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나발레 박물관: 파리지엔 시민 여러분! 여성해방을 위한 약속(1789-2000) > 한지수의 봉주르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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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수의 봉주르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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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나발레 박물관: 파리지엔 시민 여러분! 여성해방을 위한 약속(1789-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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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musée Carnavalet : Parisiennes Citoyennes ! Engagements pour l’émancipation des femmes (1789-2000) (2022년 9월 28일부터 2023년 1월 29일까지)


 

카르나발레 박물관에서 파리 페미니즘의 역사를 중심으로 여성해방투쟁의 역사와 기억에 대한 전례 없는 전시를 선보인다고 해서 기대가 아주 컸다.  참고로 파리지앙이라고 하면 파리 남성시민, 파리지엔느라고 하면 파리 여성시민을 의미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상당히 만족스러운 전시였는데 예약도 힘들고 인파에 치이면서 본  팔레 갈리에라에서의 프리다 칼로 전시보다 훨씬 좋았다. ㅋㅋ 영원히 고통받는 팔레 갈리에라…


 올해 초 3월에 프루스트 전시를 보러 다녀왔을 땐 조용하고 한적한 박물관이었는데 이제는 코로나도 풀린데다 날씨가 좋다보니 안뜰의 카페도 운영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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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나발레 박물관의 이번 전시회 "파리지엔  여러분! " 은 여성들이 자신들의 해방을 위해 파리에서 이끈 투쟁의 발자취를 따라 프랑스 혁명에서 평등법에 이르기까지의 야심 찬 역사적 여정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올랭프 드 구주(Olympe de Gouges)에서 지젤 알리미 (Gisèle Halimi)에 이르기까지 페미니즘의  핵심 인물과 함께 1789, 1830, 1848년의 시민 혁명, 참정권, 평화주의자, 저항 운동가, 여성 정치를 이끌어간 익명의 파리 여성들의 노고를 되짚어 준다. 정말 프랑스의 내로라 하는 대단한 여성들은 다 만나볼 수 있었다. 콜레트, 까미유 클로델, 마리 퀴리, 조르주 상드, 스탈 부인, 니키 드 생팔 등등 반가운 인물들이 많아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참고로 올림프 드 구즈(Olympe de Gouges)는 프랑스 페미니즘의 선구자 중 한 명이다. 1791년 《여성과 시민의 권리 선언》의 저자이며 여성의 시민적, 정치적 권리와 흑인 노예 제도의 폐지를 옹호하는 많은 글을 남겼다. 그리고 현대 프랑스의 페미니즘의 중요한 인물인 지젤 알리미는 1971년 ‘낙태죄’ 에  맞서 여성의 피임과 낙태의 적법한 권리를 요구한 343명의 선언문에 서명한 유일한 변호사였다. 그녀는 이미 낙태를 했다고 선언하고 프랑스에서 억압된 낙태에 대한 자유로운 권리를  요구하는 여성들을 한 데 모았고 그 과정에서 시몬 드 보부아르, 장 로스탕과 함께 ‘여성의 대의를 선택하다’(Choisir la cause des femmes)라는 여성의 권리를 전문으로 하는 비정부 조직을 설립했다.   



그림, 조각, 사진, 영화 포스터, 원고들을 통해  혁명 기간 동안 여성의 "시민권"에 대한 주장으로 시작하여 2000년 평등법으로 끝나는 연대순에 따라 전시가 진행된다. 노동권, 시민권, 시민적 권리와 같은 교육에 대한 권리를 이야기하고 더 나아가 여성의 신체에 대한 자유, 예술적 문화적 창조물에 접근할 수 있는 자유까지 포함하고 있다. 2차 세계 대전 후, 여성들은 종종 아내, 가사도우미, 어머니의 역할에 갇혀 있었지만 보부아르의 <제2의 성> 에서 이러한 여성의 역할에 의문을 제기함으로써  점차 여성들의 자유로운 사랑, 양성애 또는 자녀를 갖지 않는 독립적인 삶을 선택할 수 있게  주장했던 것이다.  지금은 너무도 당연한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여성들이 가지게 되기까지 참으로 고된 투쟁의 역사가 있었다는 점에서  씁쓸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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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좀 흥미로웠던 점은 프랑스의 페미니스트들은 평화시위를 하는 우리나라  촛불 시민들과는 달리 아주 거침이 없다. 따라서 그녀들의 참정권은 시위, 청원서 보내기, 상원 의원에게 전단지나 양말 던지기, 거리 봉쇄, 선거 방해 등 다소 폭력적 방법도 동원되었는데  폭력이 정당화될 순  없겠지만 뭔가 통쾌한 느낌도 있었다.  미래 여성들을 위해 길을 닦은 그녀들이 방해가 되는 남성(때로는 여성도 포함)을 비웃는 유머가 담긴 슬로건도 있었는데  그녀들의 재기발랄함에 웃음이 나왔다. 



한편 새로운 것도 배웠는데, ‘형제애’를 상징하는 (우리나라에서는 박애 라고도 자주 표현) ‘La fraternité’에서 파생된 듯한 ‘La sororité’ 라는 단어가 ‘자매 결연’을 뜻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는 자매간의 유대를 불러일으키는 역사를 통틀어 페미니스트 투쟁의 중요한 개념으로 보는 것이다. 혁명 동아리, 스포츠 기관, 시위, 협회 등 여성이 목소리를 내기 위해 만든 모든 집단에 존재하고 오늘날 법과 일상 생활에서 성차별에 반대하는 여성의 동맹이다. 이는 여성에게 나이, 성적 취향, 출신 및 사회적 배경에 관계없이 서로 화합하고 지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권력의 도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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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펨마주' (Le Femmage)는 '오마주' (L’hommage)와 관련하여 여성의 추모를 기념하는 의미로 사용되는 단어이다. ‘오마주한다’는 (Rendre hommage)는 경의를 표하고, 누군가의 가치와 공로를 인정한다는 뜻에서 사용하는데, 이때 ‘Homme’이 인간을 뜻하기도 하지만 주로 남성을 일컫다 보니 남성의 역사에 남성에게만 경의를 표하는 뜻이 된다. 그래서 이를 비판하며 탄생한 단어인데 역사는 남성이 만든 것이 아니라 여성과 함께 이룩한 것이니 작품, 전시회, 책, 교과서에서 여성의 이야기를 쓰고 말하며 포함시키는 것이 정당하다는 것이다.  


그래도 역사를 통틀어 여성해방의 희망이 꺾인 적은 한 번도 없었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전시였다. 18세기부터 돌이켜보니 우리 여성들이 얼마나 큰 발전을 해왔는지 정말 멋있게 느껴졌다. 전시 후반부 한 현수막에 “Mieux que rien, c’est pas assez.” (없는 것보다 나은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는 말처럼 여성들은 언제나 시민권에 대한 열망을 표현하는 것에 그치지 않았고 더 큰  희망을 갈구한 전시였다. 이 전시는 오늘날 우리 시대의 여성은 물론 다음 세대의 젊은 시민에게까지인권과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한 고민을 할 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컸다.  




글ㆍ사진_한지수 (파리통신원ㆍ에디터)
소르본파리노르대학교에서 현대 문학을 전공하고 동 대학원에서 텍스트 이미지 문화를 공부하고 있다.
갤러리자인제노의 파리통신원 및 객원 큐레이터, 주 프랑스 한국문화원 도슨트로 활동 중이며,
문화예술신문-아트앤컬쳐에 에디터로 리뷰를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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