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주 개인전 《공의 공명3》
본문
소외의 공간에서 길어 올리는 신화의 공명
서길헌(미술비평, 조형예술학박사)
화가 이민주에게 캔버스는 소외의 공간이자 끊임없이 불어나는 우주의 공간이다. 그동안 대개 피마준과 같은 붓질의 선묘로 그려진 그녀의 화면은 모든 사물이 하나의 빛으로부터 우러나오는 듯한 공명의 파장에 둘러싸여 거기에 등장하는 어딘가 초월적인 사물들마저 마치 한없이 투명한 공허를 보는 듯한 느낌을 전해주곤 하였다. 그러한 공간의 느낌은 현대인의 소외감을 일종의 정신적인 떨림으로 채워 신화의 공명으로 이끌어가는 긴장감과도 같다. 주로 동심원과 소용돌이 모양의 선을 통해 그림은 허공 속에서 일어나는 파동과 같은 울림을 준다. 그것은 주로 우물물에 비친 자신의 그림자와 같은 태초의 생명이 솟아나는 기억의 심연을 바라보는 말의 이미지를 통해 화면 가득 확장된다.
이렇듯 그녀의 작품에서 명상하는 듯한 말과 함께 등장하는 동심원은 공명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공명의 파장을 일으키는 동심원은 그림의 특이점으로 기능하여 이미지의 유동적인 변이를 촉발하는 자장처럼 작동한다. 들뢰즈는 특이점을 단순한 기하학적인 점으로 생각하지 않고, 체계 전체의 국면을 바꾸는 비선형적인 점으로 간주한다. 따라서 동심원은 그림에서 움직임과 변형의 초점이자 강렬한 흐름의 원천으로 작용하여 캔버스 공간에 율동과 역동성을 부여한다. 동심원의 중심은 겉보기에 고요하면서도 본질적인 움직임을 전달하는 ‘강렬한 차이’의 힘을 일으킨다. 따라서 이민주의 그림에서 이러한 동심원은 세계의 근원적인 힘과 욕망을 드러내는 반복되는 모티브로 작용한다.
그녀의 그림에 표현된 동물의 이미지는 말이나 코끼리, 더러는 새 또는 물고기로도 등장하지만, 중요한 것은 동물 외형보다 그 형용을 이루는 주름선이 만들어가는 파장의 시각적인 강도이다. 이러한 선으로 이루어진 대상들은 침묵의 시선을 통해 텅 빈듯한 화면에서 고요한 파동을 생성하여 소외로 굳어진 현대인의 감각을 깨어나게 하여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시선의 문을 활짝 열어젖힌다. 그곳은 모든 힘이 수렴하는 근원으로서의 수많은 소실점이자 파장의 심연이 거주하는 사방으로 열린 우주이다. 몸짓의 직관적인 열정으로부터 나온 촘촘한 등고선과 같은 선은 인간의 얼굴에 새겨진 시간의 주름과 움직이는 신체의 리듬을 동시에 환기하며 실처럼 서리서리 꼬여있는 유전물질과 같은 선을 끝없이 그림 밖의 공간으로까지 이어지도록 한다. 이로써 이민주의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인간의 시간과 공간을 화면 너머 우주의 근원적인 시공으로 되돌리는 작업이 된다.
다시 말하면, 그녀의 그림에서 동심원은 단순히 공간을 채우는 것만이 아니라 다양한 강도로 그것을 변형시키고, 의미의 영역을 무한으로 확장하는 감각적 진동을 생성한다. 이러한 유동성은 이미지의 탈영토화를 유발하여 화면의 리듬에 중첩적인 폭과 깊이를 부여한다. 이렇게 화면의 이미지들은 단순한 장식적 모티브가 아니라 그 자체로서의 품과 깊이를 가지고 공간을 스스로 팽팽하게 긴장시키는 장력과 같이 기능한다. 이를 통해 화면은 모종의 시각적 울타리를 넘어서 의미를 유동적으로 팽창시키는 블랙홀과 같은 심연으로 존재한다. 그럼으로써 그림의 화면은 끊임없이 진동하는 것처럼 보이는 가운데, 생동감 넘치는 선으로 표현된 공간의 균형이 언제라도 전복될 수 있을 듯한 무중력과 같은 에너지의 장이 된다.
이러한 파장의 공간은 현대인이 가진 무의식적 소외의 공간을 생생한 의식의 거주 공간으로 바꾸어, 새로운 의미를 발산하는 탈영토화의 공간으로 변모시킨다. 이와 같은 창조적 연금술 속에서 인간의 시선은 소외를 벗어나 신화의 공간으로 들어서고, 화가의 붓질은 공명의 촉매로서 가능성의 땅을 향해 달리는 고삐 풀린 말의 갈기처럼 마구마구 탈주하는 살아있는 선을 낳는다. 그럼으로써 그녀의 작품은 단순히 표현하는 것을 넘어서, 보이지 않는 것을 드러내어 활성화하고 진동하게 한다. 이러한 드러냄은 신화를 위한 심층적인 시선의 초대이다.
심층의 시선은 그녀의 작업에서 그림을 구성하는 표면의 공명을 다각적으로 일으키는 다층적 소실점과 같다. 이 공명의 근원이 되는 주름과 같은 선들은 동물이나 사람, 또는 암석이나 나무들의 형상을 빚거나 허무는 변이의 리듬을 만들어냄으로써 공간을 다층적으로 확산시킨다. 공간의 확산으로 화면은 존재의 공허함이 우주의 충만함으로 가득한 자리가 된다. 이민주의 작품을 구성하는 이 모든 붓질의 토대는 언제나 우주의 이치를 따름으로써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이렇게 그녀의 붓이 그리는 선들은 단순한 캔버스 위에 한계 지워진 공간을 초월하여, 새로운 우주를 향해 불어나는 신화의 공명이 된다.
평론제공 갤러리내일
ⓒ 아트앤컬쳐 - 문화예술신문
댓글목록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