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댕 미술관: 이집트의 꿈 > 한지수의 봉주르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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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수의 봉주르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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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댕 미술관: 이집트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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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ée Rodin : Rêve d'Égypte 




로댕 미술관은 2017년 이후로 6년만에  다녀왔다. 25세 이하의 학생일때는 무료로 방문할 수 있던 뮤지엄이다 보니 언젠간 다시 가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으로 살다 보니 혜택이 다 끝나고서야 가게 되었다. 파리에 살면서 로댕 미술관을 이제  겨우 2번째 온 것이 파리지엔느로서 (?) 심지어  <봉주르 파리> 를 연재하는 통신원으로서 깊은  반성을 했다. 게다가  로댕미술관 방문을 선택한  이유 조차 순수한 예술 탐구가 아니라 학교 과제 때문이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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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학기 세미나로 고대 레퍼런스 수업을 듣는데, 교수님께서 고대 관련 전시를 보고 비평문을 제출하라고 하신 바람에  여기저기  찾다보니 로댕 미술관에서 "이집트의 꿈" 이라는 고대 이집트관련 전시가 진행중이었다. 처음에는 고대 이집트 조각을 왜 로댕 미술관에서 전시하지? 라는 생각에 약간의 망설임이 있었는데  역시 배움엔 끝이 없듯이 로댕과 이집트의 관계를 새롭게 발견하게 된 상당히 유익한 시간이었다.



미술관의 전시진행 방향대로 따라가다보면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특별전 « 이집트의 꿈 » 은  로댕과 이집트 예술의 관계를 보여준다. 전시회는 꿈꾸는 이집트에 의해 영향 받은 로댕의 작품과 그에 해당하는 이집트 컬렉션 원본 작품을 공개한다. « 이집트의 꿈 » 전시회는 오귀스트 로댕(Auguste Rodin)의 수집품과 작품, 조각품과 그림, 기록 보관소와 사진을 혼합하여 상황에 맞게 복원한 400개 이상의 사물에 대한 여정을 보여준다. 따라서 루브르 박물관, 오르세 박물관, 부르델 박물관 및 개인 수집가들로부터 지원을 받은 아주 종합 연구 프로그램의 결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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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다녀온 영국박물관에서 본 이집트 고양이가 부연 설명을 해주고 있었는데 방문객이 궁금해할 질문들을 알아서 척척 대답해주고 있으니 기특할 따름이었다. 다른 방문객들도 인상적이었는지 방명록에 그들의 감상을 대신하여 고양이를 그려놓은 모습에서 센스가 느껴졌다.



로댕은 과거의 예술에 대한 연구를 멈추지 않았는데  특히 이집트에 대한 열정도 있었고  수와 질적인 면에서 뛰어난 컬렉션을 자랑한다. 1893년과 1917년 사이에 오귀스트 로댕은 뫼동에 있는 자신의 별장에서 천여 점의 이집트 물건을 수집하여 스튜디오의 조각품과 혼합했다. 1908년, 그리고 1911년부터 1912년까지 그는 파리의 비롱 호텔에 이들을 전시했고 이는 곧 기념비적이고 권위 있는 작품들로 둘러싸여 있는 미래의 로댕 미술관의 모태가 된다. 



로댕은 카이로에 기반을 둔 파리의 골동품 상인과 상인들로부터 물품을 얻었다고 한다. 전시회는 로댕의 이집트 스튜디오와 그의 이집트 박물관, 뫼동의 Villa des Brillants와 비롱 호텔 사이를 번갈아 가는 시퀀스로 구성된다. 이는  이집트를 바라보는 로댕의 시각 뿐만 아니라 다양한  자료, 이야기, 유물 등을 통해 로댕이 예술가, 골동품 수집가 및 이집트 학자였다는 점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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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댕은 대략 1890년대 초반부터 방대한 양의 이집트 골동품 컬렉션을 만들었고 나중에는 아시아나 중세 예술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점도 처음 알게 되었다.  1917년에 사망했을 때 로댕의 컬렉션에는 1000개 이상의 이집트 작품을 포함 6500점이 있었고, 1910년까지 로댕은 고대 수집품이나 이집트에서 수집한 작은 물건들로 구성된 최초의 수집품을 파리에서 재판매했다고 한다. 그는 종종 물건을 보지 않고 이집트에 설립된 골동품 상인으로부터 물품을 얻을 정도로 이집트 유물에 매료되어 있었다. 그는 이미 1912년 비롱 호텔에서 훗날 젊은 예술가 교육을 위한 미래 박물관을 만들 생각을갖고 있었던 것이다.




로댕은 선과 모양의 단순화, 윤곽의 예술을 중시했는데 그 중에서도 그의 발자크 동상이 예술적 특징인 기념비성과 위계적 측면의 처리를 잘 표현했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그는 작가 노트 중에 "발자크는 프랑스의 스핑크스다” (« Le Balzac est le Sphinx de la France ») 라고 언급했다. 그렇게 이집트에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발자크는 이집트 석관의 정확한 모양을 가지고 있다. 이 발자크 동상은 현대 조각의 문을 연 작품으로 평가되는데 이집트 예술과의 친밀한 관계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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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댕은 이집트 작품이나 모티프를 거의 복사하듯 모방하진 않았지만 "이집트", "이시스", "클레오파트라"와 같은 단어로 작품에 주석을 달며 그의 애정을 표출했다. 또 로댕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사색" « La Pensée » 동상은 이집트 입방체 동상을 연상시킨다. 두 발을 땅에 대고 있는 " 걷고 있는 남자"는 (« L’Homme qui marche ») 고대 이집트의 이상적인 인체 비율을 정확히 따르지 않으면 고전적 아름다움에서 벗어나게 된다는 행보를 보여준다. 이렇듯 이집트 예술은 통해 삶의 순간을 포착하기 위한 로댕의 연구를 조명한다.



그리고 벽면에 이집트의 피라미드, 모래밭 등의 사진이 흑백으로 깔려있다보니 고대 이집트로 빠져든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이집트와 로댕의 긴밀한 사이를 알고나니 그의 작품이 좀 더 잘 이해되고 새롭게 보였다. 완벽한 창조는 없다는 말이 생각나기도 했지만 모방과 연구를 통해 자신만의 독창적인 조각을 만들어 냈다는 것이 로댕이 현대 조각을 대표하는 이유이리라.



전시장을 나와 그의 대표작인 생각하는 사람, 지옥의 문. 칼레의 시민들과 같은 걸작들을 보며 정원을 한바퀴 돌며 로댕-이집트 전시비평을 어떻게 쓸까를 구상하며 즐겁게 산책했다.  내가 입장할 시간만해도 사람이 없어서 바로 들어왔었는데, 특별전을 보고 나오니 밖에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그래서 막상 상설전은 수많은 사람들에 치여 가며 볼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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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댕미술관 본관은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는데 그의 모든 작품이 여기 다 모인 것 처럼 조각들로 꽉 차 있었다. 그리고 모네와 고흐의 그림들도 볼 수 있어 마치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반가운 친구를 만난 느낌이었다. 역시  로댕은 이 쟁쟁한 화가들 사이에서도 밀리지 않는 포스의 대단한 예술가였다. 



로댕은 고대 이집트의 위대한 작품들을 연구했지만  그대로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방식대로 표현하고 존중했다.마치 창조주처럼 로댕은 흙이나 돌에 생명을 불어넣어 인간이 지닌 예술적 감성의 극치를 담아낸 조각가였다.  




글ㆍ사진_한지수 (파리통신원ㆍ에디터)
소르본파리노르대학교에서 현대 문학을 전공하고 동 대학원에서 텍스트 이미지 문화를 공부하고 있다.
갤러리자인제노의 파리통신원 및 객원 큐레이터, 주 프랑스 한국문화원 도슨트로 활동 중이며,
문화예술신문-아트앤컬쳐에 에디터로 리뷰를 제공하고 있다.

※ 사진 원본은 https://blog.naver.com/mangchiro에서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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