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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수의 봉주르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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쁘띠 팔레 : 리베라 - 어둠과 빛// 브루노 릴리에포르스 - 와일드 스웨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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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1월 5일 - 2025년 2월 23일// 2024년 10월 1일 - 2025년 2월 16일  
Petit Palais : Ribera - Ténèbres et lumière // Bruno Liljefors - La Suède sauvage 


쁘띠 팔레는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를 기념하기 위해 건축된 박물관으로 주로 19세기와 20세기 초의 미술 작품들을 전시한다. 프랑스 화가들의 작품을 중심으로, 회화, 조각, 장식예술 등 다양한 예술 장르의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다. 특히 아름다운 안뜰 정원에서는 전시를 즐기며 여유롭게 문화적 휴식을 누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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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etit Palais : Ribera - Ténèbres et lumièrePhoto: Han Jisoo   


올 겨울 쁘띠 팔레에서는 스페인 화가 후세페 데 리베라(1591-1652)의 첫 번째 프랑스 회고전을 개최한다. 리베라는 카라바조를 가장 대담하게 해석했다고 평가받는 바로크 시대의 주요 예술가 중 한 명이다. 동시대 사람들은 그를 "카라바조 보다 더 어두우며 더 사나운" 화가로 평가했다. 스페인 출신이지만 그는 로마와 나폴리 이탈리아에서만 경력을 쌓았다. 리베라는 모든 회화가 현실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했으며 이를 자신의 언어로 변형했다. 일상부터 고문 장면까지 강렬한 사실감을 직설적이고고 현실적으로 표현했다. 이번 전시회는 전 세계에서 온 100점 이상의 회화, 드로잉, 판화로  로마에서의 치열한 시기부터 나폴리에서의 야심찬 시기까지 리베라의 경력을 종합적으로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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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etit Palais : Ribera - Ténèbres et lumièrePhoto: Han Jisoo   


발렌시아 근처 자티바(Xàtiva)에서 태어난 리베라는 어린 시절 스페인을 떠나 1605-1606년경, 당시 겨우 15세의 나이로 로마에 정착했다. 그렇게 카라바조의 작품을 접하게 된다. 두 사람이 실제로 만났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와의 예술적 만남은 리베라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카라바조가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거부하고 자연을 그린 그림을 추구했다는 점에 강한 영향을 받은 것이다.  카라바조의 추종자로서, 그는 카라바조 회화의 부활에 적극적으로 기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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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etit Palais : Ribera - Ténèbres et lumièrePhoto: Han Jisoo   


1616년, 리베라는 나폴리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활동을 시작했는데 (당시 나폴리는 스페인 지배하에 있었다) 나폴리의 부유한 지배층과 종교 단체들로부터 수많은  의뢰를 받으며 명성을 떨치고고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의 그림은 극적인 제스처, 어두운 색조나 화려한 색채, 직설적이고 강렬한 사실주의, 그리고 극단적인 명암 대비가 특징인데 이러한 테네브리즘(Tenebrism, 극단적인 명암 대비) 은 19세기에 보들레르부터 마네까지 많은 예술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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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etit Palais : Ribera - Ténèbres et lumièrePhoto: Han Jisoo   


리베라는 인간, 피부, 사물에 대한 탁월한 사실적 묘사를 통해 가난한 이들의 찬란함을 강렬하게 포착했다. 늙은 고리대금업자, 병 걸린 아기, 수염 난 여성 등 사회 주변부 인물들의 기괴함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담아내며 강렬한 이미지를 창조했다. 그는 카라바조가 다룬 하층 사회의 인물들을 그의 방식으로 묘사하면서 그 당시로서는 혁신적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작품에 담아냈다. 거지나 철학자, 또는 피에타와 같은 주제를 그리며 이를 통해 대담한 자연주의적 접근을 선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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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etit Palais : Ribera - Ténèbres et lumièrePhoto: Han Jisoo   


나폴리 시절의 드로잉과 판화 작업을 통해 그가 기술적으로도 뛰어난 작가였음을 알 수 있다. 그의 강렬한 선은 인물의 표현과 신체 움직임을 끊임없이 탐구했다. 그의 스케치에서 간단한 형태부터 매우 세밀한 그림까지 다양한 스타일을 엿볼 수 있다. 리베라의 드로잉에서 특이한 점은 대부분이 그의 회화를 위한 준비 작업이 아니라 상상력을 발휘하는 실험적인 작업이라는 것이다. 이 드로잉들은 기괴한, 풍자적이고 환상적인 요소와 더 어두운 반영을 담고 있어 훗날 고야의 작품을 예고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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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etit Palais : Ribera - Ténèbres et lumièrePhoto: Han Jisoo   

그는 초기 로마 시절의 거친 스타일에서 점차 서정적이고 색채감이 풍부한 작품들로 발전하게 되었다. 종교적 작품 외에도 리베라는 고대 신화를 재구성하면서 기괴하고 도발적인 매력을 드러낸다. 그는 말년에 더 밝은 색조를 사용하며 푸른 터키석 하늘, 불타는 색상, 그리고 옷이나 천의 반짝이는 질감을 매우 아름답고 세밀하게 묘사했다. 리베라가 어떻게 특정 주제들을 변형하고 재작업하는지 그의 끊임없는 미적 탐구 과정을 통해 거대한 재능이 발휘될 수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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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etit Palais : Ribera - Ténèbres et lumièrePhoto: Han Jisoo   


리베라는 철학자들을 낡은 옷을 입은은 가난한 모습으로 그리며, 이를 통해 관람객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내적인 부와 외적인 가난의 관계를 강조하며 인물의 정확한 정체성을 묘사하기보다는 인간 내면의 진실에 집중하고 있다. 이러한 철학자들은 존재론적인 질문을 던지며 자기 성찰로 이끌기도 한다. 게다가 수도자와 회개자의 모습을 자주 그리며 그들의 진정한 신심을 강조했다. 종교적 황홀경과 천상의 비전, 신의 기적 등을 현실적 관점에서 그렸다. 그의 종교 작품은 신자들을 효과적으로 감동시키며 동정심과 함께 인간적이고 가까운 성인들의 모습에 공감할 수 있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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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etit Palais : Ribera - Ténèbres et lumièrePhoto: Han Jisoo   


전시 공간 디자인은 리베라의 예술적 여정을 시각적으로 풀어내기 위해 섬세하게 구성되었다. 로마 섹션은 갈색 계열을 사용하여 리베라 초기 로마시절 작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어둡고 깊은 색감을 재현하고, 나폴리 섹션에서는 푸른 색조로  천상의 주제를 강조했다. 공간을 나누는 문틀에는 따뜻한 회색 톤을 채택해 각 섹션의 주제에 조화를 이루도록 했다. 전반적인 그래픽 디자인은 단순한 배경 장식이 아닌 섹션마다 고유의 이야기와 감정을 전달하게 돕고 관람객에게 특정 감정과 분위기를 전달해  전시가 하나의 유기적인 서사로 이어지도록 작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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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etit Palais : Ribera - Ténèbres et lumièrePhoto: Han Jisoo   


리베라 전시는 평일 낮에 갔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관람객들의 발길이 이어져 그의 예술이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고 있음을 실감했다. 전시된 작품들은 그 디테일과 생동감 넘치는 표현력으로 관람객들을 사로잡았는데 특히 인물들의 고통과 감정의 사실적 묘사는 보는 이에게 깊은 몰입감을 주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그의 작품이 전하는 강렬하고도 진지한 정서를 온전히 받아들이기엔 다소 부담스러웠다. 비록 리베라의 독특한 화풍과 그가 선택한 주제들은 나의 취향과는 거리가 있었지만 그의 예술이 가진 깊이와 기술적 완성도 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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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etit Palais : Ribera - Ténèbres et lumièrePhoto: Han Jisoo   
 

리베라의 전시를 본 후, 동시에 진행중인 스웨덴 화가 브루노 릴예포르스(Bruno Liljefors)의 특별 기획전시를 보러 갔다. 릴예포르스는 19세기 말 스칸디나비아 예술의 주요 인물 중 한 화가이자 생전에 “동물 화풍의 왕자”로 불릴 만큼 큰 찬사를 받았다. 이번 전시는 릴예포르스의 예술적 전성기에 해당하는 초기 작품들로 구성되었으며 회화, 드로잉, 사진 등 100여 점의 작품을 통해 그의 회화적 우수성과 스웨덴 자연에 대한 독창적 상상력을 최초로 선보인다.

 참고로 쁘띠 팔레는 2014년 스웨덴 화가 칼 라르손(Carl Larsson)과 2017년 안데르스 조른(Anders Zorn)을 주제로 한 두 전시에 이어, 이번에는 브루노 릴예포르스를 소개한다. 이렇게 스웨덴 예술계의 상징적인 'ABC 3인조'(각각의 이름 앞 글자를 따서 부르는 이들)를 탐구하는 마지막 단계에 이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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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runo Liljefors - La Suède sauvagePhoto: Han Jisoo   


릴예포르스는 스톡홀름 북부의 웁살라(Uppsala)에서 자라며 광활한 자연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어릴 적부터 실물 스케치를 연습하며, 특히 캐리커처와 삽화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고 한다. 1879년, 그는 왕립미술아카데미에 입학하여 안데르스 조른을 만나고 이후 독일과 이탈리아를 여행한 릴예포르스는 프랑스 파리로 가서 자신의 기량을 더 갈고 닦게 된다. 파리 남동쪽의 그레-쉬르-루앙(Grez-sur-Loing)에서 머물며 북유럽 출신 예술가들과 교류했지만 프랑스에 오래 머물지는 않았고 1884년 스웨덴으로 돌아가 자연과 동물을 주제로 한 작품 활동에 전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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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runo Liljefors - La Suède sauvagePhoto: Han Jisoo   


릴예포르스는 예리한 관찰력을 바탕으로 숲속의 여우 가족, 눈밭을 가로지르는 토끼, 해송 꼭대기에 앉은 물수리, 차가운 군도 바다에서 헤엄치는 아이더새, 숲속의 뇌조 등 생동감 넘치는 장면들을 포착했다. 그는 동물들을 방해하지 않으려는 노력 속에서 황야와 습지, 깊은 숲을 끊임없이 탐험하며 동물들의 일상적인 삶을 세심하게 관찰했다. 위장하거나 은신처를 만들고 뛰어난 체조 능력과 신체 능력을 활용해 나무 꼭대기까지 올라가 물수리 둥지와 같은 장소에서 동물들의 움직임과 자세를 면밀히 살폈던 것이다. 이러한 관찰은 그의 드로잉에 동물들의 자연스러운 움직임과 자세가 고스란히 반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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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runo Liljefors - La Suède sauvagePhoto: Han Jisoo   


게다가 독특한 세로형 또는 가로로 길쭉한 구도를 즐겨 사용하며 높은 수평선이나 수평선이 아예 없는 비대칭적 구성을 선호했다. 이렇게 그의 시선과 노력은 스칸디나비아 특유의 분위기를 재현하는 탁월한 기법이 되었고 관객을 자연의 한가운데로 끌어들이며 몰입감을 더욱 높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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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runo Liljefors - La Suède sauvagePhoto: Han Jisoo   

릴예포르스는 자신의 예술적 탐구가 일본의 예술, 서예, 비단화, 판화에 영향을 받았음을 부인했지만 일본에서 영감을 받은 구성 방식을 보여준다. 그의 그림 구도와 여러 작품을 하나의 프레임에 결합하는 방식은 일본의 판화인 하리마제(Harimaze 조각조각 나뉜 이미지를 결합하여 통합된 시각적 효과를 생성하는 방식) 기법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독립적 장면들을 금박 액자 속에 배치하여 관람객이 각기 다른 이야기를 상상할 수 있게 했다. 즉, 서로 연결되지 않은 듯한 장면들을 불규칙적으로 배열하여 독창적인 장식적 구성을 만들어내고 관람객이 주관적으로 이야기를 재구성하고 상상할 여지를 남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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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runo Liljefors - La Suède sauvagePhoto: Han Jisoo   
 

또한 릴예포르스의 예술은 19세기 말 산업 혁명으로 변화하는 사회에서 자연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반영하며 당시 유럽 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던 다윈의 진화론과도 연결된다. 작품 속 다양한 종(種)의 표현은 변화의 중심에 있던 당시 사회의 지식욕을 반영한다는 것이다. 그의 그림속에서 동물, 식물, 곤충, 새들은 모두 하나의 큰 생태계의 일부이자 끊임없이 진화하고 적응하는 과정의 결과물로 동물들을 항상 그들의 서식지 속에 배치하여 강조했다. 오늘날 생물다양성 보호가 주요 과제가 된 시대에 릴예포르스는 스웨덴 자연의 예찬자를 넘어 생명의 상호연결성을 통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동물과 자연이 가진 역동적이고 본질적인 아름다움을 탐구하며 관람객에게 자연의 깊은 생명력을 경험하게 하는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남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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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runo Liljefors - La Suède sauvagePhoto: Han Jisoo   
 

릴예포르스 전시는 자연의 생동감을 한껏 품고 있는 작품들 속으로 나를 인도해 주었다. 그의 그림 속 자연은 단순한 풍경을 너머 살아 숨 쉬는 생명체처럼 다가왔다. 자연 풍경화를 지루하게 여기던 내 고정관념을 완전히 깨뜨린 전시였다. 현실에서 잠시나마 벗어나 내가 그 자연 속에 몸을 실은 듯한 기분을 느끼게 했다. 자연의 순수함과 생명력에 위안을 얻은 시간이었고 그 감동은 전시장을 떠난 후에도 오래도록 여운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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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runo Liljefors - La Suède sauvagePhoto: Han Jisoo   




글ㆍ사진_한지수 (파리통신원ㆍ에디터)
소르본파리노르대학교에서 현대 문학을 전공하고 동 대학원에서 텍스트 이미지 문화를 공부하고 있다.
갤러리자인제노의 파리통신원 및 객원 큐레이터, 주 프랑스 한국문화원 도슨트로 활동 중이며,
문화예술신문-아트앤컬쳐에 에디터로 리뷰를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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