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종 라 로슈: 르 코르뷔지에,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10주년 > 한지수의 봉주르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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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수의 봉주르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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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종 라 로슈: 르 코르뷔지에,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10주년

본문

2026년 8월 18일 - 10월 3일 
Maison La Roche: Le Corbusier, 10 ans au Patrimoine mondial



파리 16구의 주택가에 자리한 메종 라 로슈는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 1887~1965)의 초기 건축 세계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1923년부터 1925년까지 르 코르뷔지에와 피에르 잔느레(Pierre Jeanneret)가 설계한 이 건축물은 은행가이자 근대미술 컬렉터였던 라울 라 로슈(Raoul La Roche)를 위해 지어진 주택이자 갤러리다. 이곳에서는 철근 콘크리트와 자유로운 평면, 수평창 등 당시로서는 새로운 건축적 시도가 곳곳에 나타난다. 1996년 프랑스 역사기념물로 지정된 데 이어, 2016년에는 르 코르뷔지에의 다른 16개 작품과 함께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 작품: 근대운동에 대한 탁월한 기여’(L’Œuvre architecturale de Le Corbusier, une contribution exceptionnelle au Mouvement Moderne)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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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ison La Roche, Photo: Han Jisoo 


르 코르뷔지에는 20세기 건축의 흐름을 바꾼 대표적인 근대 건축가다. 본명은 샤를 에두아르 잔느레(Charles-Édouard Jeanneret)로 스위스에서 태어났다. 1917년 파리에 정착한 그는 1920년부터 ‘르 코르뷔지에’라는 이름을 사용하며 본격적으로 자신의 건축 세계를 펼쳐 나갔다. 건축가이자 도시계획가, 화가, 이론가로 활동한 그는 산업화와 도시화로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 맞춰 현대인의 삶을 위한 새로운 공간을 모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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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ison La Roche, Photo: Han Jisoo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물이 중요한 이유는 건축을 단순히 건물을 짓는 기술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의 삶을 담아내는 방식으로 바라보았다는 데 있다. 그는 역사적 양식과 장식에 의존하던 기존 건축에서 벗어나 철근 콘크리트와 같은 새로운 재료를 활용하고, 빛과 공간, 사람의 움직임을 중심으로 건축을 구성했다. 1923년 출간한 『건축을 향하여(Vers une Architecture)』에서는 이러한 생각을 체계적으로 제시했으며, 이후 근대 건축의 이론과 실천에 큰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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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ison La Roche, Photo: Han Jisoo 
 

그의 건축관은 ‘새로운 건축의 다섯 가지 원칙’으로 구체화됐다. 필로티, 자유로운 평면, 자유로운 입면, 수평창, 옥상정원으로 대표되는 이 원칙들은 건축물의 구조와 공간을 새롭게 구성하는 핵심 요소였다. 메종 라 로슈가 설계되던 1920년대 초 르 코르뷔지에는 이미 이러한 원칙을 다양한 방식으로 실험하고 있었고, 메종 라 로슈는 그의 초기 건축 사상이 실제 공간으로 구현되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사례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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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ison La Roche, Photo: Han Jisoo 

메종 라 로슈를 이해하려면 건축주 라울 라 로슈의 이야기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1889년 스위스에서 태어난 그는 1912년 파리로 이주해 은행가로 일하는 한편 근대미술에 깊은 관심을 가진 컬렉터였다. 1918년 르 코르뷔지에를 만나면서 피카소, 브라크, 레제 등 당대 작가들의 작품을 본격적으로 수집했고, 자신의 컬렉션을 전시할 공간을 구상하게 된다. 그렇게 탄생한 메종 라 로슈의 한쪽에는 회화 컬렉션을 선보이는 갤러리가, 다른 한쪽에는 개인적인 생활을 위한 주거 공간이 마련됐다. 근대미술을 사랑했던 컬렉터의 삶과 르 코르뷔지에가 추구한 새로운 건축이 한 공간 안에서 만난 것이다. 라 로슈는 1965년 세상을 떠나기 전 이 집을 르 코르뷔지에 재단에 기증했고, 이후 건축가의 작품 세계를 보여주는 중요한 장소로 보존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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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ison La Roche, Photo: Han Jisoo 

메종 라 로슈는 1920년대 후반부터 여러 사진에 담기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특히 르 코르뷔지에의 순수주의 빌라들과 함께 그의 초기 건축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자리 잡았다. 순수주의는 장식적 요소를 최소화하고 기하학적 형태와 비례, 질서를 통해 건축의 본질을 드러내려는 미학적 경향이다. 메종 라 로슈의 내부로 들어서면 계단과 램프를 따라 공간이 연속적으로 펼쳐지고, 이동하는 위치에 따라 시선과 빛의 방향이 달라진다. 한 공간에서 다른 공간으로 이동할 때마다 새로운 장면이 나타나도록 설계된 것이다. 건축물을 한눈에 바라보는 고정된 대상으로 보지 않고, 사람의 움직임을 통해 시간 속에서 경험하는 공간으로 만든 점이 큰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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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ison La Roche, Photo: Han Jisoo 

이러한 공간 구성은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적 산책(Promenade architecturale)’ 개념과 연결된다. 르 코르뷔지에 재단에 따르면 이 개념은 메종 라 로슈에서 1923년 구체화됐으며, ‘건축적 산책’이라는 표현은 1929년 처음 사용됐다. 메종 라 로슈에서는 건축의 전체 모습을 한눈에 보여주기보다 관람자가 직접 이동하면서 공간을 차례로 발견하도록 동선을 구성했다. 계단과 램프를 따라 움직이는 동안 시선은 새로운 방향으로 열리고, 빛과 그림자, 공간의 높이와 깊이도 끊임없이 달라진다. 건축은 더 이상 한 지점에서 바라보는 정적인 대상이 아니라, 몸의 움직임과 시간의 흐름 속에서 경험하는 공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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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ison La Roche, Photo: Han Jisoo 


2026년 7월 17일은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 작품이 유네스코 세계유산 목록에 등재된 지 10주년이 되는 해다. 이를 기념해 르 코르뷔지에 재단은 특별전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재단 소장품 가운데 17개 구성 유산을 조명하기 위해 건축 도면과 원본 모형, 사진, 아카이브 자료 등을 선보인다. 또한 베알 프로덕션(Beall Productions)을 위해 슈테판 코르닉(Stefan Cornic)이 제작한 다큐멘터리 가운데 라 로슈 주택과 잔느레 주택(Maisons La Roche et Jeanneret), 프뤼제 주거단지(Cité Frugès), 사보아 별장(Villa Savoye), 몰리토르 아파트(Immeuble Molitor), 뒤발 공장(Usine Duval)을 다룬 영상이 처음으로 공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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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ison La Roche, Photo: Han Jisoo 


르 코르뷔지에의 세계유산 등재는 독일, 아르헨티나, 벨기에, 프랑스, 인도, 일본, 스위스 등 7개국에 흩어진 17개의 건축물을 하나의 연속유산으로 묶어 그 보편적 가치를 인정한 것이다. 개인 주택과 공동주택에서 종교 건축물, 문화·행정 시설에 이르기까지 작품의 성격도 다양하다. 서로 다른 장소와 기능을 지닌 건축물들을 따라가다 보면 르 코르뷔지에가 20세기 건축에 가져온 변화와 그 영향력이 한층 선명하게 드러난다. 기존의 건축 양식에서 벗어나 현대인의 삶에 맞는 건축의 언어를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이들은 하나의 세계유산으로 묶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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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ison La Roche, Photo: Han Jisoo 

이번 특별전은 지난 10년을 돌아보는 기념의 자리인 동시에,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을 앞으로 어떻게 지켜나갈 것인가를 생각하는 시점이기도 하다. 세계유산으로 인정받은 건축적 가치를 온전히 보존하는 일은 물론, 그 의미를 다음 세대와 어떻게 나눌 것인지도 중요한 과제다. 르 코르뷔지에의 유산을 과거의 건축으로 남겨두는 것이 아니라, 오늘과 미래의 건축 문화 속에서 그 가치를 새롭게 이어가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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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ison La Roche, Photo: Han Jisoo 

메종 라 로슈를 찾으면 한 건축가의 대표작을 감상하는 데서 나아가, 공간을 따라 걸으며 건축을 몸으로 경험하게 된다. 한 세기 전 르 코르뷔지에가 구상했던 새로운 삶의 방식이 여전히 공간 안에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유산 등재 10주년을 맞은 이번 전시는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을 지난 세기의 유산으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는 건축적 시도로 다시 살펴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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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ison La Roche, Photo: Han Jisoo 




글ㆍ사진_한지수 (파리통신원ㆍ에디터)
소르본파리노르대학교에서 현대문학을 공부하고, 동 대학원에서 문화커뮤니케이션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파리 예술 현장의 숨결을 기록하며 언어와 문화 사이의 미묘한 결을 오래 들여다보았다. 현재는 다양한 문화예술 매체에 글을 기고하며, 파리의 이야기를 수집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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