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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수의 봉주르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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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박물관: 이주, 인간의 대서사시/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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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ée de l’Homme : Migrations, une odyssée humaine / WAX
2024년 11월 27일부터 2025년 6월 8일까지/2025년 2월 5일부터 9월 7일까지


인류박물관은 인간의 기원, 진화, 문화, 그리고 사회적 변화를 탐구하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박물관으로 과학과 인문학이 교차하는 공간이다. 인류학, 고고학, 생물학, 사회학 등 다양한 학문적 관점을 통해 인간을 연구하며 인간 존재의 보편성과 다양성을 조명하는 전시를 선보인다. 특히 인간과 환경, 문화 간의 상호작용을 중점적으로 다루며, 선사시대부터 현대까지 이어지는 인류의 여정을 탐색하는 것이 특징이다. 전시는 학술적 깊이와 예술적 감각이 조화를 이루며 관람객이 인간의 과거를 통해 현재와 미래를 성찰할 수 있도록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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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usée de l’HommePhoto: Han Jisoo  

현재 진행중인 기획전시에서는 ‘이주’ 라는 방대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이주는 과거의 현상이 아닌 오늘날에도 여전히 중요한 주제이며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체와 관련이 있다.  공적 담론에서 이주 문제는 주로 위협, 위험, 위기라는 관점에서 다뤄진다. 침략, 침입, 대체, 잠식과 같은 용어들이 이주 현상과 결부되어 많은 선입견을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용어들은 이주하는 사람들에 대한 특정 이미지를 형성하며, 이주 현상이 갑작스럽고 대규모로 일어나는 것처럼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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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usée de l’HommePhoto: Han Jisoo  

하지만 인류의 기원을 돌아보면 이주는 언제나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해 온 현상임을 알 수 있다. 인간은 끊임없는 이동 속에서 서로 섞이고, 만나고, 교류하며 발전해왔다. 오늘날 세계화가 가속화되면서 인간의 이동은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해졌으며 이는 문화를 교류하고 확장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동시에 이주는 사회·경제·환경적 불평등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요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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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usée de l’HommePhoto: Han Jisoo  
 
이번 전시는 인류학, 고고학, 인구학, 유전학, 사회학, 언어학 등 다양한 학문을 결합하여 우리가 이주에 대해 갖고 있는 통념을 분석하고 그 안에 내재된 선입견을 해체하려는 시도를 담고 있다. 또한 이주와 관련된 복잡한 데이터들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정리하여 관람객이 이 현상을 보다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돕는다. 이주가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지난 세기와 비교했을 때 무엇이 달라졌는지, 오늘날 주요 이동 경로는 어디인지,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 몇 명이 고향을 떠나 살고 있는지 등, 이주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들을 탐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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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usée de l’HommePhoto: Han Jisoo  

전시 공간에서는 이주의 개념을 보다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 동적인 인터랙티브 장치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이주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다양한 배경과 사연을 품고 이루어진다는 점을 강조하며 이주자들의 인터뷰를 통해 그들의 경험과 여정, 그리고 이주의 다양한 원인을 조명한다. 또한 이주 자들의의 개인적인 물건들과 예술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특히 많은 작품이 직접 이주를 경험한 예술가들에 의해 제작되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3fe42ae746548998317a57dc168fbd33_1743836084_4048.jpg ⓒ Musée de l’HommePhoto: Han Jisoo  
 
이주는 인류의 역사를 관통하는 본질적인 흐름이다. 혼합과 교류는 우리가 물려받은 가장 오래된 유산 중 하나다. 이러한 유산을 따라 선사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 인류가 어떻게 이동하고 섞이며 진화해왔는지를 되짚는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사는 이 변화무쌍한 세계 속에서 인간은 결코 혼자 이동하지 않는다. 언제나 다른 생명들과 함께한다. 동물과 식물, 미생물뿐만 아니라 언어와 음식, 그리고 문화를 지닌 채, 우리는 수천 년 동안 이주를 반복해왔다. 그 흐름 속에서 만남과 혼합이 이루어졌고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의 다채로운 사회를 형성해왔다.

 3fe42ae746548998317a57dc168fbd33_1743836091_7121.jpgⓒ Musée de l’HommePhoto: Han Jisoo  
"움직이지 않는 세계란 과연 어떤 모습일까? 만약 내일 우리가 이주해야 한다면 어떤 선택지가 주어질까?"  전시는 이러한 질문을 던지며 이주의 의미와 최근의 변화를 현대적 시각에서 성찰할 기회를 제공한다. 이주는 단지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지금도 진행 중이며 앞으로도 계속될 인간 존재의 근본적인 특성이기 때문이다.

3fe42ae746548998317a57dc168fbd33_1743836099_1564.jpg ⓒ Musée de l’HommePhoto: Han Jisoo  


이주라는 주제를 깊이 있게 탐구하며, 박물관의 취지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는 작품들이었다.이 전시의 가장 큰 매력은 이주라는 인간의 근본적인 경험을 다루면서, 그 과정에서 인류가 어떻게 진화하고 변화해왔는지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이다. 특히 전시장 곳곳에 펼쳐진 인간의 진화 과정을 실루엣으로 형상화한 연출은 참신하면서도 유머러스하게 다가왔다. 인간의 이동이 단지 지리적, 물리적 이동에 그치지 않고 문화적, 생태적 변화를 가져오는 중요한 순간임을 상기시켜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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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usée de l’HommePhoto: Han Jisoo  
 
전시 공간의 구조적 구성도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주라는 테마에 걸맞게 전시장은 임시적인 나무 컨테이너 형태로 디자인되어 마치 지금 이 순간에도 사람들이 떠나고 도착하는 이주자의 여정을 따라가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이러한 설치는 이주가 단순한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의 생동감 있는 현실임을 생생히 전달해주었다. 이주를 통해 서로의 교류와 작물의 이동이라는 요소를 강조한 부분도 흥미로웠다. 인간의 이동이 단지 개인이나 집단의 이동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식물과 동물, 심지어 미생물까지도 함께 이동했다는 사실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간과하는 중요한 통찰을 주었다. 이는 이주가 얼마나 상호 연결된 다층적인 과정인지를 잘 보여준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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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usée de l’HommePhoto: Han Jisoo  

다음으로 ‘왁스(Wax)’를 다양한 시각으로 발견하는 전시도 진행중이다. 여기서 말하는 왁스는 우리가 흔히 아는 식물성 기름이나 밀랍(wax)이 아니라, 아프리카에서 널리 사용되는 화려한 패턴의 직물을 의미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왁스 프린트(Wax print)라고 불리는 이 원단은 인도네시아의 바틱(Batik)에서 영감을 얻은 직물로, 왁스를 이용해 염색하는 기법이 특징이다. 유럽인들에 의해 산업화되었고 이후 서아프리카에서 큰 인기를 끌며 아프리카 대륙으로 확산되었다. 이 전시는 왁스의 역사를 따라가며 이 직물이 어떻게 하이브리드한 정체성을 가지게 되었는지 탐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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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usée de l’HommePhoto: Han Jisoo  
                                                                                                                                                  
서아프리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대표적인 아프리카 패브릭으로 자리 잡은 왁스는 화려한 색상과 기하학적인 패턴이 특징이다. 원단의 독특한 매력은 옷뿐만 아니라 가방, 소품, 가정용 패브릭 등 다양한 형태로 활용되며, 시간이 지나면서 국경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게 되었다. 특히 지난 10년 동안 왁스의 인기는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으며 의류와 액세서리, 생활 소품 등 다양한 분야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그 독특한 역사와 문화적 의미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낯선 영역으로 남아 있다. 인류학자, 미술사학자, 디자이너, 현대 예술가들의 다양한 시선을 통해 왁스를 탐구하며 단순한 직물을 넘어 하나의 문화적 상징이자 창조적인 표현 수단으로 자리 잡은 과정을 깊이 있게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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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usée de l’HommePhoto: Han Jisoo  

왁스의 확산과 인기를 이끈 여성들의 중요한 역할에 대해 다루고 있다. 특히, 1960년대 토고에서 나나 벤즈(Nana Benz)는 왁스를 상업적으로 유통하며 큰 부를 축적했고 그들의 이야기는 단순한 경제적 성공을 넘어서 사회적 역할과 여성의 힘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나나 벤즈는 당시 왁스 직물 유통을 주도한 여성 상인들을 일컫는 이름으로, 이들은 경제적 영향력과 독립적인 상업적 성공을 이룬 중요한 인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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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usée de l’HommePhoto: Han Jisoo  
 
왁스는 이제 단순한 상업적이고 산업적인 물품을 너머 사람들의 감정과 깊이 얽혀 있는 직물이 되었다. 여러 세대에 걸쳐 중요한 순간을 함께해온 이 직물은 개인의 삶의 중요한 순간에 동반하며 특별한 의미를 지니게 된다. 왁스는 단순한 트렌드를 넘어서 그것을 입는 사람의 종교적 신념이나 정치적 입장, 혹은 정체성을 표현하는 도구로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아프리카 디아스포라와 아프리카계 후손들에게 왁스는 유산과 공동체적 정체성을 나타내는 중요한 상징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왁스가 전통적인 아프리카 직물을 그늘지게 하고, 아프리카에 대한 고정관념을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전시는 왁스를 단순한 패브릭을 너머머 역사적이고 문화적 아이콘으로서의 의미를 나타낸다. 예술 작품과 패션 아이템들, 그리고 다양한 상징들을 통해 왁스가 얼마나 창의적인 원천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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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usée de l’HommePhoto: Han Jisoo  


화려한 색감과 독특한 패턴을 자랑하는 왁스 직물은 시각적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게다가 그 패턴과 디자인이 매우 세련되었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멋진 옷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왁스가 단순한 패브릭이 아니라, 문화적, 사회적 의미를 내포한 상징적인 존재임을 깨닫는 전시였다.   왁스를 통한 문화적 소통과 정체성의 표현이란 주제가 매우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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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usée de l’HommePhoto: Han Jisoo  

이 두 전시를 통해 우리는 이주라는 주제가 단순히 물리적 이동만을 뜻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고 그 속에 담긴 교류, 혼합, 그리고 문화적 풍요로움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 있었다. 박물관은 이를 다양한 시각적, 설치적 요소를 통해 유려하게 전달하며 관람객에게 강한 여운을 남겨 주었다.
 


글ㆍ사진_한지수 (파리통신원ㆍ에디터)
소르본파리노르대학교에서 현대 문학 학사, 동 대학원에서 문화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하여 석사 학위를 마쳤다. 갤러리자인제노에서 파리 통신원 및 객원 큐레이터로 활동했으며, 주 프랑스 한국문화원에서 도슨트로 근무한 경험이 있다. 현재는 문화예술신문 아트앤컬쳐에서 에디터로서 다양한 리뷰를 제공하고, 프리랜서 번역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또한 프랑스 한인유학생회의 창립멤버이며 프랑스 교민지 파리광장에 문화 및 예술 관련 기사를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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