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르누스키 박물관: 김창열 - 물방울과 선 > 한지수의 봉주르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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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수의 봉주르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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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르누스키 박물관: 김창열 - 물방울과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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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musée Cernuschi : Kim Tschang-Yeul - la goutte et le trait

2023년 4월 14일부터 7월 30일까지



체르누스키 박물관에서는 한국 현대미술의 핵심 작가이자 국제미술계의 거장 김창열(1929-2021) 화백을 기리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김창열 화백은 트롱프뢰유(trompe-l'œil, 착시)의 물방울을 표현함으로써 전세계적 명성을 얻은 작가다. 이번 전시회는 특히 거장의 작품에서 반복되는 방식으로 이 모티프와 관련된 한자에 집중한다. 한편 김창열 화백을 주제로 한 영화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는 올해 들꽃영화제 다큐멘터리 부문 대상을 받기도 했다. 프랑스감독 공동제작이었는데 프랑스와 한국 문화의 가교 역할을 한 만큼 그에 대한 오마주를 담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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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르누스키 박물관은 아시아의 위대한 예술가들을 조명함으로써 프랑스 관객의 예술적 지평을 넓혀주는 곳이다. 1950년대부터 2021년 김창열이 사망할 때까지 작가의 경력과 작품의 변천사를  추적하는 작품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어마어마하게 멋진 작품들이 전시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는데 놀랍게도 이 전시는 모든 방문객에게 무료로 열려 있다. 사실 전시를 보는 내내  ‘이렇게 좋은 전시를 돈도 안내고 봐도 되나?’ 싶을 정도의 감사함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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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열은 한국전쟁 이후 미술계에 입문하며 아시아 문화와 세계화된 그만의 예술을 조화시켰다. 그는 같은 세대의 다른 예술가들과 함께 세계 미술의 주요 흐름과 조화를 이루며 한국 추상 표현 확립에 기여했다. 한국 미술계의 또 다른 거장인 김환기(1913-1974) 화백의 격려 속에 1965년부터 1969년까지 뉴욕에서 작업을 계속하며 그의 트롱프뢰유 물방울 표현을 개발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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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방울은 작가에게 "자아를 중립화하며 모든 고통을 해소" 하려는 시도로, 작품 속에서 색상, 그림자 및 빛의 재생이 모두 조화롭게 잘 드러난다. 그리고 숨겨진 메시지를 담고 있는 듯한  배경을 가진 매혹적인 캔버스를 볼 수 있다.   신문, 나무, 삼베, 심지어 유리 등 모든 재료를 탐구한 예술가의 다양한 창작물을 발견할 수 있는 훌륭한 전시였다. 정말 멋있다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감동의 연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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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이번 전시는 김창열의 작업에서 이 모티프와 그 중요성에 대해 집중 조명하고 있다. 이 배경의 글들은 세계화된 예술의 발전과 아시아 문화 모두에 닻을 내린 창작물을 이중으로 읽을 수 있게 한다는 것이 박물관 측의 설명이다.  

그래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르 몽드지 위에 살포시 올라간 물방울들이었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일간지에 화백의 물방울이 얹어지니 흥미로웠을 뿐 아니라 프랑스 특유의 시대상도 엿볼 수 있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왜냐하면 1980년대 신문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마치 오늘의 신문같이 프랑스 철도청 SNCF, 파리 교통공사 RATP 파업 소식을 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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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초현실적인 물방울들은 한자가 있는 캔버스 위에 표현되는데, 이를 통해 김창열 화백은 자신의 작품에 더 복잡하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배경을 만들 수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한자는 단순한 서예가 아니라 시각 예술로 승화되었고 그의 그림을 더 해석하고 싶게 했다. 정렬된 격자에 새겨지는 한자의 형식적 규칙성과 표준화된 획의 동일한 반복으로 트롱프뢰유 물방울을 보호한다는 전통적인 안정감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비록  나같은 한자 문맹자라도 문자의 뜻보다는 형태 그 자체에 집중해 관람하면 오히려 작품 이해가 쉬울 수 있다. 그래도  그림에서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깊이 이해해보고 싶었지만, 천자문을 다 떼지 못한 탓에 읽어내지 못한 부분은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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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김창열 화백의 전시만을 보러 왔던터라, 열심히 보고 기쁜 마음으로 길을 나서려고 했다. 그렇게 나가는 길에 « 도예와 회화의 대화 »라는 할리 프레스턴의 중국 및 일본 컬렉션이 진행중이길래, 이 또한 놓칠 순 없지 하며 가볍게 보고 왔다. 할리 프레스턴(1940-2015), 영국의 미술사학자이자 수집가는 체르누스키 박물관에 약 200점의 작품을 기증했다고 한다. 그는 주로 아시아 미술 컬렉션을 수집했고, 이번 전시에서는 중국 송나라(960-1279)의 중국 도자기, 민예 운동의 일본 도자기, 20세기 중국 회화를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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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 시대에는 농업을 기반으로 한 경제적 번영에 특히 외부와의 무역으로 수공예품 생산의 발전이 수반되었다. 당시 중국 북부에서 석탄을 사용하여 높은 온도로 도자기를 구울 수 있는 가마가 개발되어 도자기는 진정한 황금기를 맞이하였고 우수한 품질의 제품을 생산할 수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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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이자 작가이자 수집가인 야나기 소에츠(1889-1961)가 창시한 민예 운동은 20세기 초 일본 민속 공예에 새로운 차원을 제시했다. 민예라는 용어는 익명의 장인이 만든 소박하고 견고한 일상용품의 아름다움에 경의를 표하는 것이라고 한다. 자유와 영성에 대한 깊은 탐구로 특징지어지는 첫 번째 스타일은 이 방에 전시된 도자기에서 알 수 있듯이 항상 불규칙성과 불완전성에 초점을 맞추며 특유의 기교와 우아함이 가득한 독창적인 스타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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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산수화와 화조화의 장르도 찾아 볼 수 있었는데, 1960년대와 1990년대 사이에 24명의 예술가가 제작한 일관된 중국 병풍 컬렉션은 풍경과 꽃과 새의 두 가지 소재를 탐구하고 있다. 꽃과 새의 장르에서 작품을 갱신하고 새로운 수묵화 시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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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열 화백의 사후 회고전인 이번 전시는 모두에게  추천하고 싶을 정도로 근사했고, 오늘 포스팅은 이례적으로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 영화를 추천하며 마무리한다.

 


글ㆍ사진_한지수 (파리통신원ㆍ에디터)
소르본파리노르대학교에서 현대 문학을 전공하고 동 대학원에서 텍스트 이미지 문화를 공부하고 있다.
갤러리자인제노의 파리통신원 및 객원 큐레이터, 주 프랑스 한국문화원 도슨트로 활동 중이며,
문화예술신문-아트앤컬쳐에 에디터로 리뷰를 제공하고 있다.

※ 사진 원본은 https://blog.naver.com/mangchiro에서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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