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30일 – 5월 24일
Jeu de Paume: MARTIN PARR-Global Warning // JO RACTLIFFE-En ces lieux / Out of Place
주 드 폼은 현대 사진과 영상 예술을 전문으로 하는 미술관이다. 원래 1861년 테니스 경기장으로 지어졌으나, 이후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하면서 이름 그대로 ‘테니스 코트’를 의미하는 Jeu de Paume를 유지했다. 현재는 현대 사진, 비디오 아트, 멀티미디어 작품을 중심으로 전시를 기획하며, 사진과 영상 예술을 독립적 예술 장르로 조명하는 데 집중한다. 파리 본관은 튈르리 정원 오랑주리 미술관 맞은편에 위치해 접근성이 뛰어나며, 지역 전시 활동도 활발히 전개한다. 대표적으로 투르(Tours) 지역 전시 공간은 샤토 드 투르(Château de Tours)에 자리해, 프랑스 내 사진과 시각예술 컬렉션 및 역사적 자료를 바탕으로 다채로운 전시를 선보이고 있다.

ⓒ Jeu de Paume, Photo: Han Jisoo
이번 전시는 마틴 파(Martin Parr, 1952-2025)의 1970년대 말 초기 흑백 작업부터 최근작에 이르기까지 약 180점의 작품을 통해, 우리 시대의 전방위적 혼란이라는 맥락 속에서 그의 작업을 조망한다. 그는 평생에 걸쳐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카메라로 일상을 기록해왔다. 그의 시선은 거창한 사건이 아니라 휴가, 소비, 쇼핑처럼 평범해 보이는 순간들에 머문다. 그러나 그 이미지들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고, 또 어떻게 세계를 점유하고 변형하는지를 날카롭게 드러낸다.

ⓒ Jeu de Paume, Photo: Han Jisoo
영국과 아일랜드에서 시작된 그의 연작들은 1990년대 이후 다섯 대륙으로 확장되었고, 그 과정에서 몇 가지 반복되는 주제가 부상했다. 대량 관광의 추태와 폐해, 과도한 이동과 운송, 화석연료 소비, 전 지구적 과잉 소비, 그리고 생명과 자연을 대하는 우리의 양가적 태도 등 인류가 초래한 기후 변화의 주요 원인들을 사진 속 상황을 통해 간접적으로 보여주었다. 겉으로는 유쾌하게 보이는 그의 작업은 시간이 흐르고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면서, 처음 접했을 때보다 더 심각한 의미를 드러낸다. 되돌아보면, 그의 날카로운 아이러니는 영국 특유의 풍자 전통과 맞닿아 있다. 예리한 유머와 씁쓸한 조롱, 그리고 직접적이지 않지만 깊이 있는 비판적 시선이 특징이다.

ⓒ Jeu de Paume, Photo: Han Jisoo
전시는 다섯 개의 섹션으로 구성된다. 첫 번째 섹션 ‘여가의 땅, 쓰레기의 땅’에서는 해변과 수영장 등 휴양지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이 소개된다. 사진 속 풍경에는 인파와 함께 넘쳐나는 쓰레기가 공존한다. 작가는 인물을 멀리서, 또 가까이에서 포착하며 여가 공간의 이면을 드러낸다.
ⓒ Jeu de Paume, Photo: Han Jisoo
두 번째 섹션 ‘모두 사라져야 한다!’에서는 슈퍼마켓과 쇼핑몰이 주요 무대가 된다. 마틴 파는 강렬한 색채와 플래시를 활용해 상품과 음식들을 근접 촬영한다. 카메라 플래시는 순간적으로 터지는 인공 조명으로 사물을 과장되게 부각시킨다. 그는 특히 대형 마트의 상품 이미지를 지속적으로 수집하며 소비사회의 단면을 기록해왔다.

ⓒ Jeu de Paume, Photo: Han Jisoo
세 번째 섹션 ‘작은 행성’은 그의 여행 사진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여기서 작가는 관광지 그 자체보다, 그 장소를 소비하는 관광객들의 행동에 주목한다. 대량 관광, 즉 많은 사람이 같은 장소로 몰려가는 현상이 주요 주제다. 기념사진을 찍는 관광객들의 모습은 오늘날 여행 문화의 전형을 보여준다.
ⓒ Jeu de Paume, Photo: Han Jisoo
네 번째 섹션 ‘동물의 왕국’에서는 인간에게 둘러싸이고 소비되는 동물의 모습이 등장한다. 자연 속의 동물이 아니라 인간 사회 안에서 살아 있거나 변형된 동물들이다. 사진 속 동물은 살아 있는 존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인형이나 장식품, 패션 소품으로 전환된 대상이기도 하다. 이는 인간 중심적 시선을 은근히 비판한다.
ⓒ Jeu de Paume, Photo: Han Jisoo
마지막 섹션 ‘기술 중독’은 현대인의 기계 의존을 다룬다. 기술 중독이란 새로운 기기 없이는 일상을 영위하기 어려운 상태를 뜻한다. 자동차, 유선전화와 휴대전화, 비디오게임 등 각 시대를 상징하는 사물들이 등장하며 이러한 물건들이 우리의 몸짓과 생활 방식을 어떻게 바꾸어왔는지를 보여준다.
ⓒ Jeu de Paume, Photo: Han Jisoo
이 다섯 개의 주제는 결국 기후 변화의 원인과 맞닿아 있다. 인간의 활동이 기후와 환경을 변화시키는 현상, 즉 기후 변화의 구조를 사진을 통해 환기한다. 마틴 파의 사진은 처음에는 미소를 유도하지만, 곧 우리 삶의 방식에 대한 질문을 남긴다. 유쾌한 색채 뒤에 감춰진 날카로운 통찰이 오늘의 세계를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
ⓒ Jeu de Paume, Photo: Han Jisoo
한편, 주 드 폼에서는 조 랙틀리프(Jo Ractliffe, 1961-) 개인전도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Cape Town)에서 태어난 랙틀리프는 동시대 사진 예술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작가다. 그녀의 작품은 식민주의와 아파르트헤이트의 유산, 앙골라 등 분쟁 지역에서 남겨진 상흔 등 폭력의 역사와 그 흔적이 풍경 속에 남는 방식을 탐구한다. 또한 다큐멘터리 사진이라는 맥락에서, 사회·정치적 사건을 직접적으로 재현하지 않으면서도 존재와 부재의 관계를 포착하고 관람자가 풍경 속에 숨어 있는 서사와 기억을 스스로 발견하도록 이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 Jeu de Paume, Photo: Han Jisoo
이번 개인전은 그녀의 작업에서 핵심 개념으로 자리 잡은 ‘장소’를 전면에 내세운다. 작가에게 장소란 단순한 지리적 배경이 아니라, 기억을 품은 자리이자 과거의 흔적이 스며 있는 시간의 층위를 담고 있는 공간이다. 전시는 이러한 관점을 통해 관람객에게 풍경 속에 깃든 역사와 인간 경험의 깊이를 새롭게 조명한다.
ⓒ Jeu de Paume, Photo: Han Jisoo
조 랙틀리프는 1980년대 초, 첫 카메라 니코르마트(Nikkormat)를 구입하며 본격적인 사진 작업을 시작했다. 회화와 판화를 전공하며 다진 조형 감각은, 사진을 통해 자신의 세계 인식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매체적 언어로 확장된다. 1982년 아버지에게 선물받은 사진집 World Photography는 그의 작업에 결정적 전환점이 됐다. 로버트 프랭크(Robert Frank), 요제프 쿠델카(Joseph Koudelka), 빌 브란트(Bill Brandt), 마누엘 알바레스 브라보
(Manuel Álvarez Bravo) 등 거장의 작품은 초기 실험과 사유에 큰 영향을 미쳤다. 랙틀리프는 거리와 일상 속에서 ‘순간’을 포착하며, 장르와 관습의 경계를 넘어 정치적이면서도 시적이고 표현적인 방식으로 작업하는 가능성을 확장했다. 동시에 1980년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정치적 불안정 속에서, 사진가로서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 정부의 불의를 폭로하기 위한 연대의 필요성을 절실히 인식했다.
ⓒ Jeu de Paume, Photo: Han Jisoo
1990년 사진 장비를 도난당한 후, 랙틀리프는 소형 플라스틱 카메라 다이애나(Diana)를 사용하며 남아프리카 해안에서 내륙까지 여행하며 일상적 장면을 포착했다. 다이애나의 제한된 기능은 기존 사진 관념을 깨고 ‘본다’는 행위와 의미 형성에 대한 성찰을 가능하게 했다. 이 시기는 넬슨 만델라 석방과 아파르트헤이트 체제에서 민주주의로의 전환이 이루어지던 시기로, 그녀는 사진을 통해 당시 사회적 긴장과 일상 풍경 속 분위기를 기록했다.
ⓒ Jeu de Paume, Photo: Han Jisoo
2년에 걸쳐 랙틀리프는 앙골라 남부를 여러 차례 답사하며 전직 군인들과 함께 30년 전 전투 현장을 기록했다. 그녀는 전쟁과 지뢰로 황폐해진 시골 풍경과 민간인의 이동 제한, 1978년 낙하산 부대 공습으로 사망한 600명 이상의 희생자 흔적을 포착했다. 특히 카싱가(Cassinga)의 공동묘지를 촬영하며 과거 폭력이 남긴 흔적을 현재 풍경 속에서 포착했다. 설사 직접적인 증언이 남아 있지 않더라도, 그 부재와 침묵이 사진을 통해 의미를 전달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 Jeu de Paume, Photo: Han Jisoo
「정원 (The Garden,2024-2026)」은 주 드 폼의 지원으로 제작된 연작으로, 랙틀리프가 세인트 헬레나 베이(Saint Helena Bay)에서 우연히 발견한 독특한 정원에서 출발한다. 해변 길 옆에 위치한 이 정원에는 장식물과 가구, 인형 등이 배치되어 있으며 대부분 근처 쓰레기장에서 가져온 것이다. 그녀는 이를 1980년대 남아공 타운십에서 주민들이 방치된 땅을 ‘공공 정원(people’s park)’으로 가꾸었던 커뮤니티 운동과 연결 지었다. 이후 랙틀리프는 해안 여러 도시를 돌며 개인 정원과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조명했으며, 이러한 정원은 북쪽 광산 개발과 남쪽 관광·주거 단지 확장 속에서 주민들의 삶을 지키고자 하는 저항과 거부의 표현으로 나타난다.
ⓒ Jeu de Paume, Photo: Han Jisoo
사실 마틴 파와 조 랙틀리프의 전시를 관람할 때, 사진 그 자체만으로는 큰 흥미를 느끼기 어려웠다. 그러나 전시 설명문과 작품에 담긴 맥락을 접한 뒤, 각 이미지가 단순한 시각적 기록을 넘어 사회적·역사적 서사와 연결되어 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일상의 풍경과 풍자를 담은 마틴 파의 작업과, 폭력과 기억의 흔적을 담아낸 랙틀리프의 이미지를 통해 보다 깊고 섬세한 시선을 경험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