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필하모니: 칸딘스키 - 색채의 음악 > 한지수의 봉주르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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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수의 봉주르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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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필하모니: 칸딘스키 - 색채의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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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0월 15일 - 2026년 2월 1일
Philharmonie de Paris : Kandinsky -La musique des couleurs 

필하모니 드 파리는 세계적 건축가 장 누벨(Jean Nouvel)의 설계로 탄생한 문화 예술기관이다. 기존 ‘시테 드 라 뮈지크(Cité de la musique)’의 정신을 계승·확장한 이 공간은 음악을 매개로 한 예술적·사회적 교류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세계 정상급 교향악 공연을 위한 대규모 홀과 다양한 실내악·현대음악 무대를 갖추고 있으며 전시·교육·레지던스 프로그램까지 폭넓게 운영한다. 또한  국립음악박물관을 비롯해 방대한 악기 컬렉션과 음악 아카이브를 보유해 음악유산의 보존과 연구를 선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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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hilharmonie de ParisPhoto: Han Jisoo 

러시아 출신 화가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 1866–1944)에게 음악은 단순한 영감이 아니라 작품 전반을 움직이는 핵심 요소였다. 칸딘스키처럼 작품 속에서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이 두드러진 사례는 드물다. 이를 보여주기 위해 파리 필하모니 음악박물관과 퐁피두센터가 공동 기획하여 대규모 전시를 연다. 이번 전시는 칸딘스키가 어떻게 음악에서 아이디어를 얻고 그것을 그림 속 색과 형태로 바꾸었는지를 살펴본다. 약 200점에 이르는 그의 그림, 드로잉, 작업실의 물건들이 함께 공개돼, 추상으로 향한 회화적 여정 속에서 음악이 차지한 근본적 위치를 조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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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hilharmonie de ParisPhoto: Han Jisoo 
 
러시아 출신 화가 바실리 칸딘스키는 모스크바에서 태어나 법학을 공부했으나, 예술에 전념하기 위해 뮌헨으로 건너가 화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뮌헨에서 그는 팔랑크스(Phalanx)라는 예술가 모임을 결성했는데, ‘팔랑크스’는 고대 그리스 군대의 전열을 의미하며 회원들이 단결된 힘으로 예술적 이상을 추구하고 기존 미술계에 도전하려는 의지를 상징한다고 해석된다. 1908년부터 칸딘스키는 색채를 중심으로 한 추상적 표현을 발전시키며 본격적인 작가 활동을 시작했다. 제1차 세계대전 발발 후 모스크바로 돌아가 예술 제도와 이론 정비에 참여했으나, 불안정한 정치 상황 속에서 창작 활동에는 제약이 따랐다. 1921년 바우하우스에서 교편을 잡았고,「점·선·면」과 같은 중요한 예술 이론서를 집필했다. 그러나 1933년 나치 정권의 압박으로 학교가 폐쇄되자 프랑스로 이주했고, 1939년 시민권을 취득한 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파리 근교 뇌이쉬르센(Neuilly-sur-Seine)에서 은둔하며 말년의 작품 세계를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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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hilharmonie de ParisPhoto: Han Jisoo 
 
칸딘스키는 그림을 그릴 때 러시아 민속음악에서 큰 영향을 받은 화가다. 그는 교양 있는 가정에서 성장하며 첼로와 하모늄을 배우고, 바그너(Wagner)의 음악에 깊이 매료되었다. 칸딘스키에게 음악은 단순한 취미나 교양이 아니라 예술가로서 자신의 소명을 일깨우는 계시였다. 특히 음악은 그림이 자연을 그대로 모방해야 한다는 기존 회화의 규칙을 근본적으로 의심하게 만들었고 결국 이러한 규칙을 넘어 추상화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는 전위 음악가 니콜라이 쿨빈(Nikolai Kulbin), 세르게이 타네예프(Sergei Taneyev), 토마스 폰 하르트만(Thomas von Hartmann)과 교류하며 음악적 구조와 개념을 회화로 옮기는 실험을 이어갔다. 이러한 시도의 결과물로 대표적인 연작인 「즉흥(Improvisations)」과 「구성(Compositions)」이 탄생했다. 즉, 칸딘스키의 추상화는 단순한 시각적 표현을 넘어, 음악적 사고와 감각에서 비롯된 예술적 실험이자 새로운 회화 언어의 창조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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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hilharmonie de ParisPhoto: Han Jisoo 
 
이번 전시는 칸딘스키의 초기 러시아 풍경화에서 마지막 「구성」 연작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업을 동시대 음악적 맥락 속에서 조망하는 첫 시도다. 알렉산드르 스크랴빈, 아르놀트 쇤베르크,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토마스 폰 하르트만의 음악은 그의 회화가 뻗어나간 청취의 지평을 형성했다. 1896년 모스크바에서 경험한 ‘바그너 충격’에서 시작해, 1922년 이후 바우하우스에서 펼친 연극·무용 실험까지, 전시는 제공된 헤드셋을 통해 음악·형태·색채의 대응 관계를 다각도로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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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hilharmonie de ParisPhoto: Han Jisoo 
 
회화와 드로잉뿐 아니라, 음악에 대한 칸딘스키의 열정을 고스란히 보여주기 위해 가상의 서재가 마련되어 있다. 이 공간에는 그가 구입한 악보, 수집한 음악 서적과 팸플릿, 음악가들과의 교류 사진, 레코드와 민속가요 악보 등이 전시된다. 이는 그의 예술적 교양을 이룬 핵심 요소로, 색채의 ‘음향성’을 탐구하고 그의 창작 과정의 음악적 성격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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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hilharmonie de ParisPhoto: Han Jisoo 
 
현대 아방가르드 시기, 음악은 많은 예술가에게 단순한 영감의 원천을 넘어 사고의 모델이 되었다. 그중에서도 바실리 칸딘스키(Vassily Kandinsky)의 작품에서는 회화와 음악의 조화가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음악이 그의 일상과 예술적 소명, 그리고 추상으로 향하는 회화적 여정에서 얼마나 근본적인 역할을 했는지를 알 수 있다. 음악은 칸딘스키에게 현실을 재현하지 않고도 영혼과 감각에 작용할 수 있는 예술로, 기존의 모방 원칙을 재검토하고 해체하게 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바그너(Wagner)의 오페라 《로엔그린(Lohengrin)》에서 받은 충격, 쇤베르크(Schoenberg)의 무조음악 체험, 총체 예술과 바우하우스(Bauhaus)에서의 교육 활동 등 음악은 그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 핵심 열쇠로 작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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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hilharmonie de ParisPhoto: Han Jisoo 
 
이번 전시에서 특히 흥미로웠던 점은, 칸딘스키의 회화를 감상하며 헤드셋으로 들려오는 음악이 그림과 완벽하게 어우러졌다는 점이다. 음악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그림 속 색과 선이 음악적으로 움직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고, ‘만약 이 음악이 시각화된다면 바로 이런 색과 형태일 것’이라는 상상을 하게 만들었다. 초기 자연 풍경에서부터 점차 비구상적 추상으로 발전하는 작품 속 선과 색은 마치 음표와 리듬처럼 유연하게 구성되어 있었고 그림과 음악이 서로의 언어를 반영하며 하나의 경험으로 확장되는 느낌을 받았다. 전시장 곳곳에 배치된 악보, 레코드, 음악 관련 자료는 이러한 창작의 배경을 보여주며 칸딘스키가 음악에서 얻은 구조와 감각을 회화로 재창조했음을 실감하게 했다. 그림과 음악이 서로를 비추며 새로운 예술적 언어를 만들어가는 모습을 생생히 전달했다. 단순히 색을 음악으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음악의 구조와 감각을 회화 속에 재창조한 그의 시도를 직접 눈으로 귀로 경험할 수 있는 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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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hilharmonie de ParisPhoto: Han Jisoo 
 



글ㆍ사진_한지수 (파리통신원ㆍ에디터)
소르본파리노르대학교에서 현대 문학 학사, 동 대학원에서 문화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하여 석사 학위를 마쳤다. 갤러리자인제노에서 파리 통신원 및 객원 큐레이터로 활동했으며, 주 프랑스 한국문화원에서 도슨트로 근무한 경험이 있다. 현재는 문화예술신문 아트앤컬쳐에서 에디터로서 다양한 리뷰를 제공하고, 프리랜서 번역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또한 프랑스 한인유학생회의 창립멤버이며 프랑스 교민지 파리광장에 문화 및 예술 관련 기사를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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