퐁피두 - Baselitz, La rétrospective (바젤리츠 회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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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이후 두 달 만에 <봉주르 파리> 로 돌아온 녹두!
그동안 시험과 과제로 인해 스트레스가 엄청 많이 쌓여갈 때마다 빨리 시험만 마치면 전시장에 가서 머리를 식히고 싶다고 다짐하던 참이었다. 드디어 마지막 시험이 끝나자마자 퐁피두로 달려갔다. Baselitz! 이 작가는 사실 도록 제작자들이 작품이 거꾸로 된 줄 알고 바로 놓고 인쇄한 바람에 다시 인쇄를 했다는 에피소드로 유명한데 그 바젤리츠를 실제로 보게 된다니 많이 설레었다.
퐁피두센터 앞 거대한 크리스마스트리, 옆에 작은 부스들은 쇼콜라 쇼 ( 핫 초코)를 팔고 있었다. 근 한 달 넘게 학교와 집만을 오가며 시험과 과제들을 헤쳐나오다 보니 파리의 아름다운 거리들이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내고 있는 것도 모르고 달려왔던 것 같다. 역시나 시험은 삶을 고단하게 하는 것이라는 것을 새삼 느낀 하루다.
수요일 오후라 그런지 전시장에는 사람들도 없고 아주 고요하고 차분한 관람을 만끽할 수 있었다.
게오르그 바젤리츠(Georg BASELITZ, 1938- ) 는 독일 예술가로 이번 퐁피두 센터에서는 그의 회화, 조각, 드로잉 및 판화로 구성된 약 60년의 창작 과정이 전시되어 있었다. 1969년 거꾸로 시리즈로 유명한 작업들을 시대별로 구분해두었다. 작가의 상상력과 전쟁을 경험한 개인적인 소회를 작품에 담음으로써 전후 독일 아티스트만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구현하는 작가이다. 그는 회화의 전통적인 기법과 주제를 통해 확립된 미학적 형태와 자신의 기억을 재현할 가능성 등에 대해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이 전시를 기획한 퐁피두는 작가가 구상과 추상의 경계를 넘어 '새로운 이미지'를 창조하기 위해 주변의 예술적 이념에서 탈피하는 이 지점에서 전시가 시작된다고 소개한다. 그의 작품은 구상, 추상화, 개념적 접근 사이를 오가기 때문에 어떠한 사조로 분류할 수 없고, 그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를 그려내고 과거에 거부된 것을 찾는다고 말한다. 작가의 경험이나 상상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그의 작업은 기억의 재현 가능성, 회화의 전통적인 기법과 모티브의 변형, 예술의 역사를 통해 확립된 미학적 형태는 20세기와 21세기의 다양한 정치 및 미학적 체제 내에서 지시되고 전달되어 전후 독일에서 화가가 되는 것의 복잡성을 보여준다고 한다.
Baselitz는 회화에 사람(누드), 나무, 초상화, 풍경화와 같은 전통적인 것을 모티브로 삼아 그리면서 뒤집어 표현하는 데 이 점이 사실적이고 구상적인 스타일이지만 추상 표현주의의 스타일을 나란히 함께 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사실 바젤리츠의 작품들을 보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과연 이 그림을 처음부터 거꾸로 그렸을까, 아니면 다 그리고 나서 뒤집어 작가 사인을 한 것일까였다. 작품을 이해하거나 작가의 세계를 파악하는데 있어 그다지 중요한 사안이 아님을 알면서도 마치 어린아이들 처럼 일차원적인 호기심이나 궁금증부터 가지는 걸 보면 역시 난 아직 예술의 깊이를 이해하기에는 많이 부족하단 생각이 들었다. 수많은 전시와 작품을 보면서도 아직도 겉핥기 내지는 걸음마 수준인 나에 대해 반성해본다.
하지만 그림을 뒤집는다는 생각이 마치 콜럼버스의 계란세우기처럼 누군가 하고 나면 쉬워 보이지만 처음 시도할 때는 엄청난 파격과 센세이션을 일으켰을 것이라는 생각은 들었다. 비정형적인 인물상을 거꾸로 그려낸 작품들이 과거 독일 역사를 거치면서 육체적 정신적 죽음을 맞이한 이들을 떠올리게 하려는 작가의 의도를 읽어내려 애썼다. 분위기를 압도할 만한 대작들과 중간 중간 재미있는 작품들이 상당히 많았는데 한가한 수요일 오후의 미술관에서 차분한 감상이 가능해 또다시 파리 유학생만이 누리는 이 힐링 포인트에 감사해했다.
한편 어두운 배경에 피칠갑을 한듯한 사람들이 절망하며 손으로 입을 막고 있는 뒤집어진 그림들 앞에서 인증샷을 찍은 이유는 마치 논술 작문 시험에 이상한 말을 잔뜩 써놓고 와서 절망적이고 우울하지만 새로운 전시를 보는 것에 대한 들뜸이 가득한 상반된 감정과 형식적 이념적 한계를 뛰어 넘고자하는 의미에서 선택한 오늘의 그림이었다.
위의 작품들은 멀리서 봤을 때는 사람의 다리를 그려서 표현한 것인줄 알았는데 실제 여성용 스타킹을 사용했던 점이 재미있어서 pick!
마지막 퐁피두의 쁘띠한 뮤지엄샵에는 작가의 그림들로 재탄생한 예쁜 엽서와 도록들이 가득했는데 반갑게도 한국어 버전 Baselitz 자료 책이 있었다는 것이다. 역시 해외에서 한국어를 만난다는 것은 얼마나 반가운지! 나오는길에 있는 퐁피두 방문 인증샷 사진 부스에서 간만에 사진도 한 컷 찍었다. 매번 퐁피두 센터에 갈 때마다 이 곳에서 인증샷을 남기는 편인데 역시 혼자서도 잘노는 편인 스스로를 기특해했다^^
< 봉주르 파리>의 독자들도 퐁피두센터를 방문하게 되면 인생 한 컷을 남겨 보길 바라며 알려 드리는 쁘띠 관광팁이다. 참고로 사진을 인쇄하면 돈을 내지만 메일로 보내기만 하면 우리가 모두 좋아하는 공짜이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