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제 개인전, 끝이 없는 게임 Games Without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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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J중정갤러리에서 3월 14일(화)부터 4월 4일(화)까지 강원제 작가의 개인전<끝이 없는 게임>을 개최한다.
강원제 작가는 회화를 중심으로 다양한 매체들로 작업을 하며, 그림 그리기를 지속하는 것에 관심을 두고 있다. 완성된 결과물보다 그림 그리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과정을 중시하는 작업을 해왔다. 비물질적이고 눈에 보이지 않는 과정이 오히려 실체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에 따라 사물로서의 작업이 사라질 때까지 작업하는 것이 작가의 목표이고 그 방법론을 앞으로 계속 연구하고자 한다.
작가는2015년, 초기작 ‘러닝 페인팅(Running painting)’에서 시작하여 ‘부차적 결과(By- product), ‘선택된, 선택되지 않은 그림(Selected, Unselected painting)’, 그리고 ‘제로 페인팅(Zero painting)’으로 작품을 이어나간다. 이번 전시는 JJ중정갤러리에서 열리는 작가의 첫 번째 개인전이며 ‘무거운 그림(Weighty painting)’시리즈를 포함하여 ‘부차적 결과(By-product)’, ‘카오스모스(Chaosmos)’ 시리즈를 접할 수 있다. 작가의 작품 철학과 실험적인 작품 제작 방식을 엿볼 수 있는 뜻 깊은 자리가 될 것이다.
부차적 결과 (By-product)
‘부차적 결과’는 ‘러닝 페인팅(2015-2019)’ 시리즈에서 이어진 작업이다. ‘러닝 페인팅’은 ‘매일 그림 그리기 프로젝트’이며 이는 화가의 기본 조건인 그림 그리기 자체에 집중하기 위한 작업이다. 대상을 묘사하기보다, 그리는 행위에 집중하며 작가는 화가라는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러닝 페인팅’을 포함하여 ‘부차적 결과’ 시리즈에서 ‘그리는 행위’는, 어떤 결과물을 만들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 목적을 지닌 행위라고 볼 수 있다.
'러닝 페인팅'은 결과물이 아닌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 목적을 둔 작업이었다. 그래서 그려진 그림들은 목적을 달성한 지점이 아닌 목적을 달성하고 난 뒤의 '부산물'이 되었다. 이들을 스카폴딩 구조물에 설치하여 지나온 시간의 과정을 직관적으로 드러내려 하였다. -작가노트
By-product, Mixed media, 270x270x165cm (Dimension Variable), 2018
무거운 그림 (Weighty painting)
‘무거운 그림 (Weighty painting)’은 최소한의 가벼운 붓질로 그려진 수백장의 드로잉을 접착하여 만든 조각이다. 이 그림-조각은 실제로 그 물리적인 무게가 20-30kg에 가까운 무거운 그림이 되었다. ‘무거운’의 또 다른 의미는 ‘가치있는’, ‘의미있는’과 같은 중의적 의미를 내포한다. 그래서 한 장의 ‘가벼운’ 그림이 반복적으로 쌓였을 때 또 다른 의미의 ‘무거운’ 그림이 된다. 이는 반복적인 행위를 통해 가벼움이 무거움이 되는 지점, 혹은 무의미가 의미로 전환되는 순간에 대한 것이다.
-작가노트
NO.2252(Weighty painting), 22.5x16x16cm, mixed media, 2022
NO.1820(Weighty painting), 22.5x15x17.5cm, mixed media, 2021
NO.2726(Weighty painting), mixed media, 18x11.5x13cm, 2022
카오스모스 (Chaosmos)
강원제 작가는 ‘러닝 페인팅’, ‘선택된/선택되지 않은 그림’ 시리즈를 거쳐 ‘카오스모스’ 작업을 구상하였다. ‘러닝 페인팅’ 이후 그려진 그림을 다시 보았을 때 작가는 생소한 느낌을 받았다. 작가의 생각과 환경, 취향 등이 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려진 그림에서 최근의 취향을 반영한 측정 부분을 오려내어 새로운 그림을 색출하게 되었다. 이를 다시 뭉개고 접착하고 배열하는 행위가 작업의 바탕이 되었다.
그림을 과정으로 존재하게 하려는 생각은 완성된 지점을 무너뜨리는 행위가 되었다. 이전 작업인 ‘선택되지 않은 그림(Unselected painting)’은 더 잘게 분절되어 처음의 그 형태를 알아볼 수 없는 상태가 되었고 나는 무질서하게 흩어진 이 파편들을 다시 뭉치고 배열하는 작업을 통해 질서를 찾으려 하였다. 마치 뿔뿔이 흩어져 있던 우주먼지들이 뭉쳐져 별이 되듯 질료가 된 평면 그림들은 새로운 형상으로 변모하였고, 또 언젠가는 다른 형상이 되어 지속될 것이다. -작가노트
NO.1626(Chaosmos), 28.1x21cm, mixed media, 2021
NO.1631(Chaosmos), 28.1x21cm, mixed media, 2021
. NO.1630(Chaosmos), 28.1x21cm, mixed media, 2021
끝이 없는 게임 Games Without End
황수경 (독립기획자)
대상을 그려내기보다 그리는 행위(과정)에 집중하며 화가라는 정체성을 유지하고자 하는 강원제 작가는 소멸과 생성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변수를 마주한다. 완성보다 그것을 지속하는 행위를 통해 회화의 본질에 다가가고자 하기에 그의 일련의 시리즈작업은 완성이라는 어느 한 지점에서 의도적인 훼손과 해체를 통해 새로운 작업으로 재-생성하고 있다고 보인다. 소우주와 같은 캔버스에서 파생된 조각들은 원본의 형체가 사라져 가는 과정에서, 멀어지는 은하의 틈을 채우려 무(無)에서 생겨난 수소가 별이 된다는 옛 주장처럼, 우주에서 가장 풍부하며 가볍고 단단한 구조를 가진 원소로 재결합을 시도하고 있다. 이렇게 모든 것을 사라지게 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가능성과 자유로움을 찾고자 한다는 작가의 행위를, 텅 빈 우주가 생성되던 지점의 제로 상태로 되돌아가 새롭게 창조된 물질로 새 은하계를 형성하고 메우는 과정처럼 끝이 없는 게임과 같다고 보고, 이탈로 칼비노(Italo Calvino) 의 소설 『우주 만화(Cosmi comics)』를 떠올리게 되었다. 이 소설 모음 속에는 지금은 빅뱅 이론에 의해 비주류(非主流) 우주론이 된 정상우주론(steady-state cosmology)을 은하계 사이에서 구슬 게임 장면으로 묘사한 ‘끝이 없는 게임 (Games Without End)’에 동명의 제목이 있다. 작가의 '러닝 페인팅'부터 ‘부차적 결과(By-product)’, ‘선택된, 선택되지 않은 그림 (Selected, Unselected painting)’ 그리고 ‘제로 페인팅(Zero painting)’으로 이어지며 다시 무(無)의 상태로 향하는 작업 전개 과정을, 시작도 끝도 없고 영원히 밀도가 일정하고 불변일 것으로 생각했던 정상우주론에 살짝 빗대어 보며 글을 시작해 보고자 한다.
우주의 모든 곳이 동등하고 시간에 따라 변하지 않는다는 정상우주론에 따르면 우주는 시작과 끝이 없이 영원하다. 허블의 법칙처럼 우주가 팽창하면 물질의 밀도가 점점 작아져야 한다. 그러나 이를 상쇄하기 위해 물질이 계속 생겨나서 결과적으로 물질의 밀도는 변하지 않아 이 이론은 빅뱅 우주론 이후 현재는 관측 결과와 어긋나는 점이 너무 많기에 폐기된 이론이다. 그런데 강원제 작가의 ‘카오스모스(Chaosmos)’와 ‘무거운 그림(Weighty painting)'처럼 원본에서 무(無)를 향해 계속 사라지게 하는 행위로 인해 물질의 밀도가 점점 작아져야 하지만, 재창조된 작품으로 새로이 생겨난 물질은 결과적으로 물질의 밀도는 변하지 않고 오히려 무게는 더해져 물리적인 무게가 20~30kg에 가까운 무거운 그림이 되었다. 이에 작가는 제로 페인팅에서는 그려진 이미지에 새로운 이미지가 덧 그려지거나 캔버스 프레임에서 탈각되어 다른 시리즈 작업을 위한 물리적 재료로 전환되고 사라지기 때문에 이는 마치 무지개나 구름처럼 잠시 나타났다 금방 사라진다고 말한다. 그것은 완성이란 이름으로 정지되거나 규정하지 않으려는 현재에서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작가가 무(無)를 향해 끝없이 도전하는 게임의 장면과도 같다고 보았다. 이 끝없는 게임은 사라지게 하는 행위와 같으나 사라지지 못한 수백 장의 드로잉들이 응집된 '무거운 그림(Weighty painting)'이 ‘무거운’의 또 다른 중의적 의미로 ‘가치 있는’, ‘의미 있는’을 내포하고 생성하기 위한 작가의 의도로 보아도 되는 것일까? 그래서 그의 반복적인 행위를 통해 가벼움이 무거움이 되는, 혹은 무의미가 의미로 전환되는 순간에 대한 지점을 표시하는 기호로 존재시키려는 것일까? 이러한 반복적인 행위를 작가의 또 다른 작품 ‘블랙스타’에서도 펼쳐 보이는 것으로 보인다. 볼펜으로 흰 종이를 채워 어둠을 만들고 남겨진 흰색의 여백이 빛나는 별이 되지만 여기에서도 그는 가벼움을 무거움으로 전환하고 있다. 볼펜으로 수없이 그은 선은 어둠을 무겁게 채우고 텅 빈자리를 빛내는 별은 실체가 없이 가벼운 허상으로 표현하고 이는 새로운 그림을 색출하는 작품들로 이어진다. 다시, '정상우주론'으로 돌아가 보면 우주는 시작과 끝이 없으며, 멀어지고 있는 은하의 틈을 채우기 위해 무(無)에서 새로 수소가 생겨 별이 형성된다고 주장하는 것과 일치하는 행위로 보인다.
실은 작가의 수행성에 관한 이야기는 필자보다 앞선 다양한 비평문들을 통해서도 잘 알 수 있다. 다만 이번 전시의 글에서 칼비노의 소설과 함께 이야기하고자 하는 이유는 『우주만화』 속 화자 크푸우프크(Qfwfq)가 그의 친구 프프우프프(Pfwfp)와 함께 끝없이 서로를 쫓으며 구슬 게임을 하듯, 강원제 작가의 창조적 순간의 예술 행위들을 쫓아가 보고자 하는 의도가 있다. 칼비노의 이 소설을 아는 이라면 이미 눈치챌 수도 있겠지만, 이야기에 등장하는 화자는 이름에서부터 무한한 순환성을 상징하고 있다. 앞으로 읽어도, 뒤로 읽어도 크푸우푸크(Qfwfq)인 화자의 눈을 통해 우주의 시작과 진화에 대한 과학적 근거를 배경으로 욕망의 본질, 사랑, 외로움과 같은 인간의 문제를 퍼즐과 같은 내러티브 구조와 동화 같은 이미지로 표현한 이탈로 칼비노는 최초의 진정한 포스트모던 작가로 불린다. 이 포스트모던(postmodernism) 시대에 이르러 원본이 없는 복제들이 우리의 현실을 대체하게 되는데, 여기서 잠시 강원제 작가의 원본에서 탈각한 조각들의 원본성에 관해 질문해 보고자 한다. 포스트모던 이론가 장 보드리야르는 원본 없는 복제를 시뮬라크르라고 불렀다. 모사할 실재가 부재하고, 복제는 되는데 무엇을 복제한 것인지 모르는 이미지가 현실을 대체하는 시뮬라시옹의 과정에서 예술의 고유성이라는 개념이 해체되기 시작했다. 복제된 것을 또 복제하고, 그걸 다시 복제하는 과정을 맴돌다 보면 무엇이 원본이고 무엇이 키치인지, 원본과 복제품을 구분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에 도달하게 된다. '뉴 웨이브(new-wave)'는 프랑스 영화 운동인 ‘누벨 바그’의 영어 표현으로 고전적 영화의 전통과 결별하고 새로운 영화를 만들자는 문제의식에서부터 출발했다. 여기에서도 포스트모던 영화라는 게 시작되는데, 실험의 가장 단적인 예로 서사를 보여주는 영상예술이라는 관념을 떠나 서사가 없는 이미지와 메시지들을 이어 붙이는 방식을 행했다. 그렇다면 다시, 강원제 작가가 특정한 대상을 그리는 것보다, 그림을 그리는 행위(과정)에 집중하며 서사가 배제된 행위에 집중하여 중첩하거나 뭉치는 방식으로 재창조된 작품에서의 원본성에 관한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원본을 끊임없이 폐기하여 새로운 모델로 교체하는 작가의 작업이 새로운 은하계를 그리기 시작하는 것이라고 가정한다면, 그가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수행의 과정에 밀도가 높아진 예술 행위가 중력 없는 우주에서 가벼움으로 교체하며 새로운 은하를 상상하는 것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다양한 우주론들이 증명할 수 없는 우주의 생성 과정처럼 회화의 완성 시점을 알 수 없음에, 그리고 그 행위(과정)에 무게를 두고 다시, 제로(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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