo   

 


바커의 회화는 그녀의 긴 경력 동안 스타일 면에서 크게 발전했지만 조금은 한정된 주제에 충실하며 작품활동을 했다. 당시 문화적 중심지였던 뮌헨과 파리에서 이루어진 바커의 예술 교육을 다루고, 그녀와 함께 유럽 전역에서 교육을 받은 스칸디나비아 여성 예술가들, 그리고 그들의 페미니스트적 신념을 공유하는 인물들도 소개된다. 또한 이 전시에서는 악기를 연주하는 장면을 묘사한 작품들도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데 그녀는 터치, 구성, 색상을 통해 리듬과 색채의 조화를 창조하여 음악이 주는 인상을 표현했다. 음악은 바커의 삶에서 중요한 요소였으며, 그녀의 여동생 아가테 바커 그론달(Agathe Backer Grondahl)은 노르웨이에서 저명한 음악가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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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usée d'OrsayPhoto: Han Jisoo   

 


실제로 바커의 전시는 마치 고요한 음악회에 초대된 듯했다. 악기를 연주하는 그림들과 완벽히 어우러지는 음악이 은은히 흐르며 공간을 채웠고, 그 선율은 그녀의 색채와 붓 터치가 주는 감동을 한층 더 깊게 만들었다. 카유보트의 전시에서는 몰려드는 인파에 작품을 충분히 감상하지 못해 아쉬움이 컸지만, 이곳에서는 그림 속 풍경들이 그려낸 순간들이 나의 시간과 나란히 흐르고 있었다. 


23efefc23a20486fb501505629dbd4a4_1732297765_7116.jpg    ⓒ Musée d'OrsayPhoto: Han Jisoo   


 


1880년대 파리에서 바커는 북유럽 출신의 많은 예술가들을 다시 만나게 되며, 전문적인 경력을 쌓고, 자신의 네트워크를 구축하며, 살롱에 전시하고, 대중과 비평가로부터 인정을 받았다. 바커는 인상파 화가들과 유사한 방식으로 아침과 저녁에 각각 두 개의 농장을 그리며 빛이 시간에 따라 색과 분위기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탐구했다. 또한 일상적인 종교 의식 묘사를 통해 동시대 사람들에 대한 이타심과 개인적이고 겸손한 신앙관을 드러냈다. 바커는 당시로서는 드물게 남녀 학생들을 모두 가르쳤는데, 교수로서 학생들이 각자의 스타일을 발전시킬 수 있도록 격려하며 노르웨이의 젊은 예술가 세대 전반에 걸쳐 깊은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23efefc23a20486fb501505629dbd4a4_1732297775_1565.jpg    ⓒ Musée d'OrsayPhoto: Han Jisoo   



두 전시를 통해 각기 다른 예술 세계를 경험할 수 있었다. 카유보트의 도시적이고 세밀한 시선은 근대적 삶과 남성성의 다양한 측면을 탐구하게 했고, 바커의 섬세한 색채와 음악적 감성은 깊은 울림을 선사했다. 서로 다른 매력을 지닌 두 작가가 전하는 예술의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글ㆍ사진_한지수 (파리통신원ㆍ에디터)
소르본파리노르대학교에서 현대 문학을 전공하고 동 대학원에서 텍스트 이미지 문화를 공부하고 있다.
갤러리자인제노의 파리통신원 및 객원 큐레이터, 주 프랑스 한국문화원 도슨트로 활동 중이며,
문화예술신문-아트앤컬쳐에 에디터로 리뷰를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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