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원 : 나전, 시대를 초월한 빛 한국의 나전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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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jeon, rencontre avec l’éclat intemporel de la nacre (2022년 9월 29일 ~ 11월 19일)
한국 문화원에서 주최한 <한동엽 무용단> 공연을 수업을 마치자마자 다녀왔다. 내가 공연이나 전시관람을 좋아하는 것을 아는 철학 박사 언니가 표를 마련 해주셨는데 덕분에 아주 감사하고 귀한 공연을 볼 수 있었다. 공연을 보기 전, 미리 도착해서 도서관의 책도 읽으며 잠시 평화로운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잡지류들을 정기적으로 배포한다고 해서 주제가 마음에 드는 책을 몇 권 챙겨서 가져왔다. 한편 29일부터 ‘나전’ 관련 새로운 전시가 진행된다고 하는 정보도 알게 되어 며칠 후 다시 한국 문화원을 다녀오게 되었다.
사실 도서관에서 대단한 책을 읽은 것은 아니고 어린이 동화책과 만화책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었는데 ㅋㅋ 이 책은 내 인생에 있어서 아주 뜻깊은 책이다. 어린 시절 오빠와 서로 먼저 읽겠다고 싸우면서 책장이 닳도록 열심히 읽었던 기억이 있다. 당시 이 책들을 사주신 분은 훗날 우리의 이모부가 되셨는데 소중한 이모를 뺏기는 것 같아 약간 서운한 감정이 있었는데 그 마음을 싹 사라지게 해준 귀한 책 선물이었다. ㅋㅋ 이 책을 마르고 닳도록 열심히 읽었던 덕분에 초등학생때 이탈리아 여행시 유로 자전거나라 가이드 투어를 들을 때 이것 저것 아는 척을 할 수 있었던 기억도 있다. 그리고 더 시간이 흘러서는, 대학교에서 그리스 로마 신화와 그리스 비극을 배우는데 아주 결정적인 도움을 준 밑바탕 책이다.
추억의 독서 시간을 가진 후, 공연을 보러 갔다. 이번 공연은 한국에서도 보기 어려운 남성 무용수로만 구성된 공연이었는데 아주 재미있고 경쾌하면서도 뭔가 울림이 있었다. 승무, 소고 춤, 한량 학무, 살풀이 춤, 신 시나위, 설 장구, 열 두발 상모놀이 등등 다양한 전통 춤으로 구성된 공연이었다. 사실 파리에서 발레와 오페라만 보러 다니다가 오랜만에 한국 전통 무용을 보니 역시 우리 것의 아름다움을 새삼 깨닫 게 되었다.
소고, 북 등의 악기와 더불어 고운 한복 의상으로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우아하게 표현하고 있는 우리 전통 춤에 매료되었다. 인간 영혼의 깊숙한 곳으로 이끄는 세상의 에너지를 포착할 수 있을 뿐더러 춤 속에 이야기와 시가 깃든 한국 무용의 세계를 경험한 좋은 기회였다. 한국무용의 절제, 분별력, 세련됨에 경의의 박수가 절로 나왔다. 게다가 중간에 엿장수도 등장해서 관객들에게 엿도 나눠주고, 관람객들을 무대 위로 불러내 함께 호흡하는 등 알찬 구성에 감탄했다. 아쉬운 점이라고 하면 너무 빨리 끝났다는 것 ? ㅎㅎ 내 옆에 앉은 프랑스 중년 여성분은 중간중간에 '얼씨구~ ' 하는 추임새를 따라하셨는데 너무 귀여웠다.
다시 오늘의 본론인 나전 전시에 대한 포스팅을 이제야 시작한다. 서두에서 너무 신난 바람에 길을 약간 잃었다. ㅋㅋ 한국 문화원의 행사와 전시들은 정말 실망해 본 적이 없을 만큼 뛰어나다. 지난 번 보고 온, 생황 연주회도 신비로움 그 자체였고, 얼마전 타계하신 방혜자 선생님의 전시는 내가 뽑은 올해의 최고 전시 중 하나이다. 게다가 이번 나전 전시 또한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나전의 광채에 ‘와~ 멋있다’ 라는 말이 입밖으로 튀어 나올 정도로 아름다웠다.
이번 전시는 시대를 초월해 스스로를 재창조하는 예술을 발견하도록 우리를 초대하고 있으며 이러한 예술적 표현은 나전의 과거와 그 현대적 변화를 살펴보게 하며, 미래의 재해석 가능성도 시사한다는 기획의도를 갖고 있다. 전통을 계승하거나 창조적인 재해석에 종사하는 13명 장인의 작품(일부는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됨)을 통해 수세기에 걸친 나전의 진화를 따라가며 시대를 초월한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는 전시였다. 또한 이번 전시에서는 나전의 발원지인 통영시를 부각하는데, 통영의 고품질 자개 덕분에 400년 이상 이 전통 예술이 명맥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나전' 은 천 년 된 정교한 나전 상감 기법을 일컫는 말이라 한다. 나전하면 칠기가 바로 나올 정도로 들어와서 무슨 뜻인지는 생각해보지 못했는데 이제야 제대로 알게 되었다. 이 한국 공예를 대표하는 정교한 장식 방법은 조개에서 추출한 다음 모든 종류의 패턴을 만들기 위해 신중하게 조각하는 '나전' 작업을 거친 다음 , 장식할 표면에 상감한 후 옻칠 층으로 덮는 아주 섬세하고 정성을 들여야 하는 작업이다.
새, 꽃, 구름 등 자연에서 영감을 받은 나전은 고려 이래로 보석함, 각종 케이스, 아름다운 가구 등을 은은한 진주 광택으로 장식하는 방법이고 고려 시대에는 나전칠기 장신구들을 외교적 선물로 자주 보냈다고 한다. 물론 작업은 고되고 결과물은 고귀하다 보니 특정 권력 계층만을 위한 공예품이었지만 조선 시대에 와서는 서민들 사이에 전파되며 대중화되었다고 한다.
자개의 눈부신 진주 빛 덕분에 아름다운 보물을 발견하는 것 같은 기분이 내내 들었는데, 전시장이 한 층 밖에 없다는 게 아쉬웠다. 게다가 이 전시를 좀 더 일찍 알았다면, 나전 아뜰리에가 있어서 참여해 볼 수 있었을 텐데 내가 신청하려고 사이트에 들어가니 이미 마감되어 있었다. ㅠㅠ 프랑스의 옛 사치품들을 보면 물론 아름답긴 하지만 오래 보면 싫증이 좀 나는 화려함이었는데 우리 나전의 아름다움은 오래 보면 볼수록 더 세련된 것 같다. 한국문화원만 다녀오면 애국심이 고취되는 것 같긴 하지만 ㅋㅋ 그래도 진심이다.
또한 "조선통신사 - 평화의 여정" (2022년 9월 23일 ~ 10월 31일) 이라는 전시도 진행중이다. 조선통신사란 한국에서 일본으로 파견된 외교사절을 말하고 1607년부터 1811년까지 12차례 파견되어 전쟁이 없던 기간 동안 평화의 강력한 상징이 었다고 한다. 물론 한국사 시간에 배운 내용이지만 문화원측의 설명을 읽어보고 다시 공부했다.
한양에서 에도까지 4,500km에 걸쳐 약 500명의 한국 사절이 기록된 문서, 그림 등 많은 문서를 증거로 남겼는데 그것들이 2017년 10월 유네스코 문화유산 목록에 등재되었다고 한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작품들은 부산에 거주하는 현대작가들의 조선통신사를 연상시키는 문서들로 구성됐다.
이역만리 먼 타국에서 한국 문화원은 뭔가 내게 고향에 온 듯한 편안함을 주는 공간이다. 세종 학당과 훌륭한 전시들도 있고 한국책으로 가득 찬 도서관도 있다 보니 언제 와도 재미있고 우리 문화를 재발견하게 되는 즐거움으로 가득한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