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화랑_서울은 2025년 12월 17일부터 2026년 2월 8일까지 이소연 개인전 《Love of This Age(이 시대의 사랑)》을 개최한다. 신작 12점으로 구성된 이번 전시에서 이소연은 조현화랑_서울의 응축된 화이트 큐브 공간을 '강렬하고 사적인 방'으로 전환시킨 후, 그간 작가가 축적해온 내면의 기록과 장소의 기억, 그리고 그로부터 생성된 다층적 자아의 페르소나를 소환한다. 최승자 시인의 시집에서 가져온 전시 제목은 시간의 흐름과 변하지 않는 감정의 강도를 포착한 작가의 개인적 경험에서 비롯된 것으로, 전시 전반을 관통하는 정서적 기반을 형성한다. 그 안에서 회화적 틀은 보이지 않는 감각과 시간을 자유롭게 불러오는 매체로서 기능한다.'
Lee So Yeun, Black Dress, 2025, Oil on canvas, 220 x 400 cm © 작가, 조현화랑_서울
Lee So Yeun, Sheep Mask, 2025, Oil on canvas, 160 x 140 cm © 작가, 조현화랑_서울
연지벌레에서 추출한 카민(Carmine)으로 칠해진 검붉은 벽면은 단순한 전시 배경을 넘어 작가의 내밀한 영역을 물리적으로 구현한 장치다. 이 공간 안에서 회화는 평면을 벗어나 하나의 무대이자 체험적 환경으로 확장된다. 화면 속 사물들은 모두 작가가 실제로 소유하고 사용해온 것들이다. 20년 전 암스테르담에서 구입한 촛대, 맥주 양조장 병, 참이슬 소주병, 초록색 데이비드 호크니 서적—이 오브제들은 작가의 삶을 관통해온 시간의 증거이자, 서로 다른 시대와 장소가 중첩된 기억의 지층을 이룬다. 특히 호크니의 책은 작가에게 결정적 전환점을 상징한다. 작가는 그의 전시를 네 시간 동안 관람하며 받은 충격 이후 작업 방향을 근본적으로 재편했다고 회고한다.
이러한 사적 공간에 초대받은 관객은 촛불 기반의 황금빛 조명과 강렬한 그림자가 만들어내는 몽환적이면서도 극적인 분위기 속으로 들어서게 된다. 물체 만큼이나 강렬한 그림자와 이를 관통하는 빛은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흐리며, 작가의 지극히 사적인 감정 위로 관객 자신의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그 중심에서 관객을 응시하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바로 이소연의 자화상이다. 그러나 이 인물은 자화상이라는 전통적 정체성보다는 화면의 서사를 매개하는 장치에 가깝다. 초기 작업과 달리 최근작에서 작가는 얼굴의 그림자를 최소화하고, 표정을 제거하며, 역광 처리를 통해 인물을 중립적 상태로 유지한다. 관객이 자신의 감정을 투사할 여지를 남기기 위한 전략이다. 한편, 넓은 의미에서 화면 속 모든 사물이 작가의 자아를 반영하므로, 이는 확장된 자화상의 개념으로도 읽을 수 있다.
작가의 과거의 기억을 재구성한 이번 전시는 동시에 앞으로의 구조적 변화를 예고한다. 과거 정중앙에 고정되어 있던 인물은 이제 화면 밖으로 이동하고, 자세와 동작이 생기며 구성이 역동적으로 전개된다. 배경 없는 작품에서는 인물이나 사물 하나가 주제이자 중심으로 기능하며 순간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제시한다. 반면 배경이 있는 작품에서는 인물, 사물, 색채가 모두 동등한 서사적 주체로 작동하며 화면 전체가 복합적 이야기를 생성한다. 작가는 향후 작업에서 피아노, 말, 대형 식탁 등 스케일이 큰 사물로 확장하고, 설치적이고 입체적 요소를 실험할 계획을 갖고 있다. 색채와 조명의 변화, 그리고 화면 전체가 더욱 드라마틱해진 조형적 선택에서는 자유로움을 되찾고자 하는 열망이 감지된다.
작가는 관객이 작품을 과도하게 해석하기보다 감각적·직관적·본능적으로 접근하기를 권한다. 색, 빛, 그림자, 공간의 분위기가 만들어내는 감각적 총체를 사유하며 경험하는 것, 그것이 이 전시가 제안하는 관람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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