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데우스 로팍 서울은 오는 21일부터 내년 1월 25일까지 미국 팝 아트의 선구자 제임스 로젠퀴스트의 개인전 ⟪꿈의 세계: 회화, 드로잉 그리고 콜라주, 1961–1968⟫을 개최한다. 로젠퀴스트의 기념비적 회화와 비정형 캔버스 그리고 유수의 기관에 소장되어 있는 작품들의 청사진으로 기능했던 연구작, 스케치, 소스 콜라주까지 한자리에 모아 선보이는 본 전시는 그가 작가로서의 입지를 확립하고 당대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로 손꼽히며 부상했던 결정적인 10년의 시기를 조명한다.
James Rosenquist, Playmate,1966.
Oil on canvas in four parts, wood and metal wire 213.4 x 517 cm (84.02 x 203.54 in). © 작가, 타데우스 로팍 서울
James Rosenquist Bedspring, 1962.
Oil on canvas, with painted twine and painted wood stretcher bars 91.4 x 91.4 cm. © 작가, 타데우스 로팍 서울
James Rosenquist Professional Courtesy, 1996.
Oil on canvas 121.9 x 121.9 cm. © 작가, 타데우스 로팍 서울
1960년대 팝 아트 운동의 최전선에서 독보적인 입지를 다진 제임스 로젠퀴스트(James Rosenquist)는 회화의 본질을 탐구하며 대중적 이미지와 독특한 시각적 어휘를 결합한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 옥외 광고판 화가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그는 잡지에서 발견한 이미지를 활용해 콜라주 기법을 구사하거나 도상을 파격적인 비율로 병치하며, 수수께끼 같은 화면을 창조해냈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히는 설치 작품 ⟨F-111⟩(1964-65)은 이러한 시각적 실험의 결정체로 평가받는다. 폭격기를 중심으로 산업, 소비문화, 군사 권력을 암시하는 이미지를 결합한 이 작품은 뉴욕 현대미술관(The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에 영구 소장돼 있다. 이처럼 로젠퀴스트는 인간의 지각과 회화 매체의 가능성을 급진적으로 실험하며, 팝 아트 운동을 선도한 인물로 자리 잡았다.
로젠퀴스트는 작품을 통해 단순히 자신의 개인적 서사를 넘어서, 군∙산업 복합체의 권력, 환경 문제, 그리고 인권과 같은 보편적 관심사를 반영했다. 그의 아내 미미 톰슨 로젠퀴스트(Mimi Thompson Rosenquist)는 그가 이러한 주제를 다룬 이유에 대해 "그려져야 마땅한 것들을 그리는 것뿐"이라고 단순명료하게 설명했다.
그가 활발히 활동하던 1960년대는 ‘반문화적 10년(countercultural decade)’으로 불릴 정도로 전쟁 반대 운동, 성적 해방, 그리고 사회적 변화의 흐름이 강렬했던 시기였다. 이러한 사회적 맥락은 그의 작품 전반에 깊이 스며들어 있으며, 이는 시대를 읽어내는 작가의 통찰력을 보여준다.
최근 15년 만에 공개된 그의 또 다른 대작 ⟨플레이메이트(Playmate)⟩(1966)는 소비문화 속 이상화된 여성 이미지를 전복적으로 해체하며, 당시 시대정신을 심오하게 반영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상업적 미디어에서 지나치게 단순화된 여성의 이미지를 와해한 이 작품은 로젠퀴스트가 추구한 예술적 실험과 사회적 비판 정신을 잘 보여준다. 로젠퀴스트의 예술은 단순히 팝 아트를 넘어, 당대의 문화적, 정치적 맥락을 깊이 탐구한 결과물이다. 그의 작업은 여전히 현대 미술계에 중요한 논의의 지점을 제공하며, 예술의 사회적 역할을 되새기게 한다.
그가 60년대에 제작한 작품 중 이러한 크기와 형태를 따르는 작품은 단 네 점뿐이다. 로젠퀴스트는 작품의 주제가 개별적 대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화면 속 요소들이 맺는 ‘관계’에 놓여있다고 설명했다. ⟨플레이메이트⟩ 화면 중앙에는 한 여성의 상반신이 배치되어 있고, 양옆으로는 피클, 딸기, 크림이 먹음직스러운 모습으로 바구니의 실루엣과 겹쳐져 자리한다. 각기 다른 스케일의 요소들과 정렬되지 않은 네 개의 캔버스를 오가는 시선이 얽히고설키는 이 작품은 보는 이로 하여금 도상을 개별적으로 읽어야 할지 혹은 하나의 통합된 장면으로 이해해야 할지 의문하도록 하며 새로운 시각적 경험을 제공한다.
작가는 작품 속 인물이 임신한 여성을 기반으로 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러한 작가의 설명은 작품에 새로운 해석적 층위를 더할 뿐만 아니라, 작품을 바라보는 이들의 욕망적 시선을 무력화시키는 대신 임산부가 흔히 갈망하는 음식에 그 초점을 맞추도록 유도한다. 1964년 처음으로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된 작가는 임신이 여성의 신체에 미치는 영향과 욕구에 대해 새로이 인지하게 되었고, 이는 ⟨플레이메이트⟩를 제작하는 데 또한 큰 영향을 미쳤다.
작가는 작품의 주제와 화면의 구성(또는 해체)을 통해 여성의 경험이 간과되고 있는 현실을 조명하고자 한다. 그는 작품 혹은 유사 이미지를 마주한 이들이 다른 관점에서 해석해 보기를 제안하며, 에로티시즘에 대한 선입견을 뒤집고 여성이 경험하는 욕망의 의미를 재고해 보도록 장려한다.
한편, ⟨플레이메이트⟩와 함께 전시되는 대형 회화 ⟨그림자(Shadows)⟩(1961)에서는 로젠퀴스트가 옥외 광고판 화가로 활동했던 경험과 영향이 여실히 드러난다. 도시를 발판 삼아 높은 가설물 위에서 거대한 이미지를 그려내야 했던 작가는 이미지를 단편적으로 그릴 수밖에 없었고, 먼 거리로 나가야만 비로소 전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에 대해 미국의 미술사학자이자 큐레이터 마샤 터커(Marcia Tucker)는 ‘작품의 규모보다는 스케일이 중요하다. 즉, 작품 속 도상의 크기와 그것이 주변 요소나 캔버스, 그리고 그를 마주한 관객과 맺는 관계 안에서 구현되는 스케일 말이다. 그의 거대한 스케일 안에서 각 이미지의 독자성은 사라지는 듯 보인다.’고 논한 바 있다.
같은 시기 로젠퀴스트는 본격적으로 회화의 본질을 탐구하고 더 나아가 그 경계를 확장해 나가기 시작했다. 실제 사물을 회화에 포함시키거나 작품 너머의 벽을 볼 수 있는 형태를 만들고, ⟨퍼래머스(Paramus)⟩(1966)와 같이 비정형 캔버스를 제작해 사용하는 등 다양한 매체적 실험을 꾸준히 이어 나갔다. 1987년 진행한 인터뷰에서 작가는 ‘캔버스에 구멍을 뚫어 회화의 평면성을 위반한 것이 가장 주요한 일이었다. 성스러운 과정이었다. 루치오 폰타나도… 로버트 라우센버그도 신성한 평면에 온갖 기상천외한 작업을 많이 했다. 호기심에서 비롯되었던 것 같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작품이 고정된 틀의 구조가 노출된 ⟨플레이메이트⟩가 전통적인 액자를 분해하고 연구하는 작업이었다면, ⟨침대스프링(Bedspring)⟩(1962)은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 로젠퀴스트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급진적인 회화적 개입으로 꼽히는 이 작품은 은색 나무 프레임에 고정된 11개의 끈이 여성의 얼굴이 그려진 캔버스를 팽팽히 지탱한다.
그는 작가적 실험의 일환으로 마일라(Mylar, 폴리에스테르 필름의 일종) 필름을 회화에 도입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특히 다양한 사회적 이슈를 다루는 작품에서 잘 드러난다. ⟨데일리 초상화(Daley Portrait)⟩(1968)는 1960년대 미국 시카고 시장을 역임한 리처드 J. 데일리(Richard J. Daley)의 초상을 담은 유화 작품이다. 데일리는 1968년 마틴 루터 킹 박사(Dr Martin Luther King)의 암살 이후 발생한 시카고 폭동을 폭력적으로 처리한 것으로 악명이 높은데, 그에 대한 시위와 저항의 태도에서 기인한 이 작품은 조각난 마일라 필름으로 제작되어 과격하고 충동적인 지도자의 얼굴이 가벼운 바람 한 번에 사라질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로젠퀴스트의 작업은 개념 및 구성적 측면에서 기존 이미지를 활용하는 콜라주 기법의 원리를 따르며, 주로 인쇄 광고에서 사용된 이미지를 차용한다. 작가는 이미지 위에 그림을 그리거나 중첩하고 또 변용하는 과정을 거치며 기묘하고도 고유한 그만의 화면을 구축한다. 이에 대해 작가는 ‘콜라주는 아직까지도 매우 현대적인 매체다. 아주 작은 종이로 하든, 영화를 만들든 말이다. 콜라주는 현대적 삶과 그 반짝임이 깃들어 있다.’고 기록한 바 있다. 로젠퀴스트의 작품은 콜라주를 준비하는 과정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는 이미지를 선별하고 파편화한 뒤 그리드로 나눈 거대한 캔버스에 옮겨낸다. 드물게 전시되는 작가의 콜라주 작품은 그의 폭넓은 작품 세계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써 하나의 작품으로 존재한다.
작가는 잡지 이미지를 찢어 조밀하게 겹치거나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소스 콜라주와 연구작을 만들고 이를 주춧돌 삼아 다양한 회화를 제작하였다. 본 전시는 미국 텍사스 소재의 미술관 메닐 컬렉션(Menil Collection, Houston)에 소장된 작품의 원본 콜라주인 ⟨<머스 커닝햄의 산책로>의 자료(Source for The Promenade of Merce Cunningham)⟩(1963)를 비롯한 다양한 연구작을 한데 선보임으로써 그의 궤적을 살핀다.
⟨<구획>의 자료이자 초기 연구(Source and preliminary study for Zone)⟩(1960)는 필라델피아 미술관(Philadelphia Museum of Art, Philadelphia)에 소장되어 있는 회화 ⟨구획(Zone)⟩(1961)의 중요한 초기 연구 자료로, 로젠퀴스트는 이 작품을 자신의 첫 번째 팝 아트 회화로 정의하기도 했다. 한편 ⟨<꺼지지 않는 불 I>의 자료이자 초기 스케치(Source and Preparatory Sketch for The Light that Won’t Fail I)⟩(1961)는 같은 해 제작되어 현재 미국 워싱턴 DC 소재의 허시혼 미술관 및 조각 정원(Hirshorn Museum and Sculpture Garden, Washington D.C.)에 소장된 회화 작품의 스케치를 포함한다. 일련의 작품 속 연필 드로잉이나 휘갈겨진 메모는 작가의 생각을 긴밀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통로인 반면, 잡지를 오려서 재구성한 화면은 작품이 제작된 당시의 구체적 현실을 증언하는 역사적 산물로 기능하기도 한다. 이렇듯 소스 콜라주 작품군은 구성과 형식에 대한 로젠퀴스트의 천착과 이미지를 충실하게 재현하고자 했던 작가의 태도, 그리고 그의 뛰어난 예술적 기질을 방증한다.
네 점으로 구성된 ⟨<말 눈가리개>를 위한 연구(Studies for Horse Blinders)⟩(1968)는 작가의 색채 감각이 유독 돋보이는 작품으로, 작가는 이를 독일 쾰른 루드비히 미술관(Museum Ludwig, Cologne) 소장의 ⟨말 눈가리개(Horse Blinder)⟩(1968-69)를 위한 참고 문헌처럼 활용했다. 연구작에 그려진 역동적인 무늬와 색감이 방 하나를 채우는 규모의 설치작 ⟨말 눈가리개⟩로 재현되며 관객의 시야 범위 너머의 요소들을 연결하는 총체적 작품으로 구현되었다.
정치, 과학, 예술, 역사 전반에 깊은 관심을 두고 끊임없이 탐구한 로젠퀴스트는 자신이 그리고 펼쳐내는, 독자적인 화면의 세계로 관객들을 초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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