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호, 《새벽, 빛을 품다》 > 전시평론ㆍ작가노트

본문 바로가기

전시평론ㆍ작가노트


전시평론ㆍ작가노트 



김성호, 《새벽, 빛을 품다》

본문

글 고충환(미술평론가)

 


잠들지 못하고 깨어있는 새벽녘의 어스름한 여명 속에 다 쏟아놓고 싶다. 삶의 아픔, 상처, 혹은 사랑까지도···. 밝고 화사한 것보다는 어둠 속에 짙은 그리움이 느껴지는 그림, 추상적인 듯하지만 보는 이의 감성을 툭 건드리는 그림···. 나의 그림은 삶을 향한 따뜻한 위로다. (작가 노트) 

새벽이 왔는데도 잠들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삶이 준 상처와 아픔으로 뒤척이느라, 때로 사랑으로 번민하느라 깨어있는 사람들이다. 김성호는 새벽을 그린다. 새벽을 여는 사람들의 새벽이기보다는 밤새 뒤척이고 번민하는 사람들의 새벽을 그린다. 그러나 정작 그가 그려놓고 있는 새벽 그림 어디에도 뒤척임도 없고 번민도 없다. 없다기보다는 잘 보이지 않는다. 푸르스름한 새벽의 공기가 그 위로 내려앉아 뒤척임을, 번민을 덮어서 가리기 때문이다. 새벽의 온기가 뒤척이는 사람들을, 번민하는 사람들을 감싸안으면서 위로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밤새 뒤척인 사람들, 밤새 번민한 사람들이 다시 새벽이 온 것에 안도한다. 새벽은 그렇게 사람들을 위로하고 치유하고 재생한다. 

7a5f21bc1f8b48bf3eecd21514b98aa1_1741140488_5453.JPG

김성호, 새벽-남산에서본 서울 oil on canvas 116.0x116.0cm 2024. © 작가, 토포하우스


7a5f21bc1f8b48bf3eecd21514b98aa1_1741140632_2108.jpg

김성호, 새벽-부다페스트(헝가리) oil on canvas 90.0x200.0cm 2023. © 작가, 토포하우스


7a5f21bc1f8b48bf3eecd21514b98aa1_1741140647_5367.JPG

김성호, 새벽-골목길 oil on canvas 91.0x116.8cm 2024. © 작가, 토포하우스

 

그러나 위로는 새벽의 본성이기보다는 새벽에서 찾아낸, 그러므로 어느 정도 작가 자신의 것이기도 한, 새벽의 기질이다. 다시 말해 작가가 발굴해 낸, 그러므로 어쩌면 작가의 감성이 보아낸 새벽의 물화 된 형식으로, 새벽에서 찾아낸 색감과 질감으로 사람들을 위로하고 치유하고 재생하는 것이라고 해도 좋다. 새벽은 풍경이다. 그리고 풍경 자체는 객관적 현실이기보다는 주관과 객관이 날실과 씨실로 직조된 직물이다. 새벽에서 나에게로, 내 쪽에서 새벽으로 건너가고 건너온 것의 상호작용이다. 결국 나의 무엇이 어떻게 건너갔는지에 따라서 새벽의 색감이 결정되고 질감이 결정된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정서와 감성마저도. 그 색감과 질감이 온기와 함께 위로를 주는 느낌이다. 
예술은 암시의 기술이다(그 자체 일정한 추상과 생략으로 드러난 작가의 그림과도 무관하지 않은). 그리지 않으면서 그리는 기술이다. 미처 그림으로 그려지지 않은 것을 끌어들여 그림을, 그림의 의미를 확장하는 기술이다. 사물 대상의 감각적 닮은꼴에 충실하면 암시는 줄어들고, 그 정도가 느슨하면, 그 구조가 성글고 구멍이 숭숭하면 암시의 몫은 그만큼 더 커진다. 그 구멍을 저마다의 의미로 채워 넣어야 한다는 점에서 암시는 그림 속에 관객을 참여시키는, 그림이 숨겨놓은 의미를 완성하도록 관객을 초대하는, 환대의 기술이다. 

그렇게 비록 작가의 그림이 눈에 보이는 뒤척임도 없고 번민도 없지만, 꿈꾸듯 아롱거리는 도시의 불빛이 뒤척임을 그리고 번민(불빛 아래 잠 못 이루는 누군가)을 상기시킨다는 점에서 암시적이다. 그렇게 비록 작가의 그림에, 손에 잡히는 위로도 없고 치유도 없지만, 작가가 새벽에서 찾아낸 기질, 그러므로 색감과 질감이 온기(흡사 도시의 불빛을 감싸안는 것 같은 어둠)를 상기시킨다는 점에서 암시적이다. 그렇게 먼발치서 아롱거리는(마치 사람들이 꾸는 꿈처럼), 때로 아득하게 가물거리는(흡사 붙잡을 수 없는 욕망처럼 먼) 도시의 불빛을 매개로 한 작가의 그림이 번민하는 사람들을 감싸안으면서, 삶의 상처와 아픔을 새벽의 반투명한 대기 속에 품어 안으면서 정서적으로 공감하게 만든다. 

최근 한국회화의 한 경향으로 도시 회화(어반스케이프)와 서울 진경이 거론된다. 도시를 대변하는 아이콘으로 지금 여기의 현실을 반영하는 경향성의 회화 정도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좋을 것이다. 그 자체 현실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리얼리티(현실주의)를 얻는 한편으로, 도시가 고향인 사람들에게 널리 공감을 얻고 있다. 여기서 고향은 지정학적 장소라기보다는 사람들이 실제로 살아가면서 느끼고 체감하는 정서적 감정에 가깝다. 쉽게 말해 마음 둔 곳이 고향이고, 마음 가는 곳이 고향이다. 
언젠가부터 사람들이 그 고향을 상실했다. 마음 둘 곳을 찾지 못해 부유하고 방황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도시가 고향인 사람들이라는 말에는 이중적 의미가 있다. 실제로 도시가 고향인 사람들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마음 둘 곳을 정하지 못해 부유하고 방황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내어준 도시의 포용력을 뜻하기도 한다. 그렇게 도시는 상실한 사람들의 불안정한 거처가 되었고, 타자들의 임시거소가 되었다. 
그렇게 보기에 따라서 도시는 징후고, 증상이며, 질병일 수 있다. 그리고 새벽의 파르스름한 공기로 상실한 사람들을 감싸 안는, 위로하고 치유하는 작가의 그림이 그 진단과 관련이 깊다. 그렇게 밤과 새벽 사이를 스펙트럼으로 가진 작가의 그림은 도시 회화와 서울 진경의 목록에 도시야경을 추가한다. 지금까지 도시는 회색 도시, 콘크리트 도시, 삭막한 도시, 무표정한 도시, 그리고 스산한 바람이 부는 필름 누아르에서처럼 냉정한 도시로 수식된다. 그 수식에 정서가 비집고 들어갈 만한 여백은 없다. 작가의 그림이 그 수식에 틈을 내고 여백을 만든다. 화려한 도시, 욕망 도시, 잠 못 이루는 도시의 불빛으로 도시에 생기를 불어넣고 정서를 일깨운다. 
그러나 그렇게 작가의 그림이 불러일으키는 정서의 질감은 무분별한 욕망을 형용하는 도시의 불빛을 광고하는 제스처(이를테면 네온사인으로 유혹하는 거리의 불빛과도 같은)로서보다는 욕망을 연민하는 공감의 제스처(이를테면 사람들이 꾸는 꿈처럼 아롱거리는, 마치 위로하는 것 같은 불빛)에 가깝다. 그렇게 도시가 고향인 사람들에게, 도시에 마음을 묻은 사람들에게 상실한 고향을 되돌려준다. 먼발치서 바라본, 꿈처럼 아롱거리는, 붙잡을 수 없는 욕망처럼 먼 도시의 불빛으로 도시에 멜랑콜리와 노스텔저의 정서를 불어넣는다. 그렇게, 다시, 도시를 꿈꾸고 그리워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마치 욕망을 겨루기라도 하는 것 같은 마천루들, 멀리 다리가 보이는 한강 변, 한갓진 느낌의 버스 종점, 빗물로 번들거리는 도로 위로 새벽을 여는 차들, 칠흑 같은 어둠 속에 가로등이 흐릿한 조명을 흘리고 서 있는, 흡사 잊힌 시간을 소환한 것 같은 골목길, 막 뒤로 사람들의 실루엣이 비쳐 보이는 포장마차, 건너편에서 내다본 항구에 정박해 있는 배들의 불빛, 그 불빛을 받아 희롱하듯 일렁이는 수면 위에서 빛의 유희, 그리고 아마도 공중에서 보았을 활주로의 불빛과 같은, 작가가 그린 모든 그림에는 불빛이 있다. 
대개는 멀리서 내다보거나 내려다본 그 불빛들은 거리두기 탓일까, 가물거리는, 꿈꾸듯 아롱거리는, 몽롱한 느낌이다. 정적이고 고독한, 고즈넉하고 소외된, 쓸쓸한 것 같기도 하고, 저마다 사연을 숨기고 있는 것 같기도 한 느낌이다. 아마도 작가의 그림이 불러일으키는 이런 정서적 환기며 공기의 질감은 거리두기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거리두기는 사물의 본성을 가장 잘 파악하게 해주는, 실제 거리라기보다는 심미적 거리로서의 미학적 의의가 있다). 
멀고 아득한 느낌의 이 일련의 그림들은 사물 대상의 실체보다는 분위기가 강하고, 주변의 어둠과 대비되면서 도시의 불빛이 흘리는 아우라가 강조되는 편이다. 정서를 그림 안쪽으로 모아들이는(혹은 같은 말이지만, 도시의 불빛을 정서의 질감으로 환원하는) 경향으로 인해 극적이다. 마치 연극무대에서의 스포트라이트와도 같은, 가장자리의 어둑한 부분이 화면 가운데를 에워싸는 핀홀 카메라로 찍은 사진과도 같은 극적인 효과를 준다. 
그렇게 도시의 야경을 소재로 한 작가의 그림은 시적이고, 서정적이고, 감성을 파고드는 부분이 있다. 그리고 그렇게 새삼 도시의 야경을, 도시 자체를, 도시에서의 삶을, 그러므로 어쩌면 삶 자체를 다시 보게 만든다.              


평론 제공 : 토포하우스


ⓒ 아트앤컬쳐 - 문화예술신문

댓글목록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4 건

열람중김성호, 《새벽, 빛을 품다》

글 고충환(미술평론가) 잠들지 못하고 깨어있는 새벽녘의 어스름한 여명 속에 다 쏟아놓고 싶다. 삶의 아픔, 상처, 혹은 사랑까지도···. 밝고 화사한 것보다는 어둠 속에 짙은 그리움이 느껴지는 그림, 추상적인 듯하지만 보는 이의 감성을 툭 건드리는 그림···.…

아트앤컬처

김인겸의 개인전 ≪Papier Sculpté, Sculpture Pliée / Sculpted Paper, …

전시 서문김재도 (본 전시 기획자, 홍익대학교 초빙교수) 김인겸의 개인전 ≪조각된 종이, 접힌 조각 Papier Sculpté, Sculpture Pliée/Sculpted Paper, Folded Sculpture≫은 김인겸이 1996년 퐁피두 센터의 초…

아트앤컬처

유현경: 나는 피안으로 간다

유현경: 나는 피안으로 간다강주연(Gallery JJ Director)“나는 시간을 잘 보내고 있나, 나의 깊이는 획득될 것인가 하는 고민을 한다. ··· 피안으로 가는 것이 이루지 못한 꿈이 될지 아니면 실현이 될지.” —작가노트 2025 무한한 시간 앞에…

아트앤컬처

이민주 개인전 《공의 공명3》

소외의 공간에서 길어 올리는 신화의 공명 서길헌(미술비평, 조형예술학박사)화가 이민주에게 캔버스는 소외의 공간이자 끊임없이 불어나는 우주의 공간이다. 그동안 대개 피마준과 같은 붓질의 선묘로 그려진 그녀의 화면은 모든 사물이 하나의 빛으로부터 우러나오는 듯한 …

아트앤컬처

김현실 개인전 《그대의 세계》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바라보는 관점, 그 순수성에 대해 묻다 홍경한(미술평론가) 작가 김현실의 작품들은 차분하면서도 강렬한색과 거친 선, 단순한 형태와 여타 상징적인 요소로 특징지어진다. 원시주의와 신표현주의적 여운 탓인지 원초성이 강하고, …

아트앤컬처

우지윤 개인전 《딸기의 장소》

어깨를 맞대고 바라보는 곳글 나가람이전 개인전에서 선보였던 그림들은 제 3자를 어떤 기억과 풍경으로 이끄는 듯 했다. 이번 전시에서 선 보이는 그림들은 보다 친밀하고, 사적이며 가까운 거리감으로 다가온다. 첫 인상은 이러하다: 사적이면 서 뒤로 물러나 있는, 조용하지만…

아트앤컬처

이정원 개인전 《푸른 산의 환영展》

몸으로 만나는 환영의 공간-이정원의 山中摸索

몸으로 만나는 환영의 공간-이정원의 山中摸索서길헌(미술비평, 조형예술학박사)산에서 길을 찾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산에는 이미 나 있는 길 외에도 수많은 길이 잠재적으로 열려있어서 혼돈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산에 올라가서 만나는 다양한 감각을 한정된 캔버스에 옮기는 것…

아트앤컬처

김혜나, 사냥꾼이라는 이름으로

김혜나, 사냥꾼이라는 이름으로글 김솔지(더블데크웍스)물에 가라앉은 나비 날개 가루김혜나의 그림은 일렁이는 순간을 담아낸다. 그림은 두껍지 않다. 여러 층을 쌓아 올린 마티에르는 얕은 두께에도 두터운 층을 지니고 있다. 층 사이로 비치는 색상은 다채롭다. 세상이 수만 가…

아트앤컬처

이경미 ‘Last night and Neurath’s boat(지난 밤과 노이랏의 배)’ 展

복제의 복제, 의미의 이동

‘New Vertical Painting – Dürer’s apocalypse’복제의 복제, 의미의 이동김석모 (철학박사, 미술사학자)작가 이경미는 관찰한다. 대상이나 사태 혹은 현상을 관찰한다. 그리고 분석한다. 그에게 분석은 의식의 여과 과정 이다. 주관적 경험에…

아트앤컬처

영원히 끝나지 않을 이야기, 그리고 <사:람>

따뜻한 시선으로 ‘사람’에 대해 끊임없이 탐구하는 김소형

영원히 끝나지 않을 이야기, 그리고 <사:람>  이진명(미술비평ㆍ철학박사) 시인은 두 가지 종류로 나뉜다. 하나는 시를 그저 쓰기에 시인이라 불리는 사람이다. 또 하나는 시를 쓰지 않고는 도저히 이 세상을 살아갈 수가 없기에 시인으로 인정 받는 …

아트앤컬처

박현주, 윤종주, 이환권 3인전 《美妙: nuance 미묘》

미묘, 지각과 인식이 미끄러지는 틈새

미묘, 지각과 인식이 미끄러지는 틈새 황인(미술평론가)화가 박현주, 윤종주 그리고 조각가 이환권의 ‘미묘’ 삼인전이 열린다. 인간이 사물을 판단하고 느끼는 데에는 인식의 영역과 지각의 영역이 있다. 이 둘은 연결되면서도 독립적이다, 일상적인 삶에서는 …

아트앤컬처

일상성(日常性), 존재와 부재의 흔적(痕迹)을 수놓다

김수자 개인전, 사유(思惟)로서의 존재의미

일상성(日常性), 존재와 부재의 흔적(痕迹)을 수놓다 이 태 호(미술평론가)사유(思惟)로서의 존재의미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Cogito, ergo sum)”라고 하는 유명한 코기토(Cogito) 명제로 널리 알려진 프랑스의 유명한 …

아트앤컬처

박용일 《He-story 봄》

너무 많은 삶의 사연, 그릴 수 없어 보따리로 묶다 글 홍경한(미술평론가) ‘보따리’(褓따리)는 보자기에 물건을 싸서 꾸린 뭉치다. 보따리는 한국의 문화와 역사, 생활상에 자주 등장해 왔다. 그것은 본래 물건을 운반하거나 보관하는 데 사용되었…

아트앤컬처

임현주의 낙화, 그 무지갯빛 감성 치유

임현주의 낙화, 그 무지갯빛 감성 치유변종필(미술평론가, 제주현대미술관장) 인간은 아름다운 경험을 하는 과정에서 주제와 형식의 조화를 추구하려는 유희충동을 느낀다. 이를 통해 인간은 더 자유롭고 완전한 존재로 성장한다. 유희충동은 때때로 인간의 감성과 지적 발…

아트앤컬처

Cloud Wave: Nick Schleicher 닉 슐라이커

다양한 형태의 셰이프트 캔버스(Shaped Canvas)로 구축한 색면추상회화

글│강주연 Gallery JJ Director  “현존과 부재, 은폐와 폭로의 율동적인 교체만이 시선을 깨어 있게 한다.” –한병철, 『아름다움의 구원』 갤러리JJ는 2024년을 맞이하여 자유로운 형태의 색면추상 회화로 삶의 다양…

아트앤컬처
게시판 전체검색
다크모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