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촌에 위치한 에이치플럭스 (H-flux) 갤러리는 개관 1주년을 맞아, 5월 23일부터 6월 27일까지 기획전 <속스럽고 자유로운>을 개최한다.
기획전 《속스럽고 자유로운》전시전경 © 작가, 에이치플럭스 갤러리
기획전 《속스럽고 자유로운》전시전경 © 작가, 에이치플럭스 갤러리
이번 전시는 조선시대 민화가 오늘날 어떻게 현대적으로 계승되고 있는지를 조명하고자 기획되었다. 민화는 조선 후기 민중의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발현된 그림으로, 인간의 소박한 소망과 욕망이 전통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고 대담하게 표현되었다. 이러한 파격은 인간 내면의 순수하고 자유로운 본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번 전시는 이런 민화의 ‘속스럽고 자유로운’ 특성을 현대적 감각으로 풀어낸 네 명의 작가의 작품을 선보인다. 민화는 최근 ‘한국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콘텐츠로 새롭게 평가받고 있지만, 민화에 대한 현대적인 해석과 변용은 부족하다. 우리가 다시 민화에 주목하는 이유는 현대미술이 지향하는 핵심가치라고 할 수 있는 ‘자율성’ ‘경계 허물기’ ‘파격’이 민화 정신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는 이러한 민화의 현대성을 탐색하는 자리이다.
김현수는 군인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산속에서 자연과 공명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며 놀이하듯이 작업하고 있다. 그의 그림에는 돈, 철조망, 판문점, 나뭇잎으로 된 탱크, 돈으로 만든 배 등과 같은 소재들이 초현실적으로 결합되어 있다. 이것은 한국의 분단현실과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소재들이다. 작가는 이러한 소재들을 놀이와 유희의 대상으로 삼음으로써 사회화된 나를 해체하고 억압된 현실로부터 “탈주하는 자아”를 상상한다. 이런 그의 작업은 자본주의와 이데올로기에 물든 현대사회를 풍자하면서 민화가 추구해 온 인간의 자유로운 본성을 환기시킨다.
곤도 유카코는 2005년 한국에 정착한 이후, 일상 속 생활용품들과 음식을 주요 소재로 작업해 왔다. 작가는 이를 17세기 네덜란드 바니타스 (Vanitas) 정물화 형식으로 표현함으로써 삶의 유한성과 존재의 본질에 대한 성찰을 담고자 했다. 그는 바니타스 정물화가 죽음을 사유하게 하는 반면에, 민화는 삶의 염원을 다룬다는 점에 주목한다. 이런 이질적인 두 전통을 결합한 자신만의 정물화를 통해 그는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이처럼 익숙한 사물들로 채워진 그의 정물화는 전통과 현대적 일상이 교차하는 유희적인 장면을 연출하는 동시에, 삶의 덧없음과 인간의 소박한 소망을 함께 담아내고 있다.
이지현은 전통 비단에 민화의 책가도 형식과 현대인의 욕망이 담긴 베어브릭을 중첩시켜, 유아적 회귀 본능과 심리적 치유에 대한 가능성을 탐색한다. 베어브릭은 키덜트 문화의 아이콘으로, 고가의 수집품이자 소비사회의 욕망을 상징하는 동시에, 각박한 사회 속에서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자하는 회귀 욕망을 담은 추억의 대상이기도 하다. 그는 전통 매체를 고집하면서도, 그 위에 동시대의 욕망을 교차시킨다. 특히 여러 겹의 비단을 중첩하는 방식은 비단 특유의 반투명한 질감을 살려 화면에 은은한 깊이와 감각적인 밀도를 더한다. 작가는 이처럼 물질적 욕망과 감정의 치유라는 양가적 감정이 반영된 작품을 통해서, 현대인의 사회적 욕망과 내면의 행복을 공존시킨다.
임민성은 자연과 하나 되어 뛰어놀던 어린 시절에 대한 향수를 바탕으로, 현대인의 행복에 대해 질문한다. 그의 신작 <Desirescape 욕망의 정원>은 네델란드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쉬의 <쾌락의 정원>의 배경을 차용하고, 인간의 욕망을 상징하는 소재들을 배치하였다. 여기에는 전통 민화에서 장수를 상징하는 소나무와 학이 등장하고, 명품백, 고급차, 골프문화 등이 이들과 어우러져 있다. 명품백과 고급차는 오늘날 현대사회에서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게 하고 서열을 조장하는 '기호가치'로 소비사회의 욕망을 상징한다. 작가는 이처럼 과거 사람들의 욕망과 현대인의 욕망을 하나의 화면에 병치시킴으로써, "우리가 추구하는 진정한 행복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속스럽고 자유로운> 전시는 민화가 지닌 파격적인 정신과 현대 미술의 가치가 어떻게 만나 새로운 예술적 시너지를 창출하는지 보여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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