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식박물관: 내밀함, 침실에서 소셜 네트워크까지/크리스토플, 찬란한 역사/내 곰인형 > 한지수의 봉주르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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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수의 봉주르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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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식박물관: 내밀함, 침실에서 소셜 네트워크까지/크리스토플, 찬란한 역사/내 곰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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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15일부터 2025년 3월 30일까지/2024년 11월 14일부터 2025년 4월 20일까지/
2024년 12월 4일 - 2025년 6월 22일
Musée des Arts Décoratifs : L’intime, de la chambre aux réseaux sociaux/ Christofle, une brillante histoire/ Mon ours en peluche

 
장식박물관은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의 리슐리외 윙에 위치한 장식 예술 중심의 박물관으로 13세기부터 현대에 이르는 약 100만 점 이상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가구, 도자기, 보석, 패션, 타일 등 다양한 장식 및 실용 미술품을 전시하고 20세기부터 현대 디자이너의 작품까지 감상할 수 있다. 파리의 장식 예술 전통을 탐구하며 예술적 영감을 얻기에 완벽한 장소로 디자이너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는 문화 공간이다.

현재 장식 박물관에서는 3가지 전시가 진행중이다. <내밀함, 침실에서 소셜 네트워크까지> 전시가 개인의 사적이고 내밀한 공간을 주제로 한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고, <크리스토플, 찬란한 역사> 전시에서는 1830년대부터 오늘날까지의 크리스토플 오르페브리(금속 세공) 역사를 다루고, <내 곰인형> 전시는 인간과 곰의 역사적 관계를 탐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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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usée des Arts DécoratifsPhoto: Han Jisoo  


먼저 <내밀함, 침실에서 소셜 네트워크까지> 전시에서는 18세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사생활의 역사를 탐구하며 우리의 내밀한 세계를 들여다보는 흥미로운 작품을 볼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470점의 작품, 회화와 사진, 장식 예술품, 일상용품 및 디자인 작품을 통해 내밀함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보여준다. 사적 공간과 공적 공간의 경계가 점점 더 흐려지고 침투 가능해지면서 많은 논쟁을 야기한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Henri Cartier-Bresson)과 난 골딘(Nan Goldin)이 묘사한 침실, 19세기의 철제 침대부터 부룰렉 형제의 침대-클로(lit-clos), 의자형 변기에서 여성용 소변기, 건식 화장실 용품부터 욕실, 귀족적인 아름다움에서 대중소비로, 음란 서적에서 성인용품까지, 그리고 워크맨(Walkman)에서 소셜 네트워크와 인플루언서, 감시 및 보호 도구에 이르기까지 내밀함이 자리 잡고 이후 깊이 변화해 온 과정을 조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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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usée des Arts DécoratifsPhoto: Han Jisoo 


‘내밀함, 친밀함(L’intime)’은 라틴어 어원인 ‘intimus -> in (안에)과 imus (가장 낮은, 가장 깊은)’에서 비롯된 단어로 우리 내면의 가장 깊은 곳을 뜻한다. 이 단어는 18세기 프랑스에서 등장했으며 19세기에는 직업 생활과 가정생활, 그리고 남성과 여성의 활동을 분리하는 부르주아 계층의 등장과 함께 중요한 개념으로 자리 잡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친밀한, 사적인, 내밀한 등의 의미로 확장되어 사적인 삶과 관련된 모든 것을 상징한다.

19세기 자본주의 성장과 함께 부르주아 계층이 남성은 사업에 종사하고, 여성은 가정에서 친밀함을 책임지며 공적과 사적 영역이 구분되기 시작했다. 남성은 사업에 종사하고, 여성은 가정과 친밀함의 영역을 책임지는 모습이 일반적이었다. 남성 화가들은 여성들을 실내에서 묘사하면서 살짝 열린 문이나 창문을 통해 외부를 엿보게 했다. 1960년대 말, 현대 건축의 이상이 전면 창문을 통해 내부와 외부의 경계를 허물려 했음에도 불구하고, "내부 여성" 이라는 개념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여성들은 페미니즘 혁명을 통해 점차적으로 폐쇄된 공간에서 벗어나기 시작했고 이는 현실 세계 뿐만 아니라 예술적 표현에서도 나타났다. 여성들은 친밀함 개념의 변화를 이끄는 주요 주체로 부상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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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usée des Arts DécoratifsPhoto: Han Jisoo 


개인의 침실을 갖는 것은 항상 당연한 일이 아니었다. 오랜 기간 동안 서민들은 온 가족이 한 방에서 함께 잠을 잤다. 18세기 귀족들은 남성과 여성의 침실을 분리했고, "침실(chambre à coucher)"이라는 단어가 이 시기에 등장했다. 19세기 부르주아 계층의 새로운 주거 형태와 함께 부부 침실이 나타났으며 이후 어린이, 소녀, 청소년용 침실이 추가되었다. 오늘날 디지털 기술은 침대에서 할 수 있는 활동의 경계를 허물었고 침실은 더욱 넓어진 침대와 함께 생활 공간으로 변화했다. 이제는 자연스럽게 많은 사람들이 "자신만의 방", 나아가 "자신만의 침대"를 갖고자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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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usée des Arts DécoratifsPhoto: Han Jisoo 


18세기부터 본능을 억제하고 사회적 통제를 강화하며 부끄러움의 기준을 높였다. 이 시기 일상 행동에서 섬세함의 개념이 등장했고, 신체 기능은 점차 감춰져야 했다. 얼굴의 결점을 가리는 미용 도구가 유행했으며 화장대와 거울의 등장은 신체를 전체적으로 이해하도록 했다. 최근에는 화장품의 사용이 줄고 젠더 포용성과 다양성이 강조되는 시대적 흐름을 반영하고 있다. 19세기에는 현대적 위생 개념과 친밀함의 변화로 화장실이 금기시되기 시작했다. 냄새가 불결함과 연관된다는 개념은 이 시기에 확산되었다. 19세기 이동식 욕조의 등장과 함께 위생에 대한 관심이 커졌고 1950년대에 이르러 욕실이 일반 가정에 널리 보급되었다. 과거의 사치품은 오늘날의 일상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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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usée des Arts DécoratifsPhoto: Han Jisoo 


향수는 본질적으로 내밀함과 관련이 있다. 신체에 가까이 머물러 매우 밀접한 신체적 교감을 드러내거나 은은한 잔향으로 타인과 쉽게 공유되기 때문이다. 관능적인 향수는 유혹을 암시하며 이는 병의 디자인과 색상에서도 드러난다. 신선하고 꽃 향기 나는 향수는 청결과 좋은 향기에 대한 18세기 전통과 연관되기도 한다. 20세기에는 다양한 향수 트렌드와 상징이 풍부하게 나타났는데 해방된 여성의 향수, 가르송 스타일의 향수, 순수함을 상징하는 향수, 강렬하고 감각적인 향수, 그리고 유니섹스 향수까지, 개인적인 향기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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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usée des Arts DécoratifsPhoto: Han Jisoo 


1950~1960년대에는 안전하고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번데기나 누에 고치같은 코쿤(cocoon) 가구가 인기였던 반면, 1960년대 말과 1970년대에는 사람들과의 교류와 친밀함을 추구하는 가구가 등장했다.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 자기 노출과 은둔의 경계는 점점 흐려지면서 보다 자유로운 생활 방식과 성 혁명의 배경에서 새로운 디자인이 탄생했다. 급진적인 디자인은 가부장적 가족 구조를 거부하고 유목적 생활과 신체적 친밀함을 지향하는 사회의 요구에 부응했다. 이는 부르주아적 품위 개념의 쇠퇴와 더불어 현대에서 탈현대로의 전환을 상징하며 더 자유로운 행동의 시대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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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usée des Arts DécoratifsPhoto: Han Jisoo 


20세기에는 모든 성적 정체성이 점차 드러나기 시작했다.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는 남성 동성애의 친밀함을 침대에 누운 커플의 시리즈로 표현했고, 미국 사진작가 난 골딘(Nan Goldin)은 2000년대 초 커플의 사랑 장면을 부드럽고 아름답게 담아냈다. 남아프리카 LGBTQI+ 운동가이자 예술가인 자넬레 무홀리(Zanele Muholi)는 흑인 여성 커플의 포옹 장면을 촬영했다. 이러한 작품들은 성적 친밀함과 관련된 주요 사회적 변화를 반영하며 개인의 성적 영역에 대한 존중의 중요한 단계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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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usée des Arts DécoratifsPhoto: Han Jisoo 


감시 카메라, 위치 추적 기술, 얼굴 인식, 드론, 디지털 파일, 그리고 연결된 기기들은 다양한 가능성과 위험을 동시에 제공한다. 그러나 악의적인 행동으로 인해 사생활의 일부가 노출될 위험도 존재하며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감시 회피 방법이나 은폐 기술이 등장하고 있다. 사생활의 권리와 개인의 자유 존중 사이에서 새로운 균형을 지속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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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usée des Arts DécoratifsPhoto: Han Jisoo 


내밀함은 단순한 신체적 내밀함을 넘어 우리 내면에 간직된 생각, 꿈, 상상력을 포함한다. 이는 우리 깊은 곳에 묻혀 있어 빼앗길 수 없는 부분이며 정체성을 형성하고 창의력과 타인과의 관계를 발전시키는 데 필수적인 소중한 부분이다. 자기 자신과의 대화라는 개념은 18세기에 시작되어 내면 세계를 드러내는 새로운 민감성을 보여주었다. 19세기에는 개인 일기 쓰기라는 형태로 정착되었다. 19세기부터 현재까지 쓰인 여러 일기는 시간의 경계를 넘어 내면의 목소리를 전하는 공간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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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usée des Arts DécoratifsPhoto: Han Jisoo 


우리 일상 속에서 흔히 접하는 물건들이 새로운 맥락에서 바라볼 때 얼마나 다양한 이야기를 품고 있는지 알게 되어 무척 흥미로웠다. 단순히 아름다운 소품이 아니라 개인의 내밀한 공간과 자기 표현의 역사를 담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예술이 특별한 공간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 속에서 언제든 발견될 수 있다는 것에서 더 나아가 우리의 일상 자체를 더 깊게 이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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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usée des Arts DécoratifsPhoto: Han Jisoo 


그 다음 소개할 전시는, 1830년대 설립 이후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천재적인 은세공 장인들의 전통을 보여주는 크리스토플(Christofle) 하우스에 대한 대규모 전시이다. 크리스토플 하우스의 창립자인 샤를 크리스토플(Charles Christofle, 1805-1863)과 앙리 부이예(Henri Bouilhet, 1830-1910)가 일상생활 속에서 은의 선과 장식을 변모시키며 600여 점의 은세공 작품, 그림, 도안, 포스터를 통해 그들이 가져온 혁신을 탐구하고 있다. 크리스토플은 단순한 브랜드를 넘어 문화유산으로 자리 잡은 예술적 유산의 상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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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usée des Arts DécoratifsPhoto: Han Jisoo 
 

1830년대 초에 설립된 크리스토플 하우스는 예술적 전통과 혁신을 결합하여 장식예술을 끊임없이 새롭게 해왔다. 은세공의 형태와 장식을 변형시키는데 그치지 않고 은과 다양한 재료를 결합하여 고급스러움의 기존 관념을 뒤집었다. 오늘날 크리스토플은 여전히 혁신을 추구하며  콘솔, 커피컵, 신발 상자와 같은 일상적인 물건들을 디자인 작품으로 변모시켜 우리의 일상에 스며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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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usée des Arts DécoratifsPhoto: Han Jisoo 

   
보석공으로 시작한 샤를 크리스토플은 1842년에 전기 도금을 통한 은 도금 및 금 도금 특허를 인수했다. 이 기술은 전류를 이용해 비귀금속에 얇은 은 또는 금의 층을 입힐 수 있어 비귀금속이 귀금속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이는 산업 발전의 혁신으로 이어졌고, 크리스토플과 그의 후계자인 아들 폴 크리스토플, 조카 앙리 부이예가 새로운 은세공 시대를 열게 한 것이다. 식탁 예술, 식기류 및 식기 세트는 크리스토플의 주요 전문 분야가 되었으며 대형 조각과 예술 작품의 복제물 같은 특별한 작품도 제작되었다. 오늘날 일부 공정은 기계화되었지만 프랑스 노르망디 지역의 얀빌(Yainville)에 있는 크리스토플 제조소에서 진행되는 은세공 작업, 도금 및 금도금 제작은 여전히 19세기 중반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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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usée des Arts DécoratifsPhoto: Han Jisoo 


크리스토플은 매번 놀라운 기술력과 대규모 작품으로 경쟁자들을 압도하며 영국, 독일, 미국의 경쟁자를 제치고 금메달을 휩쓸었다. 1869년부터는 박람회에 앞서 당시 ‘산업 응용 미술 중앙 연합’으로 불리던 현재의 장식박물관이 주최한 전시회에 신작을 선보이며 박람회와의 관계를 더욱 공고히 했다는 것이다. 최고의 디자이너 및 조각가와 협력하며 크리스토플은 창의적인 형태와 장식을 지속적으로 개발했고 고전주의, 오리엔탈리즘, 자포니즘, 아르누보, 아르데코 등 당시 유행하는 미적 감각을 은세공으로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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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usée des Arts DécoratifsPhoto: Han Jisoo 


19세기 후반, 식탁 예술은 전성기를 맞이하는데  점점 더 강력해진 부르주아 계층은 식사를 중요한 사교 및 표현의 순간으로 여겼다. 러시아식 식사 방식(음식을 개별 접시에 나눠 제공하는 방식)이 보편화되며 각 요리마다 새로운 식기를 사용하는 관습이 생겨났던 것이다. 크리스토플은 1850년대부터 급속히 발전하던 대형 호텔과 레스토랑의 주요 공급자로 자리 잡았고  20세기 초  프랑스의 여러 명문 호텔들이 크리스토플의 식기와 바(bar) 용품으로 장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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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usée des Arts DécoratifsPhoto: Han Jisoo 


이러한 럭셔리는 19세기 후반에서 1920년대 절정을 이룬 철도 및 해양 운송에서도 이어졌다고 한다. 오리엔트 익스프레스 같은 명품 열차와 여객선은 크리스토플의 은세공품으로 장식된 고급스러운 객실을 고객에게 제공했다. 1926년부터 크리스토플은 항공 관광의 첫걸음을 내딛은 에어 유니옹(훗날 에어프랑스)을 위한 식기류를 제작했으며 현재까지도 에어프랑스의 공식 공급업체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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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usée des Arts DécoratifsPhoto: Han Jisoo 
 
1930년부터 1969년까지 크리스토플을 이끈 토니 부이예의 지도 아래 아방가르드 예술계와 교류하며 현대성을 추구했다. 1925년, 이탈리아 건축가 겸 디자이너 조 폰티(Gio Ponti)와의 만남은 크리스토플의 방향성을 바꾸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고 이 시기부터 크리스토플은 이탈리아 디자인의역동적인 선과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의 영향을 받은 새로운 스타일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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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usée des Arts DécoratifsPhoto: Han Jisoo 


제2차 세계대전 중 은세공품 제작이 중단되었을 때 토니 부이예는 루아얄 거리의 매장을 예술 갤러리로 변모시켜 장 콕토, 폴 엘뤼아르, 장 샤를 모뢰 등과 함께 전시를 기획했다. 이는 1970년대까지 지속되었으며 조각가 세자르와 일러스트레이터 장 미셸 폴롱과 협력하며 예술적 영역을 확장했다. 1986년 이후 크리스토플은 전통을 이어 보석 제작을 다시 시작했고 국제적인 디자이너들과 협력해 현대 미술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 오늘날 꽃 장식이 은세공품을 대체하는 경향이 있지만 여전히 가장 웅장한 식탁 중심에서 크리스토플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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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usée des Arts DécoratifsPhoto: Han Jisoo 
 
일상적인 도구로 여겨졌던 식기류가 어떻게 역사적, 예술적 가치로 승화되었는지 깊이 알 수 있었다. 식기류는 우리가 매일 사용하기 때문에 그저 기능적인 도구로만 여겨지기 쉽지만 크리스토플의 작품들을 통해 식기가 단순한 실용적인 물건이 아니라 그 시대의 예술적 정신과 기술 혁신을 담고 있는 중요한 문화유산임을 알게 되었다. 식기류의 미적인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그것들이 어떻게 사회적, 정치적 맥락과 연결되어 있었는지 살펴보며 그 시대의 경제적, 문화적 흐름과  맥락을 이해하는 것이 전시의  의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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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usée des Arts DécoratifsPhoto: Han Jisoo 


마지막으로, 곰 인형 전시를 관람했다. 20세기 초에 탄생한 곰인형은 빠르게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그 어떤 동물들보다 더 큰 인기를 끌었는데 그 역사를 살펴볼 수 있었다. 곰 인형은 거의 모든 어린이들의 상징이자 부드러움과 다정함의 상징이 되었다. 그렇다면 강력하고 잔인한 성격을 가진 동물인 곰이 어떻게 이렇게 인기 있는 장난감이 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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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usée des Arts DécoratifsPhoto: Han Jisoo 


고고학적 유적은 선사시대부터 인간과 곰 사이의 깊은 관계를 제시한다. 우리는 곰과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예를 들면, 곰과 같이 두 발로 서서 걷고, 잡식성인 점, 그리고 걸을 때 발바닥 전체를 지면에 대는 특징인 ‘편평한 발’ 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오랜 공존은 곰이 문화적으로 중요한 존재가 되는 이유를 설명한다. 중세 교회는 곰에 대한 숭배가 사람들을 기독교로부터 멀어지게 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곰의 이미지를 점차적으로 제거하려 했다. 곰은 점차 악마와 관련되며 탐욕, 게으름, 분노, 욕망 등의 죄와 결부된 것이다. 쉽게 길들여지고 훈련할 수 있는 곰은 서커스에서 공연되는 동물이 되며 도심에서 전시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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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usée des Arts DécoratifsPhoto: Han Jisoo 


 20세기 초, 독일과 미국에서 장난감 제조업체와 미국 대통령의 후원 아래 곰은 새롭게 탄생했다. 독일에서, Steiff라는 장난감 브랜드는 이미 많은 동물 인형을 제작하고 있었으며, 새로운 인형으로 모헤어로 만든 관절이 있는 곰 인형을 출시한 것이다. 동시에 미국에서 루즈벨트 대통령이 사냥 중에 곰을 살려준 사건으로 인해 곰 모양의 천 인형이 만들어지기 시작하고 루즈벨트 대통령의 높은 인기와 결합되어 독일에서 수입된 곰 인형에 대한 수요를 촉진시켰다. 이로 인해 영어권에서는 'Teddy bear'(독일어로는 'Teddybär')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것이라고 한다. 프랑스어 이름인 'ours en peluche'는 소재인 '펠루슈'에서 비롯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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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usée des Arts DécoratifsPhoto: Han Jisoo 


인형곰은 즉시 큰 인기를 얻었고 미국과 독일뿐만 아니라 프랑스와 영국에서도 중요한 장난감으로 자리 잡았다. 아이들 사이에서 인형곰은 친구이자 동반자로서, 어린이들의 감정적 연대가 시작되었음을 보여준다. 부드러운 털과 이리저리 구부릴 수 있는 관절을 가진 인형곰은 포옹하기에 적합하고 전통적인 엄마 역할을 따라하는 인형의 기능에서 벗어난 남녀 아이들에게 모두의 인형이 되어 주었다. 인형곰은 이제 어린이들과의 소통을 위한 교육적 도구로 사용되기도 하며 특히 병원에서 아이들이 복잡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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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usée des Arts DécoratifsPhoto: Han Jisoo 
 
게다가 패션 브랜드들과 명품 하우스들은 인형곰을 새로운 상징으로 삼아 유머러스하고 특이한 디자인으로 성인들을 위한 아이템을 만들기도 한다. 또한 유명한 장난감의 형태나 패턴을 담은 액세서리들이 등장하며 성인들만의 인형곰으로 재탄생하기도 한다. 사실 패션에서 인형곰을 사용하는 것은 웃음의 요소로 보일 수 있지만 동시에 정치적 메시지를 담고 있는 행위라는 주장도 있다. 예를 들어 장샤를 드 카스텔바작 (Jean-Charles de Castelbajac)은 모피를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디자이너인데 인형곰을 패션에 접목시켜 환경 문제와 동물권에 대한 메시지를 전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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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usée des Arts DécoratifsPhoto: Han Jisoo 


곰을 중심으로 인간과 동물의 관계, 그리고 곰의 문화적, 사회적 상징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를 통해 곰이 인류의 역사와 상상력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온 존재임을 새삼 느끼게했다. 전시의 첫 부분에서는 곰과 인간의 오랜 관계를 고대 유물과 자료를 통해 조명하며 곰이 인간의 상징적 이미지에서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보여주었다. 곰은 단순한 동물이 아니라 신화와 종교, 문화 속에서 인간과 밀접하게 연결된 존재였음을 알 수 있었다. 곰을 숭배했던 고대 사회의 의식이나 중세 시대의 곰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까지 시간의 흐름 속에서 곰이 어떻게 변모했는지가 무척 흥미로웠다.


 


글ㆍ사진_한지수 (파리통신원ㆍ에디터)
소르본파리노르대학교에서 현대 문학을 전공하고 동 대학원에서 텍스트 이미지 문화를 공부하고 있다.
갤러리자인제노의 파리통신원 및 객원 큐레이터, 주 프랑스 한국문화원 도슨트로 활동 중이며,
문화예술신문-아트앤컬쳐에 에디터로 리뷰를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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