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크마르 앙드레 미술관: Füssli, 꿈과 환상 사이 > 한지수의 봉주르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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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수의 봉주르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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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마르 앙드레 미술관: Füssli, 꿈과 환상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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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ée Jacquemart-André: Füssli, entre rêve et fantastique (2022년 9월 16일부터 2023년 1월 23일까지)


터너 전시 이후에 처음 찾아 온 < 자크마르 앙드레 미술관> ! 코로나가 유행하면서 봉쇄령이 내리고 박물관들이 다 문을 닫았던 시절에 마지막으로 다녀왔던 장소였다. 2년만에 방문하게 되어 반갑기도 하고 어느새 세월이 이렇게 지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코로나가 없었다면 <봉주르 파리> 코너도 더 풍부해졌을텐데 아쉽지만 시대성을 반영하는 일부가 되지 않나 싶어 그 공백기 또한 의미가 없진 않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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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의 일정은 크게 3가지였는데, 자크마르 앙드레 미술관에서 « 퓌실리 » 전시를 보고, 오르세 미술관에 가서 시작한지 이틀밖에 안된 따끈따끈한 신상 전시 « 뭉크 »전을 보고 난 후, 오페라 바스티유에 가서 « 카풀렛 가와 몬테규 가 »라고 하는 벨리니의 오페라를 보는 것이었다. 이렇게 보면 엄청 부지런한 부르주아 한량의 일과 같지만, 밖에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한 번 나갈 때 한꺼번에 계획을 몰아서 실천하는 편이라 그렇다. 



기념품샵을 지나쳐서 전시장을 가게 만들어 놓은 구조라 이번엔 굿즈들 먼저 구경하고 전시보러 슝슝



'퓌실리' 전시는 요즘 지하철에서 많이  광고하는 핫한 전시이다. 깨알 자랑을 하자면, 파리에서 광고하는 모든 전시들을 다 보고 다니며 <봉주르 파리>를 위해 취재중이다. ㅎㅎ 사실 문화 생활을 즐기는 것은 참 즐겁지만 막상 글로 남기고 기록하려는 일은 귀찮을 때도 많지만 <봉주르 파리>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스스로에게도 나름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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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방문하는 만큼 미술관을 좀 소개하자면,  자크마르-앙드레 미술관은 에두아르 앙드레 (Edouard André)와 그의 아내 넬리 자크마르 (Nélie Jacquemart), 이 두 명의 위대한 수집가가 19세기 말에 파리 오스만(Haussmann)에 지은 개인 저택이었고 지금은 이 19세기의 공간에서 다양한 전시회를 열고 있다. 에두아르 앙드레는 1833년 12월 13일 프랑스 남동부의 부유한 개신교 은행가 집안에서 태어났고 자신의 초상화를 그리기 위해 이미 성공적인 초상화가로 명성이 있는 젊은 예술가인 넬리 자크마르에게 의뢰하며 그들의 인연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예술 애호가인 에두아르 앙드레는 18세기의 그림, 조각, 태피스트리 및 예술 작품 컬렉션을 구성하는 프로젝트를 구상했고 아내와 함께 체계적으로 컬렉션을 구축했다. 넬리 자크마르는 14세기와 15세기의 원시 시대부터 르네상스에 이르기까지 이탈리아 회화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였다. 그래서 이탈리아 관이 따로 마련되어 있기도 하다. 그렇게 그들은 자신들의 수집을 과시하기 위해 집을 마련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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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세상을 떠난 후, 넬리가 많은 방문객들을 위해 자신들의 컬렉션을 공개하기를 바란다는 유언을 남겼기 때문에 그들의 저택이 프랑스 연구소 (Institut de France)의 재산이 되었다. 정말이지 부럽고 멋있는 삶이다. 건축물 자체와 내부 인테리어도 너무 아름다워서 꼭 한 번 가볼 만한 곳이다. 개인적으로 베르사유 궁전보다 예쁜 것 같다. 베르사유 궁전은 규모적으로 압도되는 것도 있고 화려함도 뛰어나지만 막상 살라고 하면 거절하고 싶은 장소인데, 이 미술관은 한 번쯤 살아보고 싶은 귀족풍 집이다.



이번 전시는 스위스 태생의 영국 화가 '요한 하인리히 퓌슬리(Johann Heinrich Füssli, 1741-1825)' 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60여 점의 작품을 통해 상상과 숭고의 예술가인 퓌슬리의 작품에서 가장 상징적인 주제를 탐구한다. 셰익스피어의 주제에서 꿈, 악몽, 환영의 표현에 이르기까지 신화와 성서 삽화를 통해 퓌슬리는 꿈과 환상 사이를 오가는 새로운 미학을 추구한 작가다. 또한 그의 그림에서 기이함과 환상, 숭고함과 그로테스크함이 어두운 낭만주의의 미학과 공포가 결합되어 역설적이고 극적인 작품을 보여준다.


퓌실리는 이번에 처음 알게 된 작가인데, 개인적으로 아주 마음에 들었다. 문학도로서 큰 자부심과 문학 사랑이 큰 나와 퓌실리는 뭔가 통하는데가 있는 것 같았다. 단테, 셰익스피어, 신화 등등의 이야기를 그림속에 담고 있고 문학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작품들이 많아서 이야기를 찾아가는 재미가 있었다. 실제로 퓌슬리는 어린 시절부터 영어 연극학, 특히 셰익스피어 같은 작가들에게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영국 연극의 무대 연출, 배우들의 의상 그리고 그들의 연기에서 영감을 받았다. 


참고로 18세기 후반에 런던 극장 레퍼토리의 거의 4분의 1을 셰익스피어의 희곡이 구성할 정도로 큰 인기였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맥베스는 영국에서 셰익스피어의 가장 인기 있고 가장 많이 공연된 작품이었고 퓌슬리 전시에도 맥베스 전시장이 따로 있을 만큼 당대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셰익스피어의 회화 해석가로 통할 만큼 퓌슬리는 극작가에게서 텍스트의 표현력을 빌려 자신만의 강한 특이성을 가진 이미지를 구성하고 그 자체로 연극 장르를 만든다. 극적인 효과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에서 그는 David Garrick, Sarah Siddons(1775-1831) 또는 Hanna Pritchard(1711-1768)와 같은 당대 가장 유명한 배우의 연기, 몸짓, 정서적인 힘 및 강조에서 항상 영감을 받아 그림을 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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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나 셰익스피어 햄릿의 3막 4장을 그린 작품이 인상적이었다. 보자마자 알아챈 장면은 아니고 알아보기 쉽게 퓌슬리가 센스있게 액자틀에 적어두었다. ㅎㅎ 그 덕분에 관심이 생겨  작품 속 장면을 찾아서 다시 읽어 보았다. 


커튼 뒤에 숨겨진 폴로니어스는 햄릿의 어머니와의 대화를 엿듣다 존재가 발각되어 햄릿이 그를 죽이게 된다. 폴로니어스는 오필리아의 아버지이고 사랑하는 여인의 아버지를 죽이며 어머니의 합당하지 못한 행동과 미덕의 부족을 책망하는 장면이다. 죽은 왕의 망령이 다시 나타나 햄릿에게 클로디어스에게 복수를 하되 어머니의 고통을 더하지 말라고 요청한다. 클로디어스는 햄릿의 삼촌이었으나 국왕인 형이 죽은 후 왕비와 결혼하여 새 국왕이자 새아버지가 된 인물이다. 햄릿은 어머니에게 더 이상 클로디어스의 침대를 함께 사용하지 말라고 부탁하며 폴로니우스의 시체를 뒤로 끌고 방을 나간다. 


오랜만에 햄릿을 읽어보니 인간의 복잡 미묘한 감정을 참 잘 담아내는 문장들이 많다고 새삼 느끼게 되었다. 역시 고전 문학의 위대함이란!  게다가 그림을 통해 같은 장면을 비교해보니 이 작품은 놀라울 정도의 즉각적인 효과로 상황의 긴급성과 움직임을 연상시켰다.



미신, 꿈, 초자연적인 영역에 대해 퓌슬리는 깊은 호소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인간이 모든 경험과 현상을 설명하려고 할 때 잠과 꿈의 세계는 측량할 수 없는 복잡성에 매료되었기 때문이라 한다. 더 나아가, 퓌슬리의 무의식 탐구는 그의 작업에 대한 20세기 초 초현실주의자들의 열정을 불러일으켰다. 여기서 특히 셰익스피어 의 « 한여름 밤의 꿈 »에서 요정의 존재와 함께 영감을 찾았다. 퓌슬리의 그림 세계는 하이브리드 생물, 괴물, 요정 및 외모를 통해 환상과 꿈, 환상 사이를 오가는 시대에 비정형적이고 기이한 새로운 미학을 부과하면서 이를 통해 대중에게 해석의 여지를 남겨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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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내 문학적 감수성을 자극하는 전시를 만나게 되어 신이 났고 미술관 자체도 오랜만에 방문해서 즐거운 시간이었다. 그렇다고 엄청난 문학적 소양을 요구하는 전시는 아니어서 기본적인 신화, 고전 세계 문학들을 알면  이야기를 유추할 수 있는 어렵지 않은 전시였다. 이번주에 다녀온 전시들 중에, 내게 낯설은 작가여서 아무래도 가장 덜 기대를 했는데 예상외의  큰 수확을 얻은 기분이었다. 역시 배움에는 끝이 없는 것 같다. 즐거움엔 끝이 없듯이 ㅎㅎ




글ㆍ사진_한지수 (파리통신원ㆍ에디터)
소르본파리노르대학교에서 현대 문학을 전공하고 동 대학원에서 텍스트 이미지 문화를 공부하고 있다.
갤러리자인제노의 파리통신원 및 객원 큐레이터, 주 프랑스 한국문화원 도슨트로 활동 중이며,
문화예술신문-아트앤컬쳐에 에디터로 리뷰를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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