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nF I 프랑수와 미테랑 국립도서관: 인쇄하다! 구텐베르크의 유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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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nF: Imprimer! L’europe de Gutenberg
드디어 직지심체요절 전시가 프랑수와 미테랑 국립 도서관에서 시작되었다. 전시가 시작되기 몇 달 전부터 큰 기대를 가졌고 실제로 '직지' 를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레기까지 했다. 고등학생 시절이던 2013년 세계직지협회에서 주최한 직지사랑글짓기 공모전에서 수상한 경력이 있는 내가 파리에서 직접 직지를 만난다는 것은 개인적으로도 10년만의 쾌거가 아닐까! 그 당시를 돌이켜보면 내가 상을 받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박병선 박사 덕분이다. 나의 진명여고 대선배님이신 박병선 박사께서는 한국인 최초로 프랑스 유학 비자를 받은 여성이고 프랑스 국립 도서관에서 근무하시며 직지심체요절과 외규장각 도서를 발견하신 분이다. 게다가 직지심체요절이 세계 최초의 금속 활자본이라는 사실을 증명하셨고 외규장각 의궤를 반환하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다하더라도 과언이 아니다. 선배님의 업적과 직지에 대한 느낌을 연결지어 글을 썼던 것으로 기억한다.
날씨 좋은 날 도서관가는 즐거움
몇 달 전, 직지가 50년만에 공개된다는 사실을 한국언론을 통해 접한 후 프랑스국립도서관 사이트를 여기저기 찾아 봤었다. 한국에서는 비중있게 다룬 기사였는데 정작 별 다른 정보가 나오지 않아서 BnF(프랑스국립도서관) 전시 일정을 자세히 찾아보니 아주 낯익은 ‘구텐베르크’ 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세계최초 금속 활자로 알려진 구텐베르크 금속활자보다 78년이나 앞서 제작된 우리의 직지심체요절~~” 이 문장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가슴에 새기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자세히 살펴보니, 구텐베르크 인쇄본들의 전시 속에 직지가 소개될 것이라고 나와 있었다.
전시 입장 전 북샵 구경 + 다음 전시 포스팅 스포
이번 전시는 15세기 중반 유럽 사회는 책의 배포를 통해 지식에 대한 접근이 수월해졌는데 이를 가능케 한 인쇄술에 집중한다. 인류의 혁신적인 발명품 중 하나인 인쇄기의 역사와 발전을 되돌아보며 BnF 소장품 중 가장 오래된 서양 목판화(14세기 말 또는 15세기 초), 인쇄 세계에서 금속 서체로 보존된 가장 오래된 작품인 직지(한국, 1377년)와 유럽 최초의 대형 활자 인쇄물인 구텐베르크 성경(독일, 1455년경) 동시에 처음으로 발표한다. 게다가 전시장의 입장부터 전시 제목을 입체적으로 금속 활자 낱개들을 조합해 상당히 인상적이고 센스넘쳤다.
인쇄기의 발명은 중세에서 르네상스로의 진입을 이끌어낸 역사적으로 아주 중요한 사건인데, 1455년경 독일인 요한 구텐베르크가 42행 성경을 인쇄한 덕분에 인쇄업자, 인문주의자, 예술가들에게 전례 없는 실험적 확산을 일으켰던 것이다. 이런 활판 인쇄기의 급속한 발전은 15세기 인쇄술의 효율성까지 확대시켰다.
특히 이번 전시는 중국과 한국에서 목판 인쇄가 8세기부터 시행되어 왔으며, 구텐베르크 이전 방식이 존재했음을 명시함으로써 다양한 인쇄 기술을 살펴볼 수 있다. (사실 우리의 직지나 중국의 목판 인쇄본이 발견되지 않았다면 동양보다 늘 자신들이 문화으로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서양인들이 지금보다 얼마나 더 콧대가 높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니 직지의 나라 한국인으로서 엄청 통쾌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직지는 현재까지 알려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를 사용하여 인쇄된 책이다. 대한민국 청주에서 1377년에 인쇄된 이 책은 구텐베르크의 성경보다 78년이나 앞선 것이니 정말 자랑스럽지 않을 수 없다. 직지는 대한민국의 국보(1992년 분류 제1132호)로 지정되었으며, 2001년 9월 4일에는 세계기록유산에도 등재되었다. 백운대사와 그의 제자인 석찬과 달담이 지은 이 책은 경덕전등록, 선문염송 등 다양한 작품에서 선불교의 본질적인 요소를 담고 있다. 모든 사람이 선의 본질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주제는 이 교리를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사용되었는데 오늘날까지도 한국 불교 조계종의 주요 경전이다. 우리 마음에 부처가 있으니 청정한 불심으로 돌아가기 위해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다는 것이 직지의 요지이다.
조선 고종(1863~1907) 때 서울 주재 프랑스 영사였던 빅토르 꼴랭 드 플랑시(Victor Collin de Plancy)는 직지를 비롯한 한국 고서 수백 권을 입수해 프랑스로 가져왔다. 직지는 1911년 그가 사망할 때까지 그의 재산으로 남아 있었는데, 1950년 수집가 앙리 베베르(Henri Vever)에게 매각되어 현재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기증되었고 1952년 BnF 소장품에 포함되었다. 그리고 전시장에서 본 직지 관련 영상을 찾아보니 유튜브에서 볼 수 있기에 풀버전으로 봉주르파리 독자들과도 공유한다. https://youtu.be/LbQ8lO_0YOg
직지는 보안 및 보존상의 이유로 대중에게 거의 공개되지 않았고 1972년 유네스코가 파리에서 개최한 "세계 책의 해" 전시에서 공개된 이후 50년만에 다시 세상에 나온 것이다. 당시 서구에서 금속 활자로 인쇄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책으로 인정받았고 이듬해 동양의 보물전에서 직지는 국립도서관에서 가장 희귀하고 귀중한 필사본과 함께 전시되었다. 그런 만큼 나의 생전에 언제 또 직지를 볼 수 있을지 모르므로 이번 전시는 아주 소중했다. 다만 많은 사람들이 직지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Gallica에서 온라인으로 볼 수 있다. 이 직지 스캔은 모두 무료로 보고 다운로드할 수 있다. 그래서 링크 추가!
https://gallica.bnf.fr/ark:/12148/btv1b10527116j
이번 전시에서는 구텐베르크의 성경 두 권을 볼 수 있는데 하나는 양피지에 인쇄되어 있으며 마인츠 지역에서 고급스럽게 칠하고 조명을 받아 보존 상태가 매우 뛰어나다. 종이에 인쇄된 다른 하나는 더 세심하게 윤활 처리되고 장식되어 있다. 1456년에 손으로 쓴 부분이 있어 작품의 제작 날짜를 정의할 수 있는 희귀한 자료 중 하나이다. 둘 다 서양 타이포그래피의 시작을 이해하는 데 귀중한 단서를 가지고 있어 역사적 가치가 있는 것이다. 또한 인쇄물의 레이아웃, 비라틴 타이포그래피 인쇄(특히 그리스어 및 히브리어), 음악, 일러스트레이션 삽입 또는 다시 텍스트와 이미지의 채색과 같은 다양한 종류의 기술까지 관찰할 수 있다.
구텐베르크의 혁신은 금속 예술과 그래픽 예술에서 쓰이던 주조, 각인 전사 등의 기술을 결합하여 거의 1300페이지에 달하는 성경 사본을 시장에 내놓았던 것이다. 이러한 기술이 완성되기까지의 시행착오와 실험의 과정을 이번에 전시된 2백여 작품을 통해 알아 볼 수 있다. 전시장은 15세기의 활판 인쇄술을 위한 진정한 실험실처럼 느껴지고 실제로 그러한 분위기를 잘 살려주기 위해 마인츠의 구텐베르크 박물관에서 대여한 프린터기가 전시되어있다. 도슨트가 실제로 이 기계를 사용해 인쇄 과정을 설명했는데 굉장히 흥미를 끌었다. 인쇄하는 기계를 보니 신문을 이렇게 누르며 발행해서 언론을 프레스라고 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비록 실제 인쇄를 할 수는 없지만 관람객들이 직접 글자를 조합해서 재미있게 체험할 수 있게 알파벳들과 활자판, 맞은편에는 거울을 설치해두었다. 이렇게 신경써서 준비해놨는데 안 해볼 수는 없지 않겠나 싶어서 나도 이름을 한번 조합해 보고 앞에서 인증샷도 찍었다. ㅎㅎ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관람전에는 왠지 무미건조한 느낌의 전시일거라 생각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고 굉장히 흥미롭고 귀한 전시였다. 개인적으로 BnF의 전시들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한데, 일반적으로 미술관 전시작들은 비교적 쉽게 접할 수 있고 미술관끼리 대여도 하는데 비해 도서관의 전시들은 그들이 소장하고 연구하고 있는 기록물들을 전시하기 때문에 이런 기회가 아니면 보기 어렵고 대체 또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손으로 베껴쓰는 필사본의 책들이 인쇄기술의 혁신을 통해 인본주의와 종교개혁이라는 사회문화적 현상은 대량으로 급속히 전파되었다. 그래서 전시장 마지막 부분에는 르네상스 프랑스 문학의 아버지들을 만나 볼 수 있었다.
프랑수와 하블레 (François Rabelais)는 16세기 르네상스 프랑스 작가로 인본주의 문학 운동의 대표주자이다. 그는 그의 소설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 (Pantagruel et Gargantua)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당시 그의 작품은 교회에서 잘 받아 들여지지 않았지만 프랑수와 1세 ,작가 마르그리트 드 나바르(Marguerite de Navarre), 외교관 뒤블레 (Jean Du Bellay)등 국가 차원의 강력한 지지를 받았다.
요아킴 뒤 벨레 (Joachim du Bellay)는 플레이아드(Pléiade)의 시인이며 프랑스 문학이 고대 문학(그리스 및 로마), 따라서 로마에서 성공한 이탈리아 문학과 경쟁할 수 있고 심지어 능가할 수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다. 그래서 프랑스 문학에 고귀함을 부여하고자 “프랑스어의 옹호와 현양”(La Défense et Illustration de la langue française)라는 글을 쓴 것으로 매우 유명하다.
에라스무스는 인본주의 그 자체인 철학자이다. 그는 가톨릭 종교의 복음주의적 개념을 옹호하고 성직자와 교황의 특정 관행을 비판한다. 또한 사실상 로마의 바실리카 공사를 마치는 데 사용된 면벌부 거래를 비난하며 더 이상 중세의 종교라는 고정된 확실성에 만족하지 않고 모든 것에 의문을 제기하고 지식을 심화하고자 한다. 이런 인본주의자들은 그들이 재발견한 그리스의 고대로부터 영감을 얻었고, 더 이상 그들의 관심을 신에 두지 않고 인간을 두었다.
불문학도로서 아는 내용이 나오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 프랑스 문학사를 잠깐 언급하고 넘어간다.
이렇듯 인본주의 문학은 16세기 이탈리아에서 시인 페트라르카와 함께 탄생한 문학 예술 운동이다. 특히 구텐베르크의 인쇄기 발명 덕분에 유럽 전역으로 퍼졌던 것을 고려하면 아주 훌륭한 전시 마무리이지 않나 생각한다.
오늘도 많이 보고 배웠다는 뿌듯한 마음을 안고 한국 문화원에서 주최한 컨퍼런스 “직지와 그 유산”에 참석했다. 직지가 50년 만에 전시되는 것을 기념하는 컨퍼런스였다. 게다가 직지 모양의 USB도 참석자에게 선물로 제공했는데, 집에 와서 사용해보니 직지 번역본이 파일로 센스있게 담겨있었다. ㅎㅎ
대한불교조계종 사회외교국장 범종스님과 야닉 브뤼느통 (Yannick Bruneton) 교수님을 중심으로 진행된 흥미로운 컨퍼런스였는데 불교의 역사 뿐만 아니라 인쇄의 역사 특히 직지의 창간 기원과 그 가치, 문화적, 기술적, 종교적, 그리고 수세기에 걸친 유산에 대해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개인적인 사심으로는 브뤼트통 교수님의 뛰어난 한불 통번역 실력과 불교에 대한 깊은 이해도에 굉장히 반했던 시간이었다.
다만 우리가 이렇게 직지를 알게되고 자랑스럽게 소개할 수 있게 가장 큰 역할을 하셨던 박병선 박사에 대한 그 어떠한 언급도 없었던 점이 괜히 서운했다. 박병선 박사님에 대한 기본적인 예우가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은 컨퍼런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