퐁피두센터- 찰스 레이, 박물관의 이브 생 로랑, 네트워크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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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피두 센터 : Charles Ray/ Yves Saint Laurent aux musées/ Giorgio Griffa/ Réseaux-mondes /Gaston Paris-La photographie en spectacle....
오늘 퐁피두 센터를 찾은 본래의 이유는 현대 문학 교수님께서 현대 미술에 관한 전시 보고서를 제출하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물론 그게 아니어도 퐁피두센터는 내 영혼의 안식처와 같은 뮤제라 언제라도 들르게 되는 곳이긴 하다. 지난 바젤리츠 전시 이후로 오랜만에 방문했는데 공사가 거의 끝나서 퐁피두센터 공간 곳곳을 둘러봤다. 쉬는 전시실이 없이 개별 전시들이 방마다 진행중이었다. 굵직한 전시만 써보자면 찰스 레이, 이브생로랑 특별전, 네트워크 세계, 가스통 파리이다. 원래는 앞의 두가지만 보고 올 예정이었는데 내친 김에 다른 전시도 보게 되었다.
현대 미국 조각의 대표작가 찰스 레이(Charles Ray, 1953년 시카고 출생, 로스앤젤레스 거주, 작업)는 프랑스에서 처음으로 전시를 갖는다. Bourse de Commerce - Pinault Collection 과 퐁피두 센터간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작가에게 전시를 요청했다고 한다. 1970년대 이후 현재까지 찰스 레이는 국제 미술계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인물 중 한 명이다. 눈에 띄게 독특한 그의 조각 작품들은 발명과 질문의 힘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전체 작품은 약 100개의 조각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는 파리에서 처음으로 선보이는 조각 작품의 3분의 1 이상이다. Bourse de Commerce—Pinault Collection 까지 가서 둘러 보아야 찰스레이의 작품 세계를 제대로 감상할 것 같다. 두 곳의 전시가 독특하면서도 상호 보완적인 방식으로 큐레이팅되었다 한다. 이번에 처음 알게 된 찰스레이는 작품 수가 많이 전시되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굉장히 강렬한 느낌을 주었고 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꼼꼼한 공부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작가는 그의 작업을 통해 ‘조각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관객에게 던진다. “조각은 시공간에 맞게 위치한다. 그것은 현대적인 문화 단지 뿐만 아니라 과거와 미래의 복합 문화에도 통합되어 있다. 문화 내에서 존재하는 통합된 조각은 현재의 관심사와 관련하여 의미의 생성자로서 물질적으로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지속된다. 이 오브제는 새로운 의미로 가득 찬 미래를 추구한다. 이것은 작업의 예술적 핵심이지, 작업을 주관하는 영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라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정말 어려운 명제인듯하다. 작가의 조각에 대한 치열한 고민과 철학적 사유를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다.
아무래도 가장 대표적인 작품은 엄청나게 큰 마네킹이었다. 찰스 레이가 옷가게에서 야간 경비원으로 일하면서 마네킹이 조각 작업의 수단이자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영감에서 이 작품을 만들었다고 한다. 높이가 거의 2.50미터에 달하는 <Fall '91> 은 비율이 모두 30% 증가한 마네킹인데 관람객에게 매우 독특한 감각을 선사했다. 주변의 공간이 축소되는 느낌을 주기도 하고 눈은 관객들과 마주칠 수 없게 의도적으로 만들었다는 느낌이다. 또 마네킹의 무표정한 얼굴은 마치 영혼이 없는 기계적 인간같이 보여 묘한 슬픔이 전달되었다.
상설전에 사이사이 전시되어있는 이브 생 로랑 전시를 보러갔는데 기획전에 비해 사람이 훨씬 많았다. 상설전은 퐁피두센터를 들를 때마다 종종 들어가보곤 한다. 미술관의 끊임없는 노력 덕에 상설 전시실이라 해도 전시작품들이 자주 바뀌어 새로운 작품들을 자주 만날 수 있어 행복하다.
현재 파리 시내 곳곳에서 열리는 이브생로랑 전시 중( 내가 가 본 3군데의 뮤지엄 중) 에 가장 만족스럽고 이색적인 이브 생 로랑 특별전시였다. 오르세와 파리현대미술관은 옷들만 덩그러니 놓여 있는 느낌이었다면 퐁피두는 이 옷들이 어떤 작품의 영향을 받았는지 고스란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친절한 큐레이팅이 놀랍다.
특히 마티스의 소녀가 입은 옷을 재현해 둔 듯한 원피스는 정말 예쁘고 마티스 본인도 좋아할 것 같다. 나도 한번 입어 보고 싶단 맘이 들었다. ㅎ 그리고 숨은 그림 찾기처럼 전시장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옷들을 찾아보는 재미가 있었다. 역시 다른 미술관보다 퐁피두를 편애하지 않을 수가 없다.
4층에는 술라주, 잭슨 폴록, 후안 미로, 자코메티, 알렉산더 칼더, 바젤리츠 등 현대 거장의 작품들이 있어서 찾아보는 재미가 넘친다. 그 중 인상적인 것은, 요셉 보이스와 볼탕스키에 대한 오마주 전시와 크리스토가 있었다는 것이다. 퐁피두를 그렇게 많이 드나들면서 이제서야 보는 것을 보면 내가 그동안 대충 구경했던지 아니면 진짜 뮤지엄측의 열일의 결과인지 모르겠다. ㅎㅎ
오늘은 학교 과제로 전시를 보러 왔을 뿐인데 이렇게 대단하신 아티스트들과 조우하다니 마음의 양식이 채워져 밥을 안먹어도 든든해졌다. 게다가 안젤름키퍼는 그랑팔레에서 작년에 했던 전시를 놓쳐서 아쉬워했는데 여기서 만날 수 있어서 횡재한 기분이 들었다. 아마 계속 전시되어 있었는데 이제서야 내 눈에 띄었던 것일 수도 있다.
<Beuys '86에 대한 경의>는 퐁피두 측 아카이브의 아이디어로 진행된다. 보이스가 1954년부터 1984년까지 작업한 "Fonds" 시리즈의 일부도 전시되어 있다. 1960년부터 1984년까지 Beuys와 함께 그는 펠트 조각 더미에 구리 요소들을 활용한 구성된 환경 세트를 개발하여 작업을 관통하는 에너지 원리를 채택한다. 그는 “펠트 더미는 골재이고 구리 시트는 도체이다. 펠트에 열이 축적되는 것은 정적 작용인 발전기처럼 작동한다. 모든 기금은 다른 조각품을 제작할 수 있는 기반이나 토대 역할을 한다.” 고 말한다. 보이스의 작품에서 편재하는 개념이자 특히 사람들 사이의 본질적인 의사 소통의 가정에 기초한 사회 조각은 그러한 장치에 의해 자양분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전도성 요소인 펠트와 구리를 통해 공간의 에너지를 포착하고, 공기와 땅의 흐름을 상징하는 동시에 물질적 외부와 영적 내부의 연결고리인 전기와 열은 인간을 구성하는 에너지라고 보이스는 규정하고 있다. 얼마전 파리현대미술관에서 보이스를 만난 직후라 약간의 친근감이 생겼었는데 오늘 여기서 다시 보니 역시나 어려운 작가라 또 거리감이 생겨 버렸다...
퐁피두 센터는 볼탕스키에게 현대 컬렉션 전시장 3곳을 헌정하고 있다. 볼탕스키는 삶의 흔적을 수집하여 앨범, 기록 보관소, 기념물, 시각 및 음향 환기의 형태로 죽음과 시간을 지배하려는 인간의 결의를 표현한다. 또한 2005년에 제작된 장치인 쾨르(Cœur 심장이라는 뜻)는 작가의 심장 박동에 따라 전구의 불 빛을 켜고 끄며 존재와 부재 사이의 현실을 흐릿하게 만든다. 그래서 이 방에 들어가면 심장 박동 소리가 울리고 불 빛이 꺼졌다 켜지며 빛과 어둠, 생명과 죽음같은 상반된 단어에 맞춰 내 심장이 뛰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볼탕스키를 처음 알게해준 퐁피두에 항상 고마움이 있었는데 이렇게 또 볼 수 있어서 더 자주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1936년 토리노에서 태어나 작업하고 있는 조르지오 그리파(Giorgio Griffa)는 이탈리아 화가이다. 평생을 바쳐온 변호사라는 직업과 병행하여, 그는 1960년대 후반부터 백지 캔버스로 알아볼 수 있는 추상 작품들을 만들어 냈고, 바닥에서 작업한 다음 연작으로 벽에 고정시켰다. 그의 기본 구성은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 외에 다른 기능을 하지 않는 위계, 선, 기호, 숫자 및 채색된 문자 없이 자유롭게 혼합된다. "나는 아무것도 표현하지 않고 그림을 그린다." 는 것이 그의 신조라 한다.
<네트워크 세계 > 전시장은 몇 년 동안 공사하느라 닫겨 있어 이번에 처음 가보게 되었다. 이 단체 전시회는 소셜 네트워크와 네트워크의 비물질화에 의해 지배되는 우리 사회에서 네트워크에 관해 질문하는 60명의 예술가, 건축가, 디자이너를 한자리에 모았다. 그 어느 때보다 인터넷 시대에 네트워크는 감시, 개인의 원자화, 행위자-네트워크, 살아있는 네트워크와 같은 기술 변화와 사회적 도전의 중심에 있다.
네트워크는 자기 조직화를 특징으로 하는 살아있는 생물같은 것이고 사람들 사이의 상호의존성과 연속성의 통합하는 새로운 예술적, 포스트인류 생태계를 열어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뼛 속까지 문과생인 나에게는 보기만 해도 머리가 아프고 무엇인지 도통 이해 할 수 없는 작품들이다.
재능 있는 사진작가로 인정받는 Gaston Paris(1903 - 1964)는 아직 많이 알려진 작가는 아니라 한다. 퐁피두 측에서 말한 것이니 나도 마음 편히 몰랐다는 사실을 털어 놓을 수 있겠다. 뛰어난 기술자이자 독창적인 관찰자인 그는 1930년대의 시각적 욕구를 충족시키고 있다. 전시는 초현실주의와 당대의 사회적 환상의 영향을 받은 이 사진가의 중요성을 우리가 재발견할 수 있게 유도한다. 또한 사진의 다양한 매체와 보급 단계에 대한 반영이기도 하다. 판화, 신문, 잡지 등을 통해 1930년대의 현대성을 쉽고 전문적으로 기록하기 때문에 초기 포토저널리즘 관행을 잘 알 수 있었다.
오늘의 인증샷은 퐁피두 센터의 핫플 '포토부스'에서 찍은 사진으로 대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