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ée Zadkine 자드킨 박물관 > 한지수의 봉주르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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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수의 봉주르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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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ée Zadkine 자드킨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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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드킨 박물관은 지난 5월, 빈센트 반 고흐가 살았던 '오베르 쉬르 우아즈' 마을에 가고 난 이후부터 가봐야겠다고 생각한 장소이다. 왜냐하면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 가면 고흐 공원에 고흐의 동상이 있는데 그 동상을 만든 사람이 러시아 출신 조각가 오십 자드킨(Ossip Zadkine)이기 때문이다. 자드킨의 작품에 대한 호기심으로 이것저것 관련 정보를 찾아보다가 파리 룩셈부르크 공원 근처에 자드킨 뮤지엄이 있다고 하길래 드디어 여름 막바지에 다녀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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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드킨은 (1888 – 1967) 프랑스에서 주로 활동한 러시아 출신의 화가이자 조각가이고 입체파 조각의 가장 위대한 거장 중 한 명이다. 1910년 파리 에꼴 데 보자르 (École des Beaux-Arts)에서 공부하며 루브르 박물관에서 이집트 조각품들에 놀라고, 로마네스크 양식에 충격을 받은 그는 형태를 단순화하거나 강조하며 삶을 표현하는 작품들을 만들어 냈다. 아마데오 모딜리아니 (Amadeo Modigliani), 알렉산더 아키펜코 (Alexander Archipenko), 고디에 브르제스카 (Henri Gaudier-Brzeska)와 같은 그와 동시대 활동한 다른 조각가들과 마찬가지로 자드킨은 고대 유물들에서 삶의 원천을 찾으며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자드킨 뮤지엄은 1928년부터 1967년까지 작가의 집과 작업실로 사용되었던 곳인데 현재는 작가를 기억하고 그의 작품들을 헌정하는 뮤지엄이 되었다. 자드킨이 죽고 그의 아내 발렌틴 프락스가 그의 유산을 파리 시에 기증한 덕분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작가의 이중 정체성, 즉 삶의 터전이자 창조의 원천이 된 장소이다 보니 많은 방문객들에게 높이 평가받는 것 같다. 앙투완 부르델의 작업실과 함께 파리에 보존된 몇 안 되는 조각가의 작업실 중 하나이다. 특히 자드킨과 그의 아내가 거의 40년 동안 살면서 일했던 집과 작업장이라 작품에 생명을 불어넣는 유리 지붕의 빛 아래, 나무, 돌, 흙의 조화를 보면서 개인적으로 평화롭고 따사로운 분위기가 느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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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드킨은 그의 작품을 위해 나무를 선호했는데 어린 시절부터 드네프르 강둑과 러시아 숲 근처에서 자연과의 친밀한 관계를 보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자드킨은 "기본적으로 저는 항상 테이블이나 문을 만드는 나무로 이미지를 조각해야 하는 목수였습니다." 라고 말하며 나무라는 재료에 대한 애착을 드러낸다. 목공을 취미로 하시는 나의 아버지가 생각나게 하는 자드킨만의 멋진 자기소개였다. 



딸이 태어나면 오동나무를 심어 혼수용 가구를 만들어 준다는 옛 말처럼, 내가 결혼을 하면 쓸 수 있게 옷장, 테이블과 의자 등등을 미리 만들어보느라 집안의 살림살이들을 모두 나무 가구로 바꾸어 가며 실력을 갈고 닦는 우리 아버지가 떠오른 순간이었다.아부지 파이팅! 항상 감사함과 응원하는 마음을 표현해 본다. ㅎㅎ 그나저나 아버지가 그렇게 선물하고 싶어하시니 별 수 없이 결혼을 해야하나~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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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번 뮤지엄 나들이에는 특별히 보고 싶었던 작품이 있어서 가게 되었는데, 바로 반 고흐 형제에게 경의를 표하며 그들의 형제애를 담은 조각이다. 빈센트와 테오가 서로를 안고 있는 모습인데, 생각보다 크기가 작아서 깜짝 놀랐다. 오베르 마을에 있는 동상은 꽤나 큰 크기라서 그 정도를 기대하고 갔다가 조금 실망하긴 했지만 이 두 형제의 뜨거운 우애만큼은 깊이 느낄 수 있었다. 빈센트가 화가로서 인정받지 못하고 장남으로서도 가장의 역할을 하지 못했지만 언제나 형을 응원하고 지지해주던 동생 테오가 서로 포옹하고 있는 장면을 보며 나는 우리 오라비에게 어떤 동생인가 생각을 하게 했다. 하지만 ‘나 만한 동생도 없지’ 라고 자체 판단해버리고 말았다. ㅎㅎ



반 고흐 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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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베르 쉬르 우아즈 마을의 반 고흐 



이 몽파르나스라는 동네도 정말 오랜만에 오게 된 곳이라 감회가 새로웠는데, 이곳은 20세기 초에 예술가들이 몽마르트르를 떠나 더 저렴한 스튜디오를 찾다가 발견하게 된 동네이다. 모딜리아니, 수틴,샤갈, 레제, 피카소 등등 많은 사람들이 이 지역에 정착했고,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는 몽파르나스가 세상의 배꼽이라고 말했다. 또한 다다이즘을 대표하는 작가 트리스탕 차라는 그 당시 예술가들에게 몽파르나스는 확실히 파리의 수도였다고 말했다. 그만큼 몽파르나스는 예술적 활기로 가득했던 곳인 듯하다. 참고로 자드킨은 몽파르나스 묘지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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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몽파르나스 묘지는 보들레르, 모파상, 사르트르와 보부아르 등 아주 유명한 문인들의 묘가 많은 곳인데 한 번쯤 여러분들도 가보시길 추천한다. 작년 가을에 부모님이 파리에 오셨을 때 나름 문학 투어 컨셉으로 모시고 갔었는데, 가시기 전에는 무덤을 왜 보냐고 하셨다. 그러나 직접 가서 여러 작가들과 유명인들의 묘지를 보며 그들의 사상과 작품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나름 셋이서 문학의 장을 열어 열띤 토론을 하며 유익한 시간을 보내어 결국 부모님이 굉장히 만족하셨던 장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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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몽파르나스  공동묘지 보부아르와 사르트르 무덤 앞에서 어머니와 



« Mais il est déjà très beau de pouvoir tomber dans la mort avec le ciseau et le maillet entre les mains. » (Zadkine, Journal, octobre 1966)


“하지만 끌과 망치를 손에 들고 죽을 수 있다는 것은 이미 매우 아름답습니다.’’ 자드킨이 남기고 간 명언인데, 무덤 이야기를 하며 마무리 짓기에 적합해 보여서 들고 왔다. 자신의 직업에 대한 자부심과 만족감을 모두 느낄 수 있는 말이기도 하고, 삶의 마지막을 준비할 때 조차도 끝까지 자기의 소명을 다하겠다는 다짐이 느껴져서 멋졌다. 자드킨 뮤지엄 자체는 규모가 크지 않고 생각보다 소박했지만, 자드킨이라는 작가를 더 잘 알게 되었고 그에 대한 인간적 매력을 느낄 수 있었던 방문이었다. 





글ㆍ사진_한지수 (파리통신원ㆍ에디터)
소르본파리노르대학교에서 현대 문학을 전공하고 동 대학원에서 텍스트 이미지 문화를 공부하고 있다.
갤러리자인제노의 파리통신원 및 객원 큐레이터, 주 프랑스 한국문화원 도슨트로 활동 중이며,
문화예술신문-아트앤컬쳐에 에디터로 리뷰를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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