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스 드 코메르스 – 피노 컬렉션 : 아르테 포베라 > 한지수의 봉주르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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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수의 봉주르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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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스 드 코메르스 – 피노 컬렉션 : 아르테 포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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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9일부터 2025년 1월 20일까지

Bourse de Commerce – Pinault Collection : Arte Povera


 


부르스 드 코메르스 – 피노 컬렉션에서 아르테 포베라를 재조명하는 대규모 전시회를 개최한다. 아르테 포베라(Arte Povera)는 ‘가난한 예술’을 뜻하며,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운 재료를 사용해 전통적 예술의 경계를 허무는 1960년대 이탈리아의 현대미술 운동이다. 아르테 포베라의 탄생과 그 국제적 확산을 13명의 주요 예술가들의 작품 250점 이상을 통해 보여준다. 전시는 아르테 포베라와 관련된 예술가들의 작품 외에도, 이 운동의 초기 단계를 기록하는 작품들과 깊이 영향을 받은 인물, 운동, 시대, 혹은 재료와 연관지어 소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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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ourse de CommercePhoto: Han Jisoo  



아르테 포베라는 1967년 제르마노 첼란트(Germano Celant)에 의해 처음 전시되었다. 이 운동은 1960년대 중반,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들, 주로 토리노, 제노바, 볼로냐, 밀라노, 로마 출신의 예술가들에 의해 탄생했다. 이들은 당대의 전통적이고 독단적인 미술관념을 벗어나 독창적이고 자유로우며 비전통적인 작품을 창작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회화, 조각, 드로잉, 사진의 경계를 확장하며 역사상 최초의 설치미술과  퍼포먼스와 관련된 작품 및 행위 예술까지도 창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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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ourse de CommercePhoto: Han Jisoo   




1960년대는 급속한 산업화를 겪고 있었고 미국의 예술계가  전 세계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그 시기 예술가들이 직면한 과제는 소비주의의 영향, 즉 물질적이고 비인간적인 문화와 경제적 시스템에 맞서는 것이었다. 그래서 기계적이고 상업화된 세상 속에서 사람들이 세상과 맺는 관계를 더 인간적이고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되찾고 예술을 통해 진정한 삶과 인간적 관계를 회복하려는 노력했던 것이다. 그렇게 물질적 한계를 넘어 소박한 재료들을 사용해 인간과 자연, 사회적 맥락을 새롭게 탐구하면서 소비주의와 산업화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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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ourse de CommercePhoto: Han Jisoo  


 


아르테 포베라 예술가들은 단순한 재료와 기술을 사용하여 관람객들이 존재하고 뿌리내리며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있게 하는 설치미술을 만들어 냈다. 흙, 감자, 상추, 물, 석탄, 나무, 동물과 인간의 몸 등 자연적이고 농업적인 요소들을 우선시하면서, 동시에 스테인리스 판, 납 덩어리, 전구, 목재 기둥, 네온 튜브 같은 인공적이고 도시적인 재료들과 결합했다. 이를 통해 물리적, 화학적, 심리적 에너지를 활성화하고 관객의 기억과 감정을 자극하는 독특한 예술 작품을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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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ourse de CommercePhoto: Han Jisoo   



그들은 과도한 지적화와 추상적 이론에 대해 경계했다. 그들에게 예술은 모방적이거나 재현적인 것이 아닌, 우리의 기본적인 가치와 행동 사이의 진실과 일치에서 나온 진정성 있는 결과물이어야 했다. 삶에 대한 경험적이고 실용적인 이해에 중심을 두었고 물질적-비물질적 존재와의 만남, 에너지 그리고 우주의 변형 운동을 고려했다. 주관적인 경험과 현상학적인 지각의 축소와 관련된 미시적 규모부터, 우주를 움직이고 살아가게 하는 물리학의 근본적인 힘들과 관련된 거시적 규모까지 에너지는 매우 중요했다고 한다. 우리의 뇌에서 가장 작은 시냅스에서부터 우주를 지탱하는 측량할 수 없는 움직임에 이르기까지 작용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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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ourse de CommercePhoto: Han Jisoo   




이번 전시에서 빠사주 (Passage)의 24개 진열장은 아르테 포베라의 출현 배경을 상기시키는 데 시간적, 맥락적 이정표 역할을 한다. 진열장에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탈리아의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이 등장하는데, 그 중 루치오 폰타나는 그의 구멍이 뚫린 캔버스를 통해 예술이 전통적인 회화의 경계를 넘어서도록 한 혁신적인 작업을 보여준다. 이는 단순히 그림을 그리는 것을 넘어 물리적 공간의 변화를 추구한 예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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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ourse de CommercePhoto: Han Jisoo   


 


  이러한 맥락에서, 지난 2월 강릉 솔올미술관이 개관전으로  테이트모던 모리스 관장이 큐레이팅한 《루치오 폰타나: 공간⋅기다림》(2024.2.14. - 4.14.) 이 떠오른다.(당시 전시장내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어서 자료 사진이 없음)


루치오 폰타나는 이탈리아의 아방가르드 화가이자 조각가로, 20세기 현대 미술에 큰 영향을 미쳤다. '공간주의'(Spatialism)이라는 예술 운동을 창시하며 공간의 개념과 물리적 형식을 탐구하였는데 캔버스에 구멍을 뚫고, 이를 통해 관객이 예술을 경험하는 방식을 새롭게 정의하려 했다. 이러한 혁신은 아르테 포베라의 정신과 맞닿아 있으며, 폰타나의 작품이 어떻게 오늘날 설치 미술의 발전에 기여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의 작품은 공간의 경계를 허물고 관객이 예술 작품을 직접 경험하게 함으로써 예술의 정의를 확장한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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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ourse de CommercePhoto: Han Jisoo   



아르테 포베라는 오늘날의 설치 예술 발전에 근본적으로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설치 미술은 명확한 경계 없이 요소들이 배치되어 관람객이 그 자체로 예술 작품의 일부가 되는 공간이다. 설치 미술에서는 공간에 배치된 요소들과 관람객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면서 작품의 의미를 단순히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보고 느끼며 그 변화를 인식하면서 이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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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ourse de CommercePhoto: Han Jisoo   

 


그런 의미에서 이번 전시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설치 작품은 주세페 페노네의 <Idée de pietra—1532 kg di luce> (돌의 아이디어— 1532kg의 빛, 2010)으로 미술관 입구에 자리잡고 있다. 페노네는 자주 자연의 요소를 통해 인간의 사고와 기억을 표현하는데, 그의 작업에서 나무의 가지는 생각이 여러 방향으로 뻗어나가는 과정을, 가지 위에 놓인 돌들은 생각이 막히거나 멈추는 순간을, 그리고 기억의 무게를 상징한다. 인간의 사고를 식물과 광물의 성장에 비유하고 자연을 통해 인간 경험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방식이 매우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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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ourse de CommercePhoto: Han Jisoo   



페노네의 작품은 언제나 자연과 인간 사이의 깊은 연결을 일깨워 주지만 이번 전시는 그 중에서도 단연 빛났다. 그의 나무 작품들을 퐁피두 센터, 까르띠에 재단의 정원, 지베르니 뮤지엄 등 여러 곳에서 봐왔지만, 피노 컬렉션에서 본 작품이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렬했다. 건물의 화려함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우뚝 선 나무는 마치 수없이 많은 비바람을 이겨낸 강인한 생명력 그 자체였다. 비가 내리던 날이었는데, 한 그루의 나무가 얼마나 많은 비바람과 시련을 겪는지 그리고 그 안에 깃든 시간이 얼마나 깊을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단순한 설치미술을 너머 관람객을 작품 속으로 끌어들이며 시간과 존재의 의미를 조용히 전하고 있다. 빗줄기와 함께 어우러져 더 큰 감동을 선사했던 페노네의 예술은 진정한 자연의 숨결과 교감할 수 있게 했다.



글ㆍ사진_한지수 (파리통신원ㆍ에디터)
소르본파리노르대학교에서 현대 문학을 전공하고 동 대학원에서 텍스트 이미지 문화를 공부하고 있다.
갤러리자인제노의 파리통신원 및 객원 큐레이터, 주 프랑스 한국문화원 도슨트로 활동 중이며,
문화예술신문-아트앤컬쳐에 에디터로 리뷰를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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