쁘띠 팔레: 사라 베른하르트 - 그리고 그 여자는 별을 창조했다
본문
Petit Palais : Sarah Bernhardt - Et la femme créa la star
쁘띠 팔레(Petit Palais)의 전시는 항상 흥미롭고 새로운 인물을 발견하게 해줘서 좋아하는데 이번 전시 또한 내가 좋아할 스타일 같아서 기대가 컸다. 박물관의 전시 공간 자체도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19세기 최고 인기 배우였던 사라 베른하르트를 조명한다니 나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기 충분했다. 게다가 드디어 종강을 맞이해 더욱 더 기쁘고 가벼운 마음으로 전시를 볼 수 있었다.
19세기와 20세기 초의 상징적인 인물인 사라 베른하르트(1844-1923)를 회고하는 아주 특별한 전시회이다. 그녀의 친구 조르주 클레린 (Georges Clairin)이 그린 그녀의 초상화와 그녀가 직접 만든 여러 조각품을 소개한다.
장 콕토(Jean Cocteau)가 그녀를 위해 만든 용어인 '신성한 괴물' (monstre sacré)의 삶과 경력을 400개 이상의 작품을 통해 추적하고 화가 및 작가로서의 활동과 함께 조각가적 모습도 제시한다. 참고로 장 콕토는 20세기 프랑스의 시인, 화가, 극작가, 영화 제작자이다. 그는 당대의 예술적 삶에 활기를 불어넣은 대부분의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시대의 흥행자, 트렌드세터, 수많은 예술가들의 예술가로 불리었다.
1844년 10월 22일 파리에서 태어나 1923년 3월 26일 파리에서 사망한 사라 베른하르트는 프랑스의 배우, 화가, 조각가였다. 그녀는 20세기 초의 가장 중요한 프랑스 여배우 중 한 명으로 빅토르 위고는 그녀를 "황금의 목소리" (la Voix d'or)라고 불렀고 대중에게는 여신 (la Divine) 또는 극장의 황후 (l'Impératrice du théâtre)라고도 불렸다. 최초의 국제적인 스타였던 그녀는 5개 대륙에서 성공적인 투어를 한 최초의 배우라 한다.
1923년 7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지 100년을 기념하며 여배우의 보다 친밀한 삶, 그녀의 취향 및 존재 방식에 초점을 맞춘 이 전시는 그녀를 매우 독립적인 여성으로 돋보이게 만들었다. 의상, 그림, 조각품, 사진 및 개인 물품을 결합한 이 풍부한 색상의 여행을 통해 이 화려한 배우의 삶을 궤적을 알 수 있다. 또한 멀티미디어 장치를 통해 그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설치해 놓았는데, 굉장히 센스 있고 친절한 기획이었다.
그녀는 귀스타브 도레 (Gustave Doré), 조르주 클레린 (Georges Clairin), 루이즈 아베마 (Louise Abbéma), 알폰스 무하 (Alphonse Mucha)와 같은 화가들 뿐만 아니라 빅토르 위고 (Victor Hugo), 빅토르 사르두 (Victorien Sardou) 그리고 사샤 기트리(Sacha Guitry)와 같은 문학 작가들과 레이날도 안 (Reynaldo Hahn)과 같은 음악가들의 친구이기도 했다. 이 정도면 파리 전체와 우정을 나누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것 같다. 전시의 전체 섹션은 그녀의 삶의 덜 알려진 부분도 비추는데 사진, 그림과 더불어 많은 조각품을 통해 그녀의 재능을 증명하고 있다.
라신, 셰익스피어, 빅토르 위고, 에드몽 로스탕과 같은 위대한 극작가의 해석자로서 그녀는 전 세계 무대에서 흥행을 이어갔다. 이번 전시는 그의 무대 의상, 사진, 그림, 포스터 등을 통해 '황금빛 목소리'와 당대 이례적으로 날씬한 실루엣은 문단 못지않게 대중을 매료시킨다. 클레오파트라, 메데이아, 잔 다르크, 토스카, 페드르 등등의 배역을 맡았는데, 문학과 역사 속에서 중요했던 여성들의 삶을 극을 통해 다 경험해보았다니 멋지다는 생각이 드는 반면 삶이 몇배로 더 바쁘고 감정 소모가 컸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맡았던 전시의 포스터, 사진, 의상 등등의 자료를 한 번에 모아 놓으니 극을 직접 보지는 않았지만 연극 공연장에 들어간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이 지점이 내가 쁘띠 팔레의 전시를 좋아하는 이유인데, 항상 다양한 시각자료를 활용해 방문객의 상상력을 자극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비극 장르의 주인공 역할을 맡았던 그녀를 보며 그동안 배웠던 수업 내용도 스스로 복습해보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1872년 빅토르 위고의 운문극 '뤼 블라스' (Ruy Blas)에서 그녀의 성공은 코메디 프랑세즈(Comédie Française)가 그녀를 다시 고용하겠다고 제안할 정도였다고 한다. 코메디 프랑세즈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17세기 극작가 ‘몰리에르의 집’(maison de Molière)이라고 불리는 프랑스 연극장인데, 현재까지도 루브르 박물관과 오페르 가르니엘 사이에 위치해있다. 나도 이곳에서 몰리에르, 셰익스피어, 안톤 체홉의 연극들을 본 적이 있는데, 공간 자체가 멋있어서 연극의 흡인력을 높여주는 매력이 있는 곳이다.
사라 베른하르트는 ‘반란의 아가씨’(Mademoiselle Révolte)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여배우로서의 재능이 탁월했다. 그녀의는 명성이 높아감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 할당된 역할에 만족하지 않았다. 특히 1880년 런던 극단 순회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돌아온 사라 베른하르트는 에밀 오제(Emile Augier)의 ‘아방츄리에르’ (L'Aventurière)라는 그녀가 연기하고 싶지 않은 평범한 연극에서 쓰라린 좌절을 겪었다. 그런 다음 그녀는 사직을 결정하고 사직서 사본을 언론에 보냈는데 그 사직서가 아주 명문이었다. “코메디 프랑세즈에서 저의 첫 번째 실패입니다. 이는 마지막이 될 것입니다"라고 (« C’est mon premier échec à la Comédie-Française. Ce sera le dernier ») 적었는데, 그녀 자신에 대한 자신감과 당당함이 엿보였다. 지금 21세기의 여성인 내가 보아도 참 실력과 자신감, 강단까지 갖춘 여성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멋있었다.
"내가 원하는 대로 해주지 않으면 그만 죽겠다!" (« Si vous ne faites pas ce que je veux, j’arrête de mourir ! » )라는 위협을 할 정도였는데, 단순하게 생각하면 불 같은 성격을 가진 배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나는 오히려 이것이야말로 자신의 커리어에 대한 화려한 고뇌였지 않나 생각한다. 이 전시는 불합리하고 괴팍한 그녀의 일면을 보여주면서도 친밀한 사진, 호화로운 무대 의상과 알폰스 무하의 서명이 있는 유명한 포스터를 함께 전시해 다각도로 그녀를 비춰보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이번 전시를 통해 뛰어나고 다양한 재능을 가진, 자신의 운명을 개척한 여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작품을 통해 전해지는 그녀의 삶 또한 우리로 하여금 파리 예술계의 이야기를 재발견하게 한다. 오늘날에도 사라 베른하르트는 프랑스의 위대한 여성 중 한 명으로 남아 있다고 하는데 그녀의 경력만큼이나 삶은 그녀를 매혹의 대상으로 만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전시장 출구 부분에는 사진 기계가 마련되어있어 이 전시를 추억할 수 있게끔 준비해두었길래 나도 잊지않고 사진을 찍고 나왔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