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화랑, 김홍주 개인전
5월 4일부터 7월 30일까지 조현화랑에서 진행
본문
세필붓의 정교한 움직임을 따라 시각적 감각이 촉각으로 변화한다. 솜털처럼 미세한 물감이 공기 중에 부유하듯 투명하게 만개하여 담백하고 솔직한 공감각적 심상을 마음에 남긴다. 세필화 기법의 촉지적 회화 작업으로 잘 알려진 김홍주의 개인전이 5월 4일부터 7월 30일까지 조현화랑에서 진행된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작업을 시작한 1970년대 초반부터 오늘날까지 실험해 온 다양한 화풍의 작업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는 기회로 4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작업하며 득점 대상에 대한 들을 가지고 바라보는 시각을 해체하는 것에 주력해 온 작가의 작품 세계를 조명한다.
Kim Hong Joo, Untitled, 1994년, Acrylic on canvas, 229 x 151 cm (사진제공 : 조현화랑)
Kim Hong Joo, Untitled, 1980년대 후초반, Oil on wooden panel, 46 x 45 cm (사진제공 : 조현화랑)
Kim Hong Joo, Untitled, 1980년대 중반, Oil on wooden panel, 95 x 121 cm (사진제공 : 조현화랑)
Kim Hong Joo, Untitled, 2018년, Acrylic on canvas, 81.5 x 205 cm (사진제공 : 조현화랑)
일견 김홍주의 다채로운 작업에서 하나의 공통된 근간을 찾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1970년대 초, 매체적 실험을 통해 개념미술을 탐구한 ST그룹에 참여하며 작업을 시작한 김홍주는 개울가의 들을 주워 박스에 넣고 물감을 흘리거나, 천을 벽에 걸어서 먹물이 흐르도록 묻히는 실험적 작업을 시도했으나, 곧 반회화적 경향의 개념미술과 다른 노선을 선택하게 된다. 1974년 회화 작품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청계천의 고물상에서 거울이나 창문 등을 사다가 패널을 끼우고 천을 붙여서 그리는 작업을 통해 기존의 회화의 틀에서 벗어나 오브제와 이미지를 결합하는 실험을 한다. 1983년부터는 작은 거울이나 창문에서 벗어나 원하는 대로 목공소에 맡겨 들을 제작하고, 화면에 직접 콜라주를 붙이는 등의 작업을 하게 되는데, 왜곡과 중첩 등의 시각적 시도를 통해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들을 남기게 된다. 이후 1987년부터 천에 물감을 얇게 칠하는 방식으로, 이미지가 하나의 단위 요소가 되고 이들이 모여 전체적인 화면을 구성하는 방식으로 중층적 이미지를 형성하는 작업을 시작한다. 1994년과 1996년 사이, 김홍주는 세밀하고 꼼꼼하게 흙덩이들을 그리면서, 서예 형식의 글자 그림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읽을 수 없는 문자와 유사한 형태를 묘사한다. 1996년에는 기존에 연꽃이 가지고 있던 도상학적 의미를 벗어버리려는 시도에서 연꽃 연작을 발표하며 꽃을 그리기 시작한다. 재현 행위와 재현 대상의 관계에 대한 유희적 실험을 하며, 의미 이전의 형태, 의미를 읽기 전 단계의 감상을 가능케 한다는 점에서 김홍주의 그림들은 하나로 통한다.
그림을 그리는 것 자체를 출발점으로 삼으면서 회화의 본질을 수렴적인 방식이 아닌 확장하는 태도로 탐구한 김홍주의 작업 세계는 결국 회화로 환원된다. 캔버스나 종이, 조형물 또는 오브제를 바탕으로 물감을 얹어나가는 김홍주에게는 그림을 그린다는 행위 그 자체에 의미가 있을 뿐이다. 프레임을 작업의 일부로 끌어들인 오브제 회화나, 대상의 테두리를 경계 짓지 않은 촉지적 형상 작업으로 환원되는 작가의 열린 태도는 작업의 제목을 짓지 않고 자유롭게 해석할 수 있도록 하여, 관람객까지 작품의 범위 안으로 끌어들인다. 대상을 설명하지 않고 묘사하며, 판단하지 않고 수용하는 김홍주의 작품은, 특성의 개별적 파악과 조합으로 이해하려는 서구의 합리적 방식이 아닌, 감각을 통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험적 방식으로 바라보기를 제안한다. 세밀한 붓질마다 감각에 대한 경험을 싣는 김홍주의 작품은 무수한 세월의 무게처럼 묵직하다. 어떠한 시류에도 속하지 않고 회화라는 매체를 고집하며 자신만의 고유한 작업 세계를 구축해 온 김홍주의 세필 붓질 앞에서 말 없는 위로를 받게 되는 이유다.
김홍주는 1973년 ST 그룹에 가입하면서 당대 전위적 경향을 따라가는 개념적 오브제 작업을 시도했으나 1975년 즈음부터 실물 오브제와 그려진 이미지를 결합한 회화 작품을 발표하면서 이른바 극사실주의 경향의 작가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1978년에 첫 개인전을 개최했고 1980년대 중반부터 인물이나 풍경 등을 주요 소재로 하여 밀도감 높은 독특한 이미지를 그려내기 시작했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중후반 사이에는 흙덩이나 지형, 건축물, 글자, 배설물 등의 이미지로 중층적 이미지를 형성하면서 여러 조형적 실험이 시도되었다. 1990년대 중후반부터는 꽃 한 송이 등의 형상을 세밀한 붓 터치의 집적으로 채운, 촉각적 감각을 극대화한 회화를 제작했다. 2000년대 이후로는 특유의 세필 기법을 심화시켜 나갔고, 2010년대부터는 세필이 캔버스 천 표면에 부딪힐 때 느껴지는 감각에 집중하면서, 그림을 그릴 때 느껴지는 접촉 감각을 표현하고자 하는 측지적 회화 작업으로 나아가고 있다.
김홍주는 1945년 충청북도 보은에서 출생하여 1969년 홍익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1981년 동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1981년부터 2010년까지 목원대학교 미술교육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여러 차례의 개인전과 다수의 기획전에 출품했다. 1978년 한국일보사 주최 한국미술대상전에서 최우수 프론티어상을 수상했고, 1980년 프랑스 카뉴 국제회화제에서 특별상을 받았다. 2005년 이인성 미술상(대구광역시), 2006년 파라다이스상 (파라다이스 재단), 2010년 이중섭 미술상 (조선일보사) 등을 비롯하여 다수의 상을 수상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대전시립미술관, 대구미술관, 경기도미술관, 삼성미술관, 후쿠오카 시립미술관 등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 아트앤컬쳐 - 문화예술신문
댓글목록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