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화랑은 2025년 8월 29일부터 10월 26일까지 이광호 개인전 〈시선의 흔적 Traces of Gaze〉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20여 년 만에 다시 선보이는 초상화 8점과 2023년부터 이어온 <Blow-up> 프로젝트 76점을 포함해 총 90여 점을 공개하며, 이광호의 30년 작업 세계를 관통하는 핵심적 화두인 '시선'의 문제를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이광호, Untitled 4652-79, 2025 Oil on Canvas 225 x 198 cm © 작가, 조현화랑
이광호, Untitled 9662, 2025 Oil on Canvas 162.2 x 130.3 cm © 작가, 조현화랑
이광호는 2006년 창동스튜디오 레지던시에서 발표한 'Inter-View' 프로젝트 이후 처음으로 초상화 작업에 복귀한다. 이번 초상화 시리즈는 핀홀 렌즈라는 원시적 광학 장치를 통해 포착된 흐릿하고 불완전한 이미지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낮은 해상도와 미세한 흐림, 깊은 심도를 특징으로 하는 핀홀 렌즈는 긴 노출 시간을 필요로 하며, 이 느린 시간의 흐름 속에서 대상의 미세한 변화가 한 장의 이미지에 담기게 된다. 완벽한 재현을 거부하며 더듬거리며 이어 나간 듯한 붓질들의 쌓임을 통해 체현된 촉지적 회화를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미학자 김남시가 '촉지적 풍경'이라 명명한 바와 같이, 시각과 촉각이 교차하는 감각의 교란을 통해 캔버스를 촉지성의 공간(haptic space)으로 변화시킨다. 특히 눈을 감은 상태의 인물을 그린 초상화들은 시선이 내면으로 향하는 순간을 화면에 확대해 보여준다.
2017년 뉴질랜드 여행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제작되기 시작한 <Blow-up> 프로젝트는 이광호의 대표적인 작업 방법론인 촉각적 회화 기법을 반영하는 시리즈다. 작가는 수천 장의 습지 사진 이미지 중 한 컷을 선택해 포토샵으로 채도와 명도를 조절하고 크롭하는 과정을 통해 추상적 성격을 부각시킨다. 영사기로 캔버스에 투사된 이미지를 바탕으로 아크릴 밑색으로 대략적인 위치를 표시한 후, 미디엄으로 캔버스를 적셔 촉촉한 상태에서 붓질을 진행한다. 판화용 니들로 밝은 부분의 라인을 긁어내고, 고무붓으로 흰색 이끼 부분을 표현하는 5시간의 집중적인 작업을 통해 이미지를 해체하면서도 밀도감을 높인다. 특히 뿌리는 기법은 유화물감을 화면에 뿌려 붓과 화면의 접촉을 차단함으로써 이미지가 쾌활하고 시원해지는 효과를 만들어낸다.
이번 전시에서는 76점의 Blow-up 연작이 두 벽면에 배치되어 하나의 거대한 이미지를 형성한다. 조현화랑_달맞이의 바다를 향해 열린 대형 유리창과 18미터 벽면이라는 물리적 조건은 작가로 하여금 공간을 하나의 거대한 시각 장치로 인식하게 했다. 관람자는 창을 등지고 설치된 눈을 감은 초상화와 마주하며, 전시장 두 벽면을 따라 펼쳐진 풍경화가 만들어내는 촉지적 공간 속으로 들어서게 된다. 회화가 시선을 통해 완성되는 예술임을 재치 있게 보여주는 제의적 장치를 연상시키는 동시에, 보이는 것 너머에 자리한 회화의 본질을 성찰하게 하는 이번 전시는 관람자를 이광호의 시선 안으로 초대한다.
1967년생 이광호는 전통적 회화 기법과 현대적 기술을 적극 활용하며 모더니즘 이후 양분된 서사와 비서사 회화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업을 해왔다. 1996년 첫 개인전 '시선'에서 시작된 그의 화두는 사랑하는 사람과 마주보지 못한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애정표현의 한계를 다뤘고, 2001-2003년 '가족' 시리즈, 2005년 'Inter-View' 시리즈를 거쳐 2006년부터 시작된 선인장 시리즈까지 일관되게 '내 안의 욕망'이라는 주제를 탐구해왔다. 나이와 함께 변화하는 신체 감각, 특히 눈의 감각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된 작가는 "애무하듯 그린다"고 표현했던 자신의 붓질이 시각과 촉각의 전이를 통해 감각을 증폭시키는 과정임을 깨닫는다. 이광호에게 이미지는 손으로 회화의 표면을 문지르는 촉각적 노동의 과정 속에서 서서히 드러나는 시선의 흔적(traces)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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