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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일 《He-story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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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많은 삶의 사연,

그릴 수 없어 보따리로 묶다 


글 홍경한(미술평론가)

 

보따리’(따리)는 보자기에 물건을 싸서 꾸린 뭉치다. 보따리는 한국의 문화와 역사, 생활상에 자주 등장해 왔다. 그것은 본래 물건을 운반하거나 보관하는 데 사용되었지만 시대에 따라 다양한 상황에서도 활용되어 왔음이 사실이다. 물론 전통적 가치와 현대적 미()가 결합되어 예술적 영감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예술가들은 일상적인 용도에서 벗어나 그것이 지닌 다양한 의미와 가치를 재해석하기도 하고, 역사적, 문화인류학적인 탐구를 위한 소재로도 활용했다.

 

그렇다면 작가 박용일의 보따리는 어떤 함의를 지닐까. 혹자는 그의 보따리 속에 담긴 것에 다양한 상상으로 접근한다. 이왕이면 동시대인들이 그토록 염원하는 ()’()’, ‘행운과 같은 길상의 의미가 있길 바란다. 작가는 상관없다 여긴다. 어떻게 받아들이든 저마다 풀이는 다를 수 있기에 그러한 바람만으로도 보따리의 의미는 완성된다고 본다.


나는 사람들이 바라는 것처럼 복이나 돈이 들어 있는 보따리를 그리진 못하지만 누군가의 더 아름다웠던 그 날을 추억하는데아픈 영혼의 상처를 치유하고 차가운 현실을 견디는데달콤한 미래를 상상하는데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A Small, Good Thing) 보따리이길 바란다.”는 작가의 말에서 잘 드러난다. 따라서 박용일의 보따리는 실체적 사물이면서 동시에 세상의 많은 화제를 포박하는 거푸집이라 해도 무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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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story 60x60cm  oil on canvas, sticth  2023 



실제 그의 보따리는 보는 이들의 자유로운 해석에서 완성되는, 또한 그 해석을 촉발하는 상상에 기반 한 사연의 총체에 가깝다. 무채색 검은 보따리든, 화려한 문양을 자랑하는 보따리든 그것들은 속을 드러내지 않기에 무한하며, 무한함은 오히려 인간의 삶에서 바라는 모든 연유를 포용하기 때문이다.

 

박용일은 최근 제한된 환경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인 삶의 전망을 유지하는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작업들을 발표한다. 걸개형식을 한 설치 또는 평면에 문자를 수로 새기는 방식으로 제작된 작업들이 그것이다. 이들 작품은 “Eating is a small, good thing in a time like this.”이라는,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소설 속 빵집 주인의 말 마냥 작은 순간들에서 의미를 찾는 것의 중요성을 관통한다.

또 다른 괘화(掛畵)에는 전쟁을 반대하는 영문이 기록되어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곳곳에서 자행되고 있는 전쟁과 폭력, 독립된 주체로서의 위치를 탈각한 탈식민성 등이 그 내부에 감춰져 있다. 모두 글로벌 흐름 안에서 논의해야 할 시안들이다. 한편으론 한 예술가인 작가 자신이 세상을 바꿀 만큼의 힘을 갖고 있진 않으나 세계인들에게 당면한 과제와 당사자들이 겪는 역경을 어떻게 하면 오늘의 화제로 승화시켜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를 묻는 것이기도 하다.

그의 보따리는 물질적으로 가장 풍요한 시대를 살고 있지만 여러 면에서 가장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는 현실에 대한 발언과 동떨어져 있지 않다. “코로나 전쟁 자연재해 기후 위기 등등 어쩌면 모두가 힘을 합쳐도 지구와 인류의 생존을 지키기 어려울 수도 있는 이 상황에서도 각자의 이윤 추구에만 혈안이 되어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소중한 가치들이 점점 소외되고 사라져 가는 것은 아닐까?”라는 반문을 전제로 하는 탓이다.

이는 당대성을 다룬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데, 예술가의 책무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박용일 10여 년 전부터 수많은 사연을 하나에 응축한 보따리 작업을 선보였다. 이쯤 이르러 다소 직설적이던 언어는 은유로 치환되었고, ‘의 행동에서 우리의 실천, 각자 되돌아보며 다 함께 만들어가고자 하는 논의적 삶을 향한 방식의 전환이 이뤄졌다. 과거 대비 서사는 풍요로워졌으며, 작가가 경험한 세상을 해석하는 방식도 변화했다. 작품제목도 지금처럼 <He-story>로 통일됐다.

물론 보따리 작업에서도 그가 오랜 시간 관심을 지녀온 재개발 지역의 철거중인 건축물들을 보따리에 싸서 펼쳐놓은 예가 있다. “사라지는 영혼들에 대한 연민또한 변함없었다. 다만 그때와의 차이라면 있는 그대로를 재현하는 조형, 상징과 기호를 희석제로 한 정신적인 언어가 어떤 방식으로 예술적 결과를 맺는지 새롭게 목도 할 수 있다는 것에 있다. 또한 여러 매체적 실험에도 불구하고 매체 자체에 의존하기보단 그 속에 흐르는 본질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는 것도 변별점이다.

특히 작품이 피사체를 중심으로 한 재현의 개념을 넘어 시대를 관통하는 철학은 유지하면서, 인간의 상상력에 미학적, 전통적 가치를 덧댄 작품들로 승화되고 있다는 점은 작금의 보따리가 지닌 의의라고 할 수 있다.

문득 그는 왜 이전의 회화방식을 지양한 채 보따리를 그리게 되었을까를 생각해본다. 아마도 작가는 세상에 떠도는 숱한 이야기들을 모두 그릴 수 없기에 그것을 묶어 싸는 보따리를 만들었던 게 아닐까 싶다. 뭔가를 가득 채운 적시 보단 비워짐의 채움을 통한 개방성을 지향하고 다수의 주체적 개입에 의한 공유와 공존의 가치를 말하고자 한 것은 아니었나 싶다.

이제 그의 작업에선 개발로 인해 떠나는 자들의 쓸쓸한 그림자를 만날 수 없다. 1993년 개인전 제목인 <4326 풍경>에서의 투박한 삶, 2000년대 초 중반의 스산한 풍경과 같이 구체적이거나 직접적인 서술은 마주하기 어렵다.

그러나 지금도 같은 공간, 다른 시간 속에 그의 보따리가 놓여 있다. 그리고 그 보따리 안에는 셀 수 없이 다양한 이야기들이 둥지를 튼 채 저마다의 사연을 전하고 있다. 비록 텅 빈 공간만이 관람객을 맞이하지만 그 안에 투사된 각자의 삶이 담긴 소시민들의 이야기들은 되레 참되고 포용적이다. 시대의 표정들로 꽉 차 있다.

 


작가 프로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졸업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회화과 졸업

 

개인전

2024 박용일 초대전 He-story @Home, 나노갤러리(청주)

2023 박용일 초대전 He-story 일탈, 갤러리H(서울)

박용일 개인전 A smll, Good Thing, 공갤러리(고양)

박용일 초대전 He-story,The beauful day 갤러리 앨리스(광명)

2022 He-story Consolation, 칼리파갤러리(서울)

2020 He-story , 폴스타아트갤러리(서울)

박용일 개인전 ():():() 슈페리어 갤러리(서울)

2019 고양 아티스트365 박용일개인전, 고양아람누리 갤러리우리(고양)

박용일 초대전, 세종갤러리(서울)

2017 He-story:in&out, 로드로잉 갤러리(파주)

Look in story, 소노아트 (서울)

박용일 초대전, GS타워 더스트릿 갤러리 (서울)

2016 He-story, 갤러리 호감(서울)

He-story, 훈 갤러리 (서울)

2015 He-story, 아트스페이스 수다방 (서울)

He-story, 에이블화인아트NY 갤러리 (서울)

He-story, 에이블화인아트NY 갤러리 (뉴욕)

2014 He-story, 갤러리이즈 (서울)

2009 목련이 피기까지, 갤러리크로프트 (서울)

2008 종이풍경, 웨이방갤러리 (서울)

2007 하이서울, 국립 고양미술창작스튜디오 (고양)

2006 오리진 1962-2006 집단 개인전,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서울)

2005 어수선한 풍경, 인사 아트센터 (서울)

2003 어수선한 풍경, 갤러리 상 (서울)

2002 풍경-바람, 관훈갤러리 (서울)



평론제공  두나무 아트큐브


ⓒ 아트앤컬쳐 - 문화예술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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