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문화ㅡ옛 부채와 근현대 시서화가 어우러진 풍류의 멋
우림화랑(前대림화랑)이 27년만에 여는 두 번째 부채 주제의 특별 기획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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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정 변관식, 雪景, 선면, 15.5X52.3cm, 종이에 수묵담채 1960년 (사진=우림화랑)
음력 5월 5일(약력 6월 22일) 3대 명절 중 하나인 단오절을 기념해 다년간 우리 고미술과 근현대미술을 기획ㆍ전시해 온 우림화랑(종로 인사동)에서 6월 15일~6월 28일간 특별한 전시를 마련한다.
우리 공예문화의 정수로 꼽히는 전통 부채와 근현대 미술가가 재해석한 부채 100여 점을 한자리에 모은 <바람의 문화ㅡ옛부채와 근현대 시서화가 어우러진 풍류의 멋>전을 개최한다.
단오 무렵이면 여름이 시작되어 날씨가 한창 무더워졌기 때문에 변변한 냉방시설이 없던 우리 선조들은 나름의 생활 속 지혜로 더위를 물리치기 법을 개발했다. 그 중에 시원한 부채를 만들고, 그것을 군주가 군신들에게 또는 친구나 지인에게 나눠주는 따뜻한 풍습이 생겨났다.
왼쪽부터) 자수 학(鶴) 도안, 바퀴형 부채, 64X40cm. 곡두, 곡선형 부채, 58X39cm. 무(無) 글자, 원형 부채, 48X32cm (사진=우림화랑)
왼쪽부터) 문인 산수화 부채, 47X32cm. 이상범, 삽화도 곡선형 부채, 42X29cm. 상아자루 골풀 바퀴형 부채, 32X21cm (사진=우림화랑)
"옛 부채작품은 손잡이에 조각 장식을 가미한 장인의 섬세함과 시서화를 그려 넣은 사대부들의 풍류와 품위가 한층 돋보이는 공예작품들입니다. 우리 선조들의 지혜로운 결정체이고, 21세기 첨단산업 기술에 밀려 그 자취가 사라지고 있지만, 하나의 전래품을 넘어서 재조명하는 뜻에서 음력 5월 5일 단오절을 맞아 그 멋과 가치가 온전히 자리매김했으면 하는 마음에서 부채들을 한자리에 모아 펼쳐보았습니다."(전시 서문에서)부채는 바람을 일으키는 넓은 선면(扇面) 과 대나무 살, 손잡이로 구성된 매체로, 실용성에 조 \형성이 더해지면서 그 자체로 아름다운 작품 대접을 받고 있다. 전통적으로 부채는 첨단 기술과 미(美)의 집합체였다. 무게의 경량화를 향한 끊임없는 기술 개발과 풍량(風量) 강도의 미세한 조절, 사용자의 취향을 고려한 미려한 디자인, 그리고 선면에 다양한 문양의 베풂과 시서화의 배치 등으로 기술에 미를 입힌, '손안의 미술관'으로 구현한 것이 부채다.
이번 <바람의 문화>전에 소개되는 작품은 조선 후기의 자개자루 원형 부채, 곡두 곡선형 부채, 연화 문양 곡선 부채 같은 옛날 부채와 근현대의 부채 100여 점이다. 특히, 근현대 부채 작품은 명사(名士)들의 작품세계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소호 김응원, 청전 이상범, 이서지, 우현 송영방, 아천 김영철, 청계 양태석 , 우담 이영수, 전향 박향환, 금산 박도원, 그리고 시인 김지하, 사천 이근배 등과 국가무형문화재 제128호 선자장(扇子匠) 다산 김동식, 자수공예가 이영분 등의 작품이 부채의 가치를 드높인다.
출품되는 부채의 종류도 다양하다. 단선(團扇, 접히지 않는 부채)에서부터 합죽선까지, 이미지로는 태극문에서부터 매화도, 괴석도, 십장생, 학 도안, 시서(詩書)까지 있다. 선면의 조형은 지공(紙工)에서 인두화(落火), 수묵채색화, 자수(刺繡) 등이 있고, 선면의 형태로는 파초형, 원형, 바퀴형, 나비형 등이 있다. 심지어 손잡이 자루까지 조형미가 작품이다. 나무 자루에 인형을 조각하거나 곡선미를 한껏 구사하여 멋을 극대화했다. 자루의 재료를 나무가 아닌 상아, 지공 등을 사용한 것도 있다. 이들을 통해 우리 전통 부채의 다양한 면모를 비교 감상하는 가운데, 부쳐서 시원하고, 보아서 즐겁고, 쥐어서 느낌이 좋은 부채의 미감(美感)과 물성(物性)을 온몸으로 체감하게 한다.
<바람의 문화>전은 모든 것이 빠르게 디지털화하고 있는 시대에 개최되는 것이어서 의미를 더한다. 부채만 해도 선풍기와 에어컨에 밀려난 지 오래되었고, 지금은 '손풍기'라 하여 전동으로 작동하는 휴대용 소형 선풍기가 여름철의 필수품으로 자리 잡고 있다. 편리함이 시대의 최고선(最高善)이 되다시피 했지만 그럴수록 한편에서는 옛 것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그것에 마음을 여는 풍조가 힘을 얻고 있다. '패스트 라이프'에 지친 사람들이 '슬로 라이프'로 방향 전환을 꾀하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전 통 부채의 매력이 사람들의 관심을 모은다. 이 전시는 생활 속에서 '느림의 미학'을 실천하는 이들에게 전통적인 부채의 미와 가치를 통해 100여 점의 서늘한 바람을 선사하면서 휴식을 안겨준다.
"오늘날 부채가 비록 선풍기와 에어컨에 밀리고, 다시 휴대용 손풍기에 밀렸지만, 부채의 아름다운 조형미와 시서화를 담은 선조들의 예술적인 문화와 솜씨는 우리가 길이 간직해야 할미감이 아닐 수 없습니다. 눈으로 보며 감상하고, 피부로 체감하는 바람의 문화와 정겨움이 함께 펼쳐집니다. 각종 디지털 첨단산업화될수록 아날로그 매체인 부채의 매력은 돋보이고소중해진 문화유산입니다."(전시 서문에서)
우림화랑의 이번 부채전은 1997년 대림화랑(2002년에 '우림화랑'으로 명칭 전환) 시절 '문화유산의 해' 특별기획전으로 개최한 <풍류와 예술이 있는 선면전(扇面展)>에 이어 27년만에 갖는두 번째 전시다. 그 사이에 세상이 급변했지만, 부채는 한결같은 자태와 청량한 바람으로 우리 삶의 속도에 제동을 걸며 삶을 반추하게 한다.
ⓒ 아트앤컬쳐 - 문화예술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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