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시립 현대미술관: 조지 콘도(George Condo)/오토봉 은캉가 ‘나는 당신을 색으로 꿈꾸었다’/ 마르셀 뒤샹상 2025 > 한지수의 봉주르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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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수의 봉주르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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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시립 현대미술관: 조지 콘도(George Condo)/오토봉 은캉가 ‘나는 당신을 색으로 꿈꾸었다’/ 마르셀 뒤샹상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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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0월 10일 – 2026년 2월 8일/2025년 10월 10일 – 2026년 2월 22일/ 2025년 9월 26일 – 2026년 2월 22일
Le Musée d'Art Moderne de Paris: George Condo/ Otobong Nkanga « I dreamt of you in colours»/ Prix Marcel Duchamp 2025


파리 시립 현대미술관은 샹젤리제와 에펠탑 사이, 센 강을 내려다보는 자리에 1937년 만국박람회를 기념하며 지어진 역사적 건축물로, 1961년 개관 이후 15,000점이 넘는 방대한 소장품을 무료로 공개하고 있다. 조르조 데 키리코(Giorgio de Chirico), 소니아 들로네(Sonia Delaunay), 아메데오 모딜리아니(Amedeo Modigliani)에서 루이즈 부르주아(Louise Bourgeois), 다니엘 뷔랑(Daniel Buren), 시일라 힉스(Sheila Hicks)에 이르기까지 20세기 초반부터 동시대에 이르는 주요 작가들의 작품을 아우르고 있으며, 뒤피(Raoul Dufy)의 「전기의 요정(La Fée Electricité)」 같은 대규모 작업도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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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 Musée d'Art Moderne de ParisPhoto: Han Jisoo
현재 미술관에서는 조지 콘도의 대규모 회고전을 진행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조지 콘도의 40년이 넘는 경력을 되짚으며 가장 상징적인 작품들을 소개한다. 미국과 유럽 주요 미술관(뉴욕 현대미술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휘트니 미술관, 루이지애나 현대미술관)과 사립 컬렉션에서 온 다수의 작품들이 이번 프로젝트를 계기로 처음으로 파리에 모인다. 약 80점의 회화, 110점의 드로잉(전용 그래픽 아트 캐비닛에 전시), 그리고 20점가량의 조각으로 구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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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 Musée d'Art Moderne de ParisPhoto: Han Jisoo
화가이자, 드로잉 작가이자, 조각가인 조지 콘도는 고전 거장부터 현대에 이르는 서양미술사를 두루 아우르는 풍부한 시각적 문화로 길러진 독창적인 세계를 펼쳐왔다. 1957년 뉴햄프셔 주 콘코드에서 태어난 조지 콘도는 1979년 뉴욕으로 이주한다. 그는 곧 현지 미술계에 진입해 앤디 워홀의 실크스크린 작업실에서 일하기도 했다. 1984년 뉴욕과 쾰른에서 열린 첫 개인전을 통해 미술계에 이름을 알렸다. 장 미셸 바스키아, 키스 해링과 더불어 1980년대 뉴욕 미술 현장에 신선하고 독창적인 시각을 불어넣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당시부터 이미 그의 상상력과 영감은 동시대의 흐름을 넘어서는 것으로 주목되었다. 이후 반세기에 걸쳐 그는 특정 시대나 양식에 구애받지 않고 서양 미술사의 거장들과 끊임없는 대화를 이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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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 Musée d'Art Moderne de ParisPhoto: Han Jisoo
이후 쾰른을 거쳐 파리로 향했고, 1980년대 중반 파리에 정착한 그는 10년간 머물며 유럽 미술, 문학, 철학에 깊이 몰입했다. 유럽 미술에 대한 그의 깊은 이해는 그로 하여금 회화적 구상에 대해 개인적인 접근 방식을 발전시키고 동시대에 대한 날카로운 시각을 갖게 했다. 이번 전시는 시간순이 아닌 주제 중심으로 기획되어, 추상과 구상, 미술사와 현대성, 그리고 개인적 상상력을 결합하는 콘도의 작업 세계를 드러낸다. 주제를 따라, 각기 구분되는 연작들을 통해 조지 콘도의 예술 실천이 지닌 풍요와 다양성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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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 Musée d'Art Moderne de ParisPhoto: Han Jisoo
전시는 서양미술사와 맺어온 관계로부터 출발한다. 고전 미술관의 전시 연출 방식을 재현한 공간에 작가가 제작한 가장 대담한 작품들이 펼쳐진다. 렘브란트, 피카소, 고야, 로댕에 이르기까지, 콘도는 과거의 거장들을 자신의 상상력 속으로 끌어들이면서 기괴하고 불안한 형상들을 쏟아낸다. 이어지는 전시 구간에서는 콘도가 고안한 개념인 ‘인공적 리얼리즘(Artificial Realism)’에 해당하는 작품들이 선보인다. 과거의 기법과 양식을 빌리되 그래피티 문화나 만화 이미지같은 요소들을 끌어들여 시간적 불확실성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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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 Musée d'Art Moderne de ParisPhoto: Han Jisoo
인체 표현은 콘도 예술의 핵심 주제다. 그는 상상의 존재들을 ‘휴머노이드’라 부르며 인간 심리의 복잡성을 탐구한다. 2000년대 초 신고전주의를 재해석한 일련의 개인 초상화로 시작한다. 이어 2009–2012년 제작된 ‘드로잉 페인팅’ 연작의 집단 초상화가 전시되며, 마지막은 2014–2015년에 제작된 ‘이중 초상화(Doubles Portraits)’ 연작으로 마무리된다. 인간 정신의 이중성, 그리고 하나의 초상 안에 서로 다른 감정을 병치하는 콘도의 ‘심리적 입체주의(psychological cubism)’ 개념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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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 Musée d'Art Moderne de ParisPhoto: Han Jisoo
마지막 섹션은 콘도의 추상과의 관계를 탐구한다. 초기부터 그는 추상과 경계에 선 작업을 이어왔다. 〈Expanding Canvases〉(1985–1986) 연작에서는 화면 전체를 뒤덮는 서예적 격렬한 움직임으로 구성을 흐린다. 이어 흰색(2001), 파란색(2021), 검은색(1990–2019) 등 다양한 단색화 연작이 소개된다. 특히 ‘블랙 페인팅(Black Paintings)’ 연작에 집중하여 몰입형 전시실이 마련되며 관객을 사색으로 이끈다. 전시는 2023–2024년 제작된 ‘다이애거널(Diagonal)’ 연작으로 마무리된다. 이는 콘도가 자신의 회화 언어를 끊임없이 갱신하는 능력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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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 Musée d'Art Moderne de ParisPhoto: Han Jisoo
이번 전시는 콘도의 드로잉 세계가 얼마나 회화의 토대였는지를 실감하게 했다. 그는 르네상스 화가들처럼 드로잉 없이는 회화를 시작할 수 없다고 말하며 드로잉을 “구성을 설계하고 선으로 생각하는 행위”로 정의했다. 어린 시절 작품부터 최근 드로잉까지 100점이 넘는 작품이 촘촘히 걸린 전시는 리듬감과 밀도로 관람객을 끌어들였다. 무엇보다 인물화가 콘도 작업의 핵심임을 느낄 수 있었다. 인간 감정의 얇은 막이 벗겨졌을 때 드러나는 내적 광기를 보여주지만 공포보다는 인간 존재의 불안정성과 아이러니를 드러낸다. 의도된 혼돈과 불안, 그리고 인간 조건의 불안정성을 유머로 풀어낸 그의 작품은 관람 내내 나를 사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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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 Musée d'Art Moderne de ParisPhoto: Han Jisoo
한편 미술관은 오토봉 은캉가(Otobong Nkanga)의 파리 최초 대규모 개인전도 개최하고 있다. 1974년 나이지리아 카노에서 태어나 현재 벨기에 앤트워프에 거주하는 은캉가는 1990년대 후반부터 생태 문제, 몸과 땅의 관계를 탐구하며 강렬하고도 다층적인 작업 세계를 구축해왔다. 개인적 경험과 다양한 시대와 문화에서 비롯된 연구를 바탕으로 그녀는 인간과 풍경, 사회적·자연적 시스템 간의 관계망을 짜 나가며 치유와 회복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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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 Musée d'Art Moderne de ParisPhoto: Han Jisoo
은캉가는 토양과 자원의 채굴과 이용, 그리고 몸과 땅, 공간의 관계에 대해 일관되게 질문을 던져왔다. 사회적·정치적·역사적·경제적 맥락 속에서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바라보며 회화·설치·태피스트리·퍼포먼스·시 등 다양한 작업을 통해 이를 표현해왔다. 그녀의 작업에서 중심 개념은 ‘층위(strates)’이다. 이는 조각, 개입, 퍼포먼스, 태피스트리의 물질성에서 드러날 뿐 아니라 인간의 몸과 대지 간의 상호 교환과 변형의 관계에서도 나타난다. 은캉가는 재료·상품·인간·역사의 이동과 얽힘을 탐구하는 동시에 환경 파괴가 남긴 흔적과 착취의 문제를 드러낸다. 이 과정을 통해 기억을 되살리면서도 동시에 새로운 미래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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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 Musée d'Art Moderne de ParisPhoto: Han Jisoo
이번 전시에는 대표적인 설치 작업, 사진 연작, 최근 작품, 그리고 초기 드로잉을 포함해 지금까지 공개되지 않았던 다수의 드로잉이 소개된다. 은캉가의 다채로운 작업 세계를 가로지르는 단면을 보여주고 채굴·자원의 문화적 가치와 같은 반복되는 주제들이 어떻게 시간에 따라 새로운 조형적 언어로 확장, 갱신되는지를 보여준다. 특히 일부 대표작은 이번 전시를 위해 새롭게 제작된 요소들을 더해 재구성되어 서로 다른 형식·물질·사상들이 얽히는 시적 공간을 형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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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 Musée d'Art Moderne de ParisPhoto: Han Jisoo
은캉가는 인간과 대지, 원자재, 그리고 집단 기억을 잇는 복잡한 관계를 탐구한다. 이번 전시는 이미 국제적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는 그의 예술 여정을 심도 있게 조망하며 긴장과 위협 속에서 갈수록 해독 불가능해지는 동시대 세계를 다층적으로 탐색하는 독창적 접근을 드러낸다. 작업의 초창기부터 은캉가는 현실을 세심하고 정밀하게 지도 제작하듯 옮겨내어 관객에게 새로운 여행과 현실의 이면을 관찰할 수 있는 시선을 제안해왔다. 그의 작품은 정치적 사건의 내밀한 파급력을 드러내면서 사적인 경험이 지닌 함의를 환기한다. 은캉가의 작품은 지구가 하나의 ‘몸’임을, 힘과 균형의 관계로 이루어진 유기체임을 상기시키며 모든 것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 긴밀히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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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 Musée d'Art Moderne de ParisPhoto: Han Jisoo
은캉가 전시는 주제와 접근이 워낙 다양해서 파리 현대미술관의 전시실과 공간을 가득 채운 느낌이었다. 미술관이라는 장소가 단순히 작품을 보는 곳이 아니라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새로운 시선을 열어주는 장임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은캉가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미지의 것’은 사실 우리 발밑이나 손 닿을 곳에 있지만 일상의 습관과 경제적 현실이 가려 우리가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시는 지구와 인간, 자원과 환경, 서로 다른 지역과 사람들의 연결과 의존 같은 중요한 문제들을 예리하게 보여주며 더 많은 질문을 던지고 현실을 조금 더 깊이 이해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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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 Musée d'Art Moderne de ParisPhoto: Han Jisoo
또한 2025년 마르셀 뒤샹상이 올해 처음으로 파리 현대미술관(MAM)에서 진행된다. 이번 전시는 파리 현대미술관 수석 큐레이터이자 현대 컬렉션 책임자인 줄리아 가리모르(Julia Garimorth)와 국립현대미술관–퐁피두센터의 큐레이터이자 미술사가·비평가인 장-피에르 크리키(Jean-Pierre Criqui)가 공동 기획한다. 마르셀 뒤샹상은 ADIAF(프랑스 현대미술 국제 확산 협회)가 창설해 퐁피두센터와 파트너십을 맺고 운영해온 상으로, 2000년 창설 이후 수많은 예술가들이 이 상을 수상하며 오늘날 국제 무대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원래 퐁피두센터에서 전시가 열렸으나 현재 대규모 보수 공사로 인해 파리 시립 현대미술관에서 개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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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 Musée d'Art Moderne de ParisPhoto: Han Jisoo
마르셀 뒤샹상 전시는 후보자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자리로, 이 중 한 명만 나중에 수상자로 선정된다. 2025년 마르셀 뒤샹상 후보자는 다음 네 명이다. 비앙카 본디(Bianca Bondi)는 소금물과 화학반응을 통해 일상적 사물을 변형시키며 물질의 생명력과 상호연결성, 삶과 죽음의 순환을 시각적·감각적으로 체험하게 하는 설치 중심의 작업을 선보인다. 에바 닐센(Eva Nielsen)은 라텍스, 가죽, 실크, 실크스크린 등 다양한 재료를 결합해 다층적이고 몰입적인 회화적 풍경을 구성하며 관람자가 작품의 제작과정을 성찰하도록 유도한다. 리오넬 사바테(Lionel Sabatté)는 시간의 흐름과 생명의 흔적이 담긴 소재들을 수집·조합해, 광범위한 동물적 상상력과 변형된 생명체를 통해 인간과 자연의 관계, 환경 속 존재의 의미를 탐구한다. 마지막으로 시에 레이(Xie Lei)는 현실에서 출발하지만 상상과 감각을 통해 불확실하고 긴장감 있는 세계를 구현하며 시간과 경험의 모호함, 죽음과 욕망, 억압과 자유 사이의 미묘한 경계를 회화로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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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 Musée d'Art Moderne de ParisPhoto: Han Jisoo
네 작가 모두 물질과 매체, 감각과 시간, 사회적·심리적 층위를 포괄하는 다층적 실험을 통해 관람자에게 사유와 감각의 새로운 경험을 제공한다. 2025년 수상자는 10월 23일 목요일, 아트바젤 기간 중 파리 현대미술관에서 발표된다. 국제 심사위원단은 예술 기관의 디렉터, 컬렉터, 그리고 두 명의 예술가로 구성된다. 개인적으로 내가 주목하는 작가는 비앙카 본디다. 일상적 오브제를 화학적 반응과 변형을 통해 새롭게 재해석하며 물질의 생명과 감각적 경험을 동시에 탐구하는 작업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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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 Musée d'Art Moderne de ParisPhoto: Han Jisoo
 


글ㆍ사진_한지수 (파리통신원ㆍ에디터)
소르본파리노르대학교에서 현대 문학 학사, 동 대학원에서 문화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하여 석사 학위를 마쳤다. 갤러리자인제노에서 파리 통신원 및 객원 큐레이터로 활동했으며, 주 프랑스 한국문화원에서 도슨트로 근무한 경험이 있다. 현재는 문화예술신문 아트앤컬쳐에서 에디터로서 다양한 리뷰를 제공하고, 프리랜서 번역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또한 프랑스 한인유학생회의 창립멤버이며 프랑스 교민지 파리광장에 문화 및 예술 관련 기사를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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