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브르 박물관 : 광인의 형상 - 중세에서 낭만주의까지 > 한지수의 봉주르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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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수의 봉주르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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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브르 박물관 : 광인의 형상 - 중세에서 낭만주의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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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16일 – 2025년 2월 3일

Musée du Louvre : Figures du Fou - Du Moyen Âge aux Romantiques


 


루브르 박물관은 약 38,000여 점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으며, 세계적으로 유명한 예술품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어 매년 수백만 명의 관람객이 찾는 문화의 중심지이다. 방대한 컬렉션을 지닌 만큼 매번 독특하고 흥미로운 특별 전시가 펼쳐진다. 사실 관광객들은 상설전의 규모에 지쳐 기획전의 존재를 잘 모르고 지나치지만 루브르의  신선하고 재미있는 기획전시는 결코 놓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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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usée du LouvrePhoto: Han Jisoo    


 


특히, 이번 특별전은 광대와 미치광이의 형상을 탐구하며 그들의 존재가 지닌 복잡성과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있다. 각 작품은 단순한 시각적 즐거움을 너머 깊은 이야기와 철학적 사유를 담고 있어 더욱 매력적이었다. 역사적으로 광인은 사회적·문화적 연구의 대상이 되어왔으나 미술사적인 관점에서 다루어지는 경우는 드물었다. 하지만 13세기부터 16세기 중반까지 광기의 개념은 문학과 시각 예술에서 중요한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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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usée du LouvrePhoto: Han Jisoo    


 


광대라는 중세의 전형적인 인물을 다양한 시각적 표현을 통해 탐구하며 조각, 공예품, 필사본, 드로잉, 판화, 회화, 타피스트리 등 300여 점의 작품을 연대기적으로 선보이는 대규모 전시이다. 그런데 사실 전시 제목에 등장하는 <Fou>는 문맥에 따라 "미치광이"와 "광대"로 해석될 수 있다. 중세 문맥에서는 <Fou>가 단순한 미친 사람을 너머 사회적 규범을 비틀고 풍자하는  광대의 이미지로 자주 나타나기 때문에, 이 경우에는 광대로 번역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그러나 전시회의 막바지로 갈수록 점차 정신적으로 혼란스러운 상태에 있는 사람들의 형상도 드러나면서 단어의 의미가 보다 복잡하고 극적으로 변화하는 것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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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usée du LouvrePhoto: Han Jisoo    




중세 미술은 종교적인 면이 강하게 느껴지지만 사실 중세는 반항적인 광인의 형상을 만들어 낸 시기이기도 하다. 종교적 사상에서 시작된 이 개념은 점차 세속적 영역으로 발전해 중세 말에는 도시 사회의 중요한 일부분으로 자리잡게 된다. 중세인들에게 광인의 정의는 성경에서 비롯된다. 특히 시편 52편 첫 구절인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느님이 없다 하도다” 라는 구절에서 알 수 있듯, 광기는 무엇보다도 하느님을 알지 못하거나 사랑하지 않는 상태로 해석되었다. 반대로 성 프란체스코처럼 '하느님의 광인' 도 존재했다. 13세기에는 광기의 개념이 영적인 사랑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고 점차 세속적인 사랑에서도 '광기' 가 중요한 요소로 등장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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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usée du LouvrePhoto: Han Jisoo    




'사랑의 광기' 라는 주제는 중세 기사 문학에서 빈번히 다뤄졌다. 이바인(Yvain), 페르스발(Perceval), 란슬롯(Lancelot), 트리스탄(Tristan)과 같은 인물들이 대표적이다. 중세의 사랑은 주로 기사도 문학에서 고귀한 이상으로 강조하며 이상화된 연인을 찬양하는 것이 특징적이다. 연인은 완벽하고 결점이 없는 존재로 묘사되며 사랑의 숭고함을 강조하는데 주로 시가나 노래를 통해 표현된다. 그런데 이러한 사랑은 신분 차이를 극복해야 하거나 금지된 관계에 놓이기 때문에 사회적 규범이나 기존 결혼 관계로 인해 비극적이고 복잡한 상황을 초래한다. 이 과정에서 드러나는 개인의 감정과 사회적 책임 간의 갈등이 중세 사랑의 복잡성과 그 심오한 의미를 잘 보여준다. 이 이야기들은 필사본의 삽화나 상아 공예품에서 자주 묘사되었는데 광대는 연인과 그의 여인 사이에 끼어들어 인간 사랑의 음란함이나 외설적인 면을 강조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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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usée du LouvrePhoto: Han Jisoo    


 

종교적·상징적 의미를 지녔던 광대는 14세기에 이르러 점차 정치적·사회적 의미를 띠게 된다. 광대는 왕과 귀족이 있는 궁정에서 유머와 풍자로 사람들을 즐겁게 하면서 동시에 사회의 문제나 왕실의 잘못을 지적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는 왕의 권위와 지혜와는 다른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보며 높은 사람들의 말을 비꼬거나 풍자하게 된 것이다. 놀라운 점은 단순한 웃음거리로 끝나지 않고 왕이나 귀족들조차도 광대의 비판을 인정하고 받아들였다고 한다. 이는 궁정 광대가 사회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중요한 인물로 자리잡았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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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usée du LouvrePhoto: Han Jisoo    


 


이 시기 광인의 대표적 상징으로 마로트(marotte, 광대의 지팡이), 줄무늬나 반쪽으로 나뉜 의상, 후드, 방울 등이 등장했다.  복장과 소품들은 그들의 정체성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요소였다. 줄무늬 의상과 방울 달린 모자는 단순히 외적인 장식이 아니라 그들의 세계관과 독립적인 삶의 방식을 표현하는 매체였던 것이다. 이러한 상징들은 광대가 단순히 웃음을 주는 인물이 아니라 때로는 진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역할을 수행했음을 상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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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usée du LouvrePhoto: Han Jisoo    



 


15세기는 광대의 이미지가 거대한 확장을 이루던 시기이다. 카니발 축제와 민속 전통이 결합되어 광인은 사회 비판의 도구로 사용되었다.  종교 개혁 시기에는 가톨릭과 개신교를 비판하는 역할도 했다. 이 시기의 광대 형상은 히에로니무스 보스(Hieronymus Bosch)와 피터르 브뤼헐 (Pieter Bruegel)같은 예술가들의 작품에서 자주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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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usée du LouvrePhoto: Han Jisoo    



 


근대에 들어 광인의 역할은 점차 사라지고 유럽의 궁정에서는 어릿광대나 난쟁이로 대체되었다. 계몽주의 중반 이후 광기는 새로운 형태로 재등장했으며 이전보다 덜 통제된 방식으로 나타났다. 전시회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19세기가 중세와 광기를 어떻게 해석했는지 특히 정치적·예술적 혁명에 미친 비극적이고 잔인한 영향을 다룬다. 단순한 웃음을 유발하는 광대의 이미지를 너머 정신 분석가의 등장, 궁정에서의 정신병, 그리고 치료적 엑소시즘과 같은 주제를 통해 보다 복잡하고 심오한 인간의 내면을 탐구하게 되었다. 미쳐 있는 혹은 미친 사람이라고 치부되는 이들의 표정을 바라보면 그 감정이 너무나도 실감 나서 괜히 등골이 오싹해진다. 그들의 눈빛 속에는 세상의 고통과 불안, 혼란이 다 담겨있고  표정은 마치 깊은 심연을 들여다보는 듯한  묘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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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usée du LouvrePhoto: Han Jisoo    


 


인간 존재의 복잡성과 사회적 맥락 속에서 광인은 다양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음을  경험할 수 있었던 전시다. 광인의 모습을 시대별로 정리한 특별한 맥락에 깊이 매료됐다. 일반적으로 ‘미친 사람’이라는 이미지는 단순히 불행하거나 비정상적인 상태에 처한 사람으로 여겨지기 쉽다. 그러나 전시의 흐름을 통해, 광대와 미치광이가 지닌 복잡한 심리와 사회적 역할을 탐구할 수 있었다. 그들의 언행 속에는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통찰이 담겨 있었고, 어쩌면 그들의 고군분투를 바라보면서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으려 한 것은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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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usée du LouvrePhoto: Han Jisoo    




“미친 세상에서 이성을 지키고자 하는 것이야 말로 가장 큰 미친 짓이다.” - 에라스무스, 《광기의 찬미》

“C'est bien la pire folie que de vouloir être sage dans un monde de fous” - Érasme, L'Éloge de la folie 


 세상의 비상식과 혼돈 속에서 이성을 고집하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하고 아이러니한지를 깊이 있게 드러낸 에라스무스의  명언으로 이 포스팅을 마무리한다.





글ㆍ사진_한지수 (파리통신원ㆍ에디터)
소르본파리노르대학교에서 현대 문학을 전공하고 동 대학원에서 텍스트 이미지 문화를 공부하고 있다.
갤러리자인제노의 파리통신원 및 객원 큐레이터, 주 프랑스 한국문화원 도슨트로 활동 중이며,
문화예술신문-아트앤컬쳐에 에디터로 리뷰를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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