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사진미술관(MEP): 마리-로르 드 데커 - 이미지로서의 참여// 일라니트 일루즈 - 화산의 가장자리에서 > 한지수의 봉주르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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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수의 봉주르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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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사진미술관(MEP): 마리-로르 드 데커 - 이미지로서의 참여// 일라니트 일루즈 - 화산의 가장자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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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6월 4일 – 2025년 9월 28일// 2025년 6월 4일 – 2025년 8월 24일

Maison Européenne de la Photographie (MEP): Marie-Laure de Decker: L’image comme engagement//

Ilanit Illouz — Au bord du Volcan 



유럽사진미술관(MEP)은 1950년대부터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국제 사진 예술의 흐름을 보여준다. 약 2만4천 점의 사진 작품, 110편의 아티스트 비디오, 800편의 다큐멘터리 영화, 그리고 3만6천여 권의 인쇄물을 보유하고 있으며 르포르타주와 패션사진에서부터 동시대 다큐멘터리적 실천에 이르기까지 사진 매체와 관련된 다양한 예술적 접근을 포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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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ison Européenne de la Photographie (MEP)Photo: Han Jisoo  



현재 열리는 전시는 보도사진의 거장으로 손꼽히는 마리-로르 드 데커 (Marie-Laure de Decker, 1947–2023)에게 헌정하는 첫 대규모 회고전이다. 그녀의 작품을 재조명하며 인류의 역사와 개인적 경험을 동시에 담아낸 그녀의 시선과 접근 방식을 살펴본다. 마리-로르 드 데커는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활동한 프랑스 출신의 사진가이자 포토저널리스트였다. 그녀는 20세기의 여러 전쟁, 사회적·정치적 격변을 기록했다. 대표적인 취재로는 베트남 전쟁, 차드의 반(反)식민 투쟁,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 칠레의 독재 정권에 맞선 저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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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ison Européenne de la Photographie (MEP)Photo: Han Jisoo  

그녀의 삶 자체가 강렬했다. 비범한 결단력과 용기로 당대 여성이 감히 발을 들이기 어려웠던 영역을 나아갔기 때문이다. 모델로 활동할 만큼 아름다운 외모를 지녔는데다 여성성이 강조되던 시대에 굳이 위험하고 거친 길을 택했다는 점이 더욱 인상 깊게 다가왔다. 마리-로르 드 데커는 카메라를 통해 20세기 후반의 역사를 가로질렀고 남성 중심의 사진 저널리즘 세계에서 일을 선택한다는 것은 곧 열정과 아드레날린, 위험과 희생이 뒤따르는 하나의 삶의 방식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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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ison Européenne de la Photographie (MEP)Photo: Han Jisoo  



1970년대 초부터 그녀는 독창적인 포토저널리즘 접근법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베트남 전쟁,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 칠레 독재 정권 등 주요 분쟁을 다룬 그녀의 취재는 깊은 인간성으로 특징지어진다. 자극적이고 충격적인 이미지를 쫓기보다 그녀는 인간의 존엄을 담아내는데 주력했다. 그녀의 사진은 전쟁의 폭력을 정면으로 드러내기보다 전쟁을 살아가는 이들의 얼굴과 이야기를 강조한다. 대표적으로 차드 전투원들을 담은 연작, 예멘 여성 투사들의 초상사진이 그러한 태도를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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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ison Européenne de la Photographie (MEP)Photo: Han Jisoo  



마리-로르 드 데커의 사진을 마주하며 사진이라는 매체가 지닌 힘을 다시금 실감했다. 역사를 생생히 기록할 수 있었던 것은 사진의 미학적 완결성을 넘어 전쟁과 분쟁의 가장 날 선 자리에서, 인간의 얼굴을 통해 역사를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계 곳곳의 전쟁터와 분쟁 지역을 직접 찾아가 카메라에 담았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녀가 얼마나 용기 있고 사회 참여적인 작가였는지를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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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ison Européenne de la Photographie (MEP)Photo: Han Jisoo  


또한 전시의 말미에는 당대 프랑스의 문화계를 대표하는 마르셀 뒤샹, 페데리코 펠리니, 프랑수아즈 사강, 카트린 드뇌브 등 인물들의 사진과 프랑수아 미테랑,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넬슨 만델라 대통령 등을 담은 정치 지도자의 초상사진이 대거 등장한다. 전쟁터의 익명성을 뚫고 문화와 권력의 중심을 향한 그녀의 시선을 만나볼 수 있었다. 1980년대부터는 활동 영역을 패션과 영화 사진으로도 확장했다. 마리-로르 드 데커는 직업인으로서의 사진가가 아니라 한 시대의 문화적·정치적 중심에 있었던 인물이었음을 실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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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ison Européenne de la Photographie (MEP)Photo: Han Jisoo  


사실 사진전은 다소 지루하고 회화나 조각만큼의 역동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지 못할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 전시는 그러한 생각을 뒤집어 놓았다. 전쟁터의 긴장과 인간적 존엄, 그리고 시대를 빛낸 인물들의 초상에 담긴 울림은 충분히 살아 움직였다. 예상을 넘어선 흥미와 몰입을 경험하며 사진이 지닌 힘을 새삼 깨닫게 된 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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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ison Européenne de la Photographie (MEP)Photo: Han Jisoo  


한편 MEP의 스튜디오 공간에서는 에트나 화산을 배경으로 펼친 일라니트 일루즈의 사진 전시가 진행되고 있다. 전시는 시칠리아의 한 동굴을 중심으로 구성된 이야기로 기획되었다. 용암이 흘러내려 굳어져 형성된 이 동굴은 마치 융합의 흔적을 증명하듯 장대한 지층을 드러낸다. 사진 속에서 이 암석 집합체는 끝없는 풍경처럼 펼쳐져 관람객들이 그 물질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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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ison Européenne de la Photographie (MEP)Photo: Han Jisoo  


일라니트 일루즈는 인류학적 연구와 조형적 실험을 이미지 작업에 결합하는 방식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녀는 잘 알려지지 않은 서사가 깃든 장소들을 탐구하고 이를 지배적 담론에 맞서는 저항의 행위로 질문한다. 최근 작업은 팔레스타인, 이스라엘, 요르단의 경계에 자리한 사해(死海)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풍경을 통해 그 지역의 정치적·사회적 차원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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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ison Européenne de la Photographie (MEP)Photo: Han Jisoo



사진임에도 불구하고 종이의 표면이 단순히 평면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화산의 파편을 직접 눈앞에 두고 바라보는 듯, 종이가 울퉁불퉁하게 솟아오른 듯한 질감을 품고 있었다. 용암의 결을 연상시켰고 만지면 바스라질 듯한 생생한 감각을 불러일으켰다. 사진을 이미지로만 보던 습관을 넘어, 하나의 물질이자 화산의 일부로 살아 있는 듯한 순간이었다.






글ㆍ사진_한지수 (파리통신원ㆍ에디터)
소르본파리노르대학교에서 현대 문학 학사, 동 대학원에서 문화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하여 석사 학위를 마쳤다. 갤러리자인제노에서 파리 통신원 및 객원 큐레이터로 활동했으며, 주 프랑스 한국문화원에서 도슨트로 근무한 경험이 있다. 현재는 문화예술신문 아트앤컬쳐에서 에디터로서 다양한 리뷰를 제공하고, 프리랜서 번역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또한 프랑스 한인유학생회의 창립멤버이며 프랑스 교민지 파리광장에 문화 및 예술 관련 기사를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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