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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수의 봉주르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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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랑 팔레: 치하루 시오타 - 영혼의 떨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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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11일부터 2025년 3월 19일까지
Le GrandPalais (RMN) : Chiharu Shiota - The Soul Trembles (Les Frémissements de l’Âme) 


2025년 6월 그랑 팔레의 모든 갤러리가 재개장하기에 앞서, 일본 설치 미술가 치하루 시오타의 시적이고 감성적인 작품을 조명하는 전시회가 열린다. 도쿄 모리 미술관과 공동 주최한 이번 전시는 프랑스에서 열리는 시오타의 전시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7개의 대형 설치 작품, 조각, 사진, 드로잉, 퍼포먼스 영상, 그리고 전시 프로젝트 관련 아카이브 문서 등으로 구성된 이번 전시는 치하루 시오타의 20년 넘는 예술 여정을 따라가는 과정으로 그녀의 예술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기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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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 GrandPalais (RMN)Photo: Han Jiso


치하루 시오타는 서로 얽혀 있는 털실로 구성된 대규모 설치 작품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그녀는 시간, 움직임, 그리고 꿈의 개념을 탐구하며 관객이 정신적으로나 물리적으로 깊이 몰입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치하루 시오타는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져 있다. 2022년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린 개인전 <인 메모리(In Memory)>에서 그녀는 소설가 한강의 『흰』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밝히며 흰 실로 엉킨 공간에 배와 종이를 띄운 작품을 선보였다. 시오타는 실을 이용한 작업으로 경계와 기억을 탐구하며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생각을 끌어낸다.

ec6c57e1eb4a5d2938062af14b774cba_1734764251_3794.jpg ⓒ Le GrandPalais (RMN)Photo: Han Jiso

1972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난 치하루 시오타는 1999년부터 베를린에서 살며 작업하고 있다. 교토 세이카 대학교 미술학부에서 회화를 공부한 후 호주 캔버라 대학교에서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했으며, 이후 마리나 아브라모비치(1946년, 유고슬라비아 베오그라드 출생)의 작업실에 합류하여 퍼포먼스와 신체 예술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다. 처음에는 추상화 캔버스를 제작했으나 곧 그녀는 전통적인 회화의 범위를 벗어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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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 GrandPalais (RMN)Photo: Han Jiso

회화에 색을 올리는 것만으로는 예술이 되지 않는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녀는 1994년에 <Becoming Painting> 이라는 퍼포먼스를 통해 자신을 빨간색으로 완전히 덮으며 처음으로 그녀의 온몸을 활용한 작업을 시작했다. 이후 그녀의 회화는 점차 실로 대체되었고 공간을 차지하는 방식으로 변형되었다. 물건을 감싸거나 결합하는 작업을 통해 전통적인 회화에서 벗어난 시오타는 결국 독창적인 예술 세계를 구축하며 세상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ec6c57e1eb4a5d2938062af14b774cba_1734764269_1917.jpg  ⓒ Le GrandPalais (RMN)Photo: Han Jiso

시오타의 작품은 신발, 창문, 열쇠와 같은 일상적인 물건들을 활용하여 독특한 예술적 서사를 형성한다. 이를 통해 관람객이 문화와 언어를 초월해 근본적이고 보편적인 장소를 체험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특히 배와 여행 가방 같은 소재는 난민이나 망명 신청자의 상징으로 해석될 수 있지만 각기 다른 지역과 세대의 사람들에게는 다양한 이미지와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이처럼 그녀의 작품은 관람객들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석할 수 있도록 열려 있으며 문화적·세대적 차이를 뛰어넘는 독창적인 예술 경험을 제공한다.

ec6c57e1eb4a5d2938062af14b774cba_1734764278_4902.jpg  ⓒ Le GrandPalais (RMN)Photo: Han Jiso


실로 만들어진 설치 작품은 전시 공간에서 작가의 손으로 직접 짠다. 실 설치 작업은 보통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 걸리고 공간에 따라 달라지지만 예를 들어 모리 미술관 전시에서는 Uncertain Journey에 280km, In Silence에는 200km의 실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치하루 시오타의 설치 작품은 전시가 열리는 공간의 건축적 특성 따라 달라지는데, 흰 벽의 전시 공간이나 역사적인 공간, 산업 건물 등이 작품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그 공간에 존재하는 사회적, 집단적 기억, 더 나아가 도시의 역사나 건축의 역사 등이 시오타의 작품에 확실히 영향을 준다.

ec6c57e1eb4a5d2938062af14b774cba_1734764287_0166.jpg  ⓒ Le GrandPalais (RMN)Photo: Han Jiso

치하루 시오타의 작품은 복잡하고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특정 공간에서 일정 시간 동안만 경험할 수 있는 작품이기 때문에 오직 관객들의 기억 속에 남게 된다. 치하루 시오타의 작품은 그 덧없음 때문에 종종 사람들의 기억 속에 깊이 새겨진다. 작품을 만드는 시간의 상대성과 전시 후 작품이 철거되는 과정은 예술가의 작업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이 작업은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하며 결국 인간은 역사나 지구의 관점에서 보면 매우 덧없는 존재임을 일깨운다.

ec6c57e1eb4a5d2938062af14b774cba_1734764295_714.jpg  ⓒ Le GrandPalais (RMN)Photo: Han Jiso


 치하루 시오타는 설치 작품을 만들 때, 공간의 빈곳을 하나하나 검정, 빨강, 흰색 실로 채워가며 마치 3D 드로잉을 그리듯 설치한다. 그녀는 이를 "공중에 그린다"고 표현하는데 실을 엮으며 이루어지는 이 작업은 일종의 명상과 같으며 뇌의 복잡한 연결망처럼 복잡한 구조를 만든다고 한다.  치하루 시오타는 "검정은 이 깊고 광대한 우주를 떠올리게 하고, 빨강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실이자 혈액의 색이기도 합니다."라고 말한다. 그녀는 검정을 밤하늘이나 우주와 연관지으며 동시에 꿈의 세계와도 연결한다. 불을 끄고 어두운 곳에서 눈을 감으면, 우리의 눈꺼풀 뒤에 이미지가 떠오르듯 어둠 속에서 새로운 시각이 열린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빨강은 치하루 시오타에게 예술 커리어 초반부터 중요한 색으로 자리잡고 있었는데 몸 속의 혈관처럼 생명력을 상징하며 삶과 죽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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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 GrandPalais (RMN)Photo: Han Jiso
 

설치 미술은 그 자체의 일시적인 특성과 관람객이 작품과 상호작용할 수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예술 작품은 단순히 회화, 조각으로만 여기는것이 아니라 관람객은 작품 속을 걸으며 몰입하는 방식으로 작품과 교감하게 된다. 그래서 치하루 시오타의 작품들 역시 관객들을 압도하는 힘을 발휘한다. 그녀의 작품은 거대한 실의 설치를 통해 관객을 작품의 일부로 끌어들이며 시각적 충격과 함께 정서적 깊이를 전달해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있다.  실로 만들어진 거대한 네트워크는 마치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거대한 생명체처럼 보였으며 그 속에서 실 하나하나에 감정이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감정을 따라가며 전시를 둘러보는 내내 내가 존재하는 공간과 작품이 하나로 연결되는 느낌을 받았다.

ec6c57e1eb4a5d2938062af14b774cba_1734764312_2921.jpg  ⓒ Le GrandPalais (RMN)Photo: Han Jiso


붉은 실은 태어날 때부터 서로 얽히게 될 운명을 지닌 사람들의 인연을 상징한다고 한다. 작은 붉은 실들이 미니어처 가구를 이어가는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끊어질 수 없는 그 인연을 보여주는 듯하다. 전설이나 무속적 이야기에 끌리는 나로서는 이 모습이 묘하게 더 마음 깊이 스며들었다. 보이지 않는 운명의 실이 나를 감싸며 지나간 것처럼 붉은 실 작품들은 어떤 오래된 이야기를 내게 속삭이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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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 GrandPalais (RMN)Photo: Han Jiso
 

치하루 시오타는 자신의 작업과 무대 디자인의 유사성을 강조하며 "삶과 죽음, 그리고 그 사이의 모든 것을 주제로 다룬다"고 설명했다. 그녀는 오페라와 연극이 사랑, 운명, 비극, 희망, 죽음 등 삶의 다양한 측면을 포함하고 있어 본인의 예술적 탐구와 닮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연기자, 안무가, 연출가와의 협업 과정이 때때로 어렵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요소들이 결합해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은 매우 흥미롭고 가치 있는 경험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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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작품에서 인간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마주했다. 우리의 삶, 죽음, 그리고 그 사이의 모든 것들이 얼마나 얽혔는지 감각과 기억, 존재의 흐름 속에 실을 엮어 우리가 잊고 살아온 중요한 질문들을 되새기게 했기 때문이다. 치하루 시오타의 전시내내 연결된 모든 존재 속에서 실을 찾고 그것을 다시 엮어가며 감정의 실타래를 풀어내게 했다. '미술 작품을 본다'는 경험을 넘어서,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물음에 답하는 여정이었으며 그것이 진정한 예술의 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c6c57e1eb4a5d2938062af14b774cba_1734764340_8491.jpg  ⓒ Le GrandPalais (RMN)Photo: Han Jiso


치하루 시오타는 그녀의 전시 관람객에 대해서는 "현대 미술은 정답을 제시하지 않는다"고 전하며, "100명이 전시를 보고 느낀 점을 물어본다면 100개의 다른 답을 얻을 것"이라고 말했다. 관람객들이 전시를 자유롭게 느끼고 각자의 방식으로 해석하기를 바란다는 것이 그녀의 바람이다.




글ㆍ사진_한지수 (파리통신원ㆍ에디터)
소르본파리노르대학교에서 현대 문학을 전공하고 동 대학원에서 텍스트 이미지 문화를 공부하고 있다.
갤러리자인제노의 파리통신원 및 객원 큐레이터, 주 프랑스 한국문화원 도슨트로 활동 중이며,
문화예술신문-아트앤컬쳐에 에디터로 리뷰를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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