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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수의 봉주르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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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식미술관: 1925-2025, 아르데코 1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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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0월 22일 – 2026년 4월 26일
Le musée des Arts Décoratifs: 1925-2025. Cent ans d’Art déco  

장식미술관은 중세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150만 점이 넘는 방대한 소장품을 자랑하며 가구, 테이블웨어, 디자인, 패션, 텍스타일, 주얼리, 벽지, 유리, 장난감, 광고, 드로잉, 사진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고 있다. 19세기 설립 이후, 영감과 지식 전승의 중심지로 자리하며 매년 수많은 기증, 구매, 유산을 통해 컬렉션이 꾸준히 확장된다. 이 박물관은 아름다움과 실용성의 조화를 끊임없이 탐구해 온 공간이라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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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e musée des Arts DécoratifsPhoto: Han Jisoo 

현재, 1925년을 기점으로 탄생한 지 100주년을 맞은 아르데코의 다채로운 세계를 조망하는 전시가 진행되고 있다. 기하학적이면서 화려하고, 건축적이면서 장식적인 아르데코는 정교한 형태부터 단순한 형태까지 폭넓게 포괄하며, 1910년대 장식미술계에 불어온 혁신적 의지를 그대로 반영한다. 제1차 세계대전이 남긴 경제·사회적 혼란 속에서 현대적 생활 양식을 상징하는 미학으로 자리잡았으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풍부한 영감을 제공한다. 특히, 전설적인 기차 ‘오리엔트 익스프레스’에서도 그 영향력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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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e musée des Arts DécoratifsPhoto: Han Jisoo 
 
1925년 4월 18일, 국제 장식·산업 미술 전시회가 문을 열었다. 앙발리드에서 그랑팔레에 이르는 넓은 구역에 꾸려진 이 전시는 장식가, 브랜드, 제작소 등 다양한 주체가 인테리어를 맡아 당시 미감의 경쟁장을 펼쳤다. 형태와 개념 모두에서 ‘현대성’을 증명하려는 목표 아래 기획되었다. 예술계뿐 아니라 정치·산업계 인사들까지 참여해 작품 선정이 이례적으로 신중하게 이루어졌고, 1910년대부터 준비됐으나 여러 차례 연기된 끝에 마침내 성사된 만큼 프랑스에겐 문화적·상업적 전략의 무대이기도 했다. 동시대 일부 관람객들은 사회적 메시지가 부족하다는 점, 급진적 실험이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을 비판했지만 저렴한 입장료와 긴 운영 시간, 레스토랑과 각종 오락거리 덕분에 약 1,500만 명이 찾으며 대중적 성공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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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e musée des Arts DécoratifsPhoto: Han Jisoo 
 
아르데코는 창작자마다 목표가 달랐음에도 불구하고 공통된 시각 언어를 갖추고 있었다. 꽃바구니와 화환, 특정 동물 문양, 팔각형 등 기하학적 형태가 활용되었고 흑단이나 로즈우드 같은 귀중한 목재, 가오리 가죽, 옻칠 등 다양한 재료와 기법이 적용됐다.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형태의 단순화와 기하학화로, 이는 큐비즘이나 포비즘 등 전위 예술 운동의 실험과 맞닿아 있다. 또한 고고학적 발굴과 비유럽 예술 전시, 18세기 프랑스 미감, 루이 필립 스타일 등 다양한 요소가 결합돼 시대를 반영하면서도 독창적인 미적 세계를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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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e musée des Arts DécoratifsPhoto: Han Jisoo 
 
1910년대는 아르누보 스타일의 쇠퇴와 아르데코의 탄생을 알리는 시기였다.1912년 안드레 베라(André Vera)는 건축적 질서, 장식적 명료성, 색채의 뚜렷한 대비를 중시하는 아르데코의 기본 원리를 정리한 기초적 글을 발표했다.1920년대 초, 넬리(Nelly de Rothschild)와 로베르 드 로스차일드(Robert de Rothschild)는 파리 자택 한가운데 개인 아파트를 설계하고 가구를 배치했다. 호화로운 공간의 가구는 귀중한 소재로 가득하며, 벽면은 메르가 현대화한 루이 16세 스타일로 설계한 목공 장식으로 덮여 있어 전체적으로 조화로운 분위기를 이뤘다. 기하학적 형태와 미적 단순화 경향을 충분히 반영하면서도 세밀한 장식과 정교함을 추구한 이 가구들은 당시 예술가들의 장식 취향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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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e musée des Arts DécoratifsPhoto: Han Jisoo 
 
아르데코의 아이콘으로 꼽히는 아일린 그레이(Eileen Gray)는 독창적인 작품 세계로 동시대 창작자들과 구별된다. 영국과 파리에서 미술 교육을 받은 그녀는 장식가로서 공간을 조형적으로 구성했으며, 특히 파티션을 활용한 설계를 즐겨 선보였다. 그레이는 일본의 스가와라 세이조(Seizo Sugawara)에게 옻칠 기술을 배우고, 북아프리카에서 카펫 직조법을 익히는 등 다양한 공예 기법을 습득했다. 1910년에는 이를 바탕으로 관련 작업실을 열었으며, 1922년 장 데세르(Jean Désert) 갤러리에서는 시제품과 소량 제작품을 수공예로 선보이면서 금속 튜브 등 다양한 소재를 실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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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e musée des Arts DécoratifsPhoto: Han Jisoo 
 
많은 아르데코 창작자들은 무대와 공연 예술에 참여하며 시대적 종합예술을 구현했다. 파리의 야간 문화는 자유로운 정신과 ‘광란의 20년대’ 분위기를 반영하며, 재즈가 등장한 것이다. 예술가 무도회와 인기 연극이 이어지고 포스터가 도시를 장식했다. 

특히 영화라는 새로운 매체는 아르데코를 대중에게 알리는 통로가 되었는데, 1924년 마르셀 레르비에르(Marcel L’Herbier)의 영화 L’Inhumaine에서 로베르 말레트-스티븐스(Robert Mallet-Stevens)와 페르낭 레제(Fernand Léger)는 장식, 피에르 샤로(Pierre Chareau)는 가구, 폴 포와레(Paul Poiret)와 소냐 들로네(Sonia Delaunay)는 의상을 담당했다. 또한 MGM 아트 디렉터 세드릭 깁스(Cedric Gibbons)는 1925년 전시를 보고 영화 Our Dancing Daughters(1928)에 스타일을 적용하기도 했으며 폴 이리브(Paul Iribe)는 파라마운트 아트 디렉터로 활동하며 성공적인 협업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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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e musée des Arts DécoratifsPhoto: Han Jisoo 
 
아르데코는 귀목, 상아, 양피지, 가오리 가죽 등 고급 재료를 활용한 가구와 장식으로 화려함을 과시했다. 이처럼 장식가들이 추구한 실험적 디자인과 고급 장식품 중심의 아르데코를 일상생활과 대량 생산에 맞추는 일은 쉽지 않았다. 백화점과 아뜰리에들이 아르데코 확산에 중요한 역할을 했음에도, 높은 가격 때문에 일반 대중에게까지 널리 퍼지지는 못했다.

그러나 1929년 현대예술가연합(Union des artistes modernes)에 모인 창작자들이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면서 변화가 시작됐다. 특히 포스터 디자이너들이 아르데코의 시각 언어를 광고와 홍보, 공공 매체에 적극 활용하면서 그 스타일은 거리와 상점, 전시회 등 일상 속 공공 공간으로 자연스럽게 확산됐다. 이를 통해 아르데코는 이전보다 훨씬 넓은 대중에게 알려지고 공공의 시각문화 속에 자리잡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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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e musée des Arts DécoratifsPhoto: Han Jisoo 
 
장식미술관은 장식가 자크 그랑주(Jacques Grange)에게 그가 사랑하는 아르데코를 자유롭게 소개할 기회를 제공했다. 그는 프랑스 출신의 저명한 인테리어 디자이너이자 장식가로, 장식미술사에 대한 깊은 이해와 뛰어난 안목을 바탕으로 독창적 공간을 창조했다. 정제된 절충주의적 스타일을 구사하며 가구와 오브제, 색채와 질감이 서로 조화를 이루도록 공간을 구성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장식미술관의 15세 미만 청소년 워크숍에서 배운 경험을 바탕으로 경력을 쌓았고 이후 아르데코를 비롯한 역사적 디자인과 현대적 감각을 자유롭게 결합한 작업으로 명성을 얻었다. 또한 유명 컬렉터와 예술가들을 대상으로 한 작품 수집과 큐레이션에서도 활발히 활동하며, 고전과 현대를 연결하는 역할을 수행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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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e musée des Arts DécoratifsPhoto: Han Jisoo 
 
특히 1972년 자크 두세(Jacques Doucet) 컬렉션 경매에서 그는 폴 이리브(Paul Iribe)에 관심을 갖고 에드몽드 샤를 루(Edmonde Charles-Roux)를 대표했다. 이 경매에서 피에르 에베(Pierre Hebey), 앤디 워홀(Andy Warhol), 칼 라거펠트(Karl Lagerfeld), 이브 생로랑(Yves Saint Laurent), 피에르 베르제(Pierre Bergé) 등도 함께 입찰에 참여했다. 이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잊혔던 아르데코를 재발견하는 계기가 됐다. 그렇게 자크 그랑주는 명망 있는 고객들의 아르데코 걸작 구입을 안내하며 이 스타일을 유지하는데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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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e musée des Arts DécoratifsPhoto: Han Jisoo 
 
미국에서는 아르데코가 건축, 영화, 산업 생산물 등에서 사실상 공식적 지위를 차지했다. 건축물은 상징적인 실루엣을 갖추고 금빛 그릴과 모더니스트 부조 장식으로 장식되었으며, 영화와 산업 제품에서도 아르데코 양식이 폭넓게 적용되었다. 브라질과 일본은 문양과 소재를 통해 자국의 미적 입장을 분명히 드러냈고, 스웨덴은 스벤스크트 텐(Svenskt Tenn)과 같은 제조업체를 중심으로 생산 방식을 현대화했다. 이처럼 아르데코는 균질하지 않은 현대성을 보여주는 도구로 빠르게 확산되는 동시에 다양한 양상을 띠었으며, 국가적 정체성은 물론 민족주의적 특성을 드러내는 수단으로도 기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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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e musée des Arts DécoratifsPhoto: Han Jisoo 
 
1920~30년대, 육지·해상·항공 교통이 발달하고 관광이 크게 증가했다. 따라서 엘리트 계층의 새로운 생활양식은 여행에서도 반영되어야 했다. 장식, 오브제, 가구는 가장 호화로운 호텔 수준으로 제작되었으며 국제적 아르데코의 전달 수단이 되었다. 19세기 후반 철도 혁명은 지역을 연결하고 승객과 화물 수송을 혁신했다. 1876년 설립된 국제 와곤 리츠 회사는 유럽 대륙 최초로 열차 안에서 식사와 숙박이 가능한 국경 간 여행을 제공했으며, 1883년 오리엔트 익스프레스는 파리에서 이스탄불까지 뮌헨·비엔나·부쿠레슈티를 거쳐 81시간 만에 도착하며 신화적 명성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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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e musée des Arts DécoratifsPhoto: Han Jisoo 
 
2016년 폴란드와 벨라루스 국경에서 국제 와곤 리츠(Compagnie Internationale des Wagons-Lits) 소속의 역사적 열차 객차가 발견되면서, 오리엔트 익스프레스 브랜드는 유명 열차를 부활시키는 계획을 재검토하게 되었다. 아르데코 전문가인 건축가 막심 당제악(Maxime d’Angeac)이 참여해 원형을 존중하면서도 현대적 편의 시설과 이동 공간의 특성을 반영한 총체적 장식을 설계했다. 2027년 공개 예정인 새 오리엔트 익스프레스는 속도보다 여행 경험과 관조를 강조하는 럭셔리 이동 호텔로, 30개 전문 분야의 예술가와 장인이 협업해 길이 350m의 아르데코 예술 작품으로 구현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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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e musée des Arts DécoratifsPhoto: Han Jisoo 
 
전시장을 나서며, 아르데코라는 스타일이 왜 이렇게 오래도록 사람들을 매혹하는지 곱씹게 된다. 평일 낮임에도 불구하고 전시장 안은 적지 않은 관람객으로 붐볐고 그만큼 이 스타일이 지금도 여전히 관람자들을 끌어당긴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몇몇 가구와 장식품, 주얼리들은 지금 봐도 전혀 촌스럽지 않은 디자인 감각을 지니고 있었고 세련된 균형감이 느껴졌다. 기하학적 질서, 색과 재료의 대담한 조합, 장식과 기능이 어우러진 균형 속에서 아르데코는 시대적 미학을 담아낸 문화적 언어이자 당시의 현대적 감각을 반영한 예술적 성취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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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e musée des Arts DécoratifsPhoto: Han Jisoo 
 
한편으로는 아르데코의 화려함과 정교한 제작 방식, 고급 소재의 사용을 보면, 본래 부유층을 위해 태어난 사치품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그러나 화려함 뒤에 숨은 구조적 아름다움과 정교한 기술, 세심한 디테일을 발견하는 즐거움이 있다. 이런 발견이야말로 아르데코가  지금까지도 현대인에게 시각적 즐거움과 문화적 의미를 동시에 제공하는 이유일 것이다. 한 시대의 이상과 욕망을 반영하면서도 시대를 초월해 여전히 매혹적인 스타일이라는 점에서 그 본질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글ㆍ사진_한지수 (파리통신원ㆍ에디터)
소르본파리노르대학교에서 현대문학을 공부하고, 동 대학원에서 문화커뮤니케이션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파리 예술 현장의 숨결을 기록하며 언어와 문화 사이의 미묘한 결을 오래 들여다보았다. 현재는 다양한 문화예술 매체에 글을 기고하며, 파리의 이야기를 수집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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