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시립현대미술관 : 리 밀러// 브라이언 가이신 : 마지막 미술관 > 한지수의 봉주르 파리

본문 바로가기
🇰🇷
🇺🇸
🇯🇵
🇨🇳

한지수의 봉주르 파리

dc6844e799399dddb82e7941c1448de0_1729312633_4636.jpg
 


파리시립현대미술관 : 리 밀러// 브라이언 가이신 : 마지막 미술관

본문

2026년 4월 10일 – 8월 2일// 2026년 4월 10일 – 7월 12일
Musée d’Art Moderne de Paris : Lee Miller // Brion Gysin Le dernier musée

파리시립현대미술관는 20세기 이후 현대미술을 중심으로 회화, 사진, 설치, 영상 등 다양한 매체를 아우른다. 1937년 국제박람회를 계기로 건립된 이 공간은 아방가르드부터 동시대 예술까지 폭넓은 흐름을 조망하고 실험성과 역사성을 동시에 품는 전시 프로그램으로 주목받아왔다. 현재 이곳에서는 사진과 역사적 증언의 경계를 확장한 리 밀러 회고전과, 언어·이미지·퍼포먼스를 가로지르는 다층적 실험을 펼친 브라이언 가이신(Brion Gysin)의 대규모 전시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서로 다른 궤적을 지닌 두 작가의 작업은 현대 예술이 현실을 인식하고 재구성하는 방식의 스펙트럼을 입체적으로 드러낸다.

838f91bfa6f6bf0140f1972f85753987_1776347290_779.jpg
838f91bfa6f6bf0140f1972f85753987_1776346963_4308.jpg  ⓒ Musée d’Art Moderne de ParisPhoto: Han Jisoo

먼저, 리 밀러 회고전은 지난 20년간 프랑스에서 열린 가장 큰 규모의 전시로 약 250점에 이르는 빈티지 및 현대 프린트와 다수의 미공개 작품을 통해 그녀의 작업을 새롭게 조명한다. 모델로 출발해 초현실주의 예술가, 인물·패션 사진가, 그리고 미군 종군기자로 활동한 그녀는 오랫동안 ‘뮤즈’로만 인식되어 왔지만 오늘날에는 20세기를 대표하는 가장 중요한 사진가 중 한 명으로 평가된다. 전시는 뉴욕에서의 초기 활동을 시작으로 이집트 체류와 유럽 전쟁 시기, 런던에서의 삶에 이르기까지 그의 전 생애를 따라가며 실험적인 형식과 강렬한 시각 언어, 그리고 시대에 대한 정치적 감각이 어떻게 한 작업 안에서 공존하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838f91bfa6f6bf0140f1972f85753987_1776346970_1516.jpg   ⓒ Musée d’Art Moderne de ParisPhoto: Han Jisoo

리 밀러는 모델 활동을 통해 사진에 입문했으며 어린 시절 아마추어 사진가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매체에 익숙해졌다.1926년 뉴욕에서 모델로 활동을 시작해 빠르게 스타로 부상했고 이 시기 패션 잡지들이 삽화에서 사진으로 전환되며 새로운 여성상을 만들어가는 흐름 속에 있었다. 그녀는 이름을 엘리자베스에서 ‘리(Lee)’로 바꾸며 현대적이고 중성적인 정체성을 구축한다. 이후 주요 사진가들과의 협업을 통해 사진에 대한 관심을 키운 그녀는 “찍히기보다 찍는 것을 택한다”는 태도로 카메라 뒤로 이동한 것이다. 

838f91bfa6f6bf0140f1972f85753987_1776346976_6528.jpg   ⓒ Musée d’Art Moderne de ParisPhoto: Han Jisoo

1929년 파리에 자리 잡은 밀러는 에드워드 스타이켄(Edward Steichen)의 추천으로 만 레이(Man Ray)를 찾아가며 예술가로서의 전환점을 맞는다. 예고 없이 그를 찾아가 제자로 받아달라 청한 데서 시작된 만남은 곧 연애와 긴밀한 협업으로 이어졌고, 두 사람은 서로의 모델이자 영감이 되었다. 1930년 독립한 뒤에도 1932년까지 협업을 이어가며 솔라리제이션(solarisation, 사진을 현상 중 다시 빛에 노출시켜 명암을 부분적으로 반전시키고 몽환적인 효과를 만드는 기법)과 같은 새로운 기법을 함께 실험하고 작업실과 자원을 공유했다. 이들의 작업은 신체에 깃든 에로틱한 긴장, 욕망과 권력의 관계를 파고들었고 그 긴밀함 속에서 누구의 작품인지조차 가르기 어려울 정도였다. 밀러는 훗날 이 협업을 두고 "우리는 거의 하나의 존재처럼 함께 작업했다"고 회고했다.

838f91bfa6f6bf0140f1972f85753987_1776346983_2538.jpg
  ⓒ Musée d’Art Moderne de ParisPhoto: Han Jisoo

1929~1932년은 리 밀러의 작업이 가장 밀도 높게 펼쳐진 시기로, 몽파르나스에 작업실을 두고 파리 아방가르드 한복판에서 초현실주의의 영향을 흡수하며 독자적인 세계를 일구어간다. 그녀는 거리의 이미지를 낯선 방식으로 다시 짜내며 사진의 새로운 가능성을 시험했고 기이한 아름다움과 강렬한 시각 언어를 빚어냈다. 다시 짜인 프레임, 반사, 낯선 병치, 어지러운 시점이 그 기이한 세계를 펼쳐 보인다. 조각상은 생명을 얻고 형태는 끊임없이 모습을 바꾼다. 반복되는 모티프인 손은 붙잡고, 뻗고, 파고들고, 폭발하며, 강렬한 명암 대비 속에서 리듬을 만들어낸다. 1932년 뉴욕으로 돌아간 그녀는 줄리앙 레비(Julien Levy) 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열며 본격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838f91bfa6f6bf0140f1972f85753987_1776346997_0688.jpg
  ⓒ Musée d’Art Moderne de ParisPhoto: Han Jisoo

그녀는 동시대 예술가·지식인들과의 긴밀한 관계 속에서, 인물의 성격은 물론 자신과 그 사람의 관계까지 드러내는 초상사진을 펼쳐 보였다. 모델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피사체와 신뢰를 쌓았고 연극·회화·영화에서 얻은 감각을 작업에 끌어들였다. 1930년대 파리와 뉴욕에서 시작된 초상 작업은 다양한 매체와 전시로 뻗어 나갔고 롤랑 펜로즈(Roland Penrose)를 만나며 다시 연결된 초현실주의 네트워크 속에서 예술가 친구들의 초상을 남긴다. 이후 제2차 세계대전 시기에는 런던과 해방된 유럽에서 격변의 시대를 살아가는 예술가들을 기록하며 그 여정을 이어간다.

838f91bfa6f6bf0140f1972f85753987_1776347004_1343.jpg
  ⓒ Musée d’Art Moderne de ParisPhoto: Han Jisoo

1939년 런던으로 돌아온 리 밀러는《보그》에서 활동하며 핵심 사진가로 자리 잡는다. 제한된 자원 속에서도 초현실주의적 기법과 상상력을 활용해 독창적인 패션 이미지를 만들어냈고, 이는 전시 상황 속에서도 우아함과 유머를 유지하는 시각 언어로 기능했다. 이러한 작업은 선전적 역할을 수행했지만 그녀는 전선에 나가지 못하는 자신의 위치에 대해 내면적인 갈등과 좌절을 느끼고 있었다. 

838f91bfa6f6bf0140f1972f85753987_1776347011_2067.jpg
  ⓒ Musée d’Art Moderne de ParisPhoto: Han Jisoo

1940~1941년 런던 폭격기 동안 폐허가 된 도시의 현실을 기록하며 전쟁의 한가운데를 시적으로 포착했다. 검열로 인해 직접적인 참상을 드러낼 수 없는 상황 속에서 그녀는 블랙유머와 아이러니를 활용해 폭격의 부조리와 긴장을 드러냈다. 이 시기의 작업은 『Grim Glory: Pictures of Britain Under Fire』에 수록되어 국제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고 뉴욕 현대미술관 전시를 통해 블리츠의 현실을 세계에 전달했다. 또한 전쟁에 참여한 여성들의 삶을 기록하며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그들의 역할과 힘을 강조한 초상사진을 남겼다.

838f91bfa6f6bf0140f1972f85753987_1776347017_4452.jpg
  ⓒ Musée d’Art Moderne de ParisPhoto: Han Jisoo

리 밀러는 1942년 미군 종군기자 자격을 얻지만 초기에는 전투 지역 접근이 제한되었다가 1944년 연합군 상륙 이후 본격적으로 전선 취재를 시작한다. 1946년까지 유럽 전역을 취재하며 전쟁의 현실을 기록했고 《보그》에 사진과 함께 1인칭 기사 형태의 보고를 지속적으로 기고했다.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할 만큼 적극적으로 움직였으며 동료 사진기자 데이비드 E. 셔먼( David E. Scherman)으로부터 “거의 하나의 군인처럼 행동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녀는 목격자의 윤리적 책임과 전쟁의 무게를 더욱 강하게 인식하게 된다.

838f91bfa6f6bf0140f1972f85753987_1776347025_0397.jpg
  ⓒ Musée d’Art Moderne de ParisPhoto: Han Jisoo

밀러는 1945년 4월 해방 직후 부헨발트와 다하우 강제수용소를 직접 방문해 나치 학살의 현장을 기록한다. 그는 유대인, 정치범, 소수자들이 겪은 조직적 폭력과 대량 학살의 현실을 카메라에 담았으며 전쟁 중 경험한 어떤 참상보다도 깊은 충격을 받는다. 피해자뿐 아니라 미군과 독일인까지 함께 기록하며 시대 전체를 증언의 대상으로 확장한다. 이러한 작업은 단순한 기록을 넘어 진실을 증언하려는 윤리적 행위였고 그녀는 편집장에게 "이것이 사실임을 믿어달라"는 전보를 보내며 절박한 호소를 남긴다.

838f91bfa6f6bf0140f1972f85753987_1776347031_7689.jpg
  ⓒ Musée d’Art Moderne de ParisPhoto: Han Jisoo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유럽을 따라 이동하며 해방의 기대가 곧 환멸로 변하는 과정을 기록한다. 그녀는 강제 이주, 기아, 죽음 등 전쟁이 남긴 현실을 사진과 글로 담아내며 파괴된 도시와 인간의 내면적 붕괴를 응시했다. 전쟁의 참상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에 대한 윤리적 고민 속에서 그는 물리적 피해와 정신적 붕괴 사이의 균형을 모색했다. 전후 그의 작업은 정의와 공모, 복수의 문제를 제기하며 이미지가 갖는 서사적 권력까지 드러낸다. 특히 여성과 아이들에게 지속적으로 시선을 두며 고통 속에서도 미래의 가능성과 경고를 함께 포착한다.

838f91bfa6f6bf0140f1972f85753987_1776347037_8543.jpg
  ⓒ Musée d’Art Moderne de ParisPhoto: Han Jisoo

1946년 런던으로 돌아온 뒤 세계적 명성을 얻었지만 전쟁의 후유증으로 신체적·정신적 상처를 안고 있었다. 1953년까지 《보그》에서 활동했으나 패션 사진에는 더 이상 흥미를 느끼지 못했고, 대신 예술가 친구들을 기록한 초상사진에 집중했다. 1947년 롤랑 펜로즈와 결혼해 가족을 이루고 런던과 파렐리스 하우스를 중심으로 현대미술 네트워크와 긴밀히 연결된 삶을 이어간다. 이후 사진 활동은 점차 줄어들지만 창작적 삶은 완전히 멈추지 않았고 사후에는 약 6만 점에 달하는 아카이브가 발견되며 그의 방대한 작업 세계가 재평가된다.

838f91bfa6f6bf0140f1972f85753987_1776347043_5733.jpg
  ⓒ Musée d’Art Moderne de ParisPhoto: Han Jisoo

전시 초반에는 인물의 세련된 분위기와 우아한 몸선이 눈에 들어오며 가볍게 관람을 했는데, 전시가 진행될수록 점차 전쟁과 현실을 정면으로 응시한 기록이 놓여 있었고 그 무게는 예상보다 훨씬 깊었다. 특히 강제수용소에서 촬영된 사진들은 당시 촬영 자체가 제한될 만큼 충격적이고 인간이 마주할 수 있는 극한의 현실을 그대로 증언하고 있었다. 한 사람의 삶이 이렇게까지 여러 층위로 확장될 수 있다는 사실이 경이롭기까지 했다. 모델에서 출발해 예술가, 사진가, 종군기자로 이어지는 궤적은 단순한 경력이 아니라 시대와 정면으로 부딪힌 하나의 서사처럼 느껴졌다. 세상이 무너지고 갈라지는 모습을 끝까지 바라본 태도를 보여주는 기록이었다.

838f91bfa6f6bf0140f1972f85753987_1776347052_5667.jpg
  ⓒ Musée d’Art Moderne de ParisPhoto: Han Jisoo
한편, 파리 미술관 최초로 브라이언 가이신(Brion Gysin, 1916-1986)의 전 생애를 아우르는 회고전이 펼쳐지며 이미지와 언어, 현실과 환영의 경계를 흔드는 그의 실험적 세계가 또 하나의 축을 이룬다. 브라이언 가이신은 회화, 시, 퍼포먼스, 사진, 음악을 넘나드는 여러 갈래의 예술가로 종종 비트 제너레이션과 함께 거론된다. '컷업(Cut-up)'과 '드림머신(Dreamachine)'을 창안한 그는 회화와 글쓰기의 경계 위에서 작업하며 끊임없이 새로 빚어내는 조형 언어를 실험한다.

838f91bfa6f6bf0140f1972f85753987_1776347059_0815.jpg   ⓒ Musée d’Art Moderne de ParisPhoto: Han Jisoo

그는 경계 밖의 세계를 향한 관심과 끊임없는 호기심을 바탕으로 여러 나라를 오가며 언더그라운드 문화와 교류했다. 타자성을 향한 집요한 관심과 주변부를 더듬는 시선 속에서 그는 다양한 창작·지적 공동체와의 뜻밖의 공명을 빚어냈고 예상치 못한 신비로운 아우라를 남겼다. 이러한 만남을 자양분 삼아 그의 창작 에너지는 사운드 시와 시각 시, 실험영화, 퍼포먼스, 소설, 음악, 회화와 사진에 이르기까지 여러 층위로 뻗어나간다. 전시는 이 남다른 자취를 따라가며 20세기 아방가르드의 흐름을 가로지르고 그와 교류했거나 영향을 받은 작가들의 작품을 나란히 놓는다.

838f91bfa6f6bf0140f1972f85753987_1776347065_4518.jpg
ⓒ Musée d’Art Moderne de ParisPhoto: Han Jisoo

전시는 어느 갈래에도 묶이지 않는 예술가로서 그의 실험적 여정을 따라가며 구성된다. 초현실주의와 꿈, 약물 경험에서 출발해 세계 여행이 작업에 남긴 흔적을 비추고 서예, 드로잉, 퍼포먼스, 사진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드는 창작 과정을 펼쳐 보인다. 특히 텍스트를 무작위로 다시 짜는 컷업 기법과, 눈을 감은 채 빛이 빚어내는 환영을 감각하는 '보는 기계' 드림머신이 중심에 놓인다. 전시는 여러 예술가들과의 끊임없는 교류 속에서 그의 작업이 어떻게 뻗어 나갔는지를 함께 짚으며 여러 매체를 넘나드는 열린 예술 세계를 펼쳐 보인다.

838f91bfa6f6bf0140f1972f85753987_1776347074_4498.jpg   ⓒ Musée d’Art Moderne de ParisPhoto: Han Jisoo

1930년대, 소르본에서 프랑스 문명 과정을 수학하던 시기, 가이신은 초현실주의 운동과 연결된다. 작가이자 출판인 르네 베르트레(René Bertelé)와 가까이 지내며 그의 저서 『바람의 심판(Le Jugement du vent)』(1936)에 삽화를 제공했고 이 작업은 앙드레 브르통(André Breton)의 주목을 받는다. 브르통은 1935년 ‘Aux Quatre Chemins’ 갤러리에서 열린 초현실주의 드로잉 전시에 그를 초대하지만 개막 전날 알 수 없는 이유로 그의 작품을 철수시킨다. 이 사건은 가이신에게 깊은 상처로 남는다.
838f91bfa6f6bf0140f1972f85753987_1776347081_56.jpg   ⓒ Musée d’Art Moderne de ParisPhoto: Han Jisoo

초기 시기의 회화, 데칼코마니, 판화같은 시각 작업은 꿈과 초자연적 세계에 대한 관심, 그리고 초현실주의자들과 그들의 상징적 인물인 빅토르 위고 (Victor Hugo)의 영향을 보여준다. 또한 이 시기부터 이미 환각 물질이 유도하는 정신적 경험과 빛의 자극이 만들어내는 시각적 환영에 대한 관심이 드러난다. 이러한 초기의 관심이 훗날 드림머신의 발명으로 이어졌음을 암시한다.

838f91bfa6f6bf0140f1972f85753987_1776347088_7315.jpg
  ⓒ Musée d’Art Moderne de ParisPhoto: Han Jisoo
브라이언 가이신은 영국에서 태어난 뒤 캐나다를 거쳐 유럽과 북미, 북아프리카를 오가며 끊임없이 이동하는 삶을 살았다. 파리에 정착한 뒤에도 그리스, 알제리, 뉴욕 등 여러 지역을 거치며 활동했고, 전후에는 유럽으로 돌아와 연구와 창작을 이어가다 모로코 탕헤르에 머물며 레스토랑을 운영하기도 했다. 이후에도 파리의 비트 호텔을 중심으로 세계 여러 도시를 오가며 작업을 지속했다. 특히 파리와 더불어 모로코는 그의 예술 세계에 깊은 영향을 준 장소로 사막의 풍경과 아랍 서예, 자주카 음악, 다양한 영적 전통이 그의 감각을 확장시켰다. 이러한 경험이 그를 사유의 여정으로 이끌었고 1969년에는 알라무트 요새를 향한 순례로 이어졌다.

838f91bfa6f6bf0140f1972f85753987_1776347099_2737.jpg
  ⓒ Musée d’Art Moderne de ParisPhoto: Han Jisoo
1959년 파리 비트 호텔에서 우연히 마주한 컷업 기법은 그의 작업에 결정적인 전환점이 된다. 텍스트를 잘라 무작위로 다시 엮는 다다이즘적 방법으로, 그의 시각·청각·문학 작업 전반에 우연과 공명의 결을 들여놓는다. 이 기법은 일본어와 아랍어의 읽기 방식에서 우러난 다층적 의미 만들기와 맞물리며, 그의 서예 작업을 떠받치는 격자 구조로 이어진다. 그는 이를 위해 개조된 페인트 롤러를 만들어 반복되는 정연한 패턴을 빚어낸다. 특히 윌리엄 S. 버로스(William S. Burroughs)와의 협업이 두드러진다. 두 사람은 각자의 개성이 만나 제3의 정신, 곧 '서드 마인드(Third Mind)'를 빚어내는 작업을 펼친다.

838f91bfa6f6bf0140f1972f85753987_1776347107_6682.jpg
  ⓒ Musée d’Art Moderne de ParisPhoto: Han Jisoo
1960년대 초부터 브라이언 가이신은 파리와 런던의 아방가르드 시 전위 공연에서 퍼포먼스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는 낭독 시에 녹음된 사운드를 결합하고 변형된 슬라이드 이미지를 몸에 투사하는 실험적인 방식으로 무대 위에서 사라지거나 나타나는 시각 효과를 연출했다. 이후 플럭서스(Fluxus)와 구체시 (Concrete Poetry)운동과 연결되며 다양한 예술가들과 함께 공연 활동을 이어갔다. 플럭서스는 예술과 일상의 경계를 허물고 과정과 우연성을 중시한 1960년대 전위 예술 운동이며, 구체시는 언어의 의미보다 글자의 형태와 배치를 시각적으로 구성하는 시 운동이다.

838f91bfa6f6bf0140f1972f85753987_1776347114_5656.jpg
  ⓒ Musée d’Art Moderne de ParisPhoto: Han Jisoo

가이신은 평생 동안 마법과 초월적 세계에 대한 관심을 지니며 신비로운 기질과 강한 존재감으로 주변에 인식되었다. 이 측면은 루이 자메스(Louis Jammes)와 프랑수아즈 자니코(Françoise Janicot) 등의 작업을 통해 유머와 함께 재해석되며 드러난다. 그는 예측할 수 없는 등장과 사라짐으로 사람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고, 이는 그의 퍼포먼스에서도 중요한 요소였다. 존 조르노(John Giorno)와 키스 해링(Keith Haring)은 그를 스승이자 삶을 변화시킨 인물로 평가하며 그의 독창적인 존재 방식이 여러 예술가들에게 깊은 영향을 남겼음을 증언한다.

838f91bfa6f6bf0140f1972f85753987_1776347121_2017.jpg
  ⓒ Musée d’Art Moderne de ParisPhoto: Han Jisoo

1973년 파리 생마르탱 거리의 아파트로 옮겨와, 훗날 퐁피두 센터가 들어설 공사 현장을 내려다보며 그 과정을 꾸준히 사진으로 담아냈다. 그는 건축 현장에서 자신이 오랫동안 파고들어온 격자 형태를 발견하며 그것을 자기 작업의 중심 모티프로 끌어올린다. 이 시기 쌓아 올린 사진, 슬라이드, 드로잉, 인화 작업은 여러 연작으로 펼쳐졌고, 특히 《마지막 미술관(Le Dernier Musée)》으로 대표된다. 말년의 파리에서 그는 주변 건축물과 가까운 인물들을 거듭 촬영하며 한정된 대상 속에서 오히려 더욱 응축된 시선으로 세계를 다시 짜냈다.

838f91bfa6f6bf0140f1972f85753987_1776347129_4001.jpg
  ⓒ Musée d’Art Moderne de ParisPhoto: Han Jisoo

가이신의 작품은 하나의 장르로 쉽게 묶이지 않는 작업들이 연속적으로 펼쳐지며, 보는 이로 하여금 끊임없이 시각과 감각을 전환하게 만들었다. 회화와 사진, 텍스트, 퍼포먼스, 사운드가 각각의 영역에 머무르지 않고 서로 침투하며 확장되는 방식은 그 자체로 하나의 실험 과정처럼 느껴진다. 다양한 매체를 넘나드는 시도들은 작업의 완성보다 생성의 흐름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다는 인상을 남긴다. 익숙한 방식으로 정리되지 않는 구성 덕분에, 전시는 오히려 그 불완전성과 우연성 속에서 긴장감과 재미를 만들어낸다. 



글ㆍ사진_한지수 (파리통신원ㆍ에디터)
소르본파리노르대학교에서 현대문학을 공부하고, 동 대학원에서 문화커뮤니케이션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파리 예술 현장의 숨결을 기록하며 언어와 문화 사이의 미묘한 결을 오래 들여다보았다. 현재는 다양한 문화예술 매체에 글을 기고하며, 파리의 이야기를 수집해가고 있다.



전체 255 건 - 1 페이지




dc6844e799399dddb82e7941c1448de0_1729312774_3745.jpg
 



게시판 전체검색
다크모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