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서 개인전 《그림 그린 그림 Painting painted Pain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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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그린 그림, Painting painted Painting 02, 2023, Oil on canvas, 162.2 × 130cm (이미지=갤러리조선)
그림 그린 그림 05 Painting painted Painting 05, 2023, Oil on canvas, 162.2 × 130cm(이미지=갤러리조선)
작가노트
저의 작업은 제가 보는 것과 행하는 것, 생각하는 것이 어긋나며 벌어지는 결과물입니다.
저의 세대는 어중간하게 위치합니다.
공중전화에 의존하던 어린 시절부터, 중학생쯤에 삐삐가 생겼고, 잠시 어정쩡한 씨티폰이 있었으며, 십 대가 끝나갈 무렵 핸드폰을 손에 쥐었습니다. 기술 면에서 아날로그가 디지털로 급격하게 넘어가는 시기에 성장기를 보낸 저의 세대에는 어중간함이라는 특징이 비중 있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전 세대의 심금을 울리는 감동이나 이후 세대의 초 신기술의 결과물 따위는 이 세대에 없습니다. 저에게 크게 자리 잡은 것은 본 것과 생각하는 것 사이의 괴리감입니다.
회화는 저에게 즉각적이고, 직접적이며, 직관적인 매체입니다. 그러나 이 뜻은 결과물로서가 아닌 행위의 순간에 대해서입니다. 저는 회화의 행위를 통해 막연히 제가 보고 알고 있다고 믿고 있었던 것과 실제로 제가 알고 있는 정도의 간극을 실감하곤 합니다. 저는 회화를 통해 세상과 관계하고 그 안의 알 수 없는 많은 것들을 이해해 보고자 하는 시도를 합니다. 제가 세상의 정보를 접하는 매체는 많은 사람과 같이 압도적으로 인터넷입니다. 저는 인터넷 안의 폭력적으로 쏟아지는 무수한 정보들 안에서 무엇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고민합니다. 이에 저는 정보들을 채집하고 기록하여 이들을 파악할 수 있는 데이터를 만들어 보고자 합니다.
어정쩡한 세대인 저는 인공지능에 많은 직업을 내어줄 가까운 미래를 앞둔 와중에 회화를 고집합니다. 이미 인공지능은 여러 장르의 이미지를 생산해 내고 있습니다. 어마어마한 정보들과 그것을 붙잡아 기록하려는 몸짓은 결코 그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습니다. 저는 회화의 성공적인 재현보다는 행위를 통하여 회화라는 매체의 현재 상황에 대해 의식하게 되고, 더 나아가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붓질의 결과가 지금 시간의 상태를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회화를 통해 범람하는 정보의 잔상을 재빨리 기록하고 그다음의 잔상을, 또 그다음의 잔상을 속도감 있게 기록해 나갑니다. 이 안에서 사유의 깊이가 상실된 상태, 빠른 전환 속의 단절이 시각화됩니다. 해결 없이 유보된 상태로 계속 축적되기만 하는, 오늘날의 상태를 이야기하고자 하였습니다.
저의 짧은 집중력과 빠른 화제 전환, 산만함을 회화를 통해 즉각적으로 보여줄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작업을 진행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는 처음의 의도와는 다르게 인-풋과 아웃-풋 간의 간극을 드러내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잠시 집중하였던 이미지의 한 부분을 재빨리 기록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의식하지 못했던 회화의 시간이 생겨나고, 그 시간 동안에 눈과 머릿속에는 다른 정보가 침투하게 됩니다. 완성된 이미지로의 진행이 아닌 곧 다른 이미지를 소환하여 붓질을 행합니다. 이는 마치 한밤중의 고민처럼 한 이야기에서 시작되어, 링크된 이야기로 진행되고, 완전히 다른 화재로 전환되기도 합니다.
산만하고 즉각적인 사고의 전환을 회화라는 고전적인 매체로 기록하는 것은 생명력이 짧은 지금의 시각 언어를 과거의 긴 시간 속에서 살아남은 언어를 빌려와 박제시키고자 하는 개인적인 욕망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보다도 이 과정을 통해 스스로는 그 어색함을 인식하지 못했지만, 현재를 소화하는 방식이 어정쩡한, 이쪽도 저쪽도 가지 못하는 이상한 감각 상태의 체득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최신 OS의 아이폰을 쓰면서도 스케줄을 수첩에 관리하는 것이 익숙한 저에게는, 현재의 감각을 회화를 통하여 그러나 포토샵에서 툴을 고르듯이 적절한 표현방식을 선택하여 추상표현주의처럼 보이기도 하는 그림을 만들어 내는 것이 지극히 자연스럽습니다.
이러한 과정이 중첩되어 형성된 자연스럽고 어색한 이미지는 양립 불가능해 보이는 것들이 뒤엉켜 만들어 낸 방대하고 깊이 없는 현재의 풍경입니다. 그리고 마치 씨티폰과 같이 크고 빠른 변화 사이에 끼어버린 세대가 현재를 소화하는 방식을 드러내는 자화상이기도 합니다.
글 : 이윤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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