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세 미술관 : 마네-드가// 파스텔: 밀레에서 르동까지
본문
Musée d’Orsay : Manet -Degas// Pastels: De Millet à Redon
오르세 미술관에서 인상주의의 두 거장 마네와 드가의 특별전이 아주 근사하다는 이야기가 계속 들려 오니 가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사실 학기 말이라 공부할 게 산더미지만 잠깐의 일상 도피 겸 휴식 차원에서 다녀온건데, 부활절 바캉스 시즌인지라 미술관 내부에 인파가 넘쳐 여유로운 관람은 어려웠다. 그래도 7월 중순까지 진행되는 전시이니 이 열기가 조금 식으면 (과연 그리 될까 싶지만) 재관람할 생각이다.
에두아르 마네 (Édouard Manet, 1832-1883)와 에드가 드가 (Edgar Degas, 1834-1917)는 1860~1880년대 미술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두 화가의 모습을 한 자리에 모은 오르세 미술관만이 기획할 수 있는 이 전시는 그들의 관계를 새롭게 바라보게 한다. 회화적 근대성에서 무엇이 이질적이고 모순적이었는가를 보여주며, 특히 마네 사후에 더 큰 자리를 차지한 드가의 가치를 보여주기도 한다. 오르세 미술관의 소장 컬렉션만으로 이렇게 의미있는 특별전시를 진행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한명의 관람객으로서는 너무 감사한 일이다. 그리고 한편으로 오르세 미술관큐레이터들은 비교적 다른 미술관에 비해 일하기가 조금은 편하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기획전을 위해 다른 미술관에 협조를 구하며 여기저기 작품을 대여해오는 수고는 덜 수 있으니 말이다. ㅋㅋ
전시장 입구에는 마네와 드가의 자화상 부터 배치해 마치 두 화가가 관람객들을 맞이하는 듯해 이 대가들로부터 환영받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왼쪽이 드가, 오른쪽이 마네
마네와 드가 같은 중요한 예술가를 한 전시장에 모으는 것은 먼저 그들이 가진 소재의 유사성이다. 1860-1880년의 그들이 사랑한 주제인 경마장 풍경, 카페 장면, 매춘부, 누드화 등을 찾아 볼 수 있다. 사실 마네와 드가의 대단한 팬이 아니기 때문인지 내 마음을 특별히 사로잡는 큐레이팅은 그다지 없었다. 오히려 이 두 화가의 작품들이 마구 섞여 있어뭔가 일목요연한 동선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관람에 방해가 된다는 느낌도 있었다. 물론 그들의 화풍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그림을 비교하며 누구의 그림일지 맞춰 보며 혼자 뿌듯해하는 시간이 되긴했지만 그러기에는 사람이 물 밀듯이 들어오는지라 관람객의 피로도가 높아갔다.심지어 이날 가방마저 무거워 물품 보관소에 맡기려다 그 줄 또한 너무 길어서 가방을 메고 한 관람이라 더 그랬던 것 같다.
오르세 미술관 상설전에 배치되어있는 마네의 올랭피아와 에밀졸라의 초상화도 이 전시장으로 출장(?) 을 나와있었는데, 반가운 마음과 동시에 이 그림들이 있던 원래 장소에는 어떤 그림이 걸려있을까가 더 궁금했다. 그래서 전시를 보고 나오자마자 이 그림들의 원래 자리를 찾아갔는데 넓은 전시장 벽면에 레몬과 부채와 함께 있는 여인이 자리잡고 있어서 괜시리 웃음이 나왔다.
폴 고갱이 오마주한 마네의 올랭피아도 볼 수 있었는데, 처음에는 크기가 다르길래 마네의 또 다른 습작인줄 알았는데 고갱의 작품이어서 놀라웠다. 개인적으로 처음 본 작품이라 이번 전시에서 제일 인상깊은 부분이었다.
그리고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또 한명의 화가인 베르트 모리조 (Berthe Morisot) 또는 만나볼 수 있었는데, 봉주르 파리를 연재한지 얼마 안되었을 때 오르세 미술관에서 모리조 특별전을 보고 온 것이 떠올랐다. 친근한 곳에서 다시 만난 이들이 다른 형식과 내러티브로 다가올 수 있다는 점에서 역시 전시 기획의 스토리텔링과 열린 가능성에 또 한번 감탄하고 배우게 된다.
또한 이번 전시가 인상파의 탄생 전과 후, 무엇이 그들을 차별하고 대립시켰는지가 눈에 띈다. 문학과 음악도 마찬가지지만 그림에도 작가마다 시선과 감수성이 다르기 때문에 그들의 다양한 선택은 결국 그들의 우정을 식게도 한다. 마네의 죽음 이후 드가는 점점 미술계에서 권위있는 위치를 차지하게 되고 죽음이 두 화가를 화해에 이르게했다는 점이 안타깝긴 하지만 인생이 다 그런게 아니겠는가?
마네와 드가의 대조를 통해 한자리에 모아, 서로를 구별함으로써 얼마나 각각을 새롭게 정의하는지를 보여 준 전시같다. 지금까지 한 번도 모인 적이 없는 걸작과 전례 없는 멋진 공존 그 자체인 이번 전시는 두 거장이 함께 한 여정과 지속적인 경쟁의 여정을 동시에 확인할 수 있게 한다.
한편 또 다른 기획전인 “파스텔: 밀레에서 르동까지” 전시회는 18세기 파스텔의 황금기로 우리를 데려간다. 인상주의의 특징인 순간의 모습과 자연 풍경을 표현하기 탁월한 파스텔 그림들을 다양한 화가들을 통해 볼 수 있다. 2023년 봄 컬렉션에서 약 500개의 작품으로 구성된 약 100개의 파스텔 작품들을 전시한다.
드로잉도 페인팅도 아닌 파스텔은 순수한 안료로 구성되어 종이 결이나 캔버스에 그대로 표현된다. 그래서 파스텔은 선과 색을 융합하여 아름다움을 주지만 연약함도 준다. 사실 이 파스텔이라는 재료에 대해 영화를 전공하는 친구와 깊은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우리 둘에게 ‘파스텔’ 같은 친구는 참기 힘들다는 것이 결론이었다. 파스텔 톤처럼 흐릿하고 약해보이는 친구는 아무래도 좀 씩씩하고 독립적인 편인 우리와는 맞지 않다는 것이다. ㅋㅋ 우리는 비비드한 컬러의 선명하고 생생한 친구를 선호한다고 서로에게 그런 친구가 되어주자고 이야기했었다. 그래도 그림을 통해 바라보는 파스텔이 눈을 편안하고 즐겁게 해주는 것은 사실이다.
개인적으로 마네-드가 전시보다 이 파스텔 전시가 더 좋았는데, 제목처럼 밀레부터 르동까지 다양한 작가들의 파스텔 작품을 볼 수 있어서 이 전시장에서 마네와 드가를 더 여유롭게 볼 수 있었다. 19세기 중반에는 파스텔의 사용이 모든 장르로 확대되었기 때문에 밀레(Jean-François Millet)는 그의 그림에서와 같이 시골 생활의 고귀함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하기도 했다. 당대 일부 비평가들은 유화보다 파스텔을 선호하기도 했다고 한다.
또한 인상파를 대표하는 화가 모네의 스승격인 외젠 부댕(Eugène Boudin)의 작품들도 볼 수 있었는데 야외에서 자연 풍광을 연구하면서 후대 화가들이 나아가야 할 길을 보여준 것에 비해 크게 주목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 아쉽다.
사실 나에게 드가하면 발레리나 라는 키워드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데, 막상 앞선 전시에서는 발레리나를 많이 찾아보지 못해서 부족한 느낌이었는데 이 전시에서 만회할 수 있었다. 파스텔은 벨벳 같은 피부와 안색의 미묘한 색조를 표현하는데 다른 어떤 매체보다 더 적합한다고 하는데 이 특성은 발레리나뿐만 아니라 누드화에서도 자연스럽게 표현되었다. 모델의 살에 빛나는 외관을 주기 위해 다양한 선과 대담한 색상을 사용했다. 모델의 몸을 아름답게 이상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목욕하는 모습을 그리며 표현해서 그런지 편안한 느낌을 받는다.
선과 색상을 결합하는 파스텔의 그림들을 보고나니 역시 안료의 꽃이라는 별칭답게 순수한 색상을 제공하여 우리 감각을 자극하기에 제격인 재료같았다. 4월의 봄날과 같은 결의 전시들을 만날 수 있어서 좋은 시간이었지만 아무래도 아쉬움이 남다보니 전시가 끝나기 전에 꼭 다시 한번 더 오리라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