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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수의 봉주르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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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식 미술관: 80년대 프랑스의 패션, 디자인 및 그래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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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ée des Arts Décoratifs : Années 80. Mode, design et graphisme en France

 

작년 2월 <생택쥐페리의 어린 왕자>  전시 이후 오랜만에 장식 미술관을 다녀왔다. 어린 왕자 전시를 보고 감명받았던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1년이 훌쩍 지났다니 시간이 정말 빨리 지나간다.  


이번 전시도 교수님과 함께한 박물관 나들이다. 사실 지난 기술 공예 박물관에서 동기들이 큐레이터의 설명을 대충 들으며  필기도 하지 않고  딴짓하며 하품까지 했다며  교수님이 단체 메일로 혼내셨다. 정말  대학원생이 되어서도 초등학생처럼 혼나는 것은 어느 나라나 똑같은 것 같다. 사실 메일을 받고 혹시  교수님이 나를 저격하신걸까 하고 마음 졸였는데 모든 동기들이 다 본인들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휴, 다들 같은 마음이어서 얼마나 안심이 되던지…


나를 포함한 모든 학생들이 이번 전시에는 큐레이터의 설명을 완전히 정자세로 경청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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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외부는 공사중. 우리는 일반 방문객에게 문을 열기전  입장했고  우리가 들어오니 다시 전시장의 철문을 닫았다.


장식 미술관은 이번 특별 전시회를 통해 1980년대를 기념하고 있다. 1981년 프랑수와 미테랑 (François Mitterrand)의 당선부터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때까지 이 역사적인 10년이  패션, 디자인 및 그래픽 디자인 분야의 정치적, 예술적 전환점으로 프랑스에 반향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오브제, 가구, 패션 실루엣, 포스터, 사진, 클립, 레코드 커버, 팬 잡지 등 700점의 작품을 전시하며 포스트모더니즘이 열어준 모든 예술적 가능성을 이 열광적인 시대를 통해 조명하고자 한다.  전시작 한 점 당 100유로를 작가에게 준다고 한다. 그리고 장식 미술관의 소장품이어도 돈을 지불해야 한다고 한다. 사실 13만원 정도에 몇 개월 동안 전시하라고 한 것이 살짝 열정페이가 아닐까 생각했는데, 전시 주최측 입장에서 보면 전시 하나를 기획하는데 얼마나 많은 예산이 필요할지 가늠해보았다.. (대략 계산해본 바에 의하면 작품 대여 값만 한화로 1억가까이 드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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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프랑수아 미테랑이 당선되면서 프랑스의 결정적인 정치적 변화가 시작되었다. 프랑스 최초의 사회주의자 대통령인 미테랑은 "조용한 힘 (La force tranquille) " 이라는 슬로건을 통해 글로벌 시각 커뮤니케이션의 새로운 시대를 열며 선거 마케팅 시대가 왔음을  알렸다고 한다. 또한 빌레트와 아랍 연구소, 오르세 미술관의 주요 건축 작품에는 시각적 정체성을 부여했다.  



프랑스에서는 6월에는 음악 축제 (Fête de la Musique)가 열리며 거리마다 음악가들이 나오고 공연장에서 음악이 울려 퍼지는데, 이 축제를 1982년 6월 21일에 문화부 장관인 자크 랑 (Jack Lang)이 출범시켰고 이는 시대의 상징적인 자극이 되었다.  그는 또한 1986년 프랑스 패션 연구소(IFM)의 창설과 함께 패션의 대중적 인식을 위해 노력했다. 게다가 이 시기에는 미디어와 시청각은 전례 없는 성장을 경험했는데  Canal+, M6 등과 같은 새로운 TV 채널의 증가는 광고, 영화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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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부가 1979년에 가구 혁신을 위해 시작한 VIA(Valorisation de l’Innovation dans l’Ameublement)의 활동은 당시 젊은 디자이너 세대에게 " 화이트 카드 (carte blanche, 원하는 것을 모두 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표현)"를 수여했다. 그래서 지난 수십 년간과는 달리 예술 학교나 대중적인 뛰어난 개인이 우선시 되었다. 덕분에 현대적 창작을 위한 아방가르드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이 뿐만 아니라 1980년대에는  자유의 바람이 불어 패션쇼는 화려한 쇼로 바뀌었고  클럽에서는 파리 전체가 뉴 웨이브, 록, 힙합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당시 젊은이들은 자신이 속한 집단을 다양화하고 여러 하위문화를 만들어냈다. 



또한 이 시대의 패션은 폭발적으로 발전했는데, 고대부터 1930년대까지 시대에 영감을 받은 패션이 등장했다. 작년에 장식 미술관에서 회고전을 진행했던 티에리 뮈글러(Thierry Mugler), 장 폴 고티에 (Jean Paul Gaultier), 비비안 웨스트우드 (Vivienne Westwood) 등의 디자이너가 역사적인 실루엣에서 영감을 받았다. 꼼 데 가르송 (Comme des Garçons)의 마틴 마르지엘라 (Martin Margiela), 레이 가와쿠보 (Rei Kawakubo)는 의류의 개념을 해체하려고 시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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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이 미야케 (Issey Miyake)의 의상도 전시가 되어있었는데, 처음에 보았을 때는 엄마가 자주 입던 옷 브랜드와 비슷하네 라고 생각만했었는데, 캡션을 보니 이세이 미야케가 맞아서 새삼 놀랐다. ㅋㅋ 그의 넉넉한 형태 의상은 건축적이며 진정한 표현 매체가 되도록 의도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Naf Naf, Kookaï, Benetton  같은  지금까지도 파리지앙의 옷장을 가득 채우고 있는 브랜드의 의상들도 볼 수 있었다. 



그렇게 장식 미술관은 프랑스 80년대의 하이라이트를 되짚으며 역사를 보여주고 80년대가 얼마나 자유롭고 문화적으로 부흥기였는지를 상기시켰다. 사실 나는 크게 공감하지 못한 부분이 꽤나 있는데, 교수님께서는 흘러나오는 노래나 포스터 등에 추억에 젖어드시는 듯 했다. 오늘은 다른 때와 달리.  교통 파업과 청소 파업등을 뚫고 와 힘들게 관람한 전시였기에 뭔가 더 의미를 찾았다고 스스로 위안을 하고 싶다. 



 기념품 샵에서는 언뜻 들어도 옛날 80년대 풍의 노래들이 흘러나오고 오브제들도 옛날 레트로 느낌이 가득하여 보는 재미가 있었지만 교수님이 빨리 나가셔서 구경만하고 나왔다. ㅠㅠ




글ㆍ사진_한지수 (파리통신원ㆍ에디터)
소르본파리노르대학교에서 현대 문학을 전공하고 동 대학원에서 텍스트 이미지 문화를 공부하고 있다.
갤러리자인제노의 파리통신원 및 객원 큐레이터, 주 프랑스 한국문화원 도슨트로 활동 중이며,
문화예술신문-아트앤컬쳐에 에디터로 리뷰를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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