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나발레 박물관: 아녜스 바르다의 파리 이곳저곳 > 한지수의 봉주르 파리

본문 바로가기

한지수의 봉주르 파리

dc6844e799399dddb82e7941c1448de0_1729312633_4636.jpg
 


카르나발레 박물관: 아녜스 바르다의 파리 이곳저곳

본문

2025년 4월 9일 - 8월 24일
Musée Carnavalet : Le Paris d’Agnès Varda de-ci, de-là


카르나발레 박물관은 파리의 역사와 정체성을 가장 밀도 있게 담아내는 곳이다. 선사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파리의 변천사를 시간의 층위별로 전시하고 있으며 프랑스 대혁명, 나폴레옹 시대, 벨 에포크, 파리 코뮌, 68혁명 등 도시를 관통한 역사적 사건들을 섬세하게 다룬다. 과거를 그저 보관하는 장소가 아니라, 파리라는 도시가 어떻게 지금의 얼굴을 갖게 되었는지를 끊임없이 되짚는 공간인 것이다. 
 
87abc18ae573a195b636b66bea87aa08_1751551456_828.jpg
87abc18ae573a195b636b66bea87aa08_1751551534_7794.jpg
 
ⓒ Musée CarnavaletPhoto: Han Jisoo  

최근에는 아녜스 바르다(Agnès Varda, 1928-2019)처럼 파리를 사랑한 인물들에 관한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아녜스 바르다는 프랑스 누벨바그의 유일무이한 여성 감독이자 사진가였으며 삶과 예술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든 시인이었다. 그녀는 대상을 특별하게 만들기보다 특별하지 않은 삶의 조각들에서 고유한 빛을 발견해냈다. 거리의 상인들, 무명의 배우들, 낡은 벽과 작은 정원에 귀 기울이며 영화와 사진이라는 언어로 기록했다. 작고 단단한 몸, 반쯤 염색한 머리, 유머와 따뜻함이 묻어나는 목소리를 가진 바르다는 삶의 관찰자였고 도시의 구석구석을 사랑한 기억의 수집가였다.
87abc18ae573a195b636b66bea87aa08_1751550905_6582.jpg  ⓒ Musée CarnavaletPhoto: Han Jisoo  

이번 전시에서는 그녀의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사진 작업을 중심으로, 1951년부터 2019년까지 그녀의 삶과 창작의 중심지였던 파리 14구 다게르(Daguerre) 거리의 안마당-아틀리에가 지닌 의미를 드러낸다. 더 나아가, 바르다가 구축한 자유롭고 넘쳐흐르는 창작 세계 안에서 파리가 차지하는 핵심적인 위치를 보여준다. 이 전시는 2년이 넘는 연구 작업의 결실로 바르다의 사진 아카이브와 시네 타마리스(Ciné-Tamaris)의 자료를 바탕으로 한다. 130여 점의 사진 인화본(그중 다수가 미공개작)과 함께 파리에서 전부 또는 일부 촬영된 영화 장면 발췌본이 나란히 전시된다. 출판물, 문서, 그녀가 소장했던 사물들, 포스터, 촬영 현장 사진 그리고 그녀의 반려 고양이 니니(Nini)를 형상화한 조각도 함께 소개된다.

87abc18ae573a195b636b66bea87aa08_1751550915_7891.jpg
  ⓒ Musée CarnavaletPhoto: Han Jisoo  

전시는 바르다가 사진작가로 첫 발을 내딛던 시기를 조명한 후, 관람객을 그녀의 안마당-아틀리에로 데려간다. 이 독특한 장소는 꽤 넓은 공간으로, 두 개의 상점과 그에 딸린 부속 공간들, 그리고 탁 트인 안마당이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이곳은 그녀의 삶의 터전이자 창작의 공간이었다. 촬영 스튜디오와 사진 현상실, 안마당이 자리했고 바르다는 여기서 사람들을 만나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사진을 찍고 영화를 만들었다. 1954년 그녀의 첫 개인전이 열린 장소이기도 했고 1960년대에 영화감독 자크 드미(Jacques Demy)와 이곳을 함께 사용하며 연극계 인사들에 이어 영화계 인물들이 드나들며 창작과 교류의 장이 되었다. 
87abc18ae573a195b636b66bea87aa08_1751550929_7825.jpg   ⓒ Musée CarnavaletPhoto: Han Jisoo  
 
이후 이어지는 섹션에서는 바르다가 파리의 사람들과 거리들을 바라보던 독특한 시선이 드러난다. 그녀의 사진은 유머와 낯섦이 뒤섞여 있으며 사람들을 향한 예리한 관찰과 따뜻한 거리감을 동시에 담는다. 그녀는 여러 편의 인물 사진과 르포르타주 작업을 위촉받았는데 언제나 그녀만의 방식으로 독창적으로 풀어냈다.

87abc18ae573a195b636b66bea87aa08_1751550938_3888.jpg   ⓒ Musée CarnavaletPhoto: Han Jisoo  

영화감독으로서 바르다의 파리에 대한 시선은 연대기이자 주제별 전개 방식을 통해 소개된다. 특히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Cléo de 5 à 7)》(1962)는 그 시작점에 놓인다. 이 영화에서 파리는 한 젊은 여성의 정서와 일치하는 공간으로서 촬영된다. 또한 파리의 정서적 역할을 담은 두 편의 영화도 언급된다. 하나는 단편 《맥도날드 다리의 약혼자들(Les Fiances Du Pont Mac Donald)》(1962)의 한 장면이고 다른 하나는 《머나먼 베트남(Loin du Vietnam)》(1967)의 촬영 현장 사진이다. 장편과 단편, 미공개작과 미완성작을 가로지르며 바르다의 카메라가 도시를 어떻게 응시했고 그녀가 도시의 미세한 디테일에 얼마나 집요하게 매달렸는지를 묻는다. 그녀의 렌즈는 조급한 눈에는 보이지 않는 도시의 사소한 풍경들을 포착한다.

87abc18ae573a195b636b66bea87aa08_1751550947_0956.jpg   ⓒ Musée CarnavaletPhoto: Han Jisoo  

전시는 후반부에서 바르다 예술의 주된 주제인 사람 (특히 여성)과  사회 주변부에 놓인 이들에 대한 그녀의 애정 어린 시선을 이어간다. 그녀의 사진과 영화 작업이 어떻게 맞물리는지 보여준다. 영화 《노래하는 여자 노래하지 않는 여자(l'une chante, l'autre pas)》(1977)는 두 여성이 점차 자유와 진실에 다가가는 여정을 그린 작품이다. 이 영화 속 파리의 사진관은 바르다가 직접 재현한 세트였고 이를 위해 그녀는 여성 초상 사진 시리즈를 촬영했는데 이 중 12점이 이번 전시에서 다시 설치 형식으로 소개된다.

87abc18ae573a195b636b66bea87aa08_1751550958_1868.jpg  ⓒ Musée CarnavaletPhoto: Han Jisoo  

단편 영화로 완성된 《오페라-무프(L’opéra-Mouffe)》(1958)도 다룬다. 이 작품은 당대 파리에서 가장 가난한 동네였던 무프타르 거리(Mouffetard)를 배경으로 임신한 여성의 복잡한 감정을 탐색한다. 더불어 1975년작 다큐멘터리 《다게레오타입(Daguerréotypes)》도 전시된다. 이 영화는 다게르 거리 상점 주인들의 초상화들을 통해 바르다가 자기 동네를 관찰하는 방식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87abc18ae573a195b636b66bea87aa08_1751550966_52.jpg
  ⓒ Musée CarnavaletPhoto: Han Jisoo  

그녀의 작업은 ‘이곳저곳(de-ci, de-là)’을 떠다니며 다큐멘터리와 허구를 경이롭게 교차시키고 가벼움과 어두움, 유머와 기묘함, 페미니즘과 주변부에 대한 관심을 함께 엮는다. 사진과 영화는 언제나 그녀의 세계 안에서 뒤섞이며 21세기 초 예술의 상징적인 인물로 자리잡는데 기여했다. 파리의 거리들은 그녀의 사진을 위한 특별한 배경이 되었지만 파리의 화려한 거리나 관광명소나 그림엽서 같은 풍경에는 별 흥미를 느끼지 않았다. 그녀는 도시 속에서 눈에 잘 띄지 않는 것들 이를테면 돌, 정원, 문구, 벽면, 공사 현장 등에 끌렸다.   

87abc18ae573a195b636b66bea87aa08_1751550976_1248.jpg
  ⓒ Musée CarnavaletPhoto: Han Jisoo  

전시의 끝은 그녀 자신을 향한다. 그녀가 사진과 영상 속에서 어떻게 담겼는지 그리고 안마당 공간에서 색채와 기질이 풍부한 예술가로서의 자아를 어떻게 키워갔는지를 짚어본다. 그녀에게 있어 파리는 단순한 무대가 아니었다. 감정의 풍경이자 실천의 장소였으며 자유로운 시선이 깃든 도시였다. 궁극적으로 이 전시는 바르다가 파리를 어떻게 살았고, 보았고, 남겼는지를 따라간다.

87abc18ae573a195b636b66bea87aa08_1751550984_3335.jpg
  ⓒ Musée CarnavaletPhoto: Han Jisoo  

아녜스 바르다는 사진과 영화의 장인을 넘어 동시대 예술의 아이콘으로 자리잡는다. 2003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초청되면서 이 지위는 확고해진다. 그녀가 오랫동안 천착해온 페미니즘과 생태주의는 오늘날의 담론을 예견한 것이기도 하다. 자기 자신을 이야기하고 형상화하는 방식으로 그녀는 점점 더 카메라 앞에 나서기 시작한다. 

87abc18ae573a195b636b66bea87aa08_1751550993_1254.jpg ⓒ Musée CarnavaletPhoto: Han Jisoo  

개인적으로 아녜스 바르다의 영화를 한 편도 본 적 없는 관람객으로서, 이번 전시는 다소 낯설고 단편적으로 다가왔다. 사진 중심의 구성은 시선을 오래 붙잡기보다는 흘러가기도 했고 작품 속 인물이나 배경에 대한 이해 없이 감상해야 했기에 몰입도 역시 낮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시를 통해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바르다가 파리 14구를 얼마나 깊이 사랑했는지, 그 애정이 도시 곳곳에 어떻게 남아 있는지에 대한 강한 인상이다.

87abc18ae573a195b636b66bea87aa08_1751551000_2979.jpg   ⓒ Musée CarnavaletPhoto: Han Jisoo  

그녀의 렌즈는 파리의 작고 소박한 순간들을 집요하게 포착했고 그 자취들은 결국 도시와 예술을 연결짓는 하나의 지도처럼 남았다.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바르다가 남긴 사진들을 따라가다 보니 문득 나의 파리 생활도 언젠가는 그런 식으로 기억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땐 분명 평범하고 아무렇지 않게 지나갔던 순간들이 시간이 흐른 뒤에는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다정하고 또렷하게 떠오를지도 모르겠다.




글ㆍ사진_한지수 (파리통신원ㆍ에디터)
소르본파리노르대학교에서 현대 문학 학사, 동 대학원에서 문화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하여 석사 학위를 마쳤다. 갤러리자인제노에서 파리 통신원 및 객원 큐레이터로 활동했으며, 주 프랑스 한국문화원에서 도슨트로 근무한 경험이 있다. 현재는 문화예술신문 아트앤컬쳐에서 에디터로서 다양한 리뷰를 제공하고, 프리랜서 번역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또한 프랑스 한인유학생회의 창립멤버이며 프랑스 교민지 파리광장에 문화 및 예술 관련 기사를 기고하고 있다.



전체 218 건 - 1 페이지




dc6844e799399dddb82e7941c1448de0_1729312774_3745.jpg
 



게시판 전체검색
다크모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