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nF 리슐리외: 나비파의 판화 - 보나르, 뷔야르, 드니, 발로통 > 한지수의 봉주르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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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수의 봉주르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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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nF 리슐리외: 나비파의 판화 - 보나르, 뷔야르, 드니, 발로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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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9월 9일 – 2026년 3월 8일
BnF Richelieu : Impressions nabies - Bonnard, Vuillard, Denis, Vallotton 


프랑스 국립도서관 리슐리외 관은 문헌과 고서, 희귀본, 판화, 사진 등 방대한 문화유산을 소장하고 있다. 주로 학술 연구를 위한 도서관으로 알려져 있지만 전시 공간과 문화 프로그램을 통해 일반 방문객에게도 문을 열어 소장품을 직접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건축물은 17세기부터 이어진 왕립도서관의 기능을 바탕으로 형성되었으며, 19세기 초에 정비된 루이 14세 시대 건축 양식을 반영한 웅장한 신고전주의 건축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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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nF RichelieuPhoto: Han Jisoo 
 
현재 19세기 말 아방가르드 예술의 핵심 집단인 나비파(Les Nabis) 예술가들의 판화와 그래픽 작품을 조명하는 전시가 진행되고 있으며 색석판화와 목판화, 삽화, 포스터, 장식 예술품 등 약 200여 점의 작품을 통해 그들의 혁신적 시각 언어와 일상 속 예술 구현을 살펴볼 수 있다. 피에르 보나르(Pierre Bonnard), 에두아르 뷔야르(Édouard Vuillard), 모리스 드니(Maurice Denis), 펠릭스 발로통(Félix Vallotton)을 비롯한 나비파 예술가들은 회화와 장식 작업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판화 예술에서도 탁월한 성취를 보였다. 약 10여 년간(1890–1900) 전개된 이 짧지만 밀도 높은 예술 운동은 방대하고 다양한 인쇄 이미지를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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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nF RichelieuPhoto: Han Jisoo 

‘나비파’라는 명칭은 히브리어로 ‘예언자’를 의미한다. 19세기 말 프랑스에서 활동한 이 젊은 예술가 그룹은 당대 예술을 새롭게 갱신하겠다는 포부를 담아 스스로를 ‘나비’라 칭했다. 이름 자체가 예술의 미래를 내다보고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겠다는 선언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나비파는 전통적인 순수미술에만 머물지 않고, 장식예술을 포함해 다양한 창작 영역으로 활동을 넓혔다. 실제로 나비파의 미학은 인쇄 이미지를 통해 구체화되었고 이를 통해 보다 폭넓은 대중에게 확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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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nF RichelieuPhoto: Han Jisoo 

앙브루아즈 볼라르(Ambroise Vollard)와 같은 진취적인 출판인 겸 화상들의 지원 아래, 이들은 판화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을 이루며 ‘화가-판화가’를 독자적인 예술가로 자리매김시켰다. 그렇게 나비파 예술가들은 색석판화를 중심으로 실험하거나 목판화의 전통을 이어 발전시켰다. 이러한 다양한 인쇄 기법을 통해 단일 판화나 판화집뿐 아니라 포스터, 잡지 삽화, 책의 삽화, 공연 프로그램, 악보, 병풍·벽지·부채 같은 장식 예술품까지 폭넓은 작품들이 제작되었다. 이들의 판화와 그래픽 작업은 예술을 일상 속으로 가져왔고 더 많은 사람들이 접할 수 있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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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nF RichelieuPhoto: Han Jisoo 

전시는 판화에 대한 나비파의 대담하고 현대적인 접근을 조명한다. 먼저 나비파 예술가들이 석판화와 목판화를 어떻게 도입하고 실험했는지를 다룬다. 일본 미술에서 영감을 받은 이들의 그래픽 실험은 독창적이고 대담한 미학을 드러낸다. 일본 판화에서 영감을 받은 현대적인 주제와 시점, 그리고 색석판화를 통해 구현된 새로운 색채 체계는 나비파가 화가의 판화를 근본적으로 쇄신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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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nF RichelieuPhoto: Han Jisoo 

또한 색석판화 제작 과정을 밑그림에서 인쇄된 시안에 이르기까지 단계별로 설명하고 있다. 색석판화는 여러 색을 사용해 인쇄하는 석판화 기법을 말한다. 석회암 판 위에 기름 성분이 있는 연필이나 잉크로 그림을 그린 뒤, 물과 기름이 서로 섞이지 않는 성질을 이용해 이미지를 인쇄하는 석판화에 색채 표현을 더한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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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nF RichelieuPhoto: Han Jisoo 
나비파 판화가 본격적으로 꽃피기 이전부터, 그룹의 각 구성원은 인쇄 기술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1891년부터 바르크 드 부트빌 갤러리는 ‘상징주의 및 인상주의 화가들’이라는 이름의 단체전을 통해 이들의 그래픽 작품을 소개했다. 1893년에는 보나르, 드니, 이벨, 랑송, 폴 세뤼지에, 발로통, 뷔야르가 각자 석판화로 제작한 작품 목록을 갤러리 판매용으로 선보였다. 뷔야르가 흑백의 표현 가능성을 탐구하는 동안, 보나르와 드니의 석판화에는 점차 색채가 도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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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nF RichelieuPhoto: Han Jisoo  

1893년 앙드레 마르티(André Marty)가 창간한 「오리지널 판화(L’Estampe originale)」는 나비파의 판화를 유통한 최초의 출판 프로젝트였다. 그로부터 3년 뒤, 화상 겸 출판인 앙브루아즈 볼라르는 나비파 예술가들이 참여한 두 권의 판화집을 출간한다. 1899년 그는 보나르의 「파리의 삶의 몇 가지 단면(Quelques aspects de la vie de Paris)」, 뷔야르의 「풍경과 실내(Paysages et intérieurs)」, 드니의 「사랑(Amour)」각각 12점의 색석판화와 표지로 구성된 단행 판화집을 헌정했다. 출간 당시에는 상업적 성공을 거두지 못했으나, 이 판화집들은 오늘날 19세기 말 오리지널 판화의 정수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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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nF RichelieuPhoto: Han Jisoo 

모리스 드니는 1893년 앙드레 지드(André Gide)의 「위리앵의 여행(Le Voyage d’Urien)」을 삽화로 장식하며 나비파 중 가장 먼저 책에 주목한 인물이다. 그는 이 작업을 통해 화가를 단순한 삽화가가 아닌, 텍스트와 이미지의 조화를 함께 설계하는 창작자로 자리매김시켰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보나르는 폴 베를렌(Paul Verlaine)의 시집 「병행(Parallèlement)」의 석판화를, 드니는「지혜(Sagesse)」의 목판화를 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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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nF RichelieuPhoto: Han Jisoo 

「라 르뷔 블랑슈(La Revue blanche)」와 「라 플륌(La Plume)」같은 아방가르드 잡지들은 나비파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며 판화를 주요 매체로 활용했다. 이들 잡지는 정기 간행물에 판화를 싣고, 삽화가 포함된 서적과 판화 연작을 출판하며 나비파 미학의 확산에 기여했다. 또한 「살롱 데 상(Salon des Cent)」같은 현대 미술 전시와 연계해 포스터 제작을 의뢰하는 등, 출판과 전시를 아우르는 방식으로 나비파 예술가들의 실험적 작업을 대중에게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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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nF RichelieuPhoto: Han Jisoo 

19세기 말은 아방가르드 연극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시기이기도 하다. 사실주의와 자연주의에 기반해 일상의 현실을 무대 위에 옮기려 했던「테아트르 리브르」와 상징주의 연극을 중심으로, 분위기와 암시, 시적 이미지를 통해 내면의 세계를 표현하는 데 주력한「테아트르 드 뢰브르」와 같은 실험적 극장은 기존 관습에서 벗어난 새로운 공연을 선보였으며, 이들 극장의 요청으로 나비파는 공연을 총체 예술 작품으로 구상하고 무대 장치와 의상을 제작했으며, 석판화로 인쇄된 프로그램을 장식하는 등 연극과 예술을 결합하는 작업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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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nF RichelieuPhoto: Han Jisoo 


나비파는 파리에서 인기를 끌던 카페 콩세르의 파격적이고 대중적인 분위기에도 깊은 관심을 보였다. 이들은 오락 공간의 홍보를 위한 포스터와 샹송 악보 삽화 제작에 참여하며, 예술이 일상적 경험과 만나는 방식을 실험했다. 예술을 가능한 한 많은 이들에게 열어 보이고자 한 이러한 태도는 순수미술과 응용미술의 경계를 허무는 실천으로 이어졌고, 판화를 중심으로 한 그래픽 예술은 도시의 광고 포스터와 실내 벽지 등 일상 환경 속으로 적극적으로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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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nF RichelieuPhoto: Han Jisoo 

나비파가 어떤 성격의 집단이었는지를 다시 짚어보게 만든 전시였다. 이름과 몇몇 작가를 통해 막연히 알고 있던 흐름이 판화와 책, 포스터로 확장되는 작업들을 통해 보다 구체적인 윤곽을 드러냈다. 특히 판화에 대한 인식이 달라진 것이 인상 깊다. 그동안 판화는 흑백 위주의, 다소 엄숙하고 반복적인 매체라는 선입견이 있었지만, 이 전시에 소개된 작품들은 밝은 색채와 경쾌한 리듬으로 그 고정관념을 가볍게 벗겨내기도 했다. 장식적이면서도 섬세한 화면은 판화가 단순한 복제의 기술이 아니라, 시대의 감각을 담아내는 유연한 표현 수단이었음을 보여준다.

 


글ㆍ사진_한지수 (파리통신원ㆍ에디터)
소르본파리노르대학교에서 현대문학을 공부하고, 동 대학원에서 문화커뮤니케이션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파리 예술 현장의 숨결을 기록하며 언어와 문화 사이의 미묘한 결을 오래 들여다보았다. 현재는 다양한 문화예술 매체에 글을 기고하며, 파리의 이야기를 수집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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