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드킨 미술관: 모딜리아니/자드킨 – 단절된 우정 > 한지수의 봉주르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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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수의 봉주르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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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드킨 미술관: 모딜리아니/자드킨 – 단절된 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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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1월 14일부터 2025년 3월 30일까지

Musée Zadkine : Modigliani / Zadkine - une amitié interrompue




러시아 태생의 조각가 오십 자드킨(Ossip Zadkine)이 실제로 거주하고 작업하던 아틀리에와 정원을 중심으로 1982년에 개관한 이 미술관은 그의 독창적인 조각 작품들을 비롯해 다양한 드로잉, 회화, 그리고 그가 예술가로서 추구했던 미학적 여정을 엿볼 수 있는 컬렉션을 소장하고 있다. 현대 조각의 흐름 속에서 자드킨의 독창적 위치를 탐구할 수 있는데다 고즈넉한 정원이 함께 있어 예술적 영감을 느끼기에 최적의 장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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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usée ZadkinePhoto: Han Jiso



이번 겨울에는 조각가 자드킨과 화가 아메데오 모딜리아니(Amedeo Modigliani) 사이의 예술적 우정을 주목한 최초의 전시가 펼쳐진다. 90여 점의  회화, 드로잉, 조각뿐만 아니라 당대 문서와 사진 등을 통해 1910~1920년대 몽파르나스의 격동적 환경 속에서 모딜리아니와 자드킨의 교차하는 여정을 살펴볼 수 있다. 두 아방가르드 거장의 작품을 나란히 배치하여 그들의 예술적 초기 시절을 재현하고 단절된 우정의 실타래를 다시 잇는 기회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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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usée ZadkinePhoto: Han Jiso



자드킨은 1913년 모딜리아니를 처음 만났다. 두 예술가 모두 조각가라는 공통된 꿈이 있었다고 한다. 자드킨이 회고록에서 '가난한 시절' 로 칭했던 시기를 함께 공유하며 우정을 쌓았지만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만남은 짧게 끝난다. 전쟁 후 잠시 조우한한 두 예술가는 이후 다시 갈라서게 됐다. 모딜리아니는 화가로서 점점 더 큰 성공을 거두지만 1920년 35세로 요절하고, 자드킨은 조각가로서 긴 전성기를 이어간다. 자드킨은 모딜리아니를 잊지 않고 옛 친구가 그려준 초상화를 소중히 간직하며 점점 더 신화화되는 그의 명성을 지켜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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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usée ZadkinePhoto: Han Jiso



전시는 모딜리아니와 자드킨이 각각 파리에 도착한 시기(모딜리아니: 1906년, 자드킨: 1910년)부터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까지의 작품들을 나란히 배치하며 시작된다. 자드킨이 모딜리아니를 만난 1913년, 모딜리아니는 1909년 브랑쿠시와의 만남 이후로 조각에 몰두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예술적 탐구에서 학문적 미학을 넘어 새로운 모델 즉, 이집트 고대, 크메르 예술, 아프리카 예술 등에서 영감을 찾으려 했다는 공통점을 공유하며 가까워졌다.


 모딜리아니는 이상적인 얼굴 형태 즉 타원형 얼굴과 아몬드 모양의 눈을 추구했으며, 이는 자드킨이 1920년대에 제작한 이상적인 두상 시리즈에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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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usée ZadkinePhoto: Han Jiso



모딜리아니의 드로잉과 초상화, 자드킨의 구아슈 작품은 전쟁 이후 두 예술가의 서로 다른 여정을 보여준다. 전쟁으로 인해 두 사람의 우정은 갑작스럽게 끝나게 된다. 건강상의 이유로 참전하지 못한 모딜리아니는 화상 폴 기욤의 권고로 조각을 영구적으로 포기한다. 반면 자드킨은 1915년 외인부대의 러시아 구급대에 들 것 운반병으로 참전해 1916년 가스 공격으로 부상을 입고 1917년 10월 완전히 제대하게 된다. 전쟁 말기 두 사람은 잠시 재회했지만, 모딜리아니는 1920년 1월에 요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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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usée ZadkinePhoto: Han Jiso



모딜리아니가 몽파르나스에서 함께 했던 막스 자콥(Max Jacob), 샤나 오를로프(Chana Orloff), 앙드레 살몽(André Salmon) 등의 초상화는 두 예술가의 교류와 그 시기의 사회적 풍경을 엿보게 한다. 모딜리아니는 카페에서 즉석으로 초상화를 그리며 친구들에게 이를 선물로 주거나 교환하기도 했는데 그 중에서도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그렇게 탄생한 자드킨의 초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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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usée ZadkinePhoto: Han Jiso



문서, 영화, 사진 등을 통해 모딜리아니 신화의 형성과 자드킨이 여기에 기여한 바를 보여준다. 모딜리아니는 1920년 1월 24일 결핵성 수막염으로 사망했는데 이는 몽파르나스 예술가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그의 비극적 운명은 1920년대부터 신화로 자리 잡기 시작하는데 자드킨 또한 1930년 모딜리아니를 기리는 특집에서 친구에 대한 생생한 증언을 남겼고, 1967년 자신의 회고록에서 "몽파르나스의 왕자" 모딜리아니의 생동감 넘치는 초상을 그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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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usée ZadkinePhoto: Han Jiso



전시의 마지막 부분은 두 예술가가 건축과 신성 그리고 신전이라는 주제에 주목한다. 모딜리아니가 1910년대에 만든 두상들은 "관능의 신전"의 일부로 구상되었으며 이는 부드럽게 조각된 여성 기둥(카리아티드)으로 구성될 계획이었다. 이 카리아티드 모티프는 자드킨의 작품에서도 자주 나타나며 특히 그가 조각한 대형 목조 작품들은 현대적인 신성의 개념을 새롭게 해석한 대표작으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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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usée ZadkinePhoto: Han Jiso



이 작은 공간에  가득 찬 관람객들과 전시에 깊이 몰입된 광경을 보며, 이번 전시가 유독 큰 관심을 끌었다는 사실을 실감했했다. 왜 이 전시가 특별했을까? 아마도 두 거장의 우정과 이별이라는 서사가가 그들의 작품과 결합되어 관객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켰다고 생각한다. 두 작가가 초기에 공유했던 조각에 대한 열정은 각기 다른 예술적 여정으로 발현되었지만 함께 전시된 작품들을 보면서 마치 서로를  보완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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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usée ZadkinePhoto: Han Jiso



자드킨의 조각과 모딜리아니의 그림이 한 공간에 어우러진 모습은 흥미로우면서도 감각적이었다. 자드킨의 조각은 대담한 선과 거친 표면으로 마치 조각의 재료 자체가 말을 걸어오는 듯한 느낌을 준다. 반면, 모딜리아니의 그림은 섬세하고 길게 늘어진 선을 통해 인물의 감정을 꿰뚫어보는 듯한 예민한 아름다움을 담고 있다. 자드킨의 조각이 땅에서부터 솟아오른 생명력을 상징한다면, 모딜리아니의 그림은 그 생명력이 가지는 내밀한 심리적 울림을 묘사하는 듯했다. 조각과 회화의 대조 속에서 서로를 이해하게 하는 이 전시는 두 예술가의 과거를 넘어 현재의 관객들과도 새로운 대화를 시도하고 있었다.





글ㆍ사진_한지수 (파리통신원ㆍ에디터)
소르본파리노르대학교에서 현대 문학을 전공하고 동 대학원에서 텍스트 이미지 문화를 공부하고 있다.
갤러리자인제노의 파리통신원 및 객원 큐레이터, 주 프랑스 한국문화원 도슨트로 활동 중이며,
문화예술신문-아트앤컬쳐에 에디터로 리뷰를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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