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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주의 낙화, 그 무지갯빛 감성 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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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주의 낙화, 그 무지갯빛 감성 치유




변종필(미술평론가, 제주현대미술관장) 



인간은 아름다운 경험을 하는 과정에서 주제와 형식의 조화를 추구하려는 유희충동을 느낀다. 이를 통해 인간은 더 자유롭고 완전한 존재로 성장한다. 유희충동은 때때로 인간의 감성과 지적 발전을 촉진하며, 이를 통해 더 넓고 깊은 시각으로 세상을 이해한다. 더불어 자아를 발전시키는 힘을 주기도 한다. 그림을 그리는 목적과 목표가 사회를 변화시키고, 예술적 담론을 형성하고, 미적 가치의 대상으로 평가받는 것에 두지 않아도 그림은 그 자체로 유희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작가에게 그림이 자신을 치유하는 시간과 도구가 되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내면의 고백적 그림이 타인에게 공감의 대상기에 앞서 자신을 지탱하는 힘으로 작용하며 내적 성장을 돕는 것은 그 자체로 유의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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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화, 2023, mixed media, 130.3 x 89.4cm(사진=임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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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화, 2023, mixed media, 116.8 x 91cm(사진=임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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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e, 2022, mixed media, 116.8 x 91cm(사진=임현주) 


 



임현주 작가에게도 그림이 그런 존재이다. 자연현상 속에서 소재를 발견하고, 그 소재를 그림이라는 형식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열정적으로 분출하는 유희충동은 작가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고 창작활동을 이어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임현주는 일상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는 무지개를 유독 좋아한다. 다양한 파장을 지닌 빛이 물방울을 통과할 때 서로 다르게 굴절되어 나타나는 무지개의 신비로운 매력에 빠진 이후 무지개는 그녀의 관심 대상이 되었다. '힘든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긍정의 메시지인 무지개의 원리를 통해서 시련을 극복하게 하고, 희망을 주고 싶다.'(작가노트)라고 말하고, '무지개 원리와 확산'이라는 도상을 탐구할 만큼 일곱 가지 색에 애착이 남다르다. 2022년의 '무지개 원리'시리즈와 2021년의 '시시포스 삶-가족' 시리즈를 보면 그녀가 무지개의 상징성과 자신의 삶을 접목한 구성에 어떤 메시지를 담고자 했는지 알 수 있다. 명확한 구분이나 형태를 규정짓지 않고, 무지개색이 서로 어울려 조화를 이루는 자연스러운 순간에 주목했다. 묽게 번지듯 표현된 색들이 화면에서 서로 섞이며, 번지고, 스며드는 효과처럼 가족 간의 동등과 조화로 사랑의 진정성을 발견해가는 과정을 무지개의 상징성과 접목시켰다. 이러한 무지개색의 탐구는 이번 개인전에서 한층 주관적 의미의 색채 표현으로 확산되었다.


임현주가 이번 개인전에서 선보인 주제는 '낙화(落花)'이다. 낙화는 '꽃이 시들거나 말라서 떨어지는 것'을 뜻하지만, 단어 그 자체만으로도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꽃이 떨어지는 계절, 바람에 떨어지는 꽃잎은 슬픈 감정을 일으킨다. '열흘 붉은 꽃이 없다(花無十日紅)'고 했다. 한번 핀 꽃은 결국 지기 마련이다. 자연이 그렇고, 인생이 그렇다. 꽃이 만개한 뒤엔 떨어지는 순간이 오는 것처럼, '낙화'라는 단어는 인생의 찬란함도 일시적이며 허무하게 사라질 수 있음을 상기시킨다. 낙화가 시간의 흐름과 변화, 존재의 무상함과 허무함, 그리고 바니타스(Vanitas)의 상징적 의미로 비유되는 이유이다.


그렇다면, 임현주에게 '낙화'는 어떤 의미일까?

임현주의 낙화 시리즈는 소소한 일상에서 겪은 자신만의 내적 감정과 현실 사이에서 느끼는 이성과 감정의 대립적 상황을 여러 조형언어(무지개색, 꽃잎, 엘레강스잎, 음표, 낙서 등)로 표현한 세계이다. 신작의 특징은 구상과 추상을 한 화면에 표현한 점이다. 사실적으로 그린 꽃잎 부분과 즉흥적 붓놀림으로 표현한 추상 부분으로 구분된다. 화면상 꽃잎이나 이파리의 낙화 장면보다 화면 중. 사실, 낙화라는 주제에 비춰보면 정작 꽃잎이 떨어지는 모습은 미약하다. 화면의 한 부분에 살며시 등장하는 것에 그친다. 마치 보는 이의 감정을 살짝 건드리는 느낌이랄까. 반면, 화면 중앙의 추상적 표현은 일상에서 마주한 어떤 현상에 대한 감정을 그대로 분출시킨 듯하다. 관점에 따라 어린아이가 손가락에 물감을 묻혀 마음껏 표현한 그림처럼 자유분방하다. 들풀들이 음악적 선율에 맞춰 춤추듯 보이기도 하고, 배경색에 따라 마치 어항 속 열대어가 노니는 듯한 느낌도 든다.


화면상 과감한 일필의 붓 터치마다 방향감과 속도감이 더해져 활력이 넘친다. 거칠게 다룬 터치로 촉각성과 역동성을 강조했다. 역동적인 추상 화면과 달리 꽃잎이나 엘레강스 잎들이 그려진 상단이나 하단은 상대적으로 차분하다. 사실적 표현의 낙화가 경험에 근거한 재현이라면,추상적 화면은 작가의 심상이 직관적으로 표현된 부분이다. 이러한 대조적 표현은 "우연과 필연, 이성과 감성의 충돌이 일상에서 반복되는 것을 작품세계로 표현하고자 한다"라는 작가의 제작 의도와 맞아 떨어진다. 실제 추상과 구상, 색과 형, 이성과 감성 등 대립적 충돌은 '시시포스(Sisyphus) 삶'-'치유된 흔적'-'낙화' 시리즈로 이어진 창작과정에서 지속해서 부딪혀온 갈등이기도 하다.


화면분할과 화면처리 방식에서도 변화가 보인다. 일단, 긁어내고, 번지고, 스며드는 기법이나 유화, 아크릴, 먹, 수채화 등 혼합 재료의 사용, 암호처럼 쓴 비문(非文) 등 자유로운 기법과 다양한 재료의 사용은 크게 변함이 없다. 다만, 전작이 밑바탕 색채 면을 유화로 도포하며 바탕 색채를 은은하게 드러낸 방식이었다면, 신작에서는 반대로 색채의 화려함을 한층 직접적으로 드러냈다. 감정의 표현에 솔직하고, 즉흥적이다. 화면구성 또한 황금비례 같은 균형미나 비례미를 크게 의식하지 않은 분할을 선택했다. 습관적 패턴처럼 느껴지는 좌우 끝이 없는 배경은 화면의 확장성과 자연의 연속성을 의미한 듯 보인다. 여기에 화면마다 빠지지 않고 무지갯빛 색 띠가 등장한다. 이는 작품에 표현하고, 담고자 한 작가의 감정선 같다.


결국, 임현주에게 낙화는 꽃의 떨어짐을 본 우연이 필연이라는 것을 느끼는 찰나의 순간에 충돌하는 감정들을 상징한다. 그녀에게 낙화는 슬픔과 기쁨, 절망과 희망의 감정을 동시에 일으키는 대상이지만, 이러한 감정 충돌은 절망적이거나 부정적이기보다 희망적이고 긍정적으로 인식하는 것이 핵심이다. "꽃잎이 떨어지는 찰나의 순간이 꽃이 피어있을 때 못지않은 극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낙화를 보면서 사랑하던


존재의 부재가 떠오르며 슬픔과 아픔이 밀려오지만, 이내 살아있는 존재에 감사하며 안녕을 기원한다."라는 고백처럼 임현주는 낙화를 생의 소멸이 아닌 생의 생성으로 인식한다. 화면에 그려 넣은 음표와 악보, 그리고 무지갯빛 화려한 색채의 이중주로 그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임현주의 낙화 시리즈는 꽃이 떨어지는 찰나의 아름다움, 그리고 그것에 의해 발현된 이중적 감정을 즉흥적으로 표현한 자기 내면의 세계이다. 어떤 형식에 얽매이지 않은 솔직하고 자유분방한 표현으로 삶의 여유와 자유를 한층 넓게 펼치고 싶은 유희충동의 분출이다. 

자신의 마음을 치유해 준 자연 이치가 타인에게도 치유의 희망으로 전달되기를 꿈꾸는 무지갯빛 색채로 그린 마음 일기이다. 


색채와 형태에 대한 독창적 이론을 펼쳤던 현대 순수추상 미술의 선구자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 1866-1944)는 감정과 정신적인 경험을 표출하는 예술적 수단으로 일찍부터 색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색을 피아노의 건반으로 표현하며, 색의 조화는 인간의 영혼을 합목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법칙에 근거한다'라는 지론을 통해 특정한 대상의 재현 없이 형과 색만으로 '예술적 영혼'을 표현할 수 있다고 했다. 이는 색의 조합이 조화로울 때 인간의 감정과 정신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는 색의 예술적 원리를 강조한 말이다.


임현주의 작가노트 중에 이런 글귀가 있다. "나의 영혼, 나아가서는 다른 이의 마음과 영혼을 자유롭게 하고, 살찌울 수 있게 하는 좋은 음식 같은 그림이 되었으면 한다.” 작가라면 누구나 품을 수 있는 큰 희망이다. 이 희망대로 특정한 자연현상을 집약시킨 상징적 색채로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임현주만의 무지갯빛 색채원리가 이번 전시를 계기로 새롭게 구축되길 기대한다.



평론제공= 임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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