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림 개인전 《Captured Disappearance》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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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에 대한 사유를 종이라는 물성을 매개로 작업해 온 이혜림 작가의 개인전 [Captured Disappearance] 이 10월 26일부터 마테리오 갤러리에서 진행된다. 이번 전시는 원료의 층이 겹겹이 쌓이고 압축되어 완성되는 종이의 속성 을 지층이 형성되는 방식에 비유하는 작가의 시각을 통해, 다층적이고 상대적인 시간에 대한 작가의 태도를 전달하 고자 한다.
펄프나 닥나무 및 다양한 원료를 겹겹이 쌓고 압력을 가하여 견고한 평면을 이루게 되는 종이는 작가에게 수많은 기 억과 시간이 얽히고설켜 만들어진 입체적인 편물로 인식된다. 40장 이상의 색색의 다양한 종이의 단편을 이어 붙이 고 다채로운 색의 실로 교차하는 바느질을 통해 완성된 <Tsuzuku (계속되는)> 은 삶의 다양성에 대한 고찰을 드러내 며, 한 장으로 이뤄진 화면 내에 여러 시제가 공존하는 듯한 시간의 입체감을 전달한다.
[Captured Disappearance] 전시 전경, © 작가, 마테리오갤러리
[Captured Disappearance] 전시 전경, © 작가, 마테리오갤러리
[Captured Disappearance] 전시 전경, © 작가, 마테리오갤러리
[Captured Disappearance] 전시 전경, © 작가, 마테리오갤러리
해독하기 어려운 고서를 해체한 파편들을 뒤섞어 새로운 형태의 종이로 만들어낸 <Kankonshi (환혼지-못 쓰게 된 종이를 새로 소생시킨다는 의미) 이하 칸콘시> 는 종이 자체의 물성에서 보이는 과거에 대한 상상을 기반으로 바느 질의 행위를 통해 소요하듯 지나는 흔적을 남기는데 이는 스쳐 지나가는 시간에 대해 자취를 남기고 자아를 확인하 는 행위이다. 만들어진 시대가 다른 다양한 기원의 종이들의 파편이 교차하여 결합한 마띠에르는 작가의 손끝으로 만들어내는 시점의 습기 및 온도와 만나 예측할 수 없으며 우연적이다.
수천 장의 종이를 손으로 뜯어내고 꿰어내어 기억이 쌓여 형상화된 듯한 길이와 굵기가 다른 기둥 이미지를 통해 개 개인의 다양성과 시간의 혼재를 표현하고자 한 <Sequence>에서는 축적되는 동시에 뻗어나가는 연속적인 시간성 을 보여주는데, 이는 작업에 사용되는 노동의 절대적인 총량에 따라 사용되는 시간이 시각화되는 결과물로서 행위 를 통한 형상의 발현에 안도감을 찾는 작가의 작업 과정을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촉각적인 종이의 결과 함께 행해지는 비정형적이고 자유로운 리듬의 선들은 희미하여 잘 들리지 않는 소리에 귀 기 울이는 듯한 작업의 과정 내에서의 행위 그 자체로서 중심을 가지는 결과이다. 단단하고 가벼운 연기처럼 나타나는 형상의 발현은 시간의 다층적인 깊이를 인식하고자 물성의 세계 안에서 자아를 확인하며 남기는 자국들처럼 보인 다. 만들어내며 비워낸다고 말하는 작가의 태도에는 지나갈 듯한 이미지를 붙잡고 손을 대어 어떠한 장소를 찾기 위 해 디뎌가는 과정 위에 있으며 자연의 시간적 영속성을 이어가고자 하는 의지의 발현이다.
이혜림(1992)은 닥나무 섬유와 헌책 등 다양한 원료를 쌓아 얇지만 깊이감이 생성되는 종이의 물성을 통해 보이 지 않는 ‘시간과 기억’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화여대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2021년부터 도쿄 타마 미술대학 텍스 타일 디자인 석사 과정에서 여러 요소를 교차하고 압축하여 만들어지는 종이의 과정에 대한 연구와 함께 소멸과 생성의 시각화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첫 개인전 <Paper with Time> (Urasando Garden, 도쿄, 2021) 에서 고서를 해체하고 종이 원료와 섞어 시제의 혼재를 드러내는 작업에 몰두하게 되는데, 이에 대한 확장으로 바 느질을 통해 자취를 남기고 연결하는 행위 자체가 작업 내에서 중요한 위치를 갖게된다. 현재 타마 미술대학에서 연구실 부수로 재직하며 시간을 물리적으로 가시화하는 지점을 연구하고 있으며, 종이의 물성을 넘어 행위의 선을 조형적으로 드러내는 데 집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