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랑 팔레: 에바 조스팽, 그로테스코 // 클레어 타부레, 한 호흡으로 > 한지수의 봉주르 파리

본문 바로가기

한지수의 봉주르 파리

dc6844e799399dddb82e7941c1448de0_1729312633_4636.jpg
 


그랑 팔레: 에바 조스팽, 그로테스코 // 클레어 타부레, 한 호흡으로

본문

2025년 12월 10일 – 2026년 3월 15일
Grand Palais: Eva Jospin, Grottesco// Claire Tabouret, D’un seul souffle

그랑 팔레는 1900년 만국박람회를 위해 건립된 상징적 문화 공간으로, 웅장한 유리 돔과 넓은 전시홀을 갖추고 있어 현대미술, 역사, 과학, 패션, 공연 등 다양한 장르의 전시와 행사를 선보인다. 2024~2025년 대규모 복원 공사를 거친 후 재개관하여 전시의 중심 공간과 주변 전시실이 현대적으로 새롭게 정비되어 다양한 전시 연출이 가능해졌다. 또한 장기 휴관 중인 퐁피두 센터의 소장품 일부를 전시하며 20세기부터 현대까지의 미술 걸작을 한자리에서 경험할 수 있는 특별 전을 주최하고 있다. 

12b707f622e8c14bfba02ee0f6936554_1770729543_2264.png
ⓒ Grand PalaisPhoto: Han Jisoo 

현재 그랑 팔레는 두 아티스트, 에바 조스팽(eva jospin, 1975-)과 클레어 타부레(Claire Tabouret, 1981-)에게 하나의 입구로 연결된 두 개의 전시실을 선보인다. 한쪽에는 숲과 동굴, 상상 속 건축물로 가득한 「그로테스코 (Grottesco)」가, 다른 한쪽에는 노트르담 대성당의 미래 현대 스테인드글라스 프로젝트의 뒷이야기를 보여주는 「한 호흡으로 (D’un seul souffle)」가 펼쳐지고 있다.

12b707f622e8c14bfba02ee0f6936554_1770729550_2021.png
ⓒ Grand PalaisPhoto: Han Jisoo 

에바 조스팽은 이번 전시에서 15점 이상의 작품을 공개하며, 일부 작품은 전시를 위해 새롭게 제작되었다. 또한 그녀의 작업에서 상징적인 모티프를 새롭게 재해석한 작품들도 포함된다. 전시 제목은 우연히 동굴에 빠져 고대 황금의 집의 벽화를 발견한 한 젊은 로마인의 전설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한 젊은 로마인이 우연히 동굴로 보이는 공간에 떨어지며, 오랫동안 잊혀졌던 고대 로마 네로 황제의 궁전 도무스 아우레아(Domus Aurea)의 벽화를 발견했다는 전설에서 착안한 이야기다. 실제로 도무스 아우레아는 중세 이후 흙에 묻혀 있다가 르네상스 시기에 지하 공간처럼 재발견되었고, 이 우연한 발견은 고대 미술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낳으며 이후 ‘그로테스크’  양식 (아름다움과 혐오, 웃음과 공포, 인간성과 비인간성이 의도적으로 뒤섞이는 미학으로 보기 불편한데 눈을 뗄 수 없는 상태를 만드는 방식) 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12b707f622e8c14bfba02ee0f6936554_1770729560_2951.png
ⓒ Grand PalaisPhoto: Han Jisoo 

숨겨진 궁전, 마치 동굴과도 같은 공간에서 탄생한 그로테스크 양식은 식물, 건축, 환상이 뒤엉킨 형태를 뜻하며 에바 조스팽은 이 흐름을 이어간다. 전시는 관객을 특별한 세계로 안내하며 바위봉우리, 기념비, 동굴, 폐허, 숲의 여정을 통해 시각적 인식을 변화시키고 새로운 모티프를 드러낸다. 지난 10여 년간 동굴이라는 주제는 그녀의 작업 속에 뿌리를 내리며 숲과 결합해 끊임없이 변형되어 왔다. 그녀의 드로잉, 조각, 설치 작품에서 우리는 숨겨진 깊이와 드러나는 공간, 번식하는 형태와 모티프를 발견할 수 있다.

12b707f622e8c14bfba02ee0f6936554_1770729568_3881.png
ⓒ Grand PalaisPhoto: Han Jisoo 

특히 이번 전시에서 처음 공개되는 자수 부조 시리즈는 직물과 조각을 결합한 작품으로 에바 조스팽의 연구 여정에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하고 있다. 직물과 조각을 결합한 이 작품들은 기법의 위계를 뒤흔든다. 자수는 평면적 장식의 범주를 벗어나 입체적 구조를 획득하며, 하나의 건축적 형식으로 확장된다. 진주와 자유롭게 흐르는 실, 술 장식은 물과 자연이 어우러진 신화적 공간을 환기시키며 시간의 경계를 넘어온 풍경처럼 다가온다. 이러한 조각적 자수는 에바 조스팽 작업의 하이브리드한 형태로의 탐험과 확장을 보여준다.

12b707f622e8c14bfba02ee0f6936554_1770729576_113.png
ⓒ Grand PalaisPhoto: Han Jisoo 

에바 조스팽의 전시는 마치 숨겨진 고대 도시에 발을 들인 탐험가의 경험을 선사한다. 작품 대부분이 골판지로 정교하게 쌓고 깎아 만든 조각으로 처음 마주하면 단단한 갈색 톤이 압도하며 오래된 폐허에 들어선 느낌을 준다. 가까이서 보면 골판지 특유의 층과 결 덕분에 정교한 조각과 질감이 드러나 작품은 입체적 깊이와 그림자를 가지며, 빛과 각도에 따라 끊임없이 다른 표정을 보여준다. 전체적으로 신비롭고 탐험적이며 조스팽이 만들어낸 그로테스크 세계 속으로 완전히 빨려 들어가는 듯하다.


12b707f622e8c14bfba02ee0f6936554_1770729584_6127.png
ⓒ Grand PalaisPhoto: Han Jisoo 

한편, 클레어 타부레는 노트르담 대성당을 위해 제작한 6점의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의 실제 크기 모형, 스케치, 준비 작업을 선보인다. 각 모형은 성당 남측 측면 창의 실제 크기를 재현하며 아티스트가 자주 사용하는 모노타입 기법으로 제작되었다. 이 작품들은 성당 내부의 중립적인 빛을 존중하면서 기존 스테인드글라스와 부드럽게 조화를 이루고, 동시에 선명하고 균형 잡힌 색채를 제안하고 있다. 

오순절(Pentecôte, 부활절 이후 50일째 되는 날로 예수가 승천한 뒤 제자들에게 성령이 내려온 사건)이라는 주제에서 영감을 받은 이번 작품은 단결과 조화를 상징하고 클레어 타부레는 관객을 자신의 창작 과정 속으로 초대하여 창작의 뒷이야기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특별한 시간을 제공한다.

12b707f622e8c14bfba02ee0f6936554_1770729593_1748.png
ⓒ Grand PalaisPhoto: Han Jisoo 

이번 전시에서 타부레는 프랑스 공공기관인‘노트르담 대성당 재건 (Rebâtir Notre-Dame de Paris)’의 지침 아래, 노트르담 대성당 남측 측면 6개 창을 위한 현대 스테인드글라스 제작 과정을 공개한다.  이 기관은 2019년 화재 이후 대성당 복원을 총괄하는 공공기관으로, 복원 계획과 예술적 프로젝트를 관리하며 작가 선정과 공모전도 진행한다. 
12b707f622e8c14bfba02ee0f6936554_1770729602_5564.png
ⓒ Grand PalaisPhoto: Han Jisoo 

노트르담 대성당은 수백 년에 걸쳐 보존되어 온 역사적 기념물로, 특히 스테인드글라스는 원칙적으로 원형 보존이 가장 중요하게 여겨져 왔다. 실제로 19세기 비올레르뒤크(Viollet-le-Duc) 이후, 기존 스테인드글라스를 동시대 작가가 새로 창작해 교체하는 사례는 거의 없었다. 그런데 2019년 화재 후, 프랑스 국가는 단순 복원이 아니라 ‘현대의 흔적을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라는 역사적 선택의 순간에 놓이게 된 것이다. 그 결과, 국가가 공식 공모를 통해 동시대 작가에게 노트르담을 위한 새로운 스테인드글라스를 맡긴 것 자체가 전례 없는 결정이었다. 이는 노트르담을 과거의 유산으로만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시간과 감각을 역사 속에 기록하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12b707f622e8c14bfba02ee0f6936554_1770729612_3132.png
ⓒ Grand PalaisPhoto: Han Jisoo 

공모 지침을 준수하기 위해 타부레는 밝고 균형 잡힌 색채를 선택하여 향후 완성될 스테인드글라스가 순백의 빛을 유지하도록 했다. 또한 작품 제작에는 그녀가 오랫동안 집착적으로 사용해온 모노타입(monotype) 기법을 활용했다. 모노타입은 종이에 그림을 찍어 내는 일종의 인쇄 기법으로, 작품 속 장식 문양과 로제트 무늬를 반복해 표현할 수 있다. 이렇게 만든 그림은 19세기 스테인드글라스와 자연스럽게 어울리도록 색과 형태의 연결을 부드럽게 만들어 준다.

12b707f622e8c14bfba02ee0f6936554_1770729621_7076.png
ⓒ Grand PalaisPhoto: Han Jisoo 

이번 프로젝트의 핵심 주제인 오순절은 언어와 문화의 차이를 넘어 인간 사이의 연대와 조화를 상징하는 개념으로, 클레어 타부레의 창작 전반에 중요한 출발점이 되었다. 타부레는 파리 대주교가 제시한 오순절이라는 주제에서 지닌 미학적·시적 힘에 주목하며 서로 다른 언어와 배경을 지닌 사람들이 이해와 공존에 이르는 장면을 작품으로 옮기고자 했다. 작가는 분열과 불안이 일상화된 동시대의 현실 속에서 이 주제가 지닌 희망과 연대의 메시지가 오늘날 더욱 절실하다고 강조한다.

12b707f622e8c14bfba02ee0f6936554_1770729633_2932.png
ⓒ Grand PalaisPhoto: Han Jisoo 

2019년 화재 이후 ‘살아남은 유산을 굳이 바꿔야 하는가’와 ‘노트르담에 오늘의 시간을 새길 권리가 있는가’ 라는 논쟁은 여전히 팽팽히 맞선다. 이러한 논란을 인식한 상태에서 마주한 타부레의 작업은 강한 상징이나 극적인 대비보다는 따뜻한 색감과 유연한 리듬이 빛을 통해 공간에 스며들고 있었다. 성당을 침범하기보다는 감싸 안으려는 태도를 취하며 적어도 전시장 안에서 이 스테인드글라스는 파괴나 단절의 이미지가 아니라, 재건 이후의 노트르담에 숨결을 더하는 제안처럼 보였다. 논쟁의 무게와는 별개로 전시장에서 느껴지는 온기만큼은 분명하게 남아있었다.




글ㆍ사진_한지수 (파리통신원ㆍ에디터)
소르본파리노르대학교에서 현대문학을 공부하고, 동 대학원에서 문화커뮤니케이션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파리 예술 현장의 숨결을 기록하며 언어와 문화 사이의 미묘한 결을 오래 들여다보았다. 현재는 다양한 문화예술 매체에 글을 기고하며, 파리의 이야기를 수집해가고 있다.



전체 248 건 - 1 페이지




dc6844e799399dddb82e7941c1448de0_1729312774_3745.jpg
 



게시판 전체검색
다크모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