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르 위고의 집 :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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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ison de Victor Hugo : Regards
아침에 오랑주리 미술관, 점심에 코냑-제이 박물관을 다녀와서 카페를 찾던 중 낯익은 얼굴이 그려져 있는 배너가 있길래 가까이 가서 봤더니 빅토르 위고의 집이었다. 문학도라고 위고의 얼굴을 멀리서 봐도 알아보았다는 사실에 혼자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ㅎㅎ 안그래도 위고의 집을 가보려고 했었는데 우연히 돌아다니다 발견하니 생각하지도 못한 횡재(?)였다 !
전시를 보기 전, 내부 안뜰에 위치한 Le café Mulot에서 커피를 마셨다. 사람도 별로 없고 아늑한데다 친절한 직원들로 인해 아주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파리는 워낙 카페 문화가 발달해서 어딜가나 예쁘고 좋지만 위고의 집 안뜰에서 커피를 마시는 것은 뭔가 그와 문학적으로 뿐만 아니라 인간적으로도 친해지는 느낌이 들어서 좋았다. ㅎㅎ
위고의 집은 파리와 건지(Guernesey)에 위치해 있는 두 개의 집으로 구성된 하나의 박물관이다. 두 군데 다 가보진 못했지만 이 또한 언젠간 다녀와서 포스팅으로 남기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위고의 집 박물관은 1층의 임시 전시 공간과 2층은 그의 아파트로 나뉘어져 있다.
박물관의 구조상 기획전부터 보고 상설전을 보게 되지만 상설전부터 얘기해보자면, 때마침 내가 갔을 때, 어린아이들에게 레미제라블 이야기를 들려주는 선생님이 계셔서 나도 참여하고 싶었다. ㅎㅎ 한창 코제트의 대사를 읊고 있던 선생님의 열연(?)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상설전을 다 보고 내려오는 길에는 무거운 양동이를 들고 있는 코제트를 발견할 수 있었다.
박물관은 영구 컬렉션과 빅토르 위고의 엄청나게 풍부한 작품들과 현대 작품들이 간직하고 있는 공명을 발견하기 위해 특별전을 기획했다고 한다. « 시선 Regards »는 시대, 예술가, 스타일이 교차하는 전례 없는 미장센을 제안하는 전시이다. ‘시선’에 대해 성찰하는 것은 세상을 여는 것이고 빛을 통해 자신을 향해, 다른 사람을 향해, 예상되는 방향으로,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꿈과 환상 뿐만 아니라 데자뷰를 향해 걷는 것이라고 한다. 박물관 측의 설명이 좀 난해해서 더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전시를 살펴보면 기획 의도를 쉽게 따라갈 수 있다.
이 전시에서 시선은 총 4가지 관점으로 구성된다. 첫 번째는 눈과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당사자로서의 모습, 우리 감정의 근원이자 거울에 관한 것이다. 시선이 내면으로 향하거나 자신의 이미지와 마주하면 내성적이 된다. 일련의 자화상들은 예술가들이 유쾌하거나 불안한 그들의 내면을 표현하는 방식이고 이를 통해 시선이란 언제나 진실되게 그들의 얼굴에 나타남을 보여준다.
다음 2단계에서는 미로처럼 배열된 전시장을 통해, 보이는 것과 보는 것의 차이점을 파악할 수 있다. 관람객들은 금지된 시선, 지나가는 시선, 은밀한 시선의 작품을 경험할 수 있는데 이 전시장은 정말 시선이라는 주제를 표현하기에 제격이었다. 열린 문을 통해 살짝 보거나 뚫린 구멍사이로 몰래 훔쳐 보는 관람객의 참여를 유도해서 우리의 사색을 더 고요하게 만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 시선 안에는 조각품이나 그림이 들어있긴 했지만 마치 관음증을 유도하는 듯 해 ‘봐도 되는 것인가 ?’ 라는 망설임을 순간 들게 했다. 그런 느낌을 의도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 번째 관점은 비전과 상상의 관점이다. 위고의 그림과 현대 작가들의 작품들을 통해 현실 너머를 보고 현실의 모든 형태와 힘을 가진 환상을 탐구해보자는 것이다.
마지막 시선은 모든 종류의 화면을 통한 외모와 이미지로 가득 찬 현대 세계에 관한 것이다. 이 거대한 이미지 네트워크에 의문을 제기하기 위해 종종 비극적인 방식으로 시선을 표현하는 것도 포함한다.
뮤지엄샵은 사실 소박 그 자체여서 사고 싶은 게 딱히 없었지만 카페는 가볼만 하므로 전시 관람 전후에 에스프레소 한잔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