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시립미술관: 외젠 르로이 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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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gène Leroy-peindre//Musée d'Art Moderne de Paris
바쁜 나날을 보내느라 전시를 보러 갈 시간이 없었지만 <봉주르 파리> 연재를 항상 염두해 두고 있는 터라 시간을 쪼개어 파리 시립미술관에 다녀왔다. 전시를 다녀올 때마다 매번 느끼는 것은 보러 가기로 마음먹으면 바로바로 즉각 가야한다는 것이었다. 이번 '외젠 르로이' 전시도 4월부터 가야지 마음먹고 있었는데 (심지어 전시 오픈 전부터 기대하고 있었음에도) 이제야 가게 되었다. 휴~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 ^^ 그래도< 봉주르 파리> 취재를 명분삼아 그림 보러 갈 시간도 내며 바쁜 일상을 소화하는 것을 보면 이것이 바로 행복한 파리에서의 삶인듯 하다며 스스로를 위로하곤 한다.
파리 시립미술관에서의 외젠 르로이(Eugène Leroy 1910-2000)회고전은 아주 큰 의미가 있다. 이번 전시는 150여 점의 작품(회화와 그래픽 작품)을 선보이는데 이 모두가 작가 작업의 진화를 보여주는데서 중요한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미술관측이 설명하는데 사실 나도 처음 알게 된 작가다. 이렇게 미술관을 다니다 보면 하나 하나 새로운 것을 배워가는 재미가 있다. 주제별로 구성된 전시회 일정은 긴 제작 과정과 그림 연구의 복잡성을 강조한다고 설명하는데 실제로 시립미술관의 그 넓은 전시장을 빼곡하게 채운 작품 수에 먼저 압도당했다.
그의 작품은 오랫동안 일반에 공개되지 않았지만 르로이는 20세기 가장 위대한 예술가 중 한 명이라고 한다. 이번 기회에 르로이라는 작가에 대해 조사해보니 누드, 자화상, 정물 또는 풍경을 소재로 평생 전통적인 도상학적 주제를 회화에 도입한 작가였다. 현대 미술이 탄생하기 전까지 회화의 소재는 항상 현실을 모방하거나 재생산하는 역할을 했지만 외젠 르로이에 이르러서는 회화 소재들이 이미지의 재현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이미지의 본질 그 자체를 그리게 되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는 더 이상 모방을 추구하지 않고, 구상과 추상을 결합한 것에서 그의 작품적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르로이' 라는 패밀리 네임에서 '루이 르로이' 가 가장 먼저 떠올라서 혹시 그의 손자인가 라는 생각이 들어 여기저기 찾아보았지만 결과를 찾진 못했다. 루이 르로이는 « 인상파 »라고 19세기 인상파 화가들을 명명한 것으로 유명하다. 1874년에 인상파 화가들이 전시회를 개최하였는데 이때 출품작 중 모네의 「인상, 해돋이」를 보고 시각적 인상을 위해서 전통적 기법을 무시한 이들에 대한 조롱하기 위해 모네의 제목을 인용하여 쓰이게 된 것이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인상파'로 비하 내지는 조롱한 표현을 본인들의 미술학파의 이름으로 바로 써버린 프랑스인들의 대인의(?) 풍모에 약간 감탄했다는 사실이다. 어쨌든 루이 르로이는 현대미술의 발판이 되어준 인상파 화가들에게 경멸감을 드러냈지만 외젠 르로이는 현대미술의 상징과도 같은 사람이니 아마 가족은 아닐 것 같다는 성급한 결론을 스스로 내려버렸다.^^
물감을 두껍게 칠해 유화의 질감을 잘 표현한 임파스토 기법을 사용했는데 난 개인적으로 이런 마티에르가 살아있는 그림을 좋아한다. 임파스토 기법의 대표적인 화가라고 하면 빈센트 반 고흐가 제일 먼저 떠올랐는데 오늘부로 약간 순위에 변동이 생길 것 같았다. 그림이란 것이 처음에는 시각이 요구되지만 정말 좋은 그림은 모든 감각을 불러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직접 만질 수는 없더라도 만져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끔 관람객의 마음을 자극시켰다는 점이 훌륭했다. 그의 작업은 각각 엄청나게 많은 양의 물감이 필요하고 말리고 다시 그리고 쌓아올리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복잡한 과정의 결과일텐데 정말 얼마나 엄청난 시간과 노동력(?)이 녹아져 있는 걸까 경이롭기만 했다.
그리고 요즘 고흐에 관한 책들을 읽고 있어서 그런지 뭔가 고흐와의 공통점이라고 할 수 있는 점은 자화상을 정말 많이 그렸다는 것이다. 르로이도 고흐처럼 인생의 다양한 연령대에서 셀 수 없이 많은 자화상을 그렸다. 실제로 자화상은 그 자신의 가장 깊은 부분에 대한 탐구를 강화하고 외부 현실(자신의 외모)과 내부 현실(자신의 감정, 기억 등)을 병합할 수 있게 해준다고 한다. 자화상 전시장의 초입부 작품들은 그의 얼굴 특징을 인식할 수 있게 해준다면 안으로 들어갈 수록 점차 형태를 알아채기 어려워졌다. 따라서 처음에 명확하게 식별할 수 있었던 얼굴은 점점 더 합쳐지다가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그래도 신기한 점은 가까이에서 보면 아무 형태도 보이지 않지만 멀리 떨어져서 보면 그 형태를 희미하게 나마 찾아 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역시 뭐든 좁은 시야를 가지고 있으면 볼 수 있는 것이 한정된다는 점에서 순간 나름 인생의 진리를 깨우쳐주기도 했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인상 깊게 본 그림은 « 누워있는 누드화 » 라는 제목의 그림이었다. 누드화가 많이 있었는데 이 그림은 마치 마네의 « 올랭피아 »를 떠올리게하는 작품이었다. 비스듬히 누워있는 여인의 포즈의 원조를 따지자면 « 우르비노의 비너스 »겠지만 르로이의 작품은 여인이 꽃을 달고 있는 것처럼 머리 주변에 분홍빛이 도는 것이 올랭피아와 비슷하게 느껴졌다. ㅎㅎ 20세기 버전 올랭피아를 보는 것도 신선하고 좋았다.
오르세 미술관에 가서 올랭피아를 수도 없이 자주 봤는데 정작 찍어놓은 사진이 없어서 오르세 미술관 공식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다운 받은 사진이다..ㅠㅠ 역시 뭐든 가까이 있을 땐 소중함을 모르나 보다
오랜만에 본 전시인데, 어렵긴 했지만 그래도 새로운 작가의 발견이라 굉장히 신선하고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나가는 길에 들러본 뮤지엄샵에서 지난 번 보고 온 전시인' 아니타 몰리네로' 의 굿즈를 발견했는데 그녀의 작품세계처럼 불 태워진 플라스틱이 웃음을 자아냈다. 그래도 18유로나 주고 살 수는 없었기 때문에 귀엽다고 생각하는 정도로 피식하고 미술관을 나온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