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랑주리 미술관 : 아메데오 모딜리아니-화가와 그의 그림 상인 > 한지수의 봉주르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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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수의 봉주르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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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랑주리 미술관 : 아메데오 모딜리아니-화가와 그의 그림 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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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년 9 월 20 일부터 2024 년 1 월 15 일까지//2023년 10월 11일부터 2024년 2월 11일까지


 


Musée de l'Orangerie : Amedeo Modigliani. Un peintre et son marchand/ Hermann Nitsch. Hommage


Du 20 septembre 2023 au 15 janvier 2024// Du 11 octobre 2023 au 11 février 2024


 


현재 오랑주리 미술관에서는 모딜리아니 회고전이 진행 중이다. 모딜리아니는 이탈리아 출신의 조각가이자 화가로, 우리에겐 길다란 얼굴형을 가진 여성의 공허한 시선이 느껴지는 초상화들로 잘 알려져있다. 이탈리아 베네치아 구겐하임 미술관과 오랑주리 미술관에서 종종 모딜리아니 컬렉션을 보긴 했었지만  단독 회고전을 만난 것은 처음이다. 모딜리아니 특유의 텅 비고 쓸쓸해 보이는 표정을 좋아하는 나에게 이번 전시는  큰 기대가 되었다. 결론적으로 전시는 굉장히 훌륭하고 좋았는데, 전시장 입장 전까지가 문제였다. 평일 오전에 갔음에도 불구하고 어째서인지 엄청나게 긴 줄을 서 있는 와중에  안전상의 이유를 들어  내부의 모든 관람객들을  밖으로 내보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미술관 측의 어떠한 안내도 들을 수 없어 불안했다. 최근 파리 시내 치안이 좀 불안해서 테러 경고라도 났나 싶어 그냥 집으로 돌아갈까 고민도 했지만 위험을 감수해보기로 했다. 그런 만큼 이번 전시는 목숨을 건 관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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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딜리아니 전시를 보러가기 전, 오랑주리 미술관에 오면  으레 모네의 수련 연작들을 보러 간다. 일종의 모네에 대한 예의라고나 할까 ?  언제 봐도 수련들의 평화로움은  차분하고 편안한 세계로 안내해준다. 

그렇게 모네의 수련도 보고, 항상 현대 작가에게 헌정되는 수련의 방 입구 공간에서 진행중인 새로운 작가도 만나 볼 수 있었다. 


비엔나 행동주의 운동의 창시자 중 한 명인 헤르만 니취(Hermann Nitsch)는 1938년 비엔나에서 태어나 2022년 사망했다. 오스트리아의 거장이자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종교 극작법을 빌려 1950년대부터 매년 그의 ‘Orgien Mysterien Theatre’ (향연 미스터리 극장)에서 절정에 달하는 종합 예술을 발전시켰다고 한다. 파리에 머무는 동안 오랑주리 미술관 모네의 수련에 매료된 그는 2022년 오랑주리 큐레이터와의 인터뷰에서 ‘모네의 수련은 황홀한 색상과 형태’라며 경의를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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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모딜리아니로 돌아와서, 


이번 전시회는 19세기 초 프랑스 미술사에서 가장 중요한 갤러리리스트이자 미술품 수집가였던 폴 기욤 (Paul Guillaume)이 1914년 모딜리아니를 만나며 시작된 삶의 상징적 순간을 추억한다. 따라서 폴 기욤의 역할을 통해, 모딜리아니의 예술 세계가 ​​빛을 발하던 시기를 재조명하고있다. 참고로 폴 기욤의 대표적인 예술적 취향으로는 피카소, 마티스, 르누아르, 세잔, 모딜리아니 등등이 있다. 단 몇명의 작가만 언급해도 그의 안목이 어느 수준인지는 가늠할 수 있다. 훌륭한 안목을 지닌 것도 중요하지만 알려지지 않은 무명의 예술가들을 소신껏 후원할 수 있었던 용기 또한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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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딜리아니는 1906년 파리에 정착하여 보헤미안 생활을 했다. 당시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이 몰려있던 몽파르나스와 몽마르트르 사이에 살았고, 특히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아지트인 세탁선 (바토 라부아르 Bateau-Lavoir)에서 자주 만났다고 한다. 그렇게 모딜리아니는 시인 맥스 야곱을 통해 1914 년에 미술상 폴 기욤을 만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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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기욤은 모딜리아니를 경제적으로 지원하며 아틀리에를 빌려주었다.  폴 기욤에 대한 고마움 덕인지 모딜리아니가 그린 그의 초상화 왼쪽 하단에는 이탈리아어로 "새로운 조종사"를 뜻하는 Novo Pilota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모딜리아니는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을 옹호하는 폴 기욤의 선구적인 역할에 경의를 표하고 싶었던 것이다. 게다가 실제로 그들은 예술적, 문학적 친밀감을 공유했고 특히 아프리카 예술에 대한 공통 관심사가 크게 두드러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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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딜리아니는 기대어 있는 비너스의 모티프를 자주 사용하는데 그 버전의 비너스는 ​​나른하고 공허한 시선으로 자극적이고 거의 도발적인 관능미를 누그러뜨린다. 차갑고 불완전해 보이는 초상화이지만 그림에서 느껴지는 모험심과 예민함이 신비롭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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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오랑주리 박물관에 소장된 모딜리아니의 그림 5점 외에도 100점이 넘는 캔버스, 약 50점의 드로잉, 12점의 조각품이 폴 기욤을 거쳐 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전시에서는  모딜리아니 작품의 다양한 상징성을 살펴보고, 1910년대 파리의 예술적, 문학적 맥락에서 화가와 그의 미술상 사이의 관계, 1920년대 프랑스와 미국의 미술 시장에 모딜리아니의 작품을 보급하는데 있어 폴 기욤의 역할을 살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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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마지막 부분에는 어린이 관람객들을 위한 여러가지 액티비티가 준비되어 있었는데, 덕분에 나까지 잘 즐기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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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눈으로는 바깥 세상을 관찰하고, 다른 눈으로는 내면의 깊은 곳을 바라보세요.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글ㆍ사진_한지수 (파리통신원ㆍ에디터)
소르본파리노르대학교에서 현대 문학을 전공하고 동 대학원에서 텍스트 이미지 문화를 공부하고 있다.
갤러리자인제노의 파리통신원 및 객원 큐레이터, 주 프랑스 한국문화원 도슨트로 활동 중이며,
문화예술신문-아트앤컬쳐에 에디터로 리뷰를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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