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대학촌 한국관: 제주 4·3 아카이브 전시 > 한지수의 봉주르 파리

본문 바로가기

한지수의 봉주르 파리

dc6844e799399dddb82e7941c1448de0_1729312633_4636.jpg
 


국제대학촌 한국관: 제주 4·3 아카이브 전시

본문

La Cité universitaire Maison de la Corée: Jeju 4∙3 archives
2025년 4월 9일 – 4월 15일

 

파리 국제대학촌은 전 세계 유학생들이 함께 생활하며 문화를 교류하는 캠퍼스형 거주 공간으로, 그 안에 한국 학생과 연구자를 위한 한국관도 마련되어 있다. 45개의 각국 기숙사들은 매년 전 세계 문화를 소개하고 약 1,000여 개의 행사를 무료로 개최하고 있는 문화예술 공간이기도 하다.

3022249ee62e5fe4baf90c4e94eee755_1745237885_305.jpg
 3022249ee62e5fe4baf90c4e94eee755_1745237693_5068.jpg
ⓒ La Cité universitaire Maison de la CoréePhoto: Han Jisoo  


지난 4월 10일 파리에서 열린 유네스코 집행이사회 제221차 회의에서 '진실의 기록: 제주 4·3 아카이브'의 세계기록유산 등재가 최종 승인되었다. 제주 4·3 사건 관련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며, 한국 현대사의 비극적 진실이 국제적으로 공식 인정받은 것이다. 유네스코 등재를 기념한 제주 4·3 아카이브 특별 전시가 파리 국제대학촌 한국관에서 열렸다. 전시는 아픔의 기록을 통해 미래 세대에게 평화와 공존의 메시지를 전하는 데 의의를 두고 있다.

3022249ee62e5fe4baf90c4e94eee755_1745237702_3972.jpg
ⓒ La Cité universitaire Maison de la CoréePhoto: Han Jisoo  
 

제주 4·3 사건은 1948년 4월 3일 새벽, 해방 후 미군정과 이승만 정부 하에서 벌어진 무장 봉기와 이에 대한 국가의 잔혹한 진압으로, 약 2만 5천에서 3만 명에 달하는 민간인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 배경은 1947년 3·1절 경찰 발포 사건과 단독정부 수립에 대한 반대, 국가 권력의 과잉 진압 등 복합적인 정치·사회적 갈등에 뿌리를 두고 있다. 4월 3일은 작전상 선택된 날짜였지만, 이후 이 날은 국가폭력과 민간인 학살의 서막이자, 한국 현대사의 가장 아픈 기억 중 하나를 상징하는 상징적 날짜가 되었다. 

3022249ee62e5fe4baf90c4e94eee755_1745237716_6115.jpg
ⓒ La Cité universitaire Maison de la CoréePhoto: Han Jisoo  

1947년부터 1954년까지 이어졌으며, 약 3만 명의 무고한 민간인이 희생되었다. 현대 한국사에서 가장 깊은 상처 중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이 참혹한 기억은 오랫동안 침묵 속에 묻혀 있었다. 진실을 향한 제주 사람들의 끈질긴 의지가 역사의 수면 위로 이 비극을 끌어올렸고, 2000년 전후로 대한민국 정부는 ‘4·3 특별법’을 제정하며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고, 대통령의 공식 사과 등을 거치며 피해자들의 명예 회복과 유가족에 대한 배상을 위해 노력해왔다. 

3022249ee62e5fe4baf90c4e94eee755_1745237724_545.jpg
ⓒ La Cité universitaire Maison de la CoréePhoto: Han Jisoo  
 

이번에 등재된 기록물은 총 14,673건으로, 군사재판 수형자 명단과 엽서(27건), 희생자 및 유족의 증언(14,601건), 시민사회의 진상규명 활동 기록(42건), 정부의 공식 조사보고서(3건)를 포함한다. 기록은 1947년 3월 1일부터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에서 벌어진 국가 폭력과 민간인 학살, 그리고 이후의 진실규명과 화해 과정에 이르기까지를 아우른다. 그래서 이번 유네스코 등재는 단순한 기록 보존을 넘어, 인권과 평화, 화해의 보편적 가치를 되새기는 계기로 평가된다. 진실은 분열과 폭력의 기록일 뿐만 아니라, 그 상처를 직시하고도 끝내 화해와 공존의 길을 모색해온 사람들의 흔적이자 인류가 기억해야 할 귀중한 이정표이기도 하다.

3022249ee62e5fe4baf90c4e94eee755_1745237731_9837.jpg
ⓒ La Cité universitaire Maison de la CoréePhoto: Han Jisoo  


전시 오프닝 겸 등재 기념식은 엄숙하면서도 따뜻했다. 제주에서 온 관계자들과, 오래도록 그 기억을 지켜온 이들이 자리에 함께했다. 소설 순이삼촌을 쓴 현기영 선생님, 제주 출신 소프라노 강혜명 님의 깊은 울림 있는 공연은 형언하기 어려운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강혜명 님이 제주 감귤로 염색한 치마를 입고 무대에 섰을 때, 이 날의 감정을 더욱 밀도 높게 채워주었다.

3022249ee62e5fe4baf90c4e94eee755_1745237740.jpg
ⓒ La Cité universitaire Maison de la CoréePhoto: Han Jisoo  


현기영 선생님은 프랑스의 쇼아 메모리알(Mémorial de la Shoah, 나치 독일과 협력한 비시 정권 하에서 자행된 유대인 박해와 홀로코스트 희생자들을 기리는 기관)을 다녀오셨다고 했다. 그는 “아우슈비츠보다 더 무서운 것은 인류가 아우슈비츠를 망각하는 것이다”라는 문구를 인용하며, 그것이 곧 우리에게도 던지는 말이라 하셨다. 기억하지 않는다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과 같기에 개인적으로도 깊이 각인될 경험이었다. 무엇보다도, 제주 4·3이라는 고통의 역사가 이제 '인류의 기억'으로 공식 기록되었다는 사실은 큰 감격이었다. 오랜 침묵과 망각 속에 묻혀 있던 진실이 마침내 말을 얻은 것이다. 그 진실은 복수나 증오가 아닌 화해와 공존을 말하고 있었다.
3022249ee62e5fe4baf90c4e94eee755_1745237748_4362.jpg
ⓒ La Cité universitaire Maison de la CoréePhoto: Han Jisoo  


영화 지슬과 소설 순이 삼촌을 처음 접했을 때의 충격이 다시금 떠올랐다. 영화 지슬은 제주 4·3 사건을 모티프로 삼아, 동굴 속에 숨은 마을 사람들의 운명과 공포를 그려낸 작품이었다. ‘지슬’은 제주어로 '감자'를 뜻하며, 추위와 굶주림 속에서 그들이 나눠 먹은 감자 한 알은 삶의 끈이었던 것이다. 한편, 소설 순이 삼촌은 현기영 작가가 4·3의 고통을 문학의 언어로 증언한 대표작으로, 말도 글도 잃은 한 여성의 삶을 통해 말해지지 못한 수천의 침묵이 어떤 상처였는지를 전하고 있다. 예술적 허구이기엔 너무도 생생하고, 진실이기엔 너무도 참혹한 이야기들로 말문이 막혔던 것 같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그 충격을 어느새 마음 한편에 조심스레 접어두고 살아왔다. 어쩌면 영화와 문학이라는 장르의 거리감이 망각이라는 틈을 허락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3022249ee62e5fe4baf90c4e94eee755_1745237754_7299.jpg
ⓒ La Cité universitaire Maison de la CoréePhoto: Han Jisoo  


그러나 이번 제주 4·3 전시에서 영화도, 소설도 아닌, 바로 그 일을 몸소 겪은 이들의 손글씨와 눈빛, 침묵을 통해 전해지는 이야기 앞에서, 망각이 얼마나 무책임한 일이었는지를 깨달았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증언은 국가 폭력이라는 거대한 침묵 아래 오랫동안 묻혀 있었지만, 그 목소리들이 다시 모여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진실이었고, 마주하는 일은 고통스러웠지만 외면하지 않아야 할 기억이었다.





글ㆍ사진_한지수 (파리통신원ㆍ에디터)
소르본파리노르대학교에서 현대 문학 학사, 동 대학원에서 문화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하여 석사 학위를 마쳤다. 갤러리자인제노에서 파리 통신원 및 객원 큐레이터로 활동했으며, 주 프랑스 한국문화원에서 도슨트로 근무한 경험이 있다. 현재는 문화예술신문 아트앤컬쳐에서 에디터로서 다양한 리뷰를 제공하고, 프리랜서 번역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또한 프랑스 한인유학생회의 창립멤버이며 프랑스 교민지 파리광장에 문화 및 예술 관련 기사를 기고하고 있다.



전체 211 건 - 1 페이지




dc6844e799399dddb82e7941c1448de0_1729312774_3745.jpg
 



게시판 전체검색
다크모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